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문화재방송.한국 www.tntv.kr

전체 글 833

[문화유산 답사기]우리나라 12번째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를 가다

660년,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은 수도 부여가 함락 될 위기에 놓이자 공주로 피신합니다. 왕이 백성을 버린 채 도성을 탈출하자, 남아있던 궁녀들은 치마를 뒤집어 쓴 채 백마강에 몸을 던졌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꽃잎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는 낙화암의 전설은 700년의 백제 역사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으로 남아있습니다. 한때 한강 유역을 차지할 정도로 번성했지만, 허무하게 패망한 왕국으로 치부된 백제.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백제의 역사는 과연 사실일까요? 세계유산으로 백제역사유적지구 백제는 3개의 수도를 만들었습니다. 오늘날의 서울, 공주, 부여인데요. 그중에서 공주와 부여가 수도였던 웅진과 사비시대의 유산 8곳이 백제역사유적지구라는 이름으로 현재 세계유산 등재 심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오는 7월 4일..

[동영상 중계]대통령상 수상에 빛나는 문화재(9)제14회 한국민속예술축제 최우수상 '좌수영어방놀이'

기확. 취재. 촬영. 편잡. 내레이션:문화재사랑 국가무형문화재 제62호 좌수영어방놀이 좌수영어방놀이는 수영만(水營灣) 앞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했던 일련의 어로 행위와 그에 따르는 민요를 재현한 놀이이다. 수영만은 1592년(선조 25)부터 근 300년 동안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영이 있었던 곳으로 현재의 수영동, 망미동, 민락동, 광안동, 남천동 일대를 아우르는 지역이다. 경상좌수영의 어방은 수영의 민간인과 수군들이 서로 상조하는 어업 협업체로, 수군들은 조선 및 항해술과 노동력을 제공하고 어민은 수군의 부식으로 어획물을 제공했다. 이곳의 어부들은 가후리[지인망(地引網): 물가에 긴 그물을 둘러쳐서 양 끝에 줄을 연결하여 육지에서 끌어당겨 어획하는 어구]로 멸치잡이를 했는데, 배에 그물을 싣고 가면서 해안에서..

카테고리 없음 2020.08.20

[문화유산 답사기]시대를 앞서 간 여인들의 발자취 따라- 나라를 되찾기 위해 의병이 된 여성도...

조선시대의‘이상적인 여인상’이라고하면 가부장제 아래 남편을 잘 섬기는 현모양처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 시기에도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꿈꾸고, 그 안에서 수준 높은 학문과 예술을 탐구한 여인들이 있었다. 현모양처의 이미지에 가려져 있지만 수준 높은 그림을 남긴 화가 신사임당, 중국과 일본까지 이름을 드높인 시인 허난설헌, 깊이 있는 지식세계를 구축한 성리학자 임윤지당, 나라를 되찾기 위해 앞장섰던 의병장 윤희순까지. 시대를 앞서 간 그녀들의 삶을 따라가본다. - 현모양처의 틀과 여류 화가 신사임당 강릉에는 맑은 경포호와 푸른 바다만큼이나 유명한 두 여인이 있다. 바로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이 그 주인공이다. 가부장적인 유교 문화 아래 두드러진 활동을 했던 여인이라는 점에서 둘은 종종 비교의 대상이 되..

[동영상 다큐]천대받던 한국의 굿, 세계 각국의 초청을 받기까지

기획. 취재. 촬영. 편집. 내레이션:문화재사랑 마을의 수호신 전국의 장승을 찾아서 나무나 돌을 조각해 마을 입구에 세우는 장승. 예로부터 마을 수호신으로 자리한 민간신앙의 한 형태다. 장승 재료는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경기나 충청 등 북방지역엔 주로 목장승, 호남과 영남 등 남방지역엔 돌장승이 많다. 재밌는 건 대전이다. 지리적으로 보면 충청권에 해당하는데 의외로 돌장승이 많다. 비룡동 줄골 돌장승, 법동 석장승, 읍내동 뒷골 돌장승 등 돌장승이라고 이름 붙인 것만 10여기, 유사 선돌까지 합치면 20기가 훌쩍 넘는다. 심지어 전라북도 남원시와 함께 돌장승 대표 도시로 꼽히기도 한다. 대전에 돌장승이 많은 건 여러 가지로 해석해볼 수 있다. 대전 주변에 산이 많다는 것도한 이유다. 대전은 계..

