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문화재방송.한국 www.tntv.kr

문화유산 답사기

[문화유산 답사기]후삼국 가운데 가장 광활한 영토를 통치했던 후고구려, DMZ에 갖힌 궁예의 궁궐터를 언제나 다시 볼 수 있으랴

문화재방송 2022. 1. 14. 13:10

<아래의 내용은 최근 기사가 아니며, 스크랩된 글입니다>

궁예 궁궐 모형도

역사 속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 땅 위에는 많은 나라와 세력들이 생겨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면서 역사를 이어간다. 강원도는 1,100여 년 전 궁예가 중국 대륙과 한반도를 아우르는 거대한 대동방국 건설의 야망을 품고 처음 도읍을 세웠던 곳이다. 이곳에서 왕건을 만났고 고려가 탄생했다.
그러나 고려의 마지막 왕이 유배되고 피살당한 곳 역시 강원도였다. 역사의 갈림길에서 영웅의 탄생을 지켜봤고, 사라져가는 왕조를 마지막으로 품은 땅. 강원도에서 고려의 시작과 끝을 되짚어본다.

 

 

철원 평화전망대에 오르면 태봉국 궁예도성터라는 모형도가 눈에 들어온다. 한국전쟁 이야기만 가득할 줄 알았던 이곳에서 만난 뜻밖의 이야기. 철원은 궁예가 후삼국 중 하나인 후 고구려를 세우는 과정에서 국호를 태봉이라 하고 도읍을 정한 곳이다.
도성터는 휴전선이 놓인 비무장지대 안에 있어 출입할 수 없지만 평화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멀리서나마 그 모습을 짐작해볼 수 있다. 도성의 자리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북을 뒤로 하고 비옥한 철원 평야를 바라보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경원선 철도 건설로 도성의 성벽이 파괴되고, 분단으로 비무장지대에 속하게 되면서 제대로 된 발굴이나 조사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1942년의 조사 기록에 따르면 도성은 내성과 외성을 갖춘 이중성의 구조로 내성은 둘레 7.7킬로미터, 외성은 둘레 12.7킬로미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이루고자 했던 새로운 나라의 꿈은 현실이 되는 듯 했으나, 궁예는 정권을 쥐자 평정심을 잃고 횡포를 저질러 민심을 잃게 되었다. 결국 왕좌는 왕건에게 넘겨주게 되고 궁예는 피살당하고 말았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맺어지면서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질러 철책선이 쳐지고 약 900평방킬로미터의 땅은 접근할 수 없는, 사라진 땅이 되었다. DMZ에 민간인통제구역까지 더해진 이곳은 일반인들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었다. 사람들이 사라진 이 땅의 새로운 주인은‘자연’이 되었고, 수십 년 동안 생태계가 복원돼 원시 자연에 가까운 모습으로 되살아났다.

 

- 철새들의 안식처

 

여름철의 토교저수지는 그저 거대한 물웅덩이에 불과해 보이지만, 겨울이 되면 이곳의 진짜 주인이 나타난다. 특히 동이틀 무렵이면 잠을 자던 두루미가 일제히 날아오르며 장관을 연출한다. 독수리와 청둥오리, 기러기 등의 새들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철원에 이처럼 철새가 많이 찾는 이유는 일 년 내내 일정 온도의 물이 뿜어져나오는 샘통을 중심으로 얼지 않고 마르지도 않는 자연 연못이 많은 데다가 사람들로부터 안전하기 때문이다. 자연의 천적인 ‘인간’이 통제되어 원래 주인들이 마음놓고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철원의 동물들을 보다 자세하게 알기 위해 월정리역에 있는 철원 두루미관으로 향한다. 입구에 들어서면 박제된 두루미와 고라니, 독수리 등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생각보다 훨씬 거대한 두루미의 크기에 놀라고, 희고 고운 자태에 감동하게 된다. 이처럼 멸종 위기에 처해 쉽게 볼 수 없는 동물들을 실제 크기로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다. 보호를 소홀히 하다 보면 이런 동물들을 전시관이나 사진첩 속에서만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설명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 화산 활동이 만들어낸 비경

 

 

