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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답사기

[문화유산 답사기]경기도 여주와 인천 강화도의 문화재 찾아 떠나는 자전거 여행

문화재방송 2014. 7. 28. 00:01

 

 

 

 

4. 조용히 흐르는 여강 - 여주

 

 

여주에는 예로부터 여주팔경이라 하여 아름다운 경치 여덟가지를 들고 있다. 신륵사에 울려 퍼지는 저녁 종소리, 마암앞 강가에 고기잡이배의 등불 밝히는 풍경, 강건너 학동에 저녁밥 짓는 연기, 강 여울에 돛단배 귀가하는 모습, 양섬에 기러기떼 내리는 모습, 오학리 강변의 무성한 숲이 강에 비치는 전경, 영릉에서 두견새 우는 소리, 파사성에 여름철 소나기 스치는 광경이 그것이다. 세종대왕릉, 효종대왕릉을 비롯하여 세종대왕릉의 원찰인 신륵사를 둘러보는 것도 좋고, 영월루에 올라보면 신륵사가 한강변과 함께 바라보이면서 여주 팔경이 한 눈에 들어와 뛰어난 전망을 자랑한다. 여강은 여주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남한강을 여주사람들이 부르는 애칭이다.

 

 

 

 

4-1 노선 살펴보기

 

 

 

여주읍 중심부를 순환하는 노선으로 자전거이용자의 안전을 위해 가급적 도로횡단은 줄이고 기존 자전거도로등을 이용할 수 있도록 구축되었다.
노선 구간은 대부분 평탄하지만 [상리사거리]에서 [터미널사거리]구간 중간정도 지점이 언덕이다. 하지만 이 구간은 자전거도로를 이용할 수 있어 안전하다. 그리고 [하동교삼거리]와 [효종대왕릉교차로]사이 구간은 강변 측에만 보도가 설치되어 안전을 위해서는 보도 이용을 권한다(보도에 보행자가 별로 없음).
또한 강변로를 통과하면 도로변 식당 방문 차량으로 복잡하므로 주의하여야 한다. 유적지에 자전거를 안심하고 맡길 시설이 없어 불편하지만 노선 가까운 곳에 자전거대리점이 있으니 고장 시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4-2 사진으로 보는 문화유적지

 

 

◎ 신륵사와 신륵사다층전탑

 

예로부터 여주의 경치가 아름다운 여덟 곳을 ‘여주팔경驪州八景’이라 부르는데, 그 첫 번째가 신륵사이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지만 정확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창건 이래 나옹화상, 무학대사 등의 고승이나 고려말 학자 목은 이색 등과 관련한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사세가 위축되었으나, 1469년 조선 예종 때에 세종능인 영릉을 여주로 옮기면서 보은사報恩寺라는 이름으로 바뀌고, 영릉의 원찰이 되어 유명해졌다. 신륵사의 사세가 확장되면서, 여주의 지위가 올라 부에서 시로 승격되었다. 영릉의 원찰답게 국보급 문화재도 많다.
대표적인 문화재가 신륵사다층전탑(보물 제226호)이다. 신륵사다층전탑은 흙으로 구운 벽돌로 쌓은 탑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경기도와 경북 안동 지역에서만 발견되는 독특한 탑이다. 기단부는 화강석이고 2층 기단 위에 3단의 석단을 쌓고 그 위에 6층의 탑신부를 올렸는데, 맨 위에 상륜부로도 탑신부로도 보이는 1층이 더 있어 7층으로 보이기도 한다. 신륵사는 벽돌로 쌓은 전탑이 경내에 있다 하여‘벽절’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신륵사다층전탑의 건립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고려시대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입장료는 성인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이며, 관람시간은 일출부터 일몰까지이다. 휴무일은 없다. http://silleuksa.org

 

 

◎ 세종 영릉 英陵, 효종 녕릉 寧陵

 

