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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답사기

[문화유산 답사기]문화재(궁궐) 찾아 떠나는 자전거 여행

문화재방송 2014. 7. 20. 00:00

 

 

 

1. 500년 조선의 흔적 - 궁궐

 

 

 

궁궐은 나라 경영의 중추가 되는 소중한 장소이다. 서울에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등 조선시대의 다섯 궁궐이 있다. 궁궐은 아니지만 왕실의 사당인 종묘도 조선 왕조의 정신적 근간으로서 궁궐 못지않게 중요시 되어싸. 이들 궁궐과 종묘는 한 나라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소이기에, 당대 최고의 규모와 기술로 지어졌다. 창덕궁과 종묘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조선 태조는 한양 천도 후 궁궐과 종묘를 먼저 지은 후 북악산·낙산·남산·인왕산을 잇는 성곽을 둘러 4대문(동-흥인지문, 서-돈의문, 남-숭례문, 북-숙청문)과 4소문(동-홍화문, 서-소덕문, 남-광희문, 북-창의문)을 준공하였다. 이러한 성곽은 세종, 숙종 때 개축 또는 수축되었으며, 일제시대에는 근대도시 발전을 저해한다고 하여 성문과 성벽 일부를 무너뜨리는 등 훼손을 입기도 했다. 광복 후 혜화문(홍화문) 등이 복원되었으며 옛모습을 되찾기 위해 계속 복원할 계획이다.

 

 

 

 

1-1 노선 살펴보기

 

 

서울도심을 순환하는 노선으로 교통이 복잡하기는 하지만 [삼청동길]과 [율곡로]의 자전거전용차로, [창경궁로]의 자전거도로(보도병행설치), 일방통행도로(종묘순환), 이면도로 등을 이용하면 큰 문제가 없다. 고궁 답사 시 창경궁을 제외하고는 자전거 보관시설이 없기 때문에 분실에 주의해야 한다. 노선  대부분이 평탄하여 가족나들이에 적당하다. 다만, 창덕궁에서 경복궁으로 이동할 때 북촌길을 택하면 한옥마을 등을 경유하는 장점이 있으나 편도 1차로의 도로에 고개가 있어 초보자인 경우 자전거를 끌고 이동하는 구간이 있을 수 있다. 이 구간을 안전하게 이동하기 위해서는 [율곡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1-2 사진으로 보는 문화유적지

 

 

 

◎ 경복궁 - 경복궁은 조선 왕조를 대표하는 제일의 궁궐이다.

 

조선 왕조를 세운 태조가 건립한 궁궐로서,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규모가 가장 크고 격식이 엄중하다. 경복궁은 서울 도성 안에서도 가장 좋은 길지, 북악산을 주산으로 하는 양지바른 평지에 자리 잡았다. 왕이 머무는 공간인 만큼 최고의 기술이 동원되었지만 각 전각은 그의 서열과 쓰임새에 걸맞은 규모와 모양새로 지어졌을뿐 호사스럽거나 위압적이지 않다. 
경복궁 건축에 나타나는 이와 같은 질서와 절제의 위엄은 예의와 도덕으로써 나라의 기틀을 세우고자 한 조선왕조의 유교적 가치관에서 비롯된다. 경복궁은 '만년토록 빛나는 큰 복을 지닌 궁궐'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하늘의 뜻을 받아 백성을 다스리며, 대대손손 태평함을 이어가겠다는 조선 왕조의 강한 소망과 이상을 담은 이름이다. 사적 제117호

 

 

 

 

 

◎ 창덕궁 - 창덕궁은 동쪽에 자리 잡은 궁궐이라하여 창경궁과 함께 '동궐'로도 불렸다.

 

경복궁을 보조하는 궁궐로 지어졌지만, 임진왜란 이후에는 경복궁보다 먼저 복구되어 명실상부한 조선의 법궁이 되었다.
경복궁이 조선 왕조를 상징하는 궁궐로서 위엄과 권위가 돋보였다면, 창덕궁은 궁궐의 기본 격식과 규모를 갖추면서도 자연속에 조화롭게 깃든 아름다운 모습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산과 언덕에 둘러싸인 후원은 조선시대 궁궐 후원 가운데 가장 넓고 경치가 아름답다. 자연의 지형지세를 그대로 따르면서 최소한의 손길을 더하여 자연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한 솜씨가 절묘하다.
자연환경과 탁월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면서, 궁궐 건축과 전통 정원의 원형을 잘 간직한 창덕궁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자랑스런 문화유산이다. 사적 제 122호

 

 

 

 

 

 

◎ 창경궁 - 창경궁은 경복궁, 창덕궁에 이어 세 번째로 세워진 궁궐이다.