철원은 남한에서 제주도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화산 활동에 의해 형성된 현무암 지형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제주와 달리 이곳의 현무암은 철분을 많이 함유하여 색이 붉고 무게도 훨씬 무거운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한탄강변에서는 수직으로 깎여 단면이 드러난 주상절리의 독특한 풍경을 볼 수 있는데, 송대소 주변에는 이러한 주상절리를 더욱 가깝게 볼 수 있도록 산책로와 자전거 코스를 조성해놓았다. 승일교에서 출발해, 고석정을 거쳐 송대소, 직탕폭포로 이어지는 한여울길은 계절마다 다른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 세월이 멈춘 듯한 오지 마을

 

 

비수구미 마을을 찾아가는 길은 꽤나 험난하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넘어 비포장도로를 한참이나 타고 들어가야 작은 마을이 나온다. 단 네 가구만이 사는 오지 중의 오지 마을인 이곳이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한 방송사 프로그램에 나오면서부터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때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찾아 어려운 발걸음을 하기 시작했고 작은 민박집도 북적이게 됐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 험난한 길을 돌고 돌아 이곳에 오는 이유는 와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자연의 고즈넉함 때문이다. 마치 세상과 단절되어 시간이 멈춘 듯한 마을과 자연이 만들어낸 천혜의 아름다움은 그 모든 수고로움을 잊게 하기에 충분하다.

 


- 열목어가 사는 천연의 계곡과 숲

 

DMZ에서는 차갑고 가장 맑은 물에서만 산다는 열목어도 볼 수 있다. 열목어 최대 서식지로 손꼽히는 두타연으로 가는길, 출입통제소에서 나눠주는 위치추적기를 목에 거니 이곳이 민간인통제구역이자 잠시 멈춘 전쟁의 한가운데라는 사실이 새삼 와 닿는다. 우거진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노라니 “지뢰 미확인 지역이기 때문에 정해진 길로만 다니고 물에도 절대 들어가지 말라”는 설명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그렇게 사람들의 발길이 통제된 덕분에 열목어는 강물을 자유로이 헤엄칠 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이 자연에 얼마나 해를 끼쳐왔는지 새삼 미안해진다.
안내소를 지나 우거진 숲 사이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려 도착한 두타연은 자연 그대로인 계곡 사이로 투명하게 흐르는 물이 신비로울 지경이다. 두타연은 굽이치던 물길에 의해 한 부분이 절단되면서 작은 폭포가 되고 그 아래 물웅덩이가 만들어진 지형으로, 그 일대에는 생태 탐방 코스가 조성되어 있다. 양구 전투위령비와 조각공원을 지나 징검다리도 건너고, 출렁다리도 건너보면 천혜의 자연 한가운데 있음을 만끽할 수 있다.

 

 


- 자연이 만든 신기한 땅

 

 

‘펀치볼마을’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마을을 찾아나선다. 역시 굽이굽이 산길을 올라야 하지만 산 중턱에 시원하게 뚫린 터널이 마을로 가는 길을 훨씬 단축시켜준다. 마을의 모습을 제대로 보려면 터널의 맞은편 을지전망대에 오르는 것이 좋다.
을지전망대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면 ‘해안’이라는 원래 이름 대신에 왜 펀치볼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알 수 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 종군기자가 산으로 둘러싸여 분지를 이룬 모습이 마치 오목한 화채그릇 같다고 해서 ‘펀치볼(Punch bowl)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언론에 소개한 데서 유래되었는데, 참으로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이곳 펀치볼 마을은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출입증을 받은 사람들만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오지에 속했지만, 지금은 누구나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하고, 독특한 마을의 모습을 보러 찾아오는 여행객들도 꽤 많다. 마을을 한 바퀴 도는 둘레길도 마련돼 있어 여유롭게 길을 따라 걸으며 마을의 모습을 좀 더 가까이에서 느낄 수도 있다.

