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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답사기

[문화유산 답사기] 세계무형문화유산 판소리 들으며 판소리 유적 기행<1>

문화재방송 2014. 7. 5. 00:01

 

 

 

 

- 고창 신재효 고택과 판소리박물관
구전심수(口傳心授)의 깊은 멋

 

 

그의 문하에서‘끄슬려갖고’나와야 어전(御前) 명창이 된다 하였다. 동리(桐里) 신재효(1812~1884).
현재 이어지는 판소리 마당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판소리 사설을 적벽가, 춘향가, 심청가, 토별가(수궁가), 박타령(흥보가), 가루지기타령(변강쇠가)의 여섯 마당으로 집대성한 신재효의 업적을 근거로 하는 것이니, 고창은 초가삼간 신재효 고택(중요민속자료 제39호)만으로도 판소리의 고향이라 칭할 만한 곳이다.

모양성(고창읍성) 입구 동리 고택에서 동편제 길을 따라가는 판소리 기행을 시작한다.
“가얏고 둥덩둥덩, 퉁소 소래 띠루띠루, 해적 소래 고깨고깨, 북장단 검무 치며 벼락소고 동골동골.”
악기 소리마저 이렇듯 구음으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 탁월한 재주를 지닌 동리는 양반이 아닌 중인으로서 평생 신분의 한계를 절감하며 민중예술인 판소리를 통해 자아실현을 추구했다.
고택 안 동리가비(桐里歌碑)는 고창 사람들이 1984년 힘을 모아 세운것으로 신재효가 지은‘자서가(自序歌)’가 새겨져 있다.
“고창읍내 홍문거리/ 두충나무 무지기 안/ 시내 우에 정자짓고/ 정자 겨테 포도시렁/ 포도끄테 연못이라” (‘자서가’첫 머리)
문간에 무지개문처럼 덩굴진 두충나무를 심어 어느 양반네라도 몸을 낮춰야 들어오게 하려던 그의 자의식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소리를 배우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던 이 고택의 사랑채에서 내로라하는 명창들이 기량을 갈고 닦았다.
동리 고택 인근에는 고창판소리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멋 마당, 소리 마당, 아니리 마당, 발림 마당 등 이름만으로 흥겨운 전시관들 중 동굴 같은 분위기의 구전체험관에서 화면 속 명창을 따라 북을 치고 소리를 따라 하노라면 소리로 전달하고 마음으로 받는다는 구전심수(口傳心授)의 깊은 멋에 빠지게 된다.

 


- 남원 광한루
이몽룡과 성춘향의 인연이 시작된 자리

 

 

<…섬섬옥수 번듯 들어 양 그넷줄을 갈라 잡고 선뜻 올라 발 굴러 한 번을 툭 구르니 (중략) 머리위에 푸른 버들은 올을 따라서 흔들, 발밑에 나는 티끌은 바람을 쫓아서 일어나고…>
판소리 <춘향가>에서 이몽룡과 성춘향이 인연을 맺은 곳. 음력 5월5일 단오절에는 춘향제가 열리는 곳 남원 광한루원(명승 제33호)이다. 이곳에서 또 한 쌍의 오래된 연인을 떠올리는 오작교를 건넌다. 사계절 사방위를 상징하는 네 개의 홍예(虹霓, 무지개)가 걸려 있는 오작교 아래 못에는 직녀 베틀 고이는 지기석(支機石)이 있고, 견우 은하수 건너는 나무배인 상한사가 떠있다.

옛사람들은 남원 요천(蓼川)을 은하수요, 광한루(보물 제281호)를‘달의 궁전(月宮)’이라 여겼다. 통 큰 옛 분들이 달나라에 가는 대신 땅위에 세워버린 달세계를 본다. 은하수 못 속에 세 개의 섬을 만들어 영주(한라산), 봉래(금강
산), 방장(지리산) 삼신산(三神山)이라 하여 배를 타고 그 섬들을 드나들며 신선놀음을 즐긴이들. 못가에는 자랏돌을 두고, 누각에는 토끼 조각상을 두어 용궁에서 월궁을 넘나들던 그이들의 우주적 풍류를 생각한다.
못가에 자라를 앉힌 데는 연유가 있다. 인공으로 만들어 뿌리 없이 떠 있는 삼신섬이 홍수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등에 꽉 업고 있어 달라”는 간곡한 바람이었다. 혹은 지리산 동남풍만 불면 남원에 불이 나곤 해서 그 화기(火氣)를 막으려고 자라를 두었다는 설도 있다.
<영주산 놀던 선녀 남원에 귀양 오니 월궁에서 놀던 선녀들 벗 하나를 잃었구나.>
그러한 헌사를 바친 연인을 두고 춘향이 어찌 딴 맘을 품었으랴.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아니한 춘향이를 기리기 위해 광한루원 한편에 열녀춘향사(烈女春香祠)를 세운 것은 일제강점기인 1931년. 비녀와 반지를 팔아 모은 권번 여성들이 주체가 됐다. 나라 잃은 설움 속에서도 두 임금을 받들지 않겠다는 굳센 의지를 담았다.
사당 문설주 위에 자라 탄 토끼상이 조각된 이유를 알겠다. 춘향의 일편단심에 별주부의 충성심과 토끼의 지혜까지 더해 나라를 침략한 일본을 이겨내자는 결의를 다진 것. 허나 절개의 상징 춘향 영정을 친일화가 이당 김은호(1892~1979)가 그린 것을 안다면, 비녀 빼서 내놓았던 권번기생들이 참으로 절통할 일이다.

 


- 오리정과 눈물방죽
춘향이 이별 눈물 애달파라

 

예전에 각 고을의 원님이 부임하거나 이임할 때 육방관속이 배웅이나 환송을 하던 곳을 일러‘오리정(五里亭)’이라 하였다. 남원에서 전주가는 17번 국도변에 있는 오리정(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56호)은 그 중 이름이 난 곳이다. 1953년에 세워졌다는 목조 2층 정자 오리정 앞에는 <이곳은 고대소설 춘향전의 주인공인 성춘향과 이몽룡이 이별의 정을 나눈 곳>이라는 표지판이 서 있다.
“아이고 여보 도련님 참으로 가실라요 나를 어쩌고 가시랴오 인제 가면 언제와요 올 날이나 일러주오.(중략) 마두각(馬頭角) 허거든 오시랴오 오두백(烏頭白) 허거든 오시랴오”
‘마두각’(馬頭角) ‘오두백’(烏頭白)이라니, 무슨 수로 말머리에 뿔이 돋을 것이며 까마귀 머리가 희어질까.
기약 없는 이별을 당한 춘향이 하염없이 흘린 눈물이 고여 생겼다는 눈물방죽이 오리정 앞에 있고, 끝내 이도령의 말 등자를 잡고 매달리다시피 따라가다 말이 뛰는 바람에 버선 한 짝이 벗겨지면서 주저앉은 그 자리 ‘버선밭’이 있다.
벗겨진 버선짝을 앞에 두고 울었던 춘향, 허나 죽음 앞에서도 놓지 않은 사랑으로‘운명에 꺾이지 않고 사회적 억압에 맞서는 강한 인간’으로 거듭났기에 춘향은 지금에도 장삼이사들의 변치않는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리라.

 

 

*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여행길]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판소리

 

1964년 12월 24일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으며 2003년 11월 7일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세계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되어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전북 고창 출신 故 김소희 국창의 춘향가 중에서

 
*이어듣기(완창 5시간 4분)*
출처:빛나는 이면의 소리 동초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