동영상 2020.08.11

[문화유산 답사기]국보 제28호 등 우리나라 최초의 불교 순교자 신라 이차돈에 얽힌 문화재들

이차돈 초상화 신라는 삼국 중에서 가장 나중에 불교를 받아들였다. 고구려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인이 늦은 백제보다도 143년이나 지난 법흥왕 14년(527)에 이르러서야 공인됐다. 고구려나 백제를 통해 곧바로 전해졌을 불교가 143년이 지나서야 공인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신라사회의 반발이 컸음을 의미한다. 신라불교 공인을 보는 견해 신라불교는 법흥왕 14년에 일어난 이차돈(異次頓)의 순교를 계기로 뿌리를 내렸다. 이차돈의 순교를 바라보는 학자들의 견해는 대체로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지배체제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보는 견해고, 다른 하나는 불교가 자리잡아 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기존의 종교 또는 문화와의 갈등 때문에 일어났다는 시각이다. 앞 의 설은 법흥왕이 치세 동안 중앙집권적 지..

[동영상 중계]북한 함경남도를 대표하는 민속놀이, 그 어느 탈춤과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장르의 '북청사자놀음'

기획. 취재. 촬영. 편집:문화재사랑 국가무형문화재 제15호 북청사자놀음 함경남도 북청군에서 정월대보름에 행해지던 사자놀이. 북청군 중에서도 북청읍의 사자계(獅子契), 가회면의 학계(學契), 구 양천면의 영락계(英樂契) 등의 사자놀음이 유명하며 도청(都廳)을 중심으로 해마다 정월대보름에 놀아왔다. 6·25전쟁 뒤 월남한 연희자들에 의하여 현재는 서울을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는데 청해면 토성리의 사자놀이는 관원놀음과 합쳐져서 행해지므로 더욱 유명했는데, 토성리는 조선 태조 때의 공신 이지란(李之蘭)의 고지(故地)로 흙에 띠를 입히고 가장자리에 큰 나무를 심은 토성(土城)과 제단터가 남아 있다. <북청사자놀음>은 삼국시대의 기악(伎樂)·무악(舞樂) 이래 민속놀이로 정착된 가면놀이로, 주로 대륙계·북방계인 사자..

동영상 2020.08.01

[세계3대박물관]러시아 최고의 문화적 명소,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박물관

에르미타주는 매년 세계 각국에서 260만명 이상이 찾는 러시아 최고의 문화적 명소다. 백야로 여름이면 자정이 돼야 해가 지는 러시아의 문화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그 도시 한복판에 자리한 러시아의 최대 자랑거리이자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명성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에르미타주(은신처)라는 이름에서 보듯 총면적 4만6000㎡에 달하는 박물관 내부는 마치 미로를 연상케 하기에 충분했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1794년 로마노프 왕조가 러시아 문화 수준을 높이기 위해 궁정에서 미술작품을 모아 전시를 시작하면서 탄생한 곳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리타의 성모〉, 고갱의 〈과일을 쥐고 있는 여자〉를 비롯해 모네, 밀레, 르누아르, 세잔 등 예술가들의 걸작 290만점이 전시되어 있는 ..

[동영상 중계]대통령상 수상에 빛나는 문화재(8)제43회 한국민속예술축제 최우수상 '금과 들소리'

「금과 들소리」는 500여 년 전부터 순창군 금과면 매우리 매우 마을을 중심으로 동전, 대장 들녘에서 불리던 농업 노동요이다. 그러나 196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기계화 영농으로 인하여 점차 잊혀져가고 있었다. 순창 농요 금과 들소리 보존회에서 우리 민족의 삶과 애환이 서린 「금과 들소리」를 원형 그대로 계승하여 보존해 오고 있다. 「금과 들소리」는 2005년 3월 11일 전라북도 무형 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되었다. 「금과 들소리」는 사라져 가는 지역의 전승 농요를 채록·발굴하여 1997년부터 이 지역 노인들이 다시 부르는 노랫소리다. 농사를 지으면서 들소리를 불렀던 경험이 있는 금과 노인회의 노인들을 중심으로 금과 들소리 발굴단[회장 김영조, 당시 75세]을 구성하여 1997년 완벽히 복원하게 되었다...