 

 

- 남북의 거물들이 선택한 호수

 

 

화진포에는 유명한 세 개의 별장이 있다. 북의 김일성과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과 부통령 이기붕의 별장이다.
그만큼 아름답고 자연을 벗해 휴식을 취하기에 좋다는 뜻일것이다. 화진포는 동해안을 따라 만들어진 자연 호수들 중에서 가장 큰데, 갈대밭이 넓게 자리하고 있어 철새들이 찾기에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특히 백조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고니가 호수에서 노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잔잔한 호수의 물결과 함께 마음도 평온해진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할수록 자연이 제 모습을 유지하고, 동물들도 활기차게 살아간다는 당연한 사실을 DMZ에서 새삼 깨닫는다. 아름다운 자연과 신비를 간직한 생명들을 보면서 감탄하는 동시에, 인간이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에게 얼마나 몹쓸 짓을 해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전쟁과 분단이라는 비극이 만든 것이기는 하지만, 덕분에 지킬 수 있었던 자연을 앞으로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숙제가 남는 여행길이다.

 


- 함께 가보면 좋을 곳들

 

 

 

● 길에서 만난 이야기

 

 

<철원 풍천원 벌판을 바라보며〉

-과거·현대·미래 함축된 곳… 풍천원 벌판을 도읍지 삼아-

어찌 홍곡(鴻鵠)의 뜻을 연작(燕雀)이 알리오.

 

궁예가 철원 풍천원 벌판을 도읍지로 삼은 뜻을 보통의 우리가 짐작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임진강·한탄강 유역의 독특한 환경을 살펴보자. 이곳의 지리적인 특징은 서울∼원산간의 단층대인 추가령곡과 대륙충돌대라는 일정한 방향성을 가진 두 습곡단층대에 의해 결정된다. 너무도 예민한 접촉대다. 그러니 서로 다른 세단계의 화산암 분출이 시간의 폭을 두고 이 지층구조의 중심선 취약부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이에 더하여 임진강·한탄강을 중심으로 하는 인간의 역사 역시 뜨겁게 흘러왔다.

전곡을 중심으로 하는 구석기 중심의 선사벨트, 고구려·백제·신라와 북방계의 남하에 의해 조용할 날이 없었던 역사적 쟁패의 사례. 그리고 지금도 한국전쟁과 냉전, 분단의 기구한 사연이 두 강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역사가 농축돼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엄청난 에너지 충돌의 한 복판에 궁예의 태봉국도성이 위치한다. 도식적인 국도풍수의 이론은 이곳에서 통하지 않는다.

미완의 혁명가였던 궁예의 배포와 추종했던 싱크탱크 그룹의 청사진을 만족할 만한 공간이 철원벌의 풍천원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용암벌판에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풍천원을 보면 국토의 중심이며 삼재 소통의 매개 공간인 오리산을 진산으로 하고, 청정했던 지장신앙의 메카인 보개산을 앞에 두었다.

궁예는 이곳에서 미륵 세상을 펼치려 했다. 철원 도피안사 비로자나불상을 도성의 품에 안아 반야용선을 띄우며 해가 지지 않는 불국토를 건설하려 했다. 이런 궁예의 웅대한 설계를 상상한다면 궁예가 마냥 폭군의 이미지요, 실패한 정치가요, 허황된 종교인라고 매도한다는 것은 너무 단견일 수 있다.

습곡단층대가 일으키는 땅의 봉합점이자 열에너지가 분출하는 중심부에 위치한 태봉국도성. 918년 6월인 바로 이맘때 숨어서 보리 이삭을 훔쳐 먹던 궁예의 최후와, 철책 안에 가둬진 태봉국도성의 침묵이 던져주는 화두가 더 없이 무겁기만 하다.

〈이우형|한국국방문화재硏 연구원〉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6291445381&code=900308#csidx365be414ed2cc939bca5f1b53f37e59

DMZ에 갇힌 궁예의 꿈…"남북 함께 발굴하자"

 


조을선 기자

입력 : 2015.10.18 21:12
<앵커>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 한가운데 1천 100년 전 궁예가 세운 '태봉국' 도성터가 있습니다. 개성 만월대 공동 발굴에 이어 태봉국 도성터의 남북 공동 발굴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조을선 기자입니다.

<기자>

강원도 철원 평화 전망대에서 바라본 비무장지대입니다.

북쪽 비무장지대 풀숲 사이에 1천 100여 년 전 후고구려, 태봉국의 도성터가 감춰져 있습니다.

고구려의 후손을 자처한 궁예는 서기 905년 나라 이름을 태봉으로 짓고 철원으로 도읍을 옮겨 도성을 지었습니다.