 

 

조선 초기에 경복궁을 법궁, 창덕궁을 보조 궁궐로 사용해오다가 창덕궁의 생활 공간이 좁아지자, 성종이 창덕궁과 이웃한 곳에 왕실의 웃어른인 대비들을 편안히 모시기 위해 마련한 곳이 창경궁이다.
창경궁은 조선시대 궁궐 가운데 유일하게 동향한 궁궐이다. 남·서·북쪽이 구릉이고 동쪽은 평지인 지세를 그대로 따라 자리를 잡은 결과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전각들은 남향하는 등 다른 궁궐과 달리 자유로운 분위기이다. 전각들은 대체로 아담하다.
왕실 웃어른을 섬기는 마음으로 세운 궁궐이고, 왕실 가족이 거처하는 내전 위주로 발전했기에, 왕들의 지극한 효심과 사랑, 왕과 세자의 애증, 왕비와 후궁의 갈등 등 역사에 남은 왕실 가족의 이야기가 풍부하게 전한다. 사적 제123

 

 

 

 

 

 

◎ 덕수궁 - 덕수궁은 임진왜란 후 선조가 머문 인연으로 궁궐이 되었으며, 대한제국 시절에는 황궁으로 사용되었다.


고종은 이곳에서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환구단을 새로 지어 하늘에 제사를 지낸 뒤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이는 조선이 자주 독립국임을 분명히 밝혀, 조선에 대한 이권을 놓고 치열하게 다툼을 벌이던 열강 사이에서 주도적으로 정국을 이끌어나가고자 했던 고종의 강력한 선택이자 의지였다.
고종 당시 상당한 격식을 갖추었던 전각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지금의 정동과 시청 앞 광장일대를 아우르던 궁역도 3분의 1정도로 축소되었지만, 덕수궁은 험난함 속에서도 꿋꿋이 지켜온 역사와 사계절 아름다운 자연을 이야기하는 문화 공간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사적 제124호

 

 

 

 

 

◎ 종묘

 

종묘는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사당이다. 종묘제례는 나라의 가장 중요한 예로서 엄격한 절차와 격식에 따라 왕이 친히 모셨으며 종묘제례악이 어우러져 장엄함을 더했다.

해마다 5월 첫째 일요일이면 종묘에서 종묘제례가 거행된다. 조선왕조는 사라졌지만 왕실의 조상들을 위한 공간과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한 음악은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어오고 있다. 선대의 왕과 왕비를 위해 제례를 올리고 그 전통을 600년이 넘게 이어온 사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종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고,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유네스코 무형유산 대표 목록에 선정되었다.


 

 

 

 

 

 

◎ 경희궁

 

조선 후기의 궁궐로 1623년(광해군 15)에 완성되었고 원래 이름은 경덕궁慶德宮이었으나 인조의 아버지 원종의 시호인 ‘경덕敬德’과 같은 발음이라 하여 1760년(영조 36) 경희궁으로 바뀌었다.


서궐이라고도 불렸는데,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하여 동궐이라고 부르던 것과 대비된다.
인조 이후 철종에 이르기까지 10대에 걸쳐 임금들이 경희궁을 이궁으로 사용하였고 특히 영조는 치세의 절반을 경희궁에서 보냈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경희궁에 있던 많은 건물들을 이전하였고, 일제시기 일본인을 위한 학교인 경성중학교가 들어서면서 중요한 전각이 대부분 헐렸다. 1987년 이후 복원 작업을 통해 숭정전과 회랑, 흥화문은 복원 되었다. 사적 제271호

 

 

 

◎ 운현궁

 

고종이 12세에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성장한 잠저(왕세자와 같이 정상 법통이 아닌 다른 방법이나 사정으로 임금으로 추대된 사람이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살던 집)이며, 그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정치활동 근거지로 이곳에서 흥선대원군은 서원철폐, 경복궁 중건, 세제개혁 등 많은 사업을 추진하였다. 고종 즉위 후 10년 동안 대원군의 위세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의 운현궁은 궁궐에 견줄 만큼 웅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사랑채인 노안당, 안채인 노락당, 별당 이로당만 남아 있다. 사적 제257호이다.

 

 

 

 

 

1-3 지도로 보는 서울궁

 

 

 

출처;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