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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답사기]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탄신 기념일 맞아 '순국 현장' 남해 기행

문화재방송 2019. 4. 26. 01:14


4월 28일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 제474주년 기념일이다.

마침 탄신 기념일이 일요일, 주말을 이용하여 충무공의 애국혼이 살아 있는 남해바다,

즉 호국길을 밟아 보는 것도 뜻있는 일일 것이다.



                
       

바다·숲·역사의 숨결 가득 

이순신 장군의 시신이 

처음 뭍으로 오른 관음포엔 

영상관·동상·벽화 등 

순국공원 꾸며져 있어 

이락사 첨망대에선 

노량해전 전장 한눈에 

남해 충렬사~관음포 이순신 순국공원 6.7km 구간 

이순신 순국공원 안의 첨망대 누각 위에서 바라본 관음포 앞바다. 임진왜란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의 현장이자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곳이라는 게 실감나지 않을 정도로 멋진 풍광이다. 
 이순신 순국공원 안의 첨망대 누각 위에서 바라본 관음포 앞바다. 임진왜란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의 현장이자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곳이라는 게 실감나지 않을 정도로 멋진 풍광이다.


이순신 장군의 가묘가 있는 남해 충렬사.

    이순신 장군의 가묘가 있는 남해 충렬사. 

   

이순신 호국길은 노량해전 당시 이순신 장군의 유해가 최초로 육지에 오른 관음포에서 노량마을의 충렬사까지

운구 행렬이 지나간 길이다. 총 6.7㎞ 구간의 호국길에는 바다와 숲의 속삭임과 함께 역사의 숨결이 가득하다. 

길은 대체로 평탄하고 쉬운 편이다. 보통 걸음으로 2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

이순신 호국길은 남해 바래길의 제13 코스로 조성됐다. ‘보물섬’으로 불리는 남해 섬의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이순신 장군의 충정과 옛 선인들의 삶을 가슴으로 느끼면서 걷는 길이다.


남해대교를 건너자마자 나타나는 남해의 첫 동네, 노량마을의 충렬사에서 오늘의 여정을 시작한다.

노량마을에는 ‘어서 오시다~’라는 듣기에도 정겨운 인사말이 여행객을 반긴다.


 먼 옛날 서울에서 멀다는 이유 때문에 유배지로 이름 높았던 남해에는 이처럼 남해만의 토속어가 많이 남아있다. 

충렬사를 지나면 바닷가 해안길을 따라 감암마을, 월곡마을이 차례로 나타난다. 여기에서 왼쪽 능선길로

접어든 3㎞ 정도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차면항이 나타나고, 곧이어 이 충무공 유적이 있는 관음포다.

이순신 순국공원에 위치한 충무공 동상
    이순신 순국공원에 위치한 충무공 동상

관음포에는 역사·관광·체험 공간인 이순신 순국공원이 잘 조성돼 있고 이순신 장군 탄신일에 맞춰 호국제전이

열린다. 호국길 전체 구간을 걷지 않더라도 아이와 함께 꼭 한번 찾아볼 만한 곳이다.


멀리 노량대교가 보인다.    

이순신 호국길의 들머리인 노량마을은 남해를 찾아오는 이들에게 가장 먼저 다가서는 남해의 얼굴이다.

벚꽃터널과 튤립 정원을 지나 노량마을로 내려오면 이순신 장군이 관음포에서 전사한 후 시신을 잠시 모셨던

충렬사가 나온다.

 

이순신 장군의 시신은 이곳에 안치돼 있다가 전라땅 고금도를 거쳐 외가동네인 아산 현충사 자리에 운구돼

안장됐다. 충렬사에는 이순신 장군이 3개월간 묻혔던 자리에 가묘가 전해 오고, 우암 송시열의 추도사가 새겨진

묘비가 남아 있어 남해 사람들의 영원한 정신적 지주로 남아있다. 충렬사 앞에는 실물 크기의 거북선이 떠 있다.


길은 바닷가를 따라 난 산책로로 이어지다가 남해대교 아래쪽에서부터 걷기 편한 포장도로로 연결된다.