태봉국 도성이 비무장지대에 고립돼 있다 보니 1천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태봉국 도성은 외성과 내성으로 이뤄진 국내 유일한 이중구조 성으로, 외성 둘레만도 12.5km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재/국방문화재연구원 원장, 현장조사 실시 : 현무암들이 줄줄이 남아 있습니다. 성터죠. (성터를 따라) 식물들도 꽃을 피운 게 눈으로 명확하게 들어와요.]

최근 고려 궁성터인 개성 만월대 남북 공동 발굴에 이어 정치권을 중심으로 태봉국 도성터의 공동 발굴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원유철/새누리당 의원, 외교통일위 : 이러한 남북한의 문화적 교류를 통해서 DMZ가 분단과 대립의 상징이 아닌 통일과 화합의 상징으로 발전돼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통일부도 남북관계 상황을 고려해 적절한 시기에 북측과 협의하겠다는 입장이어서 공동 발굴 움직임이 조만간 가시화될 전망입니다.

(영상취재 : 김승태, 영상편집 : 김지웅, 화면제공 : G1)
출처 : SBS 뉴스 / 원본 링크 :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222182&plink=ORI&cooper=DAUM&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검은 선으로 보이는 철책선 위의 땅이 궁예의 왕궁 터

 

고조선, 중국이라는 거대세력에 맞선 진취적 기상

우리 민족사의 처음은 BC 2333년 건국하여 BC 108년 에 멸망한 ‘조선’이다. 그런데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왕조임에도 이 시기에 대한 기록이 없다. 『환단고기라는 책이 있으나 위서로 단정 지어져, 이를 근거로 섣불리 말할 수 없다. 다만 중국 역사서인『한서漢書』에 등장하는 우거대왕의 모습에서 고조선의 기상이 어떠했는지 추측해 볼 수 있다.

700년 간 분열된 중국을 진시황이 통일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혼란기에 접어들었다. 이 혼란기를 평정하고 중국의 통일을 이룬 나라가 바로 유방이 세운 한나라였다. 한무제는 한나라 최고의 정복군주였다. 그는 타클라마칸 너머까지 영토를 넓혀 실크로드를 개척하였을 뿐 아니라 당시 가장 강한 종족이었던 흉노족마저 공략했다. 그런데 이런 그의 팽창에 걸림돌이 된 것이 바로 고조선이었다. 한무제는 전통적 강국인 고조선 때문에 쉬이 패권을 완성할 수 없었다. 기회를 엿보던 한무제는 고조선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가 무례한 행동을 하여 처 형 된 섭하의 죽음을 트집 잡아 고조선을 공격했다. 이 때 고조선의 임금이 우거대왕이었다. 한나라 장수는 위청이었는데 그는 흉노족을 점령했던 백전노장이었다. 그러나 우거대왕은 전혀 위축됨이 없이 오히려 한나라 군을 기습 공격하여 바다와 육지에서 대승을 거뒀다. 한무제는 이 패배 이후 한동안 고조선에 전 혀 대항 못하였다. 그러나 권토중래하던 한무제는 다시 군사를 모아 고조선을 재침공한다. 그는 이번에는 육전을 포기하고 바다를 건너 곧바로 평양성으로 들어와 성을 포위했다. 1년 동안 이어진 공방전에서 고조선 군은 한나라 군을 상대로 계속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지속된 전쟁 에 염증을 느낀 일부 권신들에 의해 우거대왕은 암살당하고 만다. 이로 인해 평양성은 함락당하고 고조선은 망하게 된다.

실패했지만 우거대왕의 삶을 살펴볼 때 고조선 사람들의 기상이 어떠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그들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세력 에 결코 굴복하거나 꼬리 내리지 않았고 도전적으로 맞섰던 것이다.

