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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중계]핍박받던 상민들이 양반들과 춤추는 흥겨운 '밀양백중놀이'(국가무형문화재 제68호)

문화재방송 2020. 9. 4. 23:02

기획. 취재. 촬영. 편집:문화재사랑

 

백중(百中)은 음력 7월 보름에 드는 속절(俗節)이며, 백종(百種)·중원(中元), 또는 망혼일(亡魂 日)이라고도 한다. 백종(百種)은 이 무렵에 여러 가지 과실과 채소가 많이 나와 '백가지 곡식의 씨 앗'을 갖추어 놓았다고 하여 유래된 말이요, 중원(中元)은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삼원(三元)의 하 나로서 이 날에 천상(天上)의 선관(仙官)이 인간의 선악을 살핀다고 하는 데서 연유하였다. 또한 망혼일(亡魂日)이라 한 까닭은 망친(亡親)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술·음식·과일을 차려 놓고 천신(薦新)을 드린 데에서 비롯되었다.

 

입하(立夏)로부터 시작되는 여름은 '녀름짓다'라는 옛말처럼 밭매기와 논매기 등 농사일이 한창인 계절이다. 그러나 '어정 7월, 동동 8월' 이라는 옛말이 있듯이 농촌의 7월은 바쁜 농번기를 보낸 뒤이면서, 한편으로는 가을추수를 앞둔 달이어서 잠시 허리를 펼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백중'이라는 속절(俗節)을 두어 농사일을 멈추고, 천신의례 및 잔치와 놀이판을 벌여 노동의 지루함을 달래고 더위로 인해 쇠약해지는 건강을 회복하고자 했다. 백중의 유래에 대해서는 몇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불가에서 유래된 것으로 조선 후기에 간행 된《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불가의 중들이 재를 올리고 불공을 드리는 큰 명절로 여긴다. 상고하면《형초세시기(荊楚歲時 記)》에 이르기를 중원일(中元日)은 승니, 도사, 속인들이 모두 분(盆)을 만들어

이것을 절에 바친다고 했다. 또 상고하면《우란분경(盂蘭盆經)》에 목련비구(木蓮比丘)가 오미백과(五味百果)를 갖추어 분 안에 넣어 갖고 시방대덕(十方大德)에 공양한다고 하였다. 지금 말한 백중일이 백과를 가리키는 것이다.

백중百中 9월 2일 (음7.15)

백종일(百種日)·망혼일(亡魂日)·중원(中元)이라고도 한다. 고래로 백중날에는 남녀가 모여 온갖 음식을 갖추어 놓고 노래하고 춤추며 즐겁게 놀았다. 지방에 따라서는 씨름대회·장치기[手傳] 등의 놀이로 내기도 한다. 승려들은 이날 각 사찰에서 재(齋)를 올린다.신라와 고려시대에는 우란분회(盂蘭盆會)를 열어 속인들도 공양을 했으나, 조선시대에는 주로 승려들만의 행사가 되었다.농촌에서는 백중날을 전후해서 시장이 섰는데, 이를 백중장(百中場)이라고 하였다. 머슴을 둔 집에서는 이날 하루를 쉬게 하며 취흥에 젖게 한다. 또 그 해에 농사를 잘 지은 집의 머슴을 소에 태우거나 가마에 태워 위로하기도 한다.지방에 따라서는 백중날에 차례를 지내기도 하는데, 그러기 위하여 산소에 벌초를 하고 성묘도 한다. 백중날은 일손을 쉬고 노는 날이지만, 제주에서는 바닷일을 더 많이 한다. 백중날에 살찐 해물이 더 많이 잡힌다고 믿기 때문이다. 백중이라는 말은 백종(百種), 즉 여러 가지 음식을 갖춘다는 뜻에서 유래한 것 같다.

