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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답사기

[나의 이야기]6.25 전쟁 당시 지리산 공비 토벌 작전에서 화엄사 등 사찰을 지킨 故 차일혁 경무관

문화재방송 2016. 6. 21. 03:05

<아래 내용은 스크랩된 것으로 최근 기사가 아닙니다>

 

 

6·25 당시 화엄사 지킨 故차일혁 경무관 공덕비 제막
 

화엄사, 소실 막아낸 숭고한 뜻 기려
 
 
 
 
“절을 태우는 데는 한나절이면 족하지만 절을 세우는 데는 천 년 이상의 세월로도 부족하다.”
 
지금으로부터 60여년 전 화엄사를 초토화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은 당시 한 경찰관의 항변이었다.
 
8월21일 오후 구례 화엄사 경내. 고(故) 차일혁 경무관(1920∼1958)의 공덕비가 세워졌다. 지난 1998년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인 월주스님과 호남 교구본사 주지 스님들이 화엄사에 공적비를 세운지 15년만이다.
 
공덕비 옆에 놓인 故 차일혁 경무관의 사진.
이날 화엄사에 세워진 공덕비는 최근 차 경무관의 공적이 새롭게 조명되면서 전 화엄사 주지
종삼스님과 현 주지인 영관스님이 조성한 것이다. 원래 있던 공적비는 후손인 차길진 법사가 차일혁
기념사업관으로 옮겨 그 뜻을 기리게 됐다.
 


차일혁은 1951년 5월 한국전쟁 당시 남부군 토벌작전에 참가했다. 당시 그는 빨치산의 근거지가
될 만한 사찰과 암자불태우라는 상부명령을 받자 화엄사 각황전의 문짝 만을 떼어내 불태우는 기지를
발휘했다.
그리고는 상부에 “문짝만 태워도 빨치산의 은신처를 없앨 수 있다”고 보고하며 천년고찰을 지켜냈다.
그는 작전명령을 어기며 화엄사, 쌍계사, 천은사 등 지리산 일대 고찰과 금산사, 백양사, 선운사 등을
전화(戰火)에서 구한 공로로 정부로부터 경찰공무원으로는 처음으로 2008년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경찰청도 뒤늦게 그의 업적을 조명하며 2011년 8월 총경에서 경무관으로 승진 추서했다.
또한 2012년에는 국가보훈처가 한국전쟁 영웅으로 선정했으며 올해에는 전쟁기념사업회 호국의 인물로
이름을 올렸다.


 
참석자들이 故 차일혁 경무관의 공덕비를 제막하고 있다전북 김제 출신인 그는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독립운동에 투신했으며 광복 후 귀국해 일본 고등계 형사
사이가 쓰보이를 저격하는 등 일제 잔당을 청산했다. 특히 한국전쟁 당시 남한의 유일한 발전소인
전북 정읍 칠보발전소 탈환과 지리산을 장악한 빨치산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 사살 사건은 유명한 일화로
회자되고 있다.
지난 1951년 당시 18전투대대 대대장이었던 차일혁은 전투대원 75명의 수적 열세를 딛고 국가기관시설인
발전소를 점령하기 위해 대치하던 2500여명의 빨치산을 응징하며 칠보발전소를 사수했다.
1953년 총경으로 승진한 그는 전투경찰대 제2연대 연대장으로 임명돼 그해 9월 남부군 총사령관인
이연상을 사살하며 사실상 토벌작전의 종지부를 찍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이현상을 사살한
후 인간적인 연민으로 시신을 거둬 화장한 뒤 골분을 섬진강에 뿌리고 장례를 치러 주기도 했다.
그는 ‘이현상 토벌’이라는 혁혁한 전공(戰功)에도 불구하고 잇따른 명령 불이행으로 총경직에서
승진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공적을 인정한 조계종 초대 종정인 효봉스님은 1958년 5월 감사장을 수여했다.
그로부터 3개월 후 그는 38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이날 공덕비 제막식에는 차일혁 경무관의 아들인 화엄사 명예신도회장 차길진 법사와 김장실 국회의원,
 전석종 전남지방경찰청장, 서기동 구례군수와 스님과 불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화엄사 주지 영관스님은 인사말을 통해 “고인의 지혜로운 결단으로 화엄사와 천은사 등 고찰들은 지금까지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다”면서 “오늘 세워진 공덕비를 통해 차일혁 경무관의 민족문화유산 수호에 대한
숭고한 뜻을 기리고 후손들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만대에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故 차일혁 경무관의 아들인 차길진 법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높이 2.97m, 너비 3m의 이 공덕비는 기단은 화강암으로 상단은 대리석으로 제작됐으며, 고은 시인이
비문을 짓고 글씨는 차 경무관의 아들인 차길진 법사가 썼다.
비문에는 “이제 해원의 때가 무르익었으니 천하의 영봉 지리산을 생사의 터로 삼아 동족상잔의 피어린
원한을 풀어 그 본연으로 돌아감이 옳거니 여기 근본 법륜 화엄사 청정도량에 한 사람의 자치를 돌에 새겨
기리도록 함이라”며 공적을 기렸다.
한편 차길진 법사는 화엄사에 경봉스님의 친필 ‘화엄’ 진본 1점과 아버지인 차 경무관이 효봉스님에게 받은
감사장과 영인본 등 모두 6점의 자료를 기증했다.
화엄사도 자료 기증에 대한 보답의 의미로 차 법사에게 감사장을 수여했다. 
 
