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

[문화유산 답사기]폐지 수집 손수레에서 발견한 이상한 책자는 '하피첩'...7억 5천만 원에 팔려

문화재방송 2015. 10. 1. 00:07

다산 ‘하피첩’ 7억5000만원 최고가 낙찰 기사의 사진 

보물 1683-2호 하피첩

 

2005년 수원 어느 모텔 주인이 건물을 고치려고 실내에 있던 파지(破紙)들을 마당에 내놓았다. 폐품 모으는 할머니가 지나가다 달라고 했다. 주인은 할머니 수레에 있던 이상한 책자에 눈이 갔다. 그는 책자와 파지를 맞바꿨다. 그러곤 혹시나 싶어 KBS '진품명품'에 내놓았다. 감정위원인 고미술 전문가 김영복은 책을 본 순간 "덜덜 떨렸다"고 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하피첩(霞帔帖)'이었다. '진품명품'은 감정가 1억원을 매겼다.

다산 '하피첩'이 그제 서울옥션 경매에서 7억5000만원을 받고 국립민속박물관에 팔렸다고 한다. 이 유물은 개인 수집가 손에 들어갔다가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건 때 압류되는 운명에 처했다. '하피'는 옛날 예복의 하나다. '붉은 노을빛 치마'란 뜻이 담겼다.

<이상 2015.9.16. 조선일보 '만물상' 참조>

다산 정약용의 하피첩(霞피帖).

나이 열 여섯에 한 살 연하인 정약용에게 시집 온 풍산 홍씨가 나이 오십 줄에

들어선 어느날 장롱 속에 고이 간직했던 빛 바랜 다홍치마를

강진에 귀양 가 있는 다산에게 보냈다.

 

다산이 나이 40에 귀양을 떠난 지 10여년이 넘었고 언제 해배(解配) 될지

가늠하지 못하는 처지에, 접어든 황혼에 대한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신혼 때 입던 그 치마가 장롱 속에서도 빛이 바랬으니

인생의 무상함을 탓해야 무엇을 하겠는가?

 

자식 아홉에 여섯을 가슴에 묻고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누에와 함께

자식들도 키웠으니 그녀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가히 짐작을 하고도 남는다.

 

다산의 나이 스물일곱에 과거에 급제를 하였고 13년 뒤에 다시 귀양을 갔다. 

빠른 출세도 아니었지만 인생의 황금기에 유배를 가야만 했던 다산으로 인하여 

가정 경제는 거의 부인 홍씨의 몫이었다.

 

38세에 얻은 농장도 세 살이 되던 해에 죽었고,

귀양지에서 그 소식을 들은 다산이나 혼자 그 일을 감당을 했어야 했던 부인 홍씨,

모두 애절하기는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다산은 요절한 아이들을 불쌍히 여겨서 “구장이와 효순이는 산등성이에다 묻었고,

삼동이와 그 다음 애는 산발치에다 묻었다. 농아도 필시 산발치에 묻었을 거다”라고

적고는 “오호라, 내가 하늘에서 죄를 얻어 이처럼 잔혹하니 어쩌란 말인가”라고

비통해 했다.

 

말없이 여섯 폭의 다홍치마가 보내 왔지만 다산은 그 치마를 잘라서 만든 서첩에

“노을 치마”란 뜻인 “하피첩(霞피帖)”이라 표지를 썼다.

찾아 온 황혼에 순응을 하자는 뜻으로 빛바랜 다홍치마를 보낸 것인지,

아니면 현재는 고통스러우나 아름다운 추억을 생각하며 힘을 내자는 뜻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다산은 그 치마폭으로 하피첩을 만들었다.

 

"내가 강진 귀양지에 있을 때, 병든 아내가 낡은 치마 다섯 폭을 보내왔다.

시집올 때 입었던 붉은색 활옷이었다. 붉은빛은 이미 씻겨 나갔고, 노란 빛도 엷어져서

글씨를 쓰기에 마침맞았다. 마침내 가위로 잘라 작은 첩을 만들어,

붓 가는 대로 훈계하는 말을 지어 두 아들에게 보낸다.

훗날 이 글을 보면 감회가 일것이고, 두 어버이의 흔적과 손때를 생각하면 틀림없이

뭉클한 느낌이 일어날 것이다.

이것을 하피첩(霞帔帖)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이는 곧 붉은 치마(홍 군, 紅裙)을

돌려 말한 것이다.

가경 경오년(1810) 초가을 다산(茶山)의 동암(東庵)에서 정약용 쓰다."

