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은 왜 국보에서 해제되지 않았나
화재로 완전히 소실되면 지정문화재에서 해제되는 경우가 있다. 보물 479호였던
낙산사 동종이 2005년 화재로 완전히 녹아 버려 보물에서 해제된 게 대표적이다. 숭례문은 불에 타기는 했으나 석축 등의 뼈대가 남아 있었다.
그런 건축의 골조까지도 보물로 인정했던 것이기에 문화재위원회의 심의에서 국보 지위를 유지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숭례문 복구의 한 과정으로
현장 발굴이 이뤄지고 있다. 숭례문 화재 1주년이던 2월, 일반에 공개된 복구 현장에는 아스팔트에 묻혔던 옛 도로와 하수도 시설 등이 드러나
있었다.
국보1호 숭례문의 부활,
"민족 긍지 되살리고 새 시대의 문 열리기를 !"
국보1호 숭례문이 드디어 복구를 완료하고 국민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2008년 2월 10일 방화로 소실된 이후 5년 3개월 만이다
문화재청은 4일 오후 2시 숭례문에서 복구사업 완료를 기념하는 숭례문 복구 기념식을 열었다.
숭례문 주변에는 기념식을 보기 위해 수천 명의 인파가 몰렸으며, 세종로에서 자유연희마당, 광화문 광장에서 '판굿, 비나리, 아리랑' 주제공연 등이 펼쳐졌다.
국립국악관현악단, 국립국악원, 국공립 무용단, 힙합 B보이, 거리 마임팀, 남사당 놀이패 등 국·공립과 민간 공연단체 소속 800여 명이 참여했다.
또한, 문화재청은 숭례문 복구를 국민과 함께 경축하기 위해 이날 하루 경복궁·창덕궁·창경궁·덕수궁 등 4대 궁과 종묘를 무료로 개방했다.
숭례문은 기념식 이후 국민에게 공개되며, 월요일을 제외하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되며, 이달에는 관람 시간을 오후 7시까지 1시간 연장해 개방할 예정이다
숭례문 건축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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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 혁
○ 태조 7년(1398) 한양도성의 성곽 축조와 함께 창건
○ 세종 29년(1447) 8월 ~ 세종 30년 5월 개건공사
- 숭례문의 터전을 높이고, 연못 설치 등 중창 수준의 공사 추정
○ 성종 9년(1478) ~ 성종 10년 2차 개건
○ 1860년대 문루보수
○ 1907. 9 ~ 1909. 5 숭례문 좌우성곽 훼철
○ 1952. 한국전쟁에 의한 숭례문 피해 복구
○ 1954. 숭례문 단청 보수
○ 1961 ~ 1963 전면 해체보수
□ 규모 및 양식
○ 문루 및 육축 규모
- 문 루 : 정면5칸, 측면 2칸 (22.5×7.7m), 바닥면적 173.46㎡(52.47평),
상층 137.86㎡(41.70평) 연면적 311.32㎡(94.17평)
- 육 축 : 상단면적(여장포함) 330㎡(99.82평, 27.5×12m),
․ 남측입면 13단, 높이 8.08m, 폭 12m
․ 북측입면 14단, 높이 8.36m(6.67), 폭 12m
․ 홍예 남측 폭 5.06m, 높이 5.85(4.49)m, 북측 폭 5.58m, 높이 6.75(5.07)m
※ ( )는 현 지반에서의 높이
- 여 장 : 전돌 사용, 총안이 없음, 전․후면 높이 1.2m, 측면 1.8m
여장 길이 전후면 26.7m, 측면 11.3m로 총 58m
○ 문루 양식
- 중앙열에 고주 4본, 귀고주 4본의 중층 가구
- 다포양식(조선초기 수법)으로 상측 외3, 내2출목, 하층 외2,내2출목
※ 성벽은 육축에 연결되어 남측에만 성벽 축조, 여장에는 타마다 총안 구성
□ 숭례문 세부 규모
구 분 |
구 분 |
세 부 내 용 |
비 고 |
연 혁 |
ㅇ 창 건 : 태조7년(1398년) ㅇ 개 건 : 세종29년(1447년), 성종10년(1479년) ㅇ 보 수 : 1860년대, 1907년(좌우성곽 훼철), 1952년(피해복구) 1954년(단청보수), 1961~1963년(전면해체보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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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루 |
양 식 |
ㅇ 정면 5칸 X 측면 2칸, 귀고주가 있는 중층가구 ㅇ 다포양식 (조선초기 수법) - 상층 : 외3출 내2출목, 하층 : 외2출 내2출목 ㅇ 우진각 지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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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층(1층) |
ㅇ 면적 : 22.5×7.7m, 173.46㎡(52.33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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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층(2층) |
ㅇ 면적 : 21×6.23m, 137.86㎡(41.74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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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높이 |
ㅇ 13.8m (문루바닥~용마루 최상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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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 축 |
양 식 |
ㅇ 장대석 13~14단, 홍예문 1개소, 상부 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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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면적 (여장포함) |
ㅇ 27.5×12m, 330㎡(99.8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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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 모 |
ㅇ 남측(13단) 높이 8.08m, 폭 12m ㅇ 북측(14단) 높이 8.36m, 폭 12m ※ 현 지반에서 높이 6.67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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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예 |
ㅇ 남측 높이 5.85m, 폭 5.06m ㅇ 북측 높이 6.75m, 폭 5.58m ※ 현 지반에서 높이 4.49m(남) ~ 5.07m(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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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장 |
양 식 |
ㅇ 전돌사용, 총안 없이 구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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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 모 |
ㅇ 전후면 높이 1.2m, 측면 높이 1.8m ㅇ 전후면 길이 26.7m, 측면 11.3m, 총 58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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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높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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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6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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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대 이후의 숭례문
숭례문 바로 안쪽
남대문통
숭례문 바로 안쪽에 성벽을 타고 있었다고 한다.
"남대문통"이라는 명칭은 일제때 지어진 이름이라고-.
남대문역(지금의 서울역)으로 들어오는 일본군
일본인 거류지역으로 가는 일본군
전차 개통 당시
숭례문 우립
숭례문 우좌
"우립"과 "우좌"는 "소가 섰다", "소가 앉았다"라는 뜻의 한자.
숭례문 칠패(시장)
1897
1897원경
1900년대
1910
1950
한국 전쟁 직 후
전쟁으로 숭례문은 전체적으로 내려 앉아서 완전히 해체해서 다시 조립하는 대공사를 했다.
이상의 숭례문 과거 사진 출처 http://cafe.daum.net/pw1009
2008년 2월 불의의 화마(火魔)가 휩쓸었던 국보 제1호 숭례문(崇禮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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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자리를 비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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