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를 높여서 음악과 함께 '첫사랑길'을 산책하시기 바랍니다>
취재. 촬영. 편집:문화재사랑
1849년 6월 6일 오전 조선 24대 임금 헌종(재위 1834~1849)이 스물세 살 젊은 나이로 후사도 없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는다. 왕위 계승 지명권은 왕실 최고 어른인 대왕대비 순원왕후(순조비·1789~1857)가 갖고 있었다. 새 임금은 헌종 승하 이튿날 전격 결정된다.
봉영(奉迎·왕을 모시는 것)의 책임을 맡은 영의정 정원용(1783~1873)이 대왕대비의 명을 받들어 차기 용상의 주인이 머물고 있는 강화도로 급파됐다. 하지만 정원용은 용상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나이는 얼마이며,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정원용이 갖고 있는 유일한 단서는 대왕대비 전교에 적힌 이름뿐이었다. 봉영 행렬이 갑곶나루에 이르러 배에서 내리니 강화유수 조형복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강화유수도 전교의 이름을 모르기는 매한가지였다.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한 초가집에 도착해서야 관을 쓴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가리키며 "이름이 모(某)자, 모(某)자이고 나이는 열아홉"이라고 말하는데 바로 전교에 나와 있는 이름자였다. '강화도령' 이원범(1831~1863)은 그렇게 조선 25대 왕(철종)이 됐다.
그는 1863년 33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철인왕후 김씨 등 부인 8명을 뒀으며 5남1녀의 자식을 가졌지만 모두 어린 시절 죽어 후사가 없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예술가였던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작품 중 최고 걸작을 꼽으라면 1844년 제주도 귀양살이 때 그린 ‘세한도’(歲寒圖·국보 180호)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가로 69.2㎝, 세로 23㎝ 크기인 이 작품은 사제 간의 의리를 잊지 않고 청나라에서 귀한 책들을 구해준 제자 이상적의 인품을 겨울에도 꿋꿋한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 답례로 그려준 것이지요.
한 채의 집을 중심으로 좌우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주위를 텅 빈 여백으로 처리함으로써 극도의 절제미를 보여주고 있답니다. 오른쪽 위에는 세한도라는 제목과 함께 완당(阮堂)이라는 호를 적고 도장을 찍어 놓았습니다. 거칠고 메마른 붓질을 통해 추운 겨울의 분위기를 맑고 청절하게 표현한 것이 조선시대 대표적인 문인화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상적은 세한도를 청나라에 가져가 학자 16명의 제영(題詠·제목을 붙여 쓴 시)을 받았답니다. 이후 이상적의 제자인 역관 김병선이 가지고 있던 세한도는 1930년쯤 일본인 후지쓰가가 구입해 44년 도쿄로 가져간 것을 서예가인 소전 손재형(1903∼81)이 설득해 그해에 다시 환수했다는군요. 후지쓰가는 48년에 숨지고 그의 집은 폭격을 맞았다니 세한도는 하마터면 재가 될 뻔했지요.
<蛇足>
추사 김정희 선생은 제주도에서 8년 3개월(1840~1848년)동안 유배 생활을 했습니다.
세한도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귀양간 사람과 가까히 하면 모함을 받을 우려가 있어 모두가 멀리했으니 얼마나 외로웠으랴 !
제주도로 유배온지 3년째인
1842년 11월 13일, 그의 뒷바라지를 하던 아내 예안 이씨가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추사는 언제나 부인에게 한글로 편지를 썼는데 지금도 13편이 전해오지요.
"월하노인 통해 저승에 하소연해
다음 세상에는 우리 바꾸어 태어 나리
나는 죽고 그대만은 천 리 밖에 살아 남아
그대에게 이 슬픔을 알게 하리"
마치 어린 아이가 어머니에게 의자하듯, 부인에게 먹기 좋은 음식 등을 보내달라든 그가 얼마나 슬폈으랴 !
이렇게 외로운 가운데에도 추사 선생에게 중국의 귀한 책을 가져다 준 제자 이상적이 얼마나 고마웠으랴 !
나 역시 척추 수술이후 걷기 어려워 거의 누워 지내는 심정을 세한도가 잘 나타낸 것 같아서..더 .더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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