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제 1254호 보림사목조사천왕상(寶林寺木造四天王像)
보림사 사천왕상을 뽈 때 다리와 팔부분을 유심히 볼 일이다.
팔과 다리 안은 비어 있는 공간이다. 사천왕상의 훼손이 심해 1995년에 보수 복원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때 팔과 다리 안의 빈 공간에서 국보급 희귀문서가 대량으로 쏟아졌다. 무려 250여 권의 고서(古書)들이 발견된 것이다.
사천왕상은 본존불 등의 등쪽을 파고 그 속에 복장유물을 보관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보림사 사천왕상의 경우 발바닥 속까지 임진왜란 이전의 언해본들을 포함한 유물들을 가득 채어 넣은 사실은 매우 보기 힘든 경우이다.
월인석보 권25가 보물 제745-9호 그리고 금강반야밀경이 보물 제1251호,
성교정본자비도량침법 권 제9-10이 보물 제 1543호
보림사 사천왕상 복장유물 가운데 임진왜란 이전의 언해본(諺解本)들이 많아 국문학자들이 잔뜩 긴장한 발견이었다. '월인석보 권제25' 그리고 '금강반야바라밀경 권제1' 또 '상교정본자비도량침법 권제9~10'은 보물로 지정되었다. 모두 우리나라 서지학이나 불교사 또는 국어사에 큰 도움을 주는 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월인석보(月印釋譜)의 완질본이 24권으로 알고 있었으나 권25가 발견된 사실은 학계의 흥분을 자아내었다. 이로 말미암아 5802장으로 여겨왔던 '월인천강지곡'도 583징까지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월인석보 권제25는 보물 제745-9호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보림사 대웅전은 국보 제240호였다
보림사 경내 동편에 서쪽을 향하여 세운 정면5칸 측면 4칸 중층 8작 지붕의 큰 건물이었다
내부는 외관과 달리 2층까지 통해서 한방으로 만들고 중앙단상에는 금동석가여래상을 안치하고 있었다
아깝게도 한국전쟁 당시 방화로 타버리고 초석만 남아 있다가
1982년부터 1984년까지 3년에 걸처 복원된 건물이다.
해동 선종의 종찰(海東 禪宗의 宗刹)로 대접받는 전라남도 장흥의 보림사는 고즈넉한 매력이 돋보이는 절집이다. 가지산(伽智山 .. 해발 510m) 기슭에 있으면서도 앞과 옆이 확 트여 있는 평지사찰이다. 번창했던 시절에는 천 여명이 넘는 선승들이 수도를 하였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증명이라도 하 듯, 널찍한 경내에는 국보급 유물이 즐비하다. 신라 선문구산(禪門九山) 가운데 가장 먼저 산문을 개창한 '가지산문'의 중심 사찰이었다.
보림사(寶林寺)는 통일신라 말기의 사찰로 860년에 ' 보조선사 체징 (普照禪師 體澄) '이 초당(草堂)을 확대하여 지은 사찰로, 통일신라 시대의 구산선문(九山禪門) 중의 하나이었다. 구산선문의 하나인 가지산파(迦智山派)의 근본도량으로 인도(印度)의 가지산 보림사, 중국(中國)의 가지산 보림사와 함께 ' 3 보림 (三寶林) '으로 일컬어졌다.