고구려, 민족의 기상을 떨친 영웅들

고조선을 멸망시켰던 한나라도 오래 가지 못해 위·촉·오 삼국으로 분열된 이후 약 400년 간 위진남북조 시대를 거치며 큰 혼란기를 겪게 된다. 이 분열된 중국을 다시 통일한 나라가 수나라이다. 통일된 중국은 당시 한반도와 만주지역을 지배하던 고구려에 큰 위협이었다. 수나라를 세운 문제와 그의 아들 양제는 고구려를 제압하기 위해 끊임없이 군대를 보냈다. 특히 양제는 당시로는 상상할 수 없는 100만명의 군사를 동원하여 고구려를 침공했는데 결국 을지문덕 장군이 지휘한 고구려의 육군과 고건무 장군이 이끄는 수군에게 참패를 당하고 이로 인해 결국은 멸망의 길로 접어든다. 을지문덕이 수나라 별동군을 2,300여명만 남기고 몰살시킨 전투는 세계전쟁사에 길 이 남은 큰 승리이다.

수나라의 고구려 원정 실패 이후 혼란한 중국을 다시 통일한 영웅이 등장하는데 그가 바로 당나라를 세운 이 연 의 아들 이세민이다. 그는 당시 가장 강한 나라였던 돌궐을 점령했을 뿐 아니라 히말라야산맥 동쪽, 고비사막 남쪽의 천하를 당나라의 영토에 편입시켜 중국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개척한다. 이런 당나라가 고구려에 사대의 압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였을 때 고수전쟁의 영웅이던 고구려의 영류왕 고건무마저 두려워했다. 이 때 당나라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고 고구려인의 기상을 보인 사람이 연개소문이다. 그는 정변을 일으켜 당나라의 압력에 굴복하는 고구려 내의 세력들을 몰아내고 권력을 장악했다. 그런 후 당나라 이세민에게 대항하기 위해 고구려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했다. 훗날 금나라와 청나라를 세우는 말갈기병대, 토착 세력인 연나부의 양만춘 등은 물론 동돌궐의 진주가한과도 연합하여 사방에서 당나라를 압박하는 작전을 펼쳤다.

이세민 이 고구려를 침공할 때 선봉에 세운 부대가 당시 지구상에서 가장 강하다는 아사나사마가 이끄는 돌궐족 기병대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중국 역사책에는 그들이 출전했다는 기록만 나올 뿐 그 이후의 행적은 보이지 않는다. 돌궐기병대는 연개소문이 이끄는 말갈기병대에게 전멸했는데 이를 숨긴 것이다. 또한 고구려 수군기지였던 비사성을 점령한 당나라 수군 오만명 또한 평양성을 향해 항해를 했는데 역시 그 이후의 행적 역시 알 수 없다. 이세민 또한 백암산성과 요동성을 점령한 후 안시성을 공략하다가 양만춘이 지휘하는 고구려 군의 반격을 받아 결국은 패배하여 돌아간다. 중국 최고의 영웅인 이세민은 죽을 때 다시는 고구려를 침공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고구려와 수나라, 고구려와 당나라와의 이 두 전쟁은 오늘날로 말하면 1, 2차 세계대전 급의 전쟁이었다. 중국과 고구려가 전력을 기울여 싸운 큰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나·당연합군에 의해 고구려가 멸망하게 되자, 이런 영웅들은 중국의 의도에 의해 폄하되고 왜곡되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런 영웅들을 바로 아는 것, 그것이 우리 민족의 진취적인 기상의 뿌리를 아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발해, 대륙에 떨친 해동성국의 기개

발해사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것은 ‘해동성국’이라는 말 정도뿐 그 알맹이는 대부분 모른다. 이유는 간단하다. 당 시 발해에 대적할 나라가 없었기에 큰 전쟁 없이 평화로운 시대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를 가능하게 한 인물이 광개토대왕과 더불어 한민족 최고의 정복군주인 발해 2대 임금인 무왕 대무예이다.