 

 

[문화유산 답사기] 석양 빛에 물든 자연유산을 따라

 

 

 

삼면이 바다에 맞닿아 있는 태안. 이 지역은 한반도의 대표적인 해식지형으로 발길 닿는곳마다 수려한 자연경관을 뽐낸다. 또 1월 평균기온 4℃의 등온선이 지나 식물의 남북한 계선이 형성되어 독특한 식물분포를 나타낸다. 뿐만 아니라 간만의 차가 심하고 수심이 얕아 주변 해안에 넓은 간석지를 형성한다. 이 덕에 해안 곳곳에 만리포, 연포, 몽산포 등 10여 개의 해수욕장과 항구도 조성돼 있다. 태안은 지리적 특성 때문에 예로부터 왜구의 침략이 잦았는데, 이를 막기 위해 축조했던 산성이 많이 남아 있다.
이처럼 태안은 아름답고 신비한 자연유산과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문화유산이 곳곳에 자리한다. 이러한 천혜의 조건으로 최근에는 서해안 해변을 따라 걷는 ‘태안해변길’이 각광받고 있다. 학암포에서 출발해 영목항에 이르는 총 97km 7개 구간은 그 구간마다 색다른 멋을 자아낸다.
특히 아름다운 일몰 광경이 일품인 안면도 꽃지 할미 할아비 바위를 비롯해 안면도 방포해변을 따라 드넓게 펼쳐진 모감주나무군락, 바람을 타고 이동한 모래언덕 태안 신두리해안사구 등은 그 자체로 자연이 빚어낸 신비함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바다가 준 선물, 석양빛에 물든 그곳에서 자연을 즐겨본다.

 

 

- 안면도 꽃지 할미 할아비 바위
천년의 사랑을 간직한

 

 

약 1200년 전 통일신라. 장보고는 안면도에 전략적 전진기지를 설치하고 이곳에 승언장군을 파견한다. 승언장군에겐 ‘미도’라는 부인이 있었는데, 두 사람은 금슬이 좋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장보고의 명령으로 승언장군은 군선을 이끌고 북쪽으로 진군한다. 그 후 여러 달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미도부인은 바닷가 높은 바위에 올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남편 승언장군을 애타게 기다린다. 그러기를 수십 년, 승언장군은 끝끝내 돌아오지 않고, 결국 미도부인은 이 바위에서 죽고 만다. 이후 어느 날 밤 갑자기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미도부인이 죽은 바위 옆에 큰 바위가 우뚝 솟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미도부인이 죽은 바위를 할미 바위, 그 옆에 우뚝 솟은 바위를 할아비 바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안면도 꽃지 할미 할아비 바위 전설

 

 

슬픈 사랑이야기를 간직한 안면도 꽃지 할미 할아비 바위(명승 제69호). 이 바위섬은 안면도 꽃지해변 앞바다에 두둥실 떠있다. 왼쪽에 비교적 작은 것이 할미 바위, 오른쪽이 할아비 바위다.
닿을 듯 말 듯 해변에서 가까운 할미 할아비 바위는 물이 빠졌을 때 육지로 변한다. 이때는 바로 앞까지 걸어갈 수 있다. 이 걸어가는 길에는 이색적인 광경도 볼 수 있다. 길을 따라 늘어선 해산물 좌판이 그것이다. 좌판에서는 할머니들이 산낙지와 해삼, 개불, 멍게 등을 판매하는데, 즉석에서 먹기 좋게 손질해준다. 목욕탕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는 산낙지를 초장에 찍어 먹어본다. 할미 할아비 바위의 멋진 풍경에 더해 이곳만의 특별한 맛이 입안을 감싼다.
좌판을 지나면 먼저 할미 바위가 보인다. 깎아내린 짙은 황갈색 절벽, 그 절벽에 드문드문 솟아 있는 소나무 몇 그루. 소나무는 어떻게 저 단단하고 척박한 바위를 뚫고 나와 자란 걸까.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할아비 바위는 할미 바위보다 두세 배가량 크다. 또 할미 바위와 달리 소나무가 빼곡하다. 할미 바위가 비움의 소박함이라면 할아비 바위는 채움의 웅장함이 느껴진다.
해가 어슴푸레 질 무렵이면, 멀리 나갔던 바닷물이 서서히 들어온다. 할미 할아비 바위를 구경 온 사람과, 그 사람들에게 해산물 팔던 할머니들은 바닷물에 밀려 뭍으로 나온다. 육지로나마 이어졌던 할미 할아비 바위는 다시 떨어지게 되고, 활기차던 공간엔 어느새 쓸쓸함만 남는다.
태양이 바다와 가까워질 때쯤, 따사로이 빛나던 할미 할아비 바위는 모든 색을 잃는다. 그 주변은 온통 붉은 노을로 물든다. 붉게 물든 바다와 그 바다에 외롭게 떠있는 검은 바위섬 두덩이. 바위섬 사이로 갈매기 몇 마리가 ‘푸드덕’ 날아오른다.

