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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답사기

[문화유산 답사기]서울 송파구와 경기도 고양시의 문화재 찾아 떠나는 자전거 여행

문화재방송 2014. 7. 24. 00:01

 

 

 

2. 한성백제를 찾아 - 서울 송파구

 

 

서울 송파구는 백제가 건국된 때부터 웅진으로 천도하기 전인 한성백제시대의 수도로 추정되고 있다. 이 때의 문화유적인 풍납토성, 고분군 등이 남아 있어 당시의 찬란한 문화를 조금이나마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청나라와의 전쟁에 패배하고 굴욕적인 강화협정을 맺은 후 청의 강요로 세운 공덕비가 남아있어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지만 1988년에는 세계에 우리 나라의 우수함을 알린 올림픽을 개최한 곳이기도 하다.

 

 

 

 

 

2-1 노선 살펴보기


 

노선의 대부분 구간에 자전거도로가 정비되어있고 올림픽공원을 이용할 수 있어 안전하다. 다만 풍납토성구간의 경우 토성을 따라 이어지는 골목을 이용하므로 주차차량이나 통과차량에 주의해야하지만 오히려 골목이라는 재미있는 체험이 가능하다.
몽촌토성 또는 풍납토성의 경우 성을 이동하기 때문에 자전거보관에 대한 염려는 않아도 된다.
석촌동고분군이나 백제고분군의 경우에는 개방형 자전거주차장이므로 자물쇠 등을 준비하면 좋다.
송파구는 서울특별시의 자전거특별구로 자전거관련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어 자전거로 여행하기에 쾌적한 조건이다.


 

 

 

 

 

 

2-2 사진으로 보는 문화유적지

 


◎ 광주 풍납리 토성 -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초기 한성백제 시기의 토축 성곽으로 사적 제11호이다.

 

경기도 광주(廣州)에 속하다가 행정구역 개편으로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어 풍납토성이라고도 한다. 남북으로 긴 타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둘레는 4km 정도였으나 1925년 홍수로 남서쪽 일부가 잘려나가 현재는 2.7km가량 남아있다. 높이는 일정하지 않으며, 동쪽에는 4곳에 같은 간격으로 뚫려 있는데 출입문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에서는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이 토성을 도성인 위례성으로 보는 견해와 방어성으로 보는 두 가지 의견이 엇갈리고 있으나 주변의 몽촌토성, 석촌동 고분군과 관련하여 한강유역에서 가장 큰 백제 토성 유적이라는 점에서 가치있는 문화유산이다.

 


◎ 몽촌토성

 

사적 제297호로 3세기경에 축조되었으며 해발 45m 내외의 자연구릉을 이용하고 진흙을 쌓아 축조된 토성이다. 둘레는 약 2.7km, 높이는 6~7m이다.
백제 초기에 서울을 수비하는데 이용되었으며, 지리적 위치나 견고함으로 미루어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의 주성(主城)으로 추정된다. 목책(木柵)과 토성 방비용으로 성의 밖으로 물길을 내어 방어선 역할을 한 해자(垓子)로 구성된 특수한 토성구조이다.

 

 

 입장은 무료이고, 관람시간은 올림픽공원 개방시간과 같다. 한얼광장, 평화의 광장으로 6시~22시까지 입장 가능하고 24시까지 개방한다.

 

 

◎ 석촌동 고분군 (백제초기적석총) - 적석총이란 고구려 초기부터 나타난 고구려 계통의 무덤으로서 돌무지무덤이라고도 한다.

 

백제초기부터 475년 웅진으로 천도하기 이전까지 형성된 백제전기 고분군을 말한다. 대형 돌무지무덤과 함께 널무덤, 독무덤 등이 확인되었다. 현재 사적 제24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에서의 돌무지무덤은 백제의 건국 세력이 문화적으로 고구려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 대형분과 소형분이 섞여 있으며, 서로 시기를 달리하여 중복되게 형성된 것이 확인되면서 오랜 기간에 걸쳐 다양한 계급의 사람들이 묘지로 사용했음을 짐작케 한다.

 


◎ 삼전도비

 

사적 제101호 삼전도비의 비명은 삼전도청태종공덕비(三田渡淸太宗功德碑). 조선 인조 17년(1639)에 세워진 비석으로 병자호란 때 청에 패배해 굴욕적인 강화협정을 맺고, 청태조의 요구에 따라 그의 공덕을 적은 비석이다. 비석 표면의 왼쪽에는 몽고 문자, 오른쪽에는 만주 문자, 뒤쪽에는 한문이 쓰여 있어 만주어 및 몽고어 연구의 자료로도 쓰인다.


 

 

 

 

 

 

 

◎ 방이동 백제고분군

 

한성백제의 문화를 알 수 있는 전기(4c초~475) 무덤으로 사적 제270호이다. 도굴로 인해 남아있는 유물은 적지만 고분의 구조와 형태는 그대로 남아 있다.
6호분에서 출토 된 토기나 고분양식 등은 신라의 양식을 따르고 있어 6세기 이후 신라의 한강유역 진출을 설명할 수 있는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입장은 무료이고, 관람은 동절기(10월~4월)에는 9시부터 19시까지, 하절기 (5월~9월)는 9시~20시까지 가능하다.  