보림사는 한국전쟁 때의 방화로 사천문과 외호문을 제외하고는 모든 당우가 전소되었다. 그러나 사천문에 있는 목조 사천왕상이 보물 제1254호, 대적광전의 철조비로자나불상이 국보 제117호, 삼층석탑과 석등이 국보 제44호, 보조선사 창성탑이 보물 제157호, 보조선사 창성탑비가 보물 제158호, 동부도가 보물 제155호, 서부도가 보물 제156호, 월인석보 권25가 보물 제745-9호 그리고 금강반야밀경이 보물 제1251호, 성교정본자비도량침법 권 제9-10이 보물 제 1543호로 지정되어 있는 등 국보가 모두 2 점, 보물이 모두 8점의 유물이 남아 있어 고찰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국보 제117호 보림사철조비로자나불좌상(寶林寺鐵造毘盧舍那佛坐像)
사천왕문을 들어서 정면에 위치한 대적광전(大寂光殿) 안에 있는 불상으로, 국보 제117호로 지정되어 있다. 높이 270cm의 거대한 철불(鐵佛)로, 858년에 무주 장사현(武州長沙縣 ... 지금의 광주와 장흥) 부관 김수종(金遂宗 .. 일명, 김언경)이 헌강왕에게 간청하여 그해 8월 왕의 칙령에 의하여 조성되었다. 이 불상은 조성한 연대가 확실하여 당시 유사한 비로자나불상의 계보를 확인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신라말부터 고려 초에 걸쳐 유행한 철로 만든불상의 첫 번째 예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고 한다. 현재 대좌(臺座)와 광배(光背)를 잃고 불신(佛身)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국보 제 44호 보림사삼층석탑및석등(寶林寺三層石塔및石燈)
탑 속에서 발견된 기록에 의해 석탑은 통일신라 경문왕 10년(870) 즈음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고, 석탑과 더불어 석등도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석탑의 구조는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우고 그 위에 상륜(上륜)을 얹은 전형적인 신라 석탑이다. 기단부는 여러 장의 장대석(長大石)으로 구축된 지대석(地臺石)으로 놓였는데, 기단의 구성은 상,하층의 통식을 따르고 있으나 상층기단의 갑석(甲石)이 얇고 부연(副椽 .. 갑석 하부에 두른 쇠시리)이 얕아서 평판적인 느낌을 준다.
보물 제155호 보림사동승탑 (寶林寺東僧塔)
경내의 동쪽 숲속에 있는 다른 부도들에 비해 뛰어나 군계일학 같은 승탑이다
팔각원당형을 따른 승탑으로서 눈부신 백색의 화강 석재가 조형미를 더욱 돋보이고 있다
보물 제156호 보림사서승탑 (寶林寺西僧塔)
보림사에서 서쪽으로 1km쯤 떨어진 구석마을에 있는 승탑 2기이다
모두 8각 원당형으로 기본형태는 같으나 장식수법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머리 장식은 온전하게 남아있는데 1941년 사리를 두는 장치가 도굴돼 1944년 다시 만들어 놓았다
보물 제157호 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寶林寺普照禪師彰聖塔)
보조선사 체증의 사리를 모셔두고 있는 사리탑이다
이 탑은 팔각단당형을 따른 신라 전형의 부도로 높직한 기단위에 탑신과 옥개, 상륜부로 이루어저있다
상,중,하대석의 각부에는 구름과 안상 ,연화문등을 장식하고 탑신에는 문비와 사천왕상을 조각하였으며
옥개석은 기왓골로 표현하였다
탑비에 의하면 신라 헌강왕6년 (880년)에 보조선사가 입적하자 그의 사리탑으로 건립하였음을 알수있다.
보물 제158호 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비(寶林寺普照禪師彰聖塔碑)
귀부 위에 비신을 세우고 이수를 얹은 일반형 석비이다
부리부리한 두 눈과 귀갑문 비좌의 운문이 당시의 기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수의 제액에는
"가지산 보조선사 비명"이라는 3행 9자가 새겨저 있으며,그 주변의 용틀임도 웅건하다
보조선사는 신라 헌강왕 6년(880년)에 77세로 입적하였다 그는 동국선종의 제 3조로
왕은 시호를 보조, 탑명을 창성 이라 내렸으며 보림을 시호로써 사액 하였다
비문에 의하면 신라 헌강왕 10년(884년)에 건립된 것임을 알수 있다
보림사 가는길
광주에서 화순을 지나 장흥,보성방면 으로 진행하다가(남광주 깃점 30-35분정도)화순군 이양면삼거리 이앙농협주유소 3거리에서
우측으로 13km 정도 진행 하다보며는 장흥 장평면 봉림마을 3거리에 닿는다
이곳에서 또 우회전 5km정도 가며는 동양3보림인 보림사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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