 


- 태안 안면도 모감주나무군락
걷는 길 사이사이 싱그러움 가득

 

 

꽃지해변에서‘꽃다리’를 건너면 바로 한적하고 조용한 항구가 보인다. 방포항이다. 이 방포항에서 나오는 수산물은 뒤편에 있는 방포수산시장에서 유통된다. 방포수산시장에서는 안면도 특산물인 싱싱한 대하와 꽃게 등을 맛볼 수 있다. 배불리 먹고 방포수산시장 뒤로 나오면 빼곡한 나무숲에 놀라게 된다. 이곳이 바로 태안 안면도 모감주나무군락(천연기념물 제138호)이다.
중국에서 바닷물을 타고 밀려와 싹이 튼 것이라고도 하고, 중국 어부가 고기잡이 나왔다가 심었다고도 하는 안면도 모감주나무군락. 지리적으로 바다와 마을 사이에 위치한 이 나무숲은 예로부터 바람막이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것이 가능했던 건 그 규모 덕분이다. 안면도 모감주나무군락은 길이 120m, 중간부분 너비 약 15m로, 그 면적이 9567㎡에 달한다. 이곳에 자라는 모감주나무만 무려 400~500그루다. 이 때문에 안면도 모감주나무군락은 학술적인 자료로도 그 가치를 높게 인정받는다. 경기도나 경상도 일부에서도 모감주나무가 분포하고는 있으나, 이곳처럼 넓은 면적에 군락을 형성한 곳은 없다고 한다.
모감주나무 따라 걷는 길은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하는 산책코스로도 제격이다. 특히 노란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7월에는 걷는 길 사이사이 싱그러움이 가득하다. 또 가을에는 노랗게 물든 잎이 진풍경인데, 흔히 보는 은행나무 가로수 길과는 또 다른 매력이다.
모감주나무군락 끝자락에서 조금만 더 걸으면 방포 방파제에 다다른다. 이왕 산책길에 나섰다면 방포 방파제를 따라 끝까지 걸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방파제 끝에 서면 저 멀리 외로이 선 등대와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보인다. 그 바다 건너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시원하다. 넋을 잃을 것 같은 자연의 위대함, 바닷바람에 잠시 몸을 맡겨본다.

 


- 안면도 조각공원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안면도 조각공원은 ‘2002 안면도 국제꽃박람회’ 개최를 기념하며 조성했다. 입구에 들어설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전병삼 작가의 ‘꿈꾸는 시내버스-꼬마 J의 꿈’이다. 이 작품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수직으로 세운 오래된 버스 꼭대기에 ‘꼬마 J’가 앉아 있다. 오래된 버스는 담쟁이덩굴이 감싸고 있는데, 이 덕에 작품은 계절에 따라 다른 느낌을 준다. 여름에는 푸르른 담쟁이덩굴이 버스를 휘감아 싱그러운 분위기를 내뿜고, 가을, 겨울에는 앙상한 가지만 남아 쓸쓸한 느낌을 준다. 인간이 만들어 낸 버스와, 그 버스를 감싸는 담쟁이덩굴, 그리고 그버스에 올라타 있는 ‘꼬마 J’. 인간과 자연과 문명이 공존하는 이 작품은 우리 사회를 축소해 보여주는 듯하다. 버스 꼭대기에서 어딘가를 바라
보는 ‘꼬마 J’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이처럼 조각공원에 있는 작품은 인간에 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작품을 살피며 천천히 공원을 걷다보면 자연히 사색에 잠긴다.
조각 작품을 둘러본 후에는 지그재그 산책길을 따라 조각공원 정상에 오른다. 5분 정도면 바로 정상에 다다르는데, 그곳에 서면 안면도 서편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줄기를 따라 오밀조밀 모여 있는 집,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같다. 날씨가 좋을 때는 저 멀리 방포 앞바다에 떠 있는 등대도 어렴풋이 보인다. 안면도의 아름다운 자연과 예술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조각공원, 그곳에서 잠시 쉼표를 찍어본다.