 

아들에게 쓴 시구(詩句)

病妻寄敝裙, 千里托心素, 歲久紅己褪, 悵然念衰暮, 裁成小書帖, 聊寫戒子句, 庶幾念二親, 終身鐫肺腑. 몸져누운 아내가 헤진 치마를 보내왔네, 천리의 먼 곳에서 본마음을 담았구려. 오랜 세월에 붉은빛 이미 바랬으니, 늘그막에 서러운 생각만 일어나네. 재단하여 작은 서첩을 만들어서는, 아들 경계해주는 글귀나 써보았네. 바라노니 어버이 마음 제대로 헤아려서, 평생토록 가슴속에 새겨 두어라.

 

 

 

하피첩의 '하피(霞帔)'란 중국 당송(唐宋) 시대 신부가 입은 혼례복을 말하는 데, 조선 시대에는 왕실의 비(妃), 빈(嬪)들이 입던 옷이다. 여기에서 하피란 다산의 부인 풍산 홍 씨가 시집 올 때 입고 온 붉은색 치마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 제대로 쓰자면 홍군(紅裙), 즉 '붉은 치마'라고 써야 옳지만 이는 해석하기 나름으로는 '기생'이라는 다른 뜻도 있기 때문에 그냥 붉을 하(霞), 즉 노을 하를 써서 '하피(霞帔)'라고

한 것이다.

한편 그로부터 3년 뒤 다산은 시집 간 외동딸이 눈에 밟혔던 모양이다. 서첩을 만들고 남은 천 조각에 한 해 전에 혼인한 외동딸에게 줄 그림을 그렸다. 꽃이 벙근 매화 가지에 올라탄 멧새 두 마리를 그려넣은 '매조도(梅鳥圖)'(고려대박물관 소장)가 그것이다. 유배 시절 장남 학연이 두어 차례 다녀간 적은 있지만,

아내와 외동딸은 그 긴 세월 동안 얼굴 한번 볼 수가 없었다. 하나 남은 딸의 시집가는 날도 함께 해주지 못했으니 아비 된 자로서 다산의 심경이 오죽했으리요

 

 

 

▲ 매조도 다산이 외동딸에게 그려준 매화와새 그림으로,

 

그 아래 이를 그린 사연을 적었다 ⓒ 고려대박물관 소장

          翩翩飛鳥 息我庭梅   파르르 새가 날아 뜰 앞 매화에 앉네
          有烈其芳 惠然其來   매화 향기 진하여 홀연히 찾아 왔네
          爰止爰棲 樂爾家室   여기에 둥지 틀어 너의 집 삼으려무나
          華之旣榮 有賁其實   만발한 꽃인지라 먹을 것도 많단다.

 

옛 사람들의 절제된 애정 표현, 그러나 그 정신적 교감은 현대 누구도 따르지는 못할 것이다.

다산은 18년의 유배에서 풀려서 집에 온 때가 58세,

그러나 둘은 다시 18년을 같이 살다가 75세에 별세를 하였다.

 

다음은 다산이 작고 하시기 전 병중이지만 회혼례(결혼 61주년)를 위하여 지은 시.

회혼례 며칠 뒤에 별세를 하셨다.

 

육십 평생 바람개비 세월이

눈앞을 스쳐 지나는데

무르익은 복숭아 봄빛이

마치 신혼 때 같아라.

 

칠순 나이에 신혼의 기분을 연상할 수 있는 그들의 정신 세계,

신혼은 더불어 누리는 것이니 부인 홍씨 역시 그에 상응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딸을 시집보내고 불과 몇 달이 지났을까, 다산은 강진 유배지에서 만난 소실 정씨에게서 딸을 하나 얻었다.

 이때 다산은 이미 해배 명령이 떨어져 곧 여기를 떠나야 할 처지였다. 저 어린 것이 여기 혼자 남아 있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고 괴로웠다.

이 어린 딸 홍임을 위해 똑같은 크기의 그림 한 폭을 더 그렸다.

똑같은 매조도(梅鳥圖)인데 여기에선 멧새가 한 마리다. 이 그림은 실제 딸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古枝衰朽欲成搓   묵은 가지 다 썩어 그루터기 되려더니

擢出靑梢也放花   푸른 가지 뻗더니만 꽃을 활짝 피웠구나

何處飛來彩翎雀   어디선가 날아든 채색 깃의 작은 새

應留一隻落天涯   한 마리만 남아서 하늘가를 떠돌리라

 

이상 자료와 사진은 인터넷 검색창에서 전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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