영릉英陵은 조선 제4대 세종대왕(재위 1418~1450)과 소헌왕후의 합장릉이다. 세종대왕릉은 서울 서초구 태종의 능인 헌릉憲陵에 있다가 1469년(예종 1년) 이곳으로 옮겨왔다. 왕릉은 보통 도성 100리 안에 있어야 하지만 '물길로 가면 하루거리'라는 명분으로 비로소 옮겨질 수 있었다고 한다. 능은 능제를 간소히 하라는 세조의 유언대로 석실과 병풍석을 사용하지 않아 능역을 조성하는 인원도 절반으로 줄었다고 한다. 세종 영릉을 이곳으로 옮김으로 인해 조선 왕조가 100년 연장되었다고 하는 말이 나올 정도의 명당이라고 전해진다.


 

한자는 다르지만 같은 이름의 영릉寧陵은 조선 제17대 효종과 인선왕후의 쌍릉이다. 왕릉과 왕비릉이 상하로 조영되어 있는 '동원상하릉'배치로 되어 있는데 이런 형식은 조선시대 왕릉 중 최초이다. 간소화된 능제로 왕릉과 왕비릉 모두 병풍석이 없으며 난간석의 기둥에 방위를 표시하는 십이지를 문자로 새겨 놓았다.
세종대왕릉인 영릉과 효종릉인 영릉을 포함한 조선 왕릉 40기는 2009년 6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입장료는 대인(19세~64세) 500원, 소인(7세~18세) 300원이다. 관람시간은 3월~10월 09:00~18:30이고, 11월~2월에는 09:00~17:30까지다. 입장은 관람시간 30분전까지 가능하다. 매주 월요일 휴관하며 하절기(3~9월) 주말은 30분씩 연장 운영한다. http://sejong.cha.go.kr

 

 

◎ 영월루와 창리·하리 삼층석탑

 

영월루는 조선시대 여주 관아의 정문으로 사용되었던 누각으로 18세기 말경의 건물이다. 1925년 여주 군청을 근대식 건물로 지으면서, 현재의 위치 곧, 여주읍에서 신륵사로 가는 길가의 '마암馬巖'이라는 큰바위 위쪽으로 옮겨졌다.

영월루 가까이에는 고려시대 중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창리삼층석탑(보물 제91호)과 하리삼층석탑(보물 제92호)이 있다. 원래 각각 창리와 하리의 옛절터에 있던 것을 1958년 현재 자리로 옮겨왔다.

 

 

 

 

 

 

 

 

4-3 지도로 보는 여주군

 

 

5. 선사에서 근세까지, 지붕없는 박물관 - 강화

 

 

강화는 한민족의 얼이 담긴 마니산과 참성단,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강화 고인돌군, 천년 사찰인 전등사와 보문사, 남한유일의 고려유적인 고려궁지와 고려왕릉, 근세 항쟁의 현장인 국방유적 등을 가득 안고 있는 전국에서 4번째로 큰 섬이다.
이외에도 세계 5대 갯벌과 저어새번식지로 자전거를 타고 낙조를 보는 재미도 만끽할 수 있다. 김포에서 48번국도를 타고 강화대교를 건너는 연미정-강화읍의 북쪽코스와 연미정-초지진의 남쪽 코스를 추천한다. 북쪽코스는 사적 제452호인 강화외성 23Km을 타고 염하를 조망할 수 있다. 초지진에서 남단에 걸쳐 설치되어 있는 자전거코스는 갯벌과 낙조, 운이 좋으면 각시바위의 저어새를 만날 수 있다.