동영상 2020.07.23

[문화유산 답사기]돌과 나무에 새겨진 신비한 그림과 글자 속으로

-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벽에 새겨진 선사시대 사람들의 그림 오랜 세월 동안 돌과 나무는 인간에게 신앙의 대상이었다. 큰 바위나 당산나무 앞에서 제사를 올리며 안녕을 빌었다. 삶이 거칠고 험했기에 그 마음은 더욱 절실했다. 돌과 나무를 찾아가는 여행길은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에서 시작한다. 반구대 가는 길은 한 폭의 그림이다. 오밀조밀한 산이 겹겹이 어우러져 흐르는 강물을 감싸듯 펼쳐져 있다. 그 일부인 연로(硯路)는 반고서원에서 반구대 암각화로 가는 벼랑길로 너비가 2.5m가 채 되지 않는다. 연로 개수기(改修記)가 바위에 새겨져 있는데 연로는 '벼룻길'이라는 뜻으로 '벼루처럼 미끄러운 바윗길' '벼랑길' '사대부들이 수시로 드나들던 학문길'이라 풀이하고 있다. 눈맛이 좋은 길을 ..

[동영상 중계]대통령상 수상에 빛나는 문화재(7)제52회 한국민속예술축제 최우수상 '금릉빗내농악'

국가무형문화재 제11-7호-: 금릉빗내농악 경상북도 김천시(金泉市) 개령면(開寧面) 광천동(廣川洞)에 전승되어 온 농악, 2019년 9월에 지정되었다. 개령면은 금릉군 지역이며 삼한시대에는 감문국(甘文國)이라는 부족국가가 있었던 자리로 알려져 있다. ‘빗내’는 광천동의 자연 부락 이름이다. 곡창지대의 전형적인 농촌인 빗내마을에서는 음력 정월 초엿새에 동제(洞祭: 빗신굿)를 열었고 이어서 풍물놀이와 줄다리기를 행하였다. 이러한 마을 축제 및 감문국의 국가 행사 때 쳐왔을 매구가 오늘날의 빗내농악으로 전해 온다고 볼 수 있다. 낮은 지대라 수해가 빈번하였던 탓에 자연 재해에서 벗어나고 마을의 안녕을 위해 빗신(神)굿을 격년제로 열었고, 일제시대 이후엔 10년 간격으로 행하였다. 빗내농악은 단순한 농악이 아니..

동영상 2020.07.15

[동영상 중계]이제는 보기 힘든 '도리깨질 소리' '물레질 소리''삼삼기 소리''베틀가' 등이 전승되는 경상남도 고성농요(固城農謠)

고성농요(固城農謠):국가무형문화재 제84-가호 국가무형문화재 제84-가호. 고성지역에서는 예로부터 농군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여러가지 소리를 불렀고, 아낙네들은 길쌈하면서 길쌈소리를 많이 부르기로 유명하였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조선 말기에 통영으로 가던 경상감사가 고성을 지나다가 농군들의 모심기소리에 도취되어 상을 내리고 떠났다고 한다. 1970년대에 고성읍내 농군들이 농사짓기소리와 길쌈하기소리를 엮어서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출연하여 입상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1985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1998년 현재 예능보유자로 유영례(柳永禮, 앞소리)·김석명(金石明)이 지정되어 있다. 고성농요에는 모찌는 소리로 긴등지·짜른등지, 모심는 소리로 긴등지·점심등지·짜른등지·해걸음등지, 김매기소리로 상사디야·방아타령·..