 

 


- 태안 소근진성
산성에서 바라본 바닷가 마을

 

태안은 고려 말부터 왜구의 침탈이 심했다. 견디다 못한 고려는 공민왕 22년(1373) 결국 태안군을 폐군한다. 이후 세종 21년(1439)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야 태안군수가 부임하고 새 객사를 짓는다. 그리고 중종 9년(1514)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바닷가에 성을 쌓는다. 이때 쌓은 성이 바로 소근진성(충청남도 기념물 제93호)이다.
작고 조용한 바닷가 마을 소근리. 마을을 질러 조금만 걸으면 산길이 이어진다. 마을 뒷산에 오르는 길이다. 산은 그리 높지 않다. 천천히 걸어도 10분이면 정상이 보인다. 소근진성은 이 뒷산 정상 능선을 따라 길게 이어진 평산성(平山城)이다. 서벽은 성 내부가 서해에 면하고 있어 비교적 평탄하다. 동·남·북벽은 성외벽이 가파른 비탈이어서 자연지형을 이용해 해발 40~50m 능선 위에 축조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처음 소근진성을 축조할 당시 성 둘레는 2165척(약 670m)이고 높이는 11척(3.3m)이었다고 한다. 서해 방비에 전략적 요충지였던 소근진성은 이후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 폐허가 됐다. 현재는 성벽 일부와 동문지 부근 110m가 남아 있다.
성벽에 올라 서쪽을 바라보면, 걸어왔던 소근리 마을과 바다가 보인다. 간조에는 드넓게 펼쳐진 갯벌이 한눈에 들어온다. 갯벌 위에 노니는 갈매기 떼도 보인다.
왔던 길을 되짚어 다시 소근리 마을로 내려온다.
간조에는 갯벌 가운데로 한 줄기 바닷물이 흐른다. 마을 주민들은 이 물줄기를 ‘바닷골’이라고 부른다. 물이 완전히 빠져도 이 바닷골은 마르지 않는다. 주민들은 바닷골에 배를 띄워 망둥어를 낚는다.
“예전에는 여기가 황금갯벌이었어. 해산물이 얼마나 풍부했다고. 그러다가 저기를 제방으로 막으면서 수확량이 확 줄었지. 그때부터는 그냥 근근이 먹고 사는 거야.”
갯벌을 바라보던 어르신이 다시 망둥어 잡이 배 위에 올라탄다. 작고 평온하게만 보였던 소근리 마을. 간간히 한숨이 섞인다.

 

 

 

-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
자연과 시간이 빚어낸 모래언덕

 

 

햇볕이 강렬한 어느 여름날. 바다를 타고 온 바람이 제법 서늘하다. 더위가 느껴지지 않는다. 바람이 손짓하는 곳으로 걸음을 옮긴다. 신두리 해안이다. 바닷물이 멀찍이 빠져 있다. 바닷물이 빠진 자리엔 갯벌과 모래가 뽀얀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갯벌 따라 곳곳에 조개 캐는 사람이 보인다. 발치에 모아둔 조개 알이 굵다.
또 한 번 바람이 세차게 몰아친다. 바람을 타고 모래가 흩날린다. 순식간에 사방이 해무로 뒤덮인다. 시야가 흐려진다.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렵다. 어렴풋이 저 멀리 바다가 보일 뿐이다. 가만히 눈을 감는다. 언제 그랬냐는 듯 바람이 잦아든다. 모래가 이동한 곳으로 다시 걸음을 옮겨본다.
바람 타고 이동한 모래들이 수평선 따라 낮은 언덕을 형성하고 있다. 이곳이 바로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천연기념물 제431호)다. 먼저 쌓인 모래 위에 새로운 모래가 쌓인다. 또 바람이 분다. 또 쌓인다. 반복된 퇴적 작용. 감히 가늠할 수도 없는 시간을 거쳐 모래는 조금씩 조금씩 쌓였다. 그렇게 형성한 사구의 길이만 무려 3.44㎞, 너비 500m∼1.3㎞다.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규모만큼이나 생태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육지와 바다 사이 퇴적물 양을 조절해 해안을 보호하고, 내륙과 해안의 생태계를 이어주는 완충 역할도 해낸다. 뿐만 아니라 폭풍, 해일로부터 해안선과 농경지를 보호하고 지하수도 공급한다.
움푹움푹 빠지는 발을 디뎌 모래언덕에 오른다. 마치 사막길을 걷는 것 같다. 언덕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햇볕에 반사된 모래가 반짝인다. 자연과 시간이 빚어낸 신두리 해안사구,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 태안, 그곳에서 만난 시간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 - 영원한 아름다움
하얀 꽃처럼 순백하게 빛나는 백화산. 기암괴석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산길을 따라 한참 오르다보면 산 중턱에 사찰이 나온다. 태을암이다. 이곳에서 대웅전 뒤편으로 30m가량만 더 가면 조그만 보호각이 하나 보인다.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국보 제307호)은 이 보호각 안에 있다.
마애삼존불입상은 백제 대표 불상으로 좌우에 여래입상과 중앙에 보살입상을 배치해 조각했다. 보통 중앙에 본존불, 좌우에 협시보살을 배치하는 여느 삼존불과 다른 마애삼존불입상의 독특함이다. 불상 높이는 왼쪽이 2.96m, 오른쪽이 3.06m, 중앙보살이 2.23m이다.
마애삼존불입상은 6세기 후반 조각했다. 무려 천년이 넘는 세월이다. 그 긴 시간을 건너왔음에도 모습이 제법 뚜렷하다. 가운데 보살상은 양손으로 보주(寶珠)를 받들고 삼산보관(三山寶冠)을 쓰고있는 게 특징이다. 보살 양쪽에 있는 불상은 직사각형 얼굴에 귀가 굉장히 길어 넓은 어깨에 닿는다. 강건해 보이는 얼굴과 당당한 신체, 묵중한 법의가 특징이다.
나무에 새긴 조각은 언젠간 썩는다. 바위에 새긴 조각은 다르다. 이 또한 언젠간 무뎌지겠지만, 나무에 비할 바는 아니다. 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마애삼존불입상. 그 앞에 시간의 흐름은 무의미해 보였다.

