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장편 서사시를 바탕으로 현종과 양귀비의 로맨스를 그린 장이머우 감독의 대형 야외 공연 ‘장한가’의 한 장면. 현종과 양귀비가 사랑을 나눈 화칭츠를 무대로 삼았다. 장세정 기자
동양적 전통에서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은 오랜 진리다. 누구든 민심을 얻으면 천하를 얻는다. 중국에는 “중원(中原)을 잡으면 천하를 얻는다”는 말이 있다. 배타적인 한족(漢族) 중심의 역사관이지만, 중원을 경략한 북방 이민족에게 물어봐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중국 중원 문화예술기행 세 번째 중앙일보 테마여행 다녀와 고대∼현대 역사 현장 4박5일 탐방 장이머무 ‘장한가’ 야외 공연 백미
중앙일보 테마여행의 5월 여정은 한족과 속칭 ‘오랑캐’들이 서로 차지하기 위해 오랜 세월 다퉜던 중원이 행선지였다. 중국 역사학의 아버지 사마천이 『사기』에서 말한 ‘중원 축록(逐鹿)’의 무대다. 이 무대에서 숱한 영웅과 묵객이 명멸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 중국 최초의 여황제 측천무후, 양귀비와 영원한 로맨스를 나눈 당 현종, 마오쩌둥에게 대륙을 빼앗긴 비운의 영웅 장제스 등 역대 최고급 스타들이 이번 여정에 등장한다.
이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 모인 여행단은 20명으로 구성된 ‘대가족’이었다. 이제 20대 초반인 여성 웹 디자이너부터 판사 출신 80대 법조인까지 동행했다. 요즘은 보기 드문 ‘대가족의 탄생’이었다.
염제와 황제를 표현한 염황이제 석상의 높이는 100m. 중국인들은 자신을 ‘염황의 자손’이라 자부한다. 장세정 기자
◇정저우=한반도에 사는 이들이 단군을 조상으로 모신다면 중국 사람들은 스스로 ‘용의 후손’이라고도 하고, 염황자손(炎黃子孫)이라고도 한다. 염황자손은 염제(炎帝)와 황제(黃帝)의 후손이란 뜻이다.
첫 여행지인 허난(河南)성 정저우(鄭州)의 황허(黄河) 풍경 명승구에 가니 높이가 100m나 되는 염황이제(炎黄二帝) 석상이 한눈에 들어왔다. 1억8000만 위안(약 307억원)을 들여 만들었다는 석상은 황제가 염제보다 약간 높다. 판천(阪泉) 전쟁에서 황제가 염제를 격파한 때문인 듯하다.
자주 범람하는 황허를 다스린 우(禹)임금의 동상을 보기 위해 케이블카를 20분간 탔다. 저만치 황허가 먼발치로 내려다보였다. 에펠탑보다 높다는 388m 높이의 중원 복탑(福塔)에 올랐다. 중국 정부의 중부 굴기(崛起) 전략에 따라 집중적으로 개발된 정저우 개발구의 발전상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샤오린쓰의 무술 시험. 아찔한 장면도 연출한다. 장세정 기자
◇덩펑=중국에서 오악(五嶽)의 하나인 중악 쑹산(崇山)을 보려면 정저우에 속한 덩펑(登封)시로 가야 한다. 무협지에서 소림사로 불리는 샤오린쓰(少林寺)도 이곳에 있다. ‘천하제일사찰’답게 관람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동자승부터 중고생으로 보이는 수련생들의 무술 시범이 30분가량 이어졌다. 서양인들도 몰려올 정도로 인기였다. 목에 날카로운 창 2개를 겨누고 목으로 창을 휘도록 하는 아찔한 장면도 보여줬다.
샤오린쓰에서 오스트리아제 케이블카를 타고 20분가량 올라가니 쑹산의 천 길 낭떠러지에 설치한 싼황(三皇) 잔도(栈道)의 아찔함을 만끽할 수 있었다. 점심때 융타이쓰(永泰寺) 절에서 사찰 음식을 맛봤다. 콩과 버섯 등으로 만든 가짜 고기가 인상적이었다. 고기를 먹고 싶었던 수도승들의 지혜가 웃음을 자아냈다.
측천무후가 자신을 모델로 만들게 한 룽먼석굴의 비로나자불 앞에 선 중국 여성 관광객들. 장세정 기자
◇뤄양=중국 9개 왕조의 수도였던 뤄양(洛陽)은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의 도시다. 해마다 봄이면 모란 축제가 화려하게 열린다. 뤄양에선 중국 최초의 여황제인 측천무후를 만나게 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룽먼(龍門) 석굴에서다. 북위 때부터 시작해 당나라 초기까지 석회암을 파는 조각 작업이 계속됐다. 측천무후가 자신을 모델로 만들게 했다는 비로나자불은 높이 17.4m에 두상 4m, 귀는 1.9m나 됐다. 독재자의 얼굴도 이렇게 선하고 아름다울 수 있구나 싶어 경탄이 절로 나왔다.