 

 

 

5-1 노선 살펴보기

 

 

수도권 자전거동호인이 자주 찾는 지역 가운데 하나로 본섬을 일주하거나 석모도 등 주변 섬을 찾는 자전거이용자들이 많다.
강화에서는 문화유적과 역사 현장을 둘러보고 또한 여가를 즐길 수도 있어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 추천코스가 강화도의 전역은 아니지만 바다와 역사유적, 섬 내부의 일부분을 느낄 수 있다.
강화읍내에서 선원사로 이동하는 구간은 섬 특유의 아기자기한 좁은 길을 이용하고, 김포를 마주하는 강화만을 따라 이어지는 자전거도로는 차도와 공작물에 의해 분리되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다. 단, 읍내를 경유하는 국도나 지방도 등은 차량 통행이 많으니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5-2 사진으로 보는 문화유적지

 

 

◎ 강화고려궁지 

고려 고종19년(1232) 몽골군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하여 개성에서 천도하여 39년간 수도의 역할을 하였다. 개성과 같이 고려궁지 뒷산의 이름을 송악산(現 북산)이라 하였으며, 만녕전 등의 건물도 함께 지었다. 조선시대에 강화행궁이 지어졌으며 이후 국립도서관인 규장각의 주요도서를 소장하는 외규장각이 설립된 바 있다. 병인양요 당시 임금이 열람하는 어람의궤 및 옥책 등 주요소장품이 프랑스에 약탈되고 유수부는 허물어졌다. 사적 제113호

개방시간은 하절기 9시~18시, 동절기 9시~17시이다. 입장료는 성인 900원, 청소년 600원이며, 휴관일은 없다.

전화: 032-930-3114

 

 

◎ 용흥궁

 

조선 제25대 왕인 철종이 왕이 되기 전까지 살던 잠저(왕세자와 같이 정상 법통이 아닌 다른 방법이나 사정으로 임금으로 추대된 사람이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살던 집)이다. 철종이 왕에 오른 후 강화유수 정기세가 개축하고 그 이름을 용흥궁이라 했다. 살림집의 구조를 하고 있으며 현재는 전통차 예절과 시연을 주로하는 명선차인회에서 그 전통을 잇고 있다.

 

개방시간은 9시~18시, 휴관일은 없다

 

 

 

◎ 강화산성

 

강화산성을 고려시대 몽고침입으로 강화가 수도로 사용된 시기에 처음 쌓았으나 현재의 모습은 조선 숙종때 완성되었다. 강화산성의 7Km에 달하며 강화산성의 동문을 거쳐 연미정 코스에서 진입할 수 있다. 고려궁지 뒤편으로 북문을 통해 북한지역을 조망할 수 있으며, 임금이 마시던 오읍약수터에서 약수물로 세수도 가능하다.

 

 

◎ 선원사지

 

갑곳돈대에서 조금 떨어진 지점의 선원사지는 고려 고종32년(1245)에 창건되어 고려시대 2대 사찰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명성을 떨친 선원사가 있던 곳이다. 선원사에는 대장도감이 설치되어 팔만대장경을 완성, 150여년 보관하다가 한양을 거쳐, 현재는 합천 해인사에 보관 중이다.

 

 

◎ 갑곳돈대

 

돈대는 작은 규모의 요새를 만들고 대포를 배치하여 지키는 곳을 말한다. 갑곳돈은 고려가 몽고와 항전할 때 강화해협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 중 하나로 사적 제306호다. 삼국시대 강화를 갑비고차甲比古次라 불러 이름이 유래됐다는 설이 있고, 몽고군이 이곳을 건너지 못하자 '우리 군사들이 갑옷만 벗어서 바다를 메워도 건너갈 수 있을 텐데'라고 한탄했다하여 이름 붙여졌다고도 한다. 고종3년(1866)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을 맞아 전투를 벌인 장소이기도 하다. 현재 내부에 강화역사관이 있다.

 

개방시간은 9시~18시. 휴관일은 없다.

 

 

◎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

 

강화 12진보에 속한다.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었다. 세 진 모두 병인양요(1866), 신미양요(1871)때의 치열한 격전지로 광성보(사적 제227호)에는 순국한 영령들을 기리기 위한 어재연 장군 쌍충비와 신미순의총, 강화전적지 등이 건립되어 있다. 덕진진(사적 제225호)은 강화도 제1의 포대였으며, 초지진(사적 제225호)에서는 일본군함 운요호와 포격전을 벌여 강화도조약의 시발점이 되었다.

 

 

 

5-3 지도로 보는 강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