오른쪽으로 노량해협의 거센 물살을 가르는 남해대교와 노량대교의 웅장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노량대교는 주탑 두 개가 브이(V)자 모양을 한 세계 최초의 기울어진 현수교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두 다리의 조화가 무척이나 아름답다. 


남해대교 아래쪽에 조성된 화단 맞은편에는 전망대로 올라가는 덱 길이 조성돼 있다. 전망대는 남해대교와

노량대교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멋진 풍광을 자랑한다. 

남해대교와 노량대교 아랫길을 지나면 곧바로 감암마을이다. 수협 위판장마저 거북선 모양을 하고 있어 이곳이

임진왜란 최후의 격전지임을 말해주는 듯하다. 


감암마을, 월곡마을의 바다 건너편에는 멀리 하동 화력발전소와 광양제철소, 여수 율촌산업단지 등을 배경으로

노량해협의 작은 섬들이 오목조목 자리 잡고 있다. 그 사이를 오가는 어선들과 갯벌 위의 왜가리, 바지락을

캐는 어민들의 모습이 한폭의 그림처럼 여행자를 반긴다.


이락산 중턱에서 바라본 월곡마을.

    이락산 중턱에서 바라본 월곡마을. 

   

월곡마을에서부터 길은 이락산을 통과하는 3㎞ 정도의 숲속 길로 들어선다. 이락산 자락을 지나 차면항으로

이어지는 길은 낙엽이 수북이 쌓인 숲길이다. 편백과 소나무 사이로 들려오는 바람소리와 향긋한 봄내음에

절로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숲길 다음에 나타나는 2차로 도로는 새 길이 나면서 원래 쓰임을 잃은 옛 국도다. 이순신 호국길은 옛 국도

중간쯤의 쉼터에서 오른쪽으로 향한다. 울창한 숲길을 통과하면 관음포 앞바다의 탁 트인 조망이 탄성을

자아낸다. 수확을 앞둔 마늘밭 사이로 난 능선길을 지나 차면항으로 내려서면 눈앞에 이순신 순국공원이

지척이다.


순국공원으로 향하는 바다길에는 장군의 명언이 담긴 안내판들과 함께 노량해전의 희생자 혼을 위로하듯

솟대가 군데군데 설치돼 있어 눈길을 끈다. 


순국공원은 이순신 장군의 시신이 처음 뭍으로 올라온 관음포에 조성된 추모공간이다. 원래 이락사(李落祠)와

노량해전의 전장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첨망대만 있었으나, 이제 이순신 순국공원으로 완전히 모습을 바꿨다. 

순국공원에는 노량해전 당시의 모습을 4천여 장의 분청 도자기에 그려낸 초대형 벽화와 함께 이순신 장군

동상이 늠름하게 서 있다.


거북선을 형상화한 이순신 영상관에서는 임진왜란과 노량해전에 대한 3D 입체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 

이락사 입구 길에 키 높은 소나무가 호위하듯 늘어서 있다.
    이락사 입구 길에 키 높은 소나무가 호위하듯 늘어서 있다.

이락사에는 이순신 장군 영정과 함께 ‘큰 별이 바다에 잠겼다’는 뜻의 대성운해(大星隕海)란 현판이 눈에 띈다.

빠뜨리지 말아야 할 곳은 이락사에서 첨망대로 향하는 600m 구간의 소나무 숲길이다. 소나무 사이에 자리한

동백나무가 빨간 꽃망울을 터뜨리는 숲길 끝에 서면 노량해전 당시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관음포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 첨망대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유달리 붉고 아름답다. 그 옛날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들의 가슴은 저보다

더 붉게 타 올랐으리라. 노을도, 붉게 물든 여운도 400여년 전 이 땅과 바다가 간직한 아픔을 소리없이

웅변하는 것만 같다. 