관광객들은 대체로 걸어서 다리를 건너 뤄허(洛河) 건너편에서 룽먼석굴 쪽으로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오래 걷기 힘든 여행객이라면 25위안(약 4200원)을 주고 배를 타는 게 좋다. 선상에서 바라보는 비로나자불이 이채롭다. 비로나자불 맞은편에는 당나라 3대 시인 백거이의 묘가 있는데 한국과 싱가포르 백씨 대표단이 남긴 기념 비석이 눈길을 끌었다.
뤄양에서 삼국지의 영웅인 관우의 무덤, 즉 관린(關林)을 찾아간 것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오나라 손권은 관우를 죽이고도 보복이 두려워 관우의 목을 조조에게 보냈다. 난세의 영웅 조조는 관우의 장례를 후하게 치러줬다. 조조의 정치적 계산을 고려하더라도 영웅이 영웅을 알아본 장면이다. 관우의 몸통은 후베이(湖北)성 당양(當陽)의 관링(關陵)에 묻혀 있다. 중국에서 공자는 문신으로, 관우는 무신과 재신(財神)으로 지금도 추앙받는다.
시안의 현장법사와 대안탑. 대안탑에 현장법사가 인도에서 가져온 불법이 모셔져 있다. 장세정 기자
◇시안=뤄양에서 고속철을 타고 1시간 30여분 만에 13개 왕조의 수도였던 시안(西安)에 당도했다. 인구가 846만 명이나 되는 시안은 당나라 때 인구 100만 명이 넘는 국제도시 장안(長安)으로 불렸다. 명나라 때 수리한 성벽 위 4차선 길을 거닐다 보면 고대와 현대를 오가는 착각이 든다. 산시(陕西) 역사박물관과 비림(碑林) 박물관은 놓칠 수 없는 역사 투어 현장이다. 현장법사가 인도에서 가져온 불법을 모신 대안탑 주변의 대당불야성(大唐不夜城)과 회족(回族) 거리도 볼거리가 가득하다.
진시황 병마용갱의 토용들. 줄지어 서 있는 토용들의 표정이 마치 살아 있는 듯하다. 장세정 기자
시안 근교로 나갔다. 1974년 농부가 우물을 파다 우연히 발견한 진시황 병마용갱(兵馬俑坑)은 그 자체가 거대한 박물관이다. 다양한 토용(土俑)의 얼굴을 마주하니 마치 살아 있는 듯 표정이 생생했다. 병마용갱만 둘러보고 진시황릉을 찾아가지 않으면 앙꼬 없는 찐빵을 먹는 셈이다. 1995년에 찾아갔던 진시황릉은 야트막한 구릉에 석류밭으로 이용되고 있었지만, 지금은 향나무를 심어 황제릉의 위엄을 갖췄다. 이제는 황릉 입구에서 출입을 제한한다. 진시황릉은 아방궁과 함께 항우에 의해 불탔지만, 2000년 만에 진시황이 권위를 되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칭츠에 세워진 양귀비 석상은 풍만한 미인을 형상화했다. 장세정 기자
시안 근교 화칭츠(華淸池)는 장쉐량이 1937년 장제스를 연금한 ‘중국판 12·12 사건’의 현장이다. 대부분의 중국인에겐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로맨스 무대로 더 익숙하다. 화칭츠에서 만난 양귀비는 역시나 풍만한 미인이었다. 고증에 따르면 키 158㎝에 몸무게가 75㎏이었다고 한다. 한나라 왕소군·초선, 월나라 서시와 함께 중국 4대 미인으로 손꼽힌다. 당 현종은 며느리였던 양귀비의 마음을 얻기 위해 몸이 달았다. 음악과 춤을 사랑한 두 사람은 취미까지 궁합이 맞았다. 전제 군주라기보다는 너무도 인간적인 황제의 로맨스를 막장 드라마라고 비하할 수 있을까.
두 사람의 애틋한 사랑과 이별을 그려낸 시인 백거이의 ‘장한가(長恨歌)’를 대형 야외 공연으로 재탄생시킨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연출 솜씨는 혀를 내두르게 했다. 화칭츠가 자리한 리산(驪山)을 통째로 무대 배경으로 삼아 두 사람의 아름답고 슬픈 러브 스토리를 그려냈다. 130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었다. 양귀비의 목욕 장면, 안록산의 난, 양귀비와 현종의 오작교 재회 등을 생동감 넘치게 표현해냈다. 단연 이번 여정의 최고 백미였다. 화려한 영상과 어우러져 흘러나오는 장한가의 마지막 대목이 긴 여운을 남겼다.