『구당서』에는 발해를 세운 대조영을 고구려 별종으로, 『신당서』에는 속말말갈 인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로 인해 중국인들은 발해를 여진역사로 분류한다. 하지만 발해가 세워진 지역은 백산부, 속말부말갈족들이 사는 지역임에는 틀림없으나 발해를 세운 지배세력은 분명 고구려인들이다. 대무예가 일본과 국교를 맺을 때 보낸『일본서기』에 전해지는 문서에 따르면, 당시의 사신들은 대부분 고씨 성을 가진 고구려인이며 자신들은 고구려의 후손으로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아버지 대조영의 뒤를 이어 대무예가 발해의 2대 왕으로 즉위하자 당나라는 발해를 견제하기 위해 흑수부말갈을 이용했다. 이들은 단 한번도 이민족의 지배를 받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강한 부족인데, 당나라는 추장 아속리계를 뒤에 서 조종하여 발해를 끊임없이 공격하여 대무예의 장안성 입조를 요구하였다. 하지만 대무예는 이에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흑산부말갈을 공격하여 끝내는 그들을 발해의 백성으로 삼았다. 그는 이에 머무르지 않고 고구려의 옛 영토인 요동지역을 회복한 후 당나라 정벌군을 꾸려 장문휴로 하여금 당나라 해군기지인 산동성의 봉래성을 공격, 산동성 일대를 점령한다. 당나라에서는 발해에 맞서기 위 해 총력을 기울였지만 이들을 당해내지 못하고 산동성은 발해의 영지로 남 게 된다. 이 전투의 후유증으로 당나라 각지에서는 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끝내 당나라는 몰락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런데 중국 역사책에는 장문휴의 공격을 해적떼의 약탈로 묘사하여 왜곡하고 있다.

한편, 산동성 대부분을 뺏긴 당나라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신라로 하여금 발해를 공격하게 한다. 이 에 신라는 김사란을 지휘관으로 삼아 삼만명을 동원하여 발해를 공격하였지만 이들은 대무예에게 전멸당하고 만다. 이 두 전투 이후 발해는 동북아시아의 최강국이 되어 300년 간 평화를 누리게 되고 당나라로부터 ‘해동성국’이라는 칭호를 받게 된 것이다. 정복군주로 잘 알려진 광개토대왕 때보다 실은 더 넓은 영토를 개척한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기상의 대명사 대무예, 우리 민족의 진취적 기상의 뿌리로 당당히 존재하는 그가 해적의 일원으로 폄훼되어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바르게 알고 재조명해야 할 민족기상

우리 민족의 정서는 도전적이고 진취적이라고 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전범이 될 만한 사건이나 인물을 찾기 어려운 것은, 우리의 역사관이 한반도와 근래의 역사에만 머물러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내세워 고구려와 발해를 자신의 역사로 편입시키고 대무예, 광개토대왕, 연개소문, 을지문덕 등 우리 민족의 진취적 기상의 뿌리가 되는 조상들이 중국인이 되어 사라져 가는 것에 무관심한 것도 원인일 것이다. 이들이 살았던 지역과 이들의 활약상을 말하고 가르쳐야만 우리 민족의 진취적 기상이 날개를 펼 수 있을 것이다.

글. 박혁문 (역사저술가)

 

재정난 간송미술관, 국외 반출않는 조건으로 국보 2점 경매

2년전 ‘보물’ 불상 2점 경매땐 국립중앙박물관이 사들여

입력 2022.01.15 03:00
 
 

간송미술관 소장 국보 두 점이 경매에 출품됐다. 국가지정문화재 중 최상급 문화재인 국보가 경매에 나온 것은 처음이다. 케이옥션은 오는 27일 열리는 메이저 경매에 간송미술관 소장 국보 ‘계미명 금동 삼존불 입상’(옛 국보 번호 72호)과 ‘금동 삼존불감’(73호)을 출품한다고 14일 밝혔다.

삼국시대 불상·고려 불감… 국보가 처음으로 경매 나왔다 - 국보 문화재가 처음으로 경매에 나왔다. 간송미술관 소장 국보 '계미명 금동 삼존불 입상'(큰 사진·높이 17.7㎝)과 '금동 삼존불감'(작은 사진 위는 불상을 담는 건축물 부분, 아래는 불상 부분·높이 18㎝)이 오는 27일 열리는 케이옥션 경매에 출품된다. 추정가는 각각 최대 40억원대. 미술관 측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운영 부담이 가중됐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케이옥션

케이옥션 관계자는 “시작가는 72호가 32억~45억원, 73호가 28억~40억원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국보·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가 개인 소장품인 경우 국외에 반출하지 않고 소유자 변경 신고를 하는 조건에서 매매가 가능하다. 72호는 서기 563년 제작된 높이 17.7㎝의 삼국시대 불상이며, 73호는 11~12세기에 제작된 높이 18㎝의 고려시대 불감(불상을 모셔 두는 방이나 집의 모형)이다.