   

어떻게 찾아가나 


관음포의 이순신 순국공원과 남해 충렬사 두 곳 중 어디에서 출발해도 좋다. 자동차를 가지고 갈 경우에는

남해대교를 건너자마자 나오는 충렬사에서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남해고속도 진교 나들목을 나와 20분 정도 가면 남해대교와 노량대교가 보인다. 남해대교를 건넌 뒤

1㎞가량 직진하다가 교차로에서 좌회전하면 된다. 교차로 입구에 있는 노량공원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일품이다. 


이순신 순국공원은 주차장과 편의시설이 잘 조성돼 있어 이용이 편리하다. 입장료와 주차비를 따로 받지

않는다. 오토캠핑장도 따로 마련돼 있다. 

부산으로 돌아올 때는 남해읍을 지나 창선~창선포대교를 거쳐 남해고속도 사천 나들목을 이용하면 죽방렴 등

남해의 풍경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에는 먼저 부산 사상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남해로 간 뒤 군내 버스로 갈아타면 된다.

사상 터미널에서 남해까지는 오전 6시20분 첫 차를 시작으로 40분~1시간 간격으로 하루 14(주중)~16회(주말)

시외버스가 운행한다. 


남해읍에서 노량마을까지는 거의 1시간 간격으로 농어촌 버스가 다닌다. 이순신 순국공원은 대중교통 이용이

여의치 않다.

남해읍에서 이순신 순국공원까지는 택시를 이용하고, 이순신 호국길을 완주한 뒤 노량마을에서 군내 버스를

타고 다시 남해읍으로 이동하는 것이 편리하다.


원문보기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19041018331511453




사적 제232호 관음포 충무공 전몰 유허  





이순신 순국공원 종합안내도,


소재지; 경남 남해군 남해대로 3829  |  문의전화; 055) 860-3786 / 864-8023




남해대교에서 섬의 한가운데를 향해 4km들어오면 사적 제232호 관음포 이충무공전몰유허가 자리잡고 있다.

일명 '이락사'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전사한 이순신장군의 유해가 맨처음 육지에 오른곳이다.

 이락사 앞 뜰에는 충무공 순국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유언비가 역사를 증명하듯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아있다.



<이 충무공 유언비-"지금 싸움이 급하니 내 죽음을 알리지 마라">


이곳에는 전국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사철 푸른 육송이 404년전의 그 날을 되살려내고 있었다. 많게는 10개에서

적게는 4개의 가지가 땅에서 바로 가지를 벌린채 4,50미터의 오솔길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충무공이 순국한지 234년이 지난 1832년, 이순신의 8대손인 통제사 이항권()이 충무공의

진충보국()의 뜻을 기리는 유허비(높이 187cm, 폭 75.5cm, 두께 22cm)를 세웠다.


1973년 6월 사적 제232호로 지정되어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라고 부르게 되었다.




불교의 성지 의미가 있는 觀音浦는 '이락포(李落浦)'로도 불림

관음포(觀音浦)】 경남 남해군의 북쪽 고현면 차면리 바닷가에 있는 포구. 일명 이락포()로 불리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현 북쪽 21리에 신우 때에 원수 정지가 수군을 거느리고 여기에서 왜적을 섬멸하였다. 왜적이 우리에게 패전하게 된 것은 이 전역()에서 처음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에는 "현에서 북으로 21리에 있다."라고 수록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고현면 포상리()에 기재되어 있다. 『동여도』에 처음 수록되며 『1872년지방지도』에도 관음포가 나타난다. 고현면 차면리 소재 이순신장군이 전사한 곳으로 사당과 전시관이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읍치의 북쪽에 녹두산()의 동쪽에 진·포 지명으로 묘사되어 있다.