칠월칠석날 장생전에서(七月七日長生殿) 한밤중 아무도 없는데 귓속말 하네(夜半無人私語時) 하늘에 있으면 비익조가 되길 원하고(在天願作比翼鳥) 땅에 있으면 연리지가 되길 원했지(在地願爲連理枝) 하늘과 땅은 장구하나 다할 때 있어도(天長地久有時盡) 이별의 한은 면면히 이어져 끊길 날 없으리(此恨綿綿無絶期)
문화재청(청장 정재숙)과 해양수산부(장관 문성혁)는 2019년도 유네스코(UNESCO, 국제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자연유산으로 신청한 ‘한국의 갯벌’이 지난 9월 30일부터 10월 7일까지 세계자연보전연맹(이하, IUCN)의 현지 실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현지실사는 서류심사, 토론자 심사 등 여러 전문가의 참여로 진행되는 세계유산 전체 심사과정의 한 단계로,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현지 실사는 유네스코가 의뢰하면 자문기관에서 수행한다. 이후 유네스코는 실사 결과와 세계유산 등재신청서 심사를 바탕으로 등재 권고와
보류, 반려, 등재 불가의 4가지 권고안 중 하나를 선택해 최종 등재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한국의 갯벌’에 대한 현지실사는 IUCN 자문위원 바스티안 베르츠키(Bastian Bertzky)씨와 인도 상하수도부
과장 소날리 고쉬(Sonali Ghosh)씨가 담당하였다.
세계자연유산으로 신청된 ‘한국의 갯벌’은 ▲ 서천갯벌(충남 서천), ▲ 고창갯벌(전북 고창), ▲ 신안갯벌(전남 신안),
▲ 보성-순천갯벌(전남 보성, 순천) 등 총 4개로 구성된 연속유산이다. 현지실사를 맡은 베르츠키 씨와 고쉬 씨는 7일간의 실사 기간에 4개의
갯벌을 방문하여 현지에서 관리 담당자, 지역주민, 전문가를 만나 설명을 들었으며, 해당 갯벌의 보호․관리 현황과 세계자연유산으로서의 완전성 충족
여부를 현장에서 일일이 점검하였다.
[편집자에게]
천연기념물 강화갯벌과 저어새의 눈물
조선일보
김종문 문화재방송 대표
입력 2011.02.24 23:30
우리나라의 서해연안 갯벌은 캐나다 동부 해안, 미국 동부 해안, 북해 연안 및 아마존강 유역과 더불어 세계 5대 갯벌로 평가받는다. 특히 국내 최대인 인천 연안 갯벌은 서울 등 수도권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을 걸러내는 천연 정화장이다. 국토해양부 자료(2008년 말 기준)에 따르면 전국 갯벌은 2489.4㎢로 2003년 12월에 비해 여의도 면적(2.9㎢)의 21배에 해당하는 60.8㎢가 줄었다.
그중에도 인천은 '전국에서 갯벌을 제일 많이 없애는 지역(없어진 면적의 54.6%인 33.2㎢)'이었다. 그럼에도 인천에서는 여전히 송도 11공구(6.9㎢) 매립공사나 조력발전사업까지 추진돼 엄청난 넓이의 갯벌이 더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국토해양부는 2017년까지 강화도 남부와 영종도를 17㎞의 방조제로 잇는 인천만조력발전소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또 2016년까지 석모도 해협 일대에 7.8㎞의 방조제를 쌓는 강화조력발전소도 건립된다.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인 북해 와덴해 갯벌은 60%가 독일에, 30%는 네덜란드, 10%는 덴마크에 있다. 이 3개국은 와덴해의 현명한 이용과 보전이라는 공동목표를 설정했다. 이에 따라 독일은 전체 갯벌을 국립공원으로 지정, 관광 수익만으로 수산 소득을 앞지르고 있다.
국토의 30% 이상이 바다보다 낮아 엄청난 방조제 공사를 했던 네덜란드도 갯벌 살리기에 국력을 모으고 있다.
바다를 막은 뒤 자연으로부터의 보복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는 이를 '역(逆)간척사업'이라고 한다. 제방을 그대로 두고 바닷물과 강물이 간척지에 흐르게 해 습지로 만들고, 그중 50%는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일본은 1981년에 완공한 시마네현 나카우미 간척지의 배수갑문을 2004년 철거했으며, 방조제를 터 조류습지로 보전하고 있다. 도쿄만 내 지바현의 야쓰갯벌(50㏊)과 신하마 물새보호지역 갯벌(9㏊)도 인공 조성했다.
263만 인천시민들은 이제 명예를 회복해야 할 때다. 조력발전소 착공과 함께 들려올 강화갯벌(천연기념물 제419호)의 신음소리와 갈 곳 잃은 저어새(천연기념물 제205호)의 눈물을 인천시민들이 외면해선 안 된다.
1999년 국내 최초로 '갯벌 보전 시민헌장'을 제정했음에도 '전국에서 갯벌을 가장 많이 없애는 지역'이란 불명예를 계속 이어갈 수는 없다. 한번 사라진 갯벌은 되살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