블로그 대문/조선 3대 여류 시인 이매창
매창은 1573년 전북 부안에서 아전 이탕종(李湯從)과 관비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노래와 춤, 악기를 익혔고, 수령 주변에서 갖은 심부름을 하며 성장했다.
앞서 언급한 내용과 달리 매창은 여느 기생들처럼 수많은 남자들을 상대했다.
유희경과 시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나누다 헤어졌고, 이후에는 서울에서 첩살이를 하기도 했다.
당시의 기생에게 첩살이란 좀더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였으며, 특히 매창은 이 덕분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그녀가 부안에 있었더라면 기축옥사에서 역모에 연루되어 죽은
전라도사(全羅道事) 조대중(曺大中)과 함께 저세상에 갈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청춘을 보낸 매창은, 퇴기 취급을 받을 나이에 다다르면서 오히려 시를 짓는 시기(詩妓)로서의
이미지를 굳혀나갔다. 각종 연회에 초대받아 양반들과 시를 주고받고 노래와 춤을 선보이며
연회의 흥을 돋우는 기생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당대 최고의 시 비평가였던 허균과 교유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허균은 매창에게 행운과 함께 불행도 가져다주었다. 연인이었던 윤선(尹鐥)의 선정비 옆에서
매창이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린 일이 엉뚱하게 비화되어 허균을 비롯한 벗들,
그리고 매창의 말년에도 생채기를 냈기 때문이다. 38세의 짧은 생을 살았던 매창의 삶은,
이처럼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모습을 내포하고 있다.
매창이 유희경만을 사랑했다는 에피소드는 1876년 박효관(朴孝寬)과 안민영(安玟英)이 편찬한
『가곡원류(歌曲源流)』에서 비롯되었다. 이 책에는 위의 시조와 함께 ‘유희경이 서울로 돌아간 뒤
소식이 없자 매창이 이 노래를 지어 수절했다’는 짧은 설명이 덧붙여 있다.
이는 매창이 유희경만을 사랑하며 수절했다는 오해의 출발점이 되었다.
기획. 취재. 촬영. 편집 :문화재사랑 / 내레이션:한송이
전승기념식 직후에는 해군 5전단장이 지휘하는 상륙기동부대가 인천 상륙작전 시 최초
상륙지점의 역사적 의미를 가진 월미도를 대상으로 인천상륙작전을 재연한다.
상륙작전 재연에는 한ㆍ미 해군 함정 및 한국 육·해·공군 및 해병대가 참가해 현대화된
우리 군의 연합·합동 상륙작전 능력을 과시한다(2015년 행사 예고).
그러나 해마다 웅장하게 펼쳐지던 상륙작전 재현 행사는 지난 해부터 사라지고 기념식만 거행됐다.
제69주년이 되는 올 인천상륙작전 기념식은 9월 15일이 추선 연휴여서 9월 7일로 앞당겨
졌으나 태풍 링링으로 기념식도 못 했다.
인천 상륙 과정 재현행사가 사라진 것은 북한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라는 시민들의 말이다.
▒▒♡♡♡건강하세요. 행복하세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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