관음포라는 지명이 언제부터 붙여졌는지 알 수 없으나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 말 우왕 때 해도원수 정지장군이 관음포에서 왜선 17척을 격침한 대첩을 '남해관음포대첩'이라고 적고 있다. 지명유래는 불성지()의 의미가 담겨 있는 관음의 포구였기에 관음포라는 지명이 붙여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출처; 한국지명유래집 경상편 지명, 2011. 12., 국토지리정보원>





참배로 오른쪽에 세워져 있는 '리충무공전적비',

<북한도 아닌데 왜 리충무공으로 썼을까?>


<이락사 입구>


이충무공 유허비와 비각



 대성운해
조국을 향한 애타는 마음이 소나무에도 투영된 것일까? '이락사' 현판이 걸린 문을 들어서면 바로 '대성운해'라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친필 현판이 걸린 비각이 있다. ''라. '큰별이 바다에 잠겼다'는 뜻이다. 비각에서 첨망대까지 연결된 솔밭길은 500m에 이른다. 길의 좌우에는 솔가지 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정취를 더한다. 



대성운해 비각,



이락사에서 500m 떨어진 산 정상에 세워진 첨망대,

                                     이순신 장군이 순국한 곳을 볼 수 있는 곳에 1991년 건립한 정자



첨망대에서 바라 보이는 남해




이락사 입구의 소나무는 모두 뿌리에서 가지를 늘리고 있어 신비감을 준다


이상 사진 출처:https://mail.daum.net/#MINE/a0000000003kvV0





이순신 장군 전사후 84일만에 장례..16년후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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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가는 길이 순국 412년만인 지난해 12월 16일 오후 경남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 앞 바다에서 재현행사를 가진 뒤 뱃길로 전남 완도군을 향해 운구되고 있는 모습(자료사진)

홍순승 장학관 "당대 역사.정치적 평가따라 성역화"

(아산=연합뉴스) 정태진 기자 =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묘역은 당대의 역사적.정치적 평가에 따라 옮겨지고 성역화되는 과정을 밟았습니다"

충남의 한 교육공무원이 이 충무공의 장례과정 및 묘역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같이 주장, 눈길을 끌었다.

홍순승 충남도교육청 장학관은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가 펴낸 이순신연구논총에서 "이 충무공은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후 남해 고금도에 안치되었다가 고향인 아산으로 운구돼 다음 해 2월 11일 금성산에 안장됐다"고 말했다.

완도군에서재현된 상여행렬의 모습(자료사진)

이처럼 84일만에 장례가 치러진 것은 사후 선조로부터 우의정 벼슬을 받아 당상관에 오르면서 당시 법도(三月而葬)에 따라 3개월 후에 장례를 치렀기 때문이며 첫 묘자리는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군 이여송의 참모로 왔다가 돌아가지 않고 귀화한 두사충(杜師忠)이 잡았다.

두사충은 박상의와 함께 조선 풍수지리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인물로 당시 조선사회에 풍수지리가 널리 퍼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이 충무공은 사후 새롭게 평가받아 1604년 좌의정에 오르며 선무공신 칭호를 받자 후손들은 첫 장례가 전란 직후 예우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치러졌다고 조정에 이장을 상소, 첫 장례가 이뤄진지 16년후인 1614년 일등공신에 걸맞은 크기와 이장절차를 거쳐 지금의 묘역인 어라산으로 옮겨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정조(1793년)대에 이르러서는 영의정으로 또다시 오르면서 묘역에는 상석 및 향로석, 장명등을 비롯한 다양한 석물이 설치되고 정조가 친히 지은 글로 어제 신도비가 세워지면서 격이 한껏 높아졌다"고 덧붙였다.

특히 "근대에 이르러 이 충무공에 대한 재평가 작업은 더욱 활발해져 1908년 단재 신채호 선생에 의해 '성웅(聖雄)' 칭호가 붙여진데 이어 제3공화국 시절 역사상 최고조의 평가에 오르며 묘역에는 나지막한 담(곡장)이 처지고 홍살문이 세워지는 등 왕가의 무덤(園) 수준에 이르게 된다"고 지적했다.

충청남도아산시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의 묘(자료사진)


홍순승 장학관은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자료로 초장과 이장의 정확한 내용을 규명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며 "이장과 확장 등 모두가 당 시대의 이 충무공에 대한 평가 실상이 그대로 반영돼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jtj@yna.co.kr

출처: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5014901


▶선조들의 숨결 어린 문화재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