동영상 2020.07.06

[문화유산 답사기]유네스코에 등재된 대한민국의 세계무형문화유산

유엔 교육 과학 문화 기구(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 유네스코(UNESCO)로 더 널리 알려져 있는 유엔기구에서 선정한 한국의 인류 무형 문화 유산(한국은 1950년 02월 11일에 가입) '문화유산'이라는 용어는 최근 수십 년 동안 유네스코가 개발한 도구들 때문에 내용이 크게 달라졌다. 그것은 또한 우리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전통이나 살아있는 표현들을 포함하고 있고 우리의 후손들에게 전해진다. 예를 들어 구전 전통, 공연 예술, 사회 관습, 의식, 축제 행사, 자연과 우주에 관한 지식과 전통적인 기술. 연약하지만 무형의 문화유산이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다른 공동체들의 ..

[동영상 다큐:호국보훈의 달 특집]호국의 현장을 찾아(끝)세계를 정복한 몽골군과 끝까지 싸운 '삼별초'의 숨결 따라

기획. 취재. 촬영. 편집. 내레이션:문화재사랑 [박보균의 현장 속으로] 신미양요 때 강화도 상륙·침공한 미 해병…6·25 땐 인천 상륙, 서울 구출했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0.06.20 00:02 수정 2020.06.20 00:11 | 박보균 기자 리더십의 결정적 순간들-6·25 70주년, 파란곡절 한·미 역사 색다른 이야기 콴티코 해병대 박물관의 신미양요 전시실. 그림 제목 ‘Storming Fort Chojijin’ (초지진 돌격). 1871년 6월 강화도에 상륙하는 미 해병대. 웃통을 벗은 사병들이 밧줄로 대포를 끌고 있다. 12파운드 달그렌 보트 곡사포(왼쪽)가 그림 속 대포의 실물. 한·미 역사는 파란이다. 곡절의 150여 년. 긴박한 애증(愛憎)의 드라마다. 한복판에 미국 해병대(U.S..

동영상 2020.06.25

[동영상 다큐:<4>138년만의 재현 '광성보 전투'...신미양요 때 강화도 상륙·침공한 미 해병…6·25 땐 인천 상륙, 서울 구출했다

기획. 취재. 촬영. 편집:문화재사랑 / 내레이션 한송이 [박보균의 현장 속으로] 신미양요 때 강화도 상륙·침공한 미 해병…6·25 땐 인천 상륙, 서울 구출했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0.06.20 00:02 수정 2020.06.20 00:11 | 박보균 기자 리더십의 결정적 순간들-6·25 70주년, 파란곡절 한·미 역사 색다른 이야기 콴티코 해병대 박물관의 신미양요 전시실. 그림 제목 ‘Storming Fort Chojijin’ (초지진 돌격). 1871년 6월 강화도에 상륙하는 미 해병대. 웃통을 벗은 사병들이 밧줄로 대포를 끌고 있다. 12파운드 달그렌 보트 곡사포(왼쪽)가 그림 속 대포의 실물. 한·미 역사는 파란이다. 곡절의 150여 년. 긴박한 애증(愛憎)의 드라마다. 한복판에 미국 해병..

동영상 2020.06.21

[동영상 르포:호국보훈의 달 특집]호국의 현장을 찾아<3>'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 현장을 가다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 3·1 운동 이후 무장 독립 전쟁을 벌이는 것이 독립의 지름길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지는 가운데, 만주 일대에서는 서로 군정서, 북로 군정서, 대한 독립군, 광복군 총영 등 50여 개의 크고 작은 독립군 부대들이 조직되었다. 독립군 부대들이 국내 진공 작전을 전개하자, 1920년 일본군은 두만강을 건너 독립군을 공격해 왔다. 홍범도의 대한 독립군과 최진동의 군무 도독부, 안무의 국민회군 등은 일본군을 봉오동 골짜기로 유인하여 무찔렀다(봉오동 전투). 이에 일제는 1920년 8월 훈춘 사건을 조작하고, 이를 구실로 약 2만 명의 대병력을 동원하여 만주의 독립군 근거지를 공격하였다. 북로 군정서와 대한 독립군을 비롯한 독립군 부대들은 이를 피해 백두산 부근으로 이동하다 추격해 온 일..

동영상 2020.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