 

 

 

2-3 지도로 보는 송파구

 

 

 

 

3. 왕과 왕비의 평온한 안식처 - 고양시

 

 

고양시는 세조가 아들 의경세자의 묘자리를 찾아 40여 일 동안 경기도 일대를 직접 돌아다닌 끝에 자리를 잡았을 만큼(서오릉 내 경릉) 풍수지리가 빼어난 곳이라 한다.
고양시는 삼국시대부터 중국 등과 교류하는 길목이었기에 삼국이 서로 차지하기 위하여 치열한 전쟁을 많이 한 곳이다. 이와 관련된 유적으로 고봉산성, 행주산성 등의 문화유적이 남이있어 당시 역사를 상상해 볼 수 있다. 고려 공양왕과 최영장군 부자의 무덤이 있어 고려왕조 멸망의 비운을 엿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벽제관이 설치되어 왕성에 출입하기 위한 준비를 하였던 곳이었고, 도성 100리 안에 왕릉을 마련해야 함에 따라 서오릉, 서삼릉 등이 조성되었다.

 

 

 

 

 

3-1 노선 살펴보기

 


예전부터 자전거를 이용하는 시민들이 즐겨 찾는 장소인 서오릉을 비롯하여 서삼릉, 공양왕릉 등 수도권 서북부 지역의 문화유적을 연결하는 노선. 답사지역이 주로 능이지만 이용구간에서는 창릉천을 따라 이어지는 제방길을 비롯하여 농로, 마을길, 국도와 지방도 등 다양한 형태의 도로를 체험할 수 있다.
[구산역]에서 창릉교에 이르는 방도 363호선이나 [원당삼거리]에서 [원신동주민센터앞]까지의 일반국도 39호선 등은 속도가 빠른 차량이 많으므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추천노선 외에 각 명소로 갈 수 있는 간선 도로나 보조 간선도로가 있지만 가급적 우회하더라도 안전하고 지역 특색을 살펴보기 쉬운 마을길이나 농로 등 추천 노선 이용을 당부한다.

 

   

3-2 사진으로 보는 문화유적지

 


◎ 서오릉 

 

사적 제198호 서오릉은 5기의 왕릉으로 구성되어 동구릉 다음으로 큰 규모이다. 이 곳이 능 지역이 된 것은 세조3년(1457) 의경세자(덕종)가 사망하자 풍수지리설에 의해 경릉이 들어서면서부터이다. 이곳에는 5기의 능 이외에도 조선왕조 최초의 '원園'인 명종의 맏아들 순회세자와 공회빈 윤씨(세자빈)의 묘 순창원順昌園, 사도세자의 묘 수경원綬慶園, 숙종의 후궁으로 많은 역사적 일화를 남긴 희빈 장씨의 대빈묘大嬪墓가 있다.

 

▶ 경릉: 성종의 생부 추존왕 덕종과 소혜왕후의 능(단릉)

 

▶ 창릉: 8대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의 능(쌍릉)

 

▶ 명릉: 19대 숙종과 제1계비 인현왕후, 제2계비 인원왕후의 능(쌍릉)

 

▶ 익릉: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의 능(단릉)

 

▶ 홍릉: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의 능(단릉)

 

 

관람시간 3월~10월 6시~18시 30분, 11월~2월 6시 30분~17시 30분. 입장은 관람종료시간 한 시간 전까지.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는 대인(19세~64세) 1,000원, 18세 이하 65세 이상:무료, 매월 마지막 수요일 '문화의 날':무료 

 

 

◎ 고려 공양왕릉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과 그의 부인 순비 노씨의 무덤이다. 공양왕은 이성계에 의하여 즉위한 이름뿐인 왕이었다. 재위 4년만에 고려의 멸망과 함께 폐위되었고, 강원도 삼척에서 두 아들과 함께 살해되었다. 무덤은 왕과 왕비의 쌍릉으로 고려의 전통적 양식과 함께 조선 초기 태조와 태종 무덤 양식과도 비슷하다.
특히 공양왕의 능은 강원도 삼척에도 한 기가 전해지는데(삼척공양왕릉 시도기념물 제71호) 봉분 4기 중 가장 남쪽에 있는 것이 공양왕릉, 2기는 왕자의 능, 나머지 한 기는 시녀 또는 말 무덤이라고 한다.  사적 제191호

 

 

◎ 서삼릉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의 능인 희릉과 인종과 부인 인서왕후의 능인 효릉이 들어서면서 왕실묘지가 된 곳이다. 이후 주변에 후궁이나 대군, 공주의 무덤이 조성되었고 철종과 그의 부인 철인왕후의 능인 예릉이 들어오면서 서삼릉이 되었다. 원래 왕릉에는 후궁, 왕자, 공주의 무덤은 만들 수가 없지만 일제시대에 멸망한 왕실의 무덤을 집중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모두 옮겨와 현재 경내에 3원과 46묘, 태실 54기가 있다. 사적 제200호


 

 

관람시간 3월~10월 9시~18시 30분, 11월~2월 9시~17시 30분. 입장은 관람종료시간 한 시간 전까지 가능.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는 대인 1,000원, 소인 500원 상시관람권과 시간제관람권은 별도 요금 관리사무소:031-962-6009

 

 

 

 


 

◎ 월산대군묘

 

추존왕 덕종의 장남인 월산대군 이정의 묘이다. 봉분 앞에는 묘비와 상석, 문인석, 망주석, 장명등 등의 석조물이 배치되어있다. 뒤에 부인 순천 박씨의 봉분을 두고 있다.
이정은 일찍이 월산군에 봉해졌으며 문장이 뛰어나고 책을 좋아했다. 지금의 덕수궁은 월산대군의 옛 집이었으며 친 아우인 성종이 자주 대군의 집을 드나들며 집의 정자를 풍월정이라 이름붙이고 근체오언율시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능의 서쪽에 숙종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 월산대군사당이 있다.

 

 

 

3-3 지도로 보는 고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