간송미술관은 2020년 케이옥션을 통해 ‘금동여래입상’ ‘금동보살입상’ 등 두 점의 보물을 내놓은 바 있다. 시작가 15억원씩이었으나 유찰됐고,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이 약 30억원에 두 불상을 사들였다. 당시 ‘간송이 소장한 국보 불상 두 점도 경매에 출품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유물의 가치와 가격을 평가하며 이번에도 매입할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고미술의 보고(寶庫)’로 알려진 간송미술관이 잇달아 중요 문화재를 경매에 내놓는 것은 사립 미술관·박물관의 만성적인 재정난 때문이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은 14일 입장문을 발표하고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문화예술계의 활동이 전반적으로 위축되면서 운영 부담도 더욱 가중됐다”며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기 위한 것”이라고 국보 불상의 매각 이유를 밝혔다.

전인건 간송미술관장은 지난해 본지 인터뷰에서 “모기업 없이 운영하다 보니 지출과 수입의 만성적 불균형이 있어 구조조정이 필요했다”며 서화·도자기·전적류 쪽에 역량이 집중된 상황에서 연구 성과나 수량이 적은 불교미술 쪽을 매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간송미술관은 1930~40년대 우리 문화유산 수집과 보존에 나섰던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세운 한국 최초의 사립미술관이다.

 

원문보기

https://www.chosun.com/culture-life/relion-academia/2022/01/15/Z4N2OXRGJBA7BK7IPU6DTMFZMU/?utm_source=daum&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daum-news

파주 안보관광 중단 99일째…주민·상인들, 재개 촉구 집회

2020-01-08 11:35

 

"민통선 지역 특별재난구역 선포하고 피해 보상해야"

(파주=연합뉴스) 노승혁 기자 = 경기 파주시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 내 주민과 문산읍 상인들이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산으로 지난해 10월 초 중단된 파주지역 안보 관광 재개를 촉구하고 나섰다.

ASF에 성난 민통선

(파주=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민간인통제선(민통선) 마을 주민들이 8일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 남단에서 집회를 열고 민통선 지역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관련 통제 해제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해 9월 파주 지역에서 국내 최초로 돼지열병이 발병한 뒤 ASF 확산 방지를 위한 DMZ안보관광 중단과 민통선 출입통제가 계속되고 있다. 2020.1.8 andphotodo@yna.co.kr

파주시 장단면과 통일촌 등 주민과 문산읍 상인회 150여명은 8일 오전 10시부터 통일대교 남단에서 트랙터 12대와 피켓 등을 동원, 지난해 10월 2일부터 중단된 안보 관광 재개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ASF 확산으로 파주지역 안보 관광이 중단된 지 이날로 99일째다.

이들은 "파주시와 정부는 ASF 확산을 막기 위해 지난해 10월 2일부터 민통선 내 주민들의 생활 터전인 도라전망대, 제3땅굴 등 안보 관광지를 통제하고 있다"면서 "시와 정부는 아무런 대책 없이 3개월 넘게 통제만 하고 있어 주민들의 생존권을 수호하기 위해 집회에 나섰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민통선 지역을 특별재난 구역으로 선포하고 피해주민에게 마땅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환경부 장관은 사람이 야생멧돼지 접촉으로 ASF에 감염된 사실이 있는지 철저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안보 관광객은 차량으로 정해진 장소만 견학한다"면서 "관광객이 ASF를 옮긴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돼지열병에 뿔난 민통선 주민들

(파주=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민간인통제선(민통선) 마을 주민들이 8일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 남단에서 집회를 열고 민통선 지역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관련 통제 해제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해 9월 파주 지역에서 국내 최초로 돼지열병이 발병한 뒤 ASF 확산 방지를 위한 DMZ안보관광 중단과 민통선 출입통제가 계속되고 있다. 

이완배 통일촌 이장은 "민통선 내 안보 관광이 재개될 때까지 주민들은 집회를 지속해서 열겠다"고 말했다.

파주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안보 관광 중단에 따른 주요 관광지의 관광객 감소로 상권과 주민 피해가 발생하자 긴급 대책 회의를 열고, 정부에 안보 관광 재개를 요청했다.

