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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중계]대통령상 수상 무형문화재시리즈(3)제2회 한국민속예술축제 최우수상 봉산탈춤

문화재방송 2020. 4. 18. 00:01

기획. 취재. 촬영. 편집. 내레이션:문화재사랑



봉산탈춤<국가무형문화재 제17호 >

황해도 전역에서 전해져 온 해서탈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탈춤. 한국전쟁 이후 연희자들이

월남하자 서울에서 전수되기 시작했다. 사상좌춤·팔목중춤·사당춤·노장춤·사자춤·양반춤·미얄춤 등

7마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민들의 가난한 삶과 양반에 대한 풍자, 남성의 여성에 대한 횡포를 보여준다.




블로그 대문/ 4월 21일 '과학의 날' 기념 우표




일제 강점기인 1933년 우리나라에 ‘과학 조선’이라는 대중 과학 잡지가 창간되었다.


잡지의 모토는 ‘생활의 과학화! 과학의 생활화!’로 평범했다.


하지만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을 모티브로 한 소설 광고가 창간호에 실렸다는 것에서

이들의 지향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잡지를 발행하는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1934년 4월 19일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의 날인 ‘과학 데이’

행사를 열었다.

이때의 모토는 ‘과학의 승리자는 모든 것의 승리자다. 한 개의 시험관은 전 세계를 뒤집는다’였다.


일단 사람들이 모이기 좋은 4월을 택했다. 그런데 왜 하필 4월 19일이었을까? 4월 19일은 찰스 다윈의

기일이다. 과학 데이는 1938년 5회까지만 진행되었다. 하긴 내가 일제 총독이라고 하더라도

조선 민중에게 과학이 널리 전파되는 것은 막고 싶었을 것이다.


무려 30년이 지난 1968년에야 과학 데이가 ‘과학의 날’이란 이름으로 부활했다.


1960년 4ㆍ19혁명이 일어났으니 4월 19일은 혁명 기념일로 남겨 놓아야 했다.


그렇다면 어느 날로 정해야 할까? 1967년 (대한민국 정부 역사상 최초의 과학기술 전담 부처인)

과학기술처가 발족한 날인 4월 21일을 택했다. 약간 촌스러운 선택이기는 했지만 딱히

다른 대안이 없기는 했다. 더 늦어지면 학교 중간고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과학의 날과 과학의 달이 널리 퍼지게 된 데는 (1996년 한국과학문화재단으로 시작한)

한국과학창의재단의 공이 크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은 각 학교에 ‘과학기술 앰배서더’를 파견했다.

과학기술 앰배서더란 요즘 말하는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다.

마치 ‘방정식’처럼 낯설고 어려운 것으로만 느끼는 과학을 미지의 세계로 자신을 이끄는 가슴 설레는

‘모험’으로 만들어 주는 사람들이다.


세상은 만만치 않다. 코로나19 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학교는 물론이고 전국의 과학관과 자연사박물관은

문을 닫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과학의 달을 즐기는 방법은 있다. 인터넷 검색창에

‘온라인 과학축제’를 쳐보시라. 자연스럽게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운영하는 ‘사이언스올’ 페이지를

통해서 전국의 과학관과 국책연구기관의 홈페이지나 SNS로 연결된다.


지금은 21세기다. 언제 어디서나 뉴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과학과 기술을 향유할 수 있다.

여기에 과학기술계가 합심하여 참여하고 있다. 멋지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하지만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직접 콘텐츠를 만들어 시민들과 소통하고 있다.


앞으로는 BC(Before Corona19)와 AC(After Corona19)라는 개념이 등장할 것이다.

모든 교수와 교사, 학생이 인터넷 수업 환경에 적응하고 있다. 직장인들은 재택근무와 화상회의에

익숙하게 될 것이다.


정책적으로 수십 년간 추진해도 이루지 못했지만 우리는 코로나19 환경에 적응하고 있다.

엘리엇이 말한 황무지와 4월은 20세기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였지만 거기에 걸맞은 새로운

생명력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인간들의 정신세계를 빗댄 것이다.


21세기에 코로나19와 함께하는 우리의 4월이 잔인할지 말지는 우리가 새로운 시대를 여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다. 일단 조금 더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자.


◀선조들의 숨결어린 문화재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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