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보다 대한민국을 소중히 여긴 사람들, 순국선열
11월 17일 <순국선열의 날>
11월 17일(화)은 ‘순국선열의 날’입니다. ‘순국선열’이란 일제의 국권 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 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하기 위하여 항거하다가, 그 하거로 인해 순국한 사람들로서 그 공로로 건국훈장, 건국포장 또는 대통령표창을 받은 자를 지칭합니다. 자신의 목숨보다 우리나라 영토, 백성, 글, 정신을 소중히 여긴 많은 사람들.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했던 순국선열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 그들의 얼과 위훈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이 바로 ‘순국선열의 날’입니다.
[순국선열의 노래]
온 겨레 나라 잃고 어둠 속 헤매일 때
자신을 불살라서 횃불마냥 밝히시며
국내외 광복 전선서 오롯이 목숨 바친
님들의 그 충절이 겨레의 얼 지켰네
우리는 순국선열을 우러러 기리면서
그 후예다운 떳떳한 새 삶을 다짐한다 [내용 출처 : 국가보훈처]
순국선열의 날, 그 의미와 유래
여러분 혹시 ‘순국선열의 날’에 대해서 들어보셨나요?
순국선열의 날은 일제에 침탈당한 국권의 회복을 위해 소중한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고자 제정된 정부기념일입니다.
11월 17일 제75회를 맞은 순국선열의 날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드리겠습니다.
1. 순국선열이란?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인 ‘순국선열’이란 무슨 말일까요?
사전적 의미의 ‘순국선열(殉國先烈)’은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선조(先祖)의 열사(烈士)를 뜻합니다.
조금 더 정확히는 ‘일제의 국권 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 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하기 위하여 항거하다가
그 항거로 인하여 순국한 자로서 그 공로로 건국훈장, 건국포장 또는 대통령표창을 받은 자를 뜻하고
있습니다.
순국선열은 생존했던 애국지사와 더불어,
한국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들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순국선열의 날’은 숭고한 순국선열의 활동을 기억하고 추모하며
현재화한다는 의미에서 광복절만큼이나 뜻 깊은 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순국선열의 날’의 유래
‘순국선열의 날’은 왜 11월 17일일까요?
바로 1905년 11월 17일에 체결된 을사조약(乙巳條約)의 치욕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날을 순국선열의 날로 정한 것은
1919년 중국 상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였습니다.
1939년 11월 21일에 열린 임시의정원 제31회 임시총회에서
지청천(池靑天)과 차이석(車利錫)을 비롯한 6인은
11월 17일을 ‘순국선열공동기념일(殉國先烈共同記念日)’로 제안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원안은 의결되어 순국선열의 날이 시작되게 된 것이죠.
순국선열공동기념일의 추모행사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거쳐
광복 초기에는 민간단체가, 1955년 이후에는 정부 주관으로,
또 1962년 이후부터는 국가보훈처에서 주관하였습니다.
1970년 이후에는 정부 행사 간소화 조치로 인해 현충일 추념식에 포함되어 거행되었지만,
독립유공자 유족들의 오랜 여망과 숙원에 따라 1997년에 순국선열의 날이
다시 정부기념일로 복원됨에 따라서 정부가 추모행사를 주관하게 되었습니다.
3. ‘순국선열의 날’ 행사
2015년 11월 17일 오전 11시 제76회 순국선열의 날 정부 주관 공식 행사는
오전 11시 서울 용산구 효창동 효창공원 내에 있는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립니다.
이날 행사는 애국가 제창, 묵념, 국가유공자 포상 등의 식순으로 진행됩니다.
‘순국선열의 날’ 행사, 오후에도 열려
1. 일시: 2015년 11월 17일 오후 2시
2.장소: 서대문 독립공원 순국선열 현충사 앞뜰(3호선 독립문역 4번출구 우측 30M)
3.12시부터 국밥제공
4. 추위에 대비하여 무릎 담요, 핫팩 제공
(사)대한민국 순국선열 유족회 회장 김시명 드림
(02-365-4387, 4388)
올해는 행정자치부가 적극 지원하고 대한민국헌정회가 공동주최자로 참여하여
2,500명 이상이 모이는 대규모 행사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보훈처, 독립공원 내 독립의전당 건립키로
등록 일시 [2015-08-17 14:45:36]
【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독립공원 내 순국선열 위패봉안관이 '독립의전당'으로 새로 태어난다.
국가보훈처는 17일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 내 독립관에 있는 '순국선열 위패봉안관'이 노후화되고 장소가 협소한 상황"이라며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희생정신을 항구적으로 기리고 국민들의 애국심 함양을 위해 새로운 위패봉안관을 건립하려 한다"고 밝혔다.