 

흥주사 - 차곡차곡 쌓아올린 시간의 흔적
한가로운 시골길을 지난다. 흐드러지게 펼쳐진 형형색색 구절초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고려 말엽에 창건했다고 전하는 대한불교조계종 흥주사 풍경이다.
왼쪽을 바라보면 높이 22m, 둘레 8.5m에 달하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우뚝 서 있다. 태안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로, 수령(樹齡)이 무려 900년에 이르는 흥주사 은행나무(충청남도 기념물 제156호)다. 나무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오른편으로 바로 누각(樓閣)이 보인다. 중종 22년(1527) 12월 개건한 흥주사 만세루(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3호)다.
만세루는 흥주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임진왜란 때는 승병들이 무기저장고로 사용했다고 전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뭇결 사이사이에 숙연하고도 깊은 숨결이 풍긴다.
만세루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바로 대웅전이다. 입구에서 보았던 은행나무의 웅장함과는 달리, 흥주사는 아담하고 조용하다. 대웅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8호)도 마찬가지다. 여느 절에서 보았던 석탑과 비교하자면 소박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석탑이 내뿜는 에너지는 축적한 시간을 더해 묵직하게 다가온다.
고요하면서 깊이가 느껴지는 흥주사. 구절초가 만발하는 초가을이나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든 늦가을에 찾으면 좋을 듯하다.

태안 향교 - 유교문화를 잇다

 

 

태안 향교(충청남도 기념물 제139호)는 태종 7년(1407) 사양동(현재의 샘골지역)에 창건했다. 이후 숙종 46년(1720) 현 자리로 옮긴이래 300년 역사를 자랑한다.
외삼문으로 들어서기 전, 먼저 보이는 것은 담장 너머로 고개 내미는 은행나무다. 향교를 이곳으로 이전한 후 심었다고 한다. 현재는 보호수로 지정한 상태며 수령은 약 240년이다.
외삼문을 통과해 향교 안으로 들어서면 명륜당과 그 안쪽에 동재(東齋)가 보인다. 서예교실을 비롯해 논어, 맹자, 중용, 대학 등 사서를 가르치고, 방학 중에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충효교실을 운영한다고 한다.

 

 

동재를 지나 내삼문을 통과하면 바로 대성전이 보인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형태로, 내부는 기후를 고려해 우물마루를 깔았다. 대성전에서는 현재 39위 선성현 위패를 모신다.
다시 향교 밖으로 나오면 서편에 예절관이 있다. 이곳에서는 전통혼례를 주관하고 있으며, 매년 결혼 60주년을 맞는 노부부를 초대해 회혼례(回婚禮)를 열어준다고 한다. 700년 시간을 묵묵히 견뎌온 태안 향교. 긴긴 시간의 터널을 지나 태안 향교는 여전히 같은 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유교문화를 잇고 있었다.

