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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답사기

[문화유산 답사기] 일제가 화약으로 폭파, 땅에 묻은 사적 제104호 황산대첩비

문화재방송 2015. 2. 5. 00:52

 

KBS 대하드라마 "정도전' 10회에서는 이성계의 황산대첩을 다뤘다.

이상하게도 KBS는 황산대첩비는 소개 하지 않았다.

이에 황산대첩비에 얽힌 일본의 교활하고 잔악한 야만행위를 고발하고자 한다.

 

위치: 전북 남원시 운봉읍 가산화수길 84 (화수리)

고려말 이성계가 삼남을 휩쓸며 약탈을 일삼는 왜구를 크게 물리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 화수산 남쪽에 1577년 세워졌다.

선조의 왕명을 받아 김귀영(金貴榮)의 글, 송인(宋寅)의 글씨로 대첩비를 세웠으나 일제말 조선총독부가 파괴하였다.

광복 후 옛 비석을 복구하였다가 1972년 신석호가 한글로 글을 지어 새롭게 세웠다.

왜구의 침탈에 맞서 우리 선조들이 꿋꿋하게 일구어낸 역사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왜구는 계속하여 다음달인 9월 남원 운봉현(雲峰縣)을 방화하고, 인월역(引月驛:지금의 남원 인월리)에 주둔하면서

장차 북상하겠다고하여 조정을 놀라게 하였다.

한편, 조정에서는 지리산과 해주 방면에서 왜구를 토벌하여 용맹을 떨친 이성계를

양광(楊廣)·전라·경상 삼도도순찰사(三道都巡察使)에 임명하고,

왜구대토벌작전에 나서게 하였다.

양측은 운봉을 넘어 황산 서북의 정산봉(鼎山峰)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데,

적들이 험지에 자리잡고 버티자 죽음을 각오한 이성계가 산 위로 올라가 적을 맞아 싸웠다.

그러자 모든 군사가 총공격을하여 일대격전을 벌여 아지발도(阿只拔都)를 두목으로 한 왜구를 크게 물리쳤다.

이때 전사한 왜구의 피로 강이 물들어 6,7일간이나 물을 먹을 수 없었다고 하며, 포획한 말이 1,600여필이고

 병기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적군이 아군보다 10배나 많았으나 겨우 70여명만아 살아 남아 지리산으로 도망하였다.

비석이 처음 세워질 당시에는 비각·별장청 등의 건물을 지어
비석을 보호하도록 하였으나,
1945년 일본인들에 의하여 파괴되어 파편만 남게 되었다.

 

1976년 동아일보에 보도된 폭파장면 목격자 인터뷰

일제가 철저하게 파괴한 황산대첩비

 

이성계과  왕이되면서  이곳에  찻아와   나혼자가  승리가  아니고  여려장수들이  

도왔기  때문에  숭리햇다고  하여  거대한 바위에 14장군  이름을  쓰고  기념  하였으나 

일제하에 정으로 쪼아버렸다,

 

 

 

 

운봉은 남원시 외곽, 지리산 서북능선을 낀 한적한 고원지역이다.

이곳은 황산대첩과 함께 '판소리 동편제(東便制) 탯자리'로 '소리의 성지(聖地)이다.

 

 

 

 

전화문의:운봉읍사무소 063)634-0024

        남원시, 황산대첩비 탁본 기증받아

이승희 기자  |  asis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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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16  14:4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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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원시가 전주 이씨 후손 이응한(81세)씨로부터 황산대첩비 탁본을 기증받았다.(사진제공=남원시청)
(남원=국제뉴스) 이승희 기자 = 남원시는 지난 6일 이응한(81세)로부터 황산대첩비 탁본을 기증받았다. 기증된 탁본은 황산대첩비 탁본 1점과 황산대첩사적비 탁본 1점이다.

 

기증 받은 자료는 배접 등 보존처리를 거쳐 오는 12월 중부터 1년간 향토박물관 전시실에 전시될 예정이다. 황산대첩비 탁본 자료는 일본인들에 의해 폭파되기 전의 비석 탁본으로 그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경기도 파주시에 거주하는 이응한씨는 전주이씨 후손으로 태조 이성계의 승전이 기록된 황산대첩비 탁본을 황산대첩비가 소재한 남원시에 기증하고 싶다는 의사를 지난 9월경 남원시에 전해왔다.

이어 지난 6일 남원시를 방문하고 운봉 황산대첩비지를 둘러본 후 남원시에 탁본 2점을 기증했다. 이 자료는 이응한씨의 조부 이원승께서 소장하고 있던 것이라 한다.
 
운봉 황산 아래에 위치한 황산대첩비는 선조 10년(1577) 운봉현감 박광옥의 장계에 의해 건립됐으나 일제강점기말 1944년 일본인들에 의해 폭파됐다.

해방 이후 1957년 현 위치에 다시 건립됐고, 폭파된 비석은 그 옆에 파비각 안에 보호되고 있다. 황산대첩비지는 1963년 1월 21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됐다.

향토박물관 탁본 전시를 통해 고려말 삼남을 노략질하던 왜구들을 섬멸한 사적을 기록한 황산대첩비 탁본을 관람하면서 역사와 선조의 얼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출처:국제뉴스
http://www.gukj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46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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