'독립의전당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조성된다. 기존 위패봉안실이 확장되고 전시장과 교육장이 추가로 설치된다.
사업기간은 올해부터 2019년까지다. 총사업비는 195억만원이다.
daero@newsis.com
<책 밖의 역사> 안중근 의사의 수의
EBS 전하연 작가 입력 2015.11.16. 14:18
11월 17일은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순국선열의 날입니다. 또한 올해는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지 105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오늘 ‘책 밖의 역사’에서는 이토 히로부미
저격 후 교도소에 갇힌 안중근 의사에게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가 쓴
마지막 편지를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
이토 히로부미가 탄 열차가 도착했습니다.
러시아 재무장관을 만나 회담하기 위해서였죠.
일본의 초대 총리 이토 히로부미는
제국주의에 의한 아시아 침략과 조선 식민지화를 주도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쏜 총탄은 이토를 쓰러트렸습니다.
그리고 안 의사는 품속에서 태극기를 꺼내들고 외쳤죠.
“코레아 우라”
러시아말로 “대한 만세”입니다.
안 의사는 당당했습니다.
현장에서 체포된 안 의사는 일본 관헌에게 넘겨져
뤼순 감옥에 수감됐습니다.
이후 여섯 차례 형식적인 공판이 이어졌죠.
그리고 1910년 2월 14일의 공판에서
안 의사는 사형을 선고 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죠.
안중근 의사는 자신이
‘대한의군의 참모 중장 자격’으로서
‘독립전쟁의 일환’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죽였기 때문에
‘형사범’이 아닌 ‘전쟁포로’로 대우해 줄 것을
당당하게 주장했습니다.
또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것은
‘동양 평화를 위한 의로운 전쟁’이라고 선언했죠.
안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는
아들의 사형선고 소식을 접하고 편지와 손수 지은
수의를 보냅니다.
[편지내용]
장한 아들 보아라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안중근 의사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항소하지 않고
사형집행 직전까지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했습니다.
의거를 일으킨 진정한 이유를
후손에게 남기기 위해서였죠.
그리고 1910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서른 한 살의 나이로 순국했습니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다”
(안중근 의사의 유언 中)
출처:EBS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51116141830169
국가보훈처는 17일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 내 독립관에 있는 '순국선열 위패봉안관'이 노후화되고 장소가 협소한 상황"이라며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희생정신을 항구적으로 기리고 국민들의 애국심 함양을 위해 새로운 위패봉안관을 건립하려 한다"고 밝혔다.
'독립의전당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조성된다. 기존 위패봉안실이 확장되고 전시장과 교육장이 추가로 설치된다.
사업기간은 올해부터 2019년까지다. 총사업비는 195억만원이다.
daero@newsis.com
<책 밖의 역사> 안중근 의사의 수의
EBS 전하연 작가 입력 2015.11.16. 14:1811월 17일은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순국선열의 날입니다. 또한 올해는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지 105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오늘 ‘책 밖의 역사’에서는 이토 히로부미
저격 후 교도소에 갇힌 안중근 의사에게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가 쓴
마지막 편지를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
이토 히로부미가 탄 열차가 도착했습니다.
러시아 재무장관을 만나 회담하기 위해서였죠.
일본의 초대 총리 이토 히로부미는
제국주의에 의한 아시아 침략과 조선 식민지화를 주도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쏜 총탄은 이토를 쓰러트렸습니다.
그리고 안 의사는 품속에서 태극기를 꺼내들고 외쳤죠.
“코레아 우라”
러시아말로 “대한 만세”입니다.
안 의사는 당당했습니다.
현장에서 체포된 안 의사는 일본 관헌에게 넘겨져
뤼순 감옥에 수감됐습니다.
이후 여섯 차례 형식적인 공판이 이어졌죠.
그리고 1910년 2월 14일의 공판에서
안 의사는 사형을 선고 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죠.
안중근 의사는 자신이
‘대한의군의 참모 중장 자격’으로서
‘독립전쟁의 일환’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죽였기 때문에
‘형사범’이 아닌 ‘전쟁포로’로 대우해 줄 것을
당당하게 주장했습니다.
또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것은
‘동양 평화를 위한 의로운 전쟁’이라고 선언했죠.
안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는
아들의 사형선고 소식을 접하고 편지와 손수 지은
수의를 보냅니다.
[편지내용]
장한 아들 보아라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안중근 의사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항소하지 않고
사형집행 직전까지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했습니다.
의거를 일으킨 진정한 이유를
후손에게 남기기 위해서였죠.
그리고 1910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서른 한 살의 나이로 순국했습니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다”
(안중근 의사의 유언 中)
출처:EBS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51116141830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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