 

태안 성당 -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건축양식

 


태안 성당은 1964년 본당으로 승격하며 신설했다. 이후 자리를 지키던 태안 성당은 본당 설립 40주년을 맞아 지난 2004년, 성당 건물을 신축했다. 신축 당시, 태안 성당은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절충한 건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전주 전동성당(사적 제288호) 형태를 그대로 따랐다.
정문을 지나 성당에 들어서면 먼저 예수상이 눈에 들어온다. 비교적 높은 곳에 자리한 예수상은 신비함을 자아낸다. 예수상을 지나면 비로소 태안 성당 본당이 보인다.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건축양식에서 절제된 기품이 느껴진다.
성당 문을 밀고 들어선다. 양 벽을 따라 일렬로 새긴 조각과 창문에 수놓은 스테인드글라스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는 기둥과 그 사이사이에 가지런히 놓인 의자도 인상적이다. 각지고 정돈된 질서는 화려한 색채를 지그시 누른다. 그래서 그런지 태안 성당은 전체적으로 화려하지만 결코 과해보이지 않는다. 깊은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건축양식이다. 꼭 천주교인이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들러볼만 하다.

 


- 자연과 문화, 그리고 인간이 살아 숨쉬는 ‘태안해변길’

 

태안해안국립공원의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따라 걸으며 이국적인 풍경과 울창한 소나무 숲, 해변을 즐길 수 있는 태안해변길. 총 7개 구간 97km에 달하는 태안해변길은 바라길-소원길-파도길-솔모랫길-노을길-샛별길-바람길 순으로 이어진다.

 

 

‘바라길’은 학암포에서 시작해 신두리에서 끝난다. 바라길은 싱그러운 바다 냄새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코스다. 특히 탁 트인 학암포해변 경관을 보면 가슴이 뻥 뚫린다. 바라길은 총 거리 12km로 걸어서 약 4시간 걸린다. 주요지점으로 구례포해변, 신두리해안사구, 두웅습지 등이 있다.
‘소원길’은 신두리에서 만리포로 이어진다. 원유 유출 사고로 아픔을 겪은 소원길 구간은 전국 130만 자원봉사자와 지역주민이 힘을 모아 본모습을 찾은 곳이다. 총 거리 22km, 걸어서 약 8시간 걸리는 소원길에서는 소근진성, 방근제 황톳길, 만리포해변 등을 만날 수 있다.
‘파도길’은 만리포에서 파도리까지다. 태안해변길 구간 중 가장 짧지만 길 따라 시원한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게 파도길 매력이다. 총 9km, 걸어서 약 4시간 걸리는 파도길에서는 모항항, 어은돌 해변, 피도리 해변 등을 만난다.
‘솔모랫길’은 몽산포에서 출발해 드르니항에서 마무리한다. 솔모랫길은 해안생태계 구조를 잘 살펴볼 수 있도록 조성했다. 솔모랫길은 총 13km 구간으로 약 3시간 30분 걸린다. 주요지점은 메밀밭, 별주부마을 자라바위, 염전 등이다.
‘노을길’은 백사장항에서 꽃지로 이어진다. 노을길은 싱싱한 각종 수산물을 맛볼 수 있는 백사장항에서 시작한다. 노을길은 총 12km 거리로 약 3시간 40분 걸린다. 이 구간에서는 모감주나무군락지, 꽃지 할미 할아비 바위 등을 만날 수 있다.
‘샛별길’은 꽃지에서 출발해 황포항에서 끝난다. 샛별길은 몽돌로 이루어진 샛별해변이 매력이다. 총 13km 걸어서 약 4시간 걸리는 샛별길에서는 국사봉, 샛별해변, 황포항 등을 볼 수 있다.
‘바람길’은 황포항에서 영목항으로 이어진다. 바람길에서 만나는 바람아래 해변은 바다, 해안사구, 곰솔림으로 이루어진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총 구간 16km로 약 5시간 걸리는 바람길에서는 운여해변, 바람아래해변 등을 만난다.
태안해변길 중간에 만나는 ‘천사길’은 장애인 탐방구간이다. 장애인, 노약자, 어린이, 임산부 등이 편하고 즐겁게 이용할 수 있도록 1004m 거리를 목재데크, 콘크리트포장으로 조성했다.

*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여행길]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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