故 차일혁 경무관 자료를 기증하는 차길진 법사.
 출처:불교신문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27994


<차일혁 경무관의 생애>






회문산지구 일대를 배회 준동하면서 가진 악행을 자행하여 전북치안을 교란하든 최고악질 공비수괴인
항미연대작전참모장 이상윤 (일명 외팔이)가 임실서원에게 사살되였다.
지난 12월8일 미명 임실서관내 OO고지에서 임실서장이 지휘하는 경찰대와 교전한 결과 외팔이(이상윤)는

중상을 입고 그간 행방이 묘연하든 차 1월3일 성수지서주임이 지휘하는 경찰대의 성수산작전에서 임실군당
조직책 한공석 (당33세)과 동총무 보석유(普錫柳)(당33세)를 생포하고 총기 US99식 2정을 노획하는 전과를
거두고 이를 엄중 취조한 결과 외팔이는 지난 12월 8일 작전에서 중상을 입고 임실군성수산 불당골 비밀
아지트에서 치료 중 지난 12월 25일 미명 드디어 사망한 것이 판명되었다.
한편 임실서사찰주임이 인솔하는 형사대는 불당골 가매장한 장소를 탐지하여 사체를 발굴하고 검시한 결과

외팔이의 사체로 판명 금 1월4일 상오 7시 30분 현재 임실경찰서에 운반되었다.
그런데 『외팔이』라는 가명으로 널리 그 이름이 알려진 악질공비수괴 이상윤은 중공군 출신으로서 재작년

10월 경 서도열차습격사건을 필두로 작년 6월24일 전남 사가리 열 차기습사건 등의 주도자였으며 계속하여
자동차 기습 인명살상 등의 잔인한 죄악을 범하여 온 장본인인 것으로 금반 이러한 악질공비의 탕진으로
말미암아 전북치안은 일층 명랑하게 되었다.



한편 4일 조조 이 희보에 접한 김종원경찰국장은 미고문관 “힌클”소령과 같이 현장에 치주(馳走)하여 오랜
시일을 두고 진두에서 생사를 걸고 싸워오던 과거를 회상하는 그 모습은 감개무량한 듯이 보였다.
그런데 외팔이의 사체를 검시한 소계의 전문가들은 만장일치로 "외팔이"의 사체임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외팔이”는 과거 중공군 팔로군 출신이며 북한괴뢰군 대위로서 남하한 자라고 하는데 한 팔을 잃은
 원인은 가마골에서 사제수류탄의 오발로 인하여회문산지구 일대를 배회 준동하면서 가진 악행을 자행하여
전북치안을 교란하든 최고악질 공비수괴인 항미연대작전참모장 이상윤 (일명 외팔이)가 임실서원에게 사살되였다.