그러나 정부는 파주 안보 관광 지역 내 설치된 2차 울타리 내에 남은 야생멧돼지를 모두 잡거나 죽은 야생멧돼지의 ASF 검사를 벌여 추가 감염 가능성이 없는 경우, 위험도가 낮아졌다고 판단 가능할 때 관광이 재개될 수 있다는 검토 결과를 줬다.

하지만 전날 국립환경과학원은 연천군과 파주시의 민통선 안에서 발견한 야생멧돼지 폐사체 2개체에서 ASF 바이러스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nsh@yna.co.kr

원문보기

https://m.yna.co.kr/view/AKR20200108086400

“민족 최대 명절 설, 집에서 우리 민속 예술 한마당 어떠세요” 제62회 한국민속예술제 온라인 개최

국내 최장수 민속축제 ‘한국민속예술제’ 온라인에서 펼쳐져
명절에 집에서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민속 예술 한판
조선판스타 우승 김산옥 사회에 중계식 해설 영상 더해 생생한 현장감 전달

2022-01-11 08:00
 
  •  
    제62회 한국민속예술제 온라인 포스터

 

서울--(뉴스와이어) 2022년 01월 11일 --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사장 김삼진)과 한국민속예술제추진위원회(위원장 김헌선)가 주관하는 국내 최장수 민속축제 ‘제62회 한국민속예술제’가 온라인에서 펼쳐진다.

1958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라는 명칭으로 창설된 ‘한국민속예술제’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민속축제다. 탈춤, 강강술래 등 180여 개 종목의 국가 및 지방무형문화재 지정, 11개 종목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등 전국에 산재하는 700여 종목의 우리 민속 예술을 발굴하고 보존하는 데 기여해 왔다.

제62회 한국민속예술제는 코로나19 여파로 지역 예선을 실시하지 못해 지난해 참여단체가 대부분 재출전한 가운데, 영상을 촬영해 온라인으로 공개한다. 지금까지 한국민속예술제의 주요 볼거리가 마당에서 민속의 신명을 느끼고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현장성이었다면, 온라인 한국민속예술제는 관람객의 민속 예술에 대한 이해를 돕고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기 위해 해설과 현장의 소리를 담은 인터뷰 영상을 더한 것이 특징이다.

해설 영상은 조선판스타 우승자인 소리꾼 김산옥과 방송인 박요한이 사회를 맡고 민속 종목 전문 해설자 김헌선, 김광희, 박정경, 이윤선 등과 출연자들이 참여해 24개 민속 종목의 실연 영상을 중계하는 형식으로 관객에게 보다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한다.

또한 올해 출전한 민속 종목별로 각 민속의 발생 배경, 공연 장면별 상세설명과 전승자 인물 탐색, 관람 팁, 사진은 물론 예술제 60년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상세한 설명이 담긴 안내 책자를 제작·배포해 한국민속예술제를 더욱 깊이 있게 즐길 수 있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김삼진 이사장은 “6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의미 있는 민속예술제를 온라인 개최로 이어갈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한다. 특히 이번에 제작된 해설 영상과 인터뷰 영상을 통해 더 많은 분들이 우리 민속예술을 쉽게 느끼고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축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박종관) 후원으로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황희)와 충청남도(도지사 양승조), 공주시(시장 김정섭)가 공동 주최하고,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사장 김삼진)과 한국민속예술제추진위원회(위원장 김헌선)가 주관한다.

‘제62회 한국민속예술제’ 영상은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유튜브 채널과 한국민속예술제 누리집에서 볼 수 있다. 해설 및 인터뷰 영상은 1월 18일부터 순차적으로 게시된다. 축제 관련 상세 정보는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개요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은 전통예술의 진흥과 문화향수 기회 확대를 통한 국민의 문화 품격 향상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2007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재단 설립 허가를 받아 국악문화재단으로 출발했으며, 2009년 재단 명칭을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으로 바꿨다. 전통예술의 보급 및 저변 확대, 고품격 전통문화 콘텐츠 개발 및 전통예술의 대중화, 신진 인력 양성, 해외 교류 활동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한국민속예술제 누리집: http://www.kfaf.or.kr

웹사이트: http://www.kotpa.org

언론 연락처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대외협력팀
박혜주 차장
02-580-3275

 

[문화재방송 캠페인]

문화재에는 우리 민족의 얼과 혼이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