악질공비수괴 소위 항미연대 작전참모이며 일명 “외팔이”이상윤이를 임실경찰서에서 사살하였다함은
상기기사와 같거니와 지난 1월3일 오후3시경 임실서 사찰공작대의 유도작전에 의하여 생포된 임실군당조책
한공석 총책 보석유에 2명의 진술에 의하여 외팔이의 가매장장소를 발굴 검시한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즉 임실서사찰주임이 인솔하는 형사대가 1월4일 미령 성수산 불당골 가매장장소를 수색하여 사체를
발굴하였는데 “외팔이”의 사체는 지하 7척 깊숙이 매장되어 미군용모포 5장으로 사체를 덮었으며 내의로는
 미군용 사쓰를 착용하고 있었으며 그가 평시에 애호하든 담배와 담배케-스와 쌀5두까지 공장(共藏)하여
있었는데 가소롭게도 공비들은 “외팔이”를 영웅이라고 경의를 표명하야 정중히 매장하였다한다.
 
 
 
  
공비총두목을 사살-즉시 당전투경찰대
(서남전투경찰대)제2연대 유격대는
지난 18일 새벽 1시30분을 기하여 행동을
개시하고 지리산 지구 반약봉 및 백소령
일대에 단하여 수색전을 전개중 동일하오
11시경 경남하동 화개면 무명고지(CP7531O67)
에서 남한공비총지휘자인 인민유격대
남부군단사령관 제5지구당위원장인
이현상 및 그 부하 3명과 김지희부대
7명을 발견하고 쌍방의간에 걸쳐 치열한
교전이 계속되었는데 교전 3시간만인 
동일 하오 2시경 공비총두목인 이(李)를
사살하고 그의 부하 5명을 각각 사살하여 동
공비부대를 섬멸시키는 한편 엠원 총3정 동
실탄5백발 US99식 장총 17정 CARM 1정
쏘식자동소총 1동 동 실탄 94발 탄장 2개
등을 노획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한다.
그리고 동 이의 시체는 어제 20일 새벽
시내명동 중앙경찰병원에 이송해왔다.
그런데 전기 이는 전북금산군북면의 당리에
본적을 두고 시내 서대문구북아현동에 거주하던
 자로서 해방 전 고창중학 재학 시에
조선공산당에 가입하고 보성전문학교 3년을 수료하였으며 해방 후에 박헌영 비서 남로당 중앙당부연락부장등을 역임하고
6.25당시에는 제산공비 제3단 총사령관으로 있었고 인공당시에는 충남도위원장등을 역임한 자인데
여순반란사건 때에는 반란군을 지리산으로
유도하여 합류하였던 것이다.
[사진은 사살된 이현상]


공비 교수 이현상 사살에 대한 문제로 그동안 상부당국에서는 조사단의 파유등 동전과 판명규명이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켜오든바 금반 관계당국으로부터 이의 전과거양을 당연 당대의 큰 공을 높이 찬양한 바 있으며
동 전과거양에 지대한 유력자인 김사령관 전작전과장 차 제2연대장 동 연대 김수색대장 외 전원에 각각
대통령수장을 초도순시 차 래대한 이치안국으로부터 전달식을 사령부광장에서 성대히 거행하였다.




27일 정인수 경보과장의 사회로서 먼저
악대의 주악으로 국민의례에 이어서
이치안국장으로부터 김종원사령관,
김억순작전과장, 치일혁 제2연대장 동
연대 수색대원 김용식 외 전원에 각각
대통령수장의 전달이 있었는데 손수
가슴에 부처주는 이치안국장과 이를 받고
감개무량한 표정의 김사령관의 악수는 말없는
굳은 결의를 보여주었고 일선연대에서
진두지휘로 대원들과 동고동락을 같이하고
있는 차연대장의 용자는 백두산 호랑이의
용명을 날리시는 김사령관의 뒤를 따른
지리산 호랑이의 전명을 갖일수 있으리만치
용감한 모습이었다.
한편 내무부장으로부터 김사령관과

차연대장이하 대원 동에게 표창장과 당대“힝클”미고문관에게 감사장의 전달이 있었고 지난 혁혁한 계속적인
대전과를 축하함과 앞날을 격려한 뜻으로서 치안국장으로부터 김사령관에 꽃다발증정이 있었으며 엄동설한을
맞이한 동기작전에 있어서는 배전의 건투로서 서남지구에 준동하는 재산잔비의 사령관으로부터 말단 순경에
이르기까지 전력을 경주할 것을 요망한다는 격려사가 있는 다음 화려하고 대성황인 동식은 종막을 나리다.(사진 상은 대통령수장을 받는 김사령관, 중은 차이연대장,  감사장을 받는 힝클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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