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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문화재 제346호]반공법위반으로 상영 금지됐던 전쟁 영화 '피아골'

문화재방송 2013. 11. 8. 22:07

 



 

 

 

반공법 위반<1955년>-상영 금지, '전쟁 영화 피아골'


 

"피아골" 영화 정보 (네이버)

대의 한국 사회는 억압적이었다.

  멀지 않게 거슬러 올라가도 통금령으로 밤을 즐기고 싶었던 청춘들을 억압하였고, 장발 단속은 물론 방송에서 미니스커트를 입었다는 것이 전국을 들썩였던 화제였을 정도로 개방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허니 그와 비교도 할 수 없이 민감했던 전 후의 상황은 어떠했겠는가?
아마 문화를 포함한 사회 전반의 문제, 특히 北에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는 [욕]을 제외하고 다른 말은 입에도 올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강천 감독의 "피아골"은 1955년 作으로, 반공주의 시대에 빨치산을 잔인하게 그렸으나 그 속에서 [사실적]이고 [인간적]인 고뇌를 하는 그들의 모습이 드러나게 그렸다하여 반공법 위반으로 상영이 금지되었던 작품이다.

 

 일부 평론에서는 "도시적 반공 이데올로기의 벽을 허물었다"며 극찬을 한 작품이며 상영 금지 후 제작자와 협회의 설전 끝에 재상영된 작품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시대적 관습에 반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어 당시의 시대의 흐름을 알 수 있게 해줌과 동시에 6.25 사변을 넘어 [전쟁]을 다른 측면에서 한 번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영화 "피아골"의 스틸 컷 (네이버)

  휴전 이후 지리산의 빨치산들은 토벌대의 끊임없는 추격에 맥을 못춘다. 협곡 피아골을 본거지로 숨어있는 아가리 부대는 어느날 지서 일각을 습격하였다가 실패하고 도망오는 도중 부상으로 인하여 소총을 버리고 온 대원을 총살한다. 이런 무자비한 처사에 대원들은 공포 속에서 서로 외면한다. 모순된 생리 속에서 문화정치책인 김철수는 인간본연의 향수로 고민이 심각해진다.

  한편 그의 기품있는 체취에 연정을 품은 여간부 애란(노경희)에게 대장 아가리(이예춘)는 추근거린다. 철수(김진규)가 냉정할 수록 애란의 연정을 불타게 되나 오히려 철수의 증오 상징이 된다. 이때 피아골도 포위되었다는 정보를 전하러 온 여자대원 소주(김영희)는 대원 만수(허장강)와 유철에게 윤간을 당하고 쓰러져 버린다. 소주의 시체를 발견한 달석은 혐의를 받고 공포에 떤다. 아가리의 열화같은 발악으로 공포에 사로 잡힌 만수는 자기 비행의 폭로가 두려워 동료 유철과 달석을 살해하고 아가리에게 반동을 처단했다고 보고한다. 난데없이 쏟아지는 포탄에 만수는 쓰러지고 철수는 간신히 암굴까지 피신했으나 실신해 버린다.


  이튿날 아침 암굴속에 애란이가 있음을 보고 놀란 철수는 골짜기로 내려가서 굶주림과 갈증으로 죽어가는 용식의 몸에서 구명미를 챙겨들어 애란이와 나누어 먹으면서 애란의 인간적인 본심을 알게 되고 애란의 사랑을 비로소 느끼게 된다. 이 정경을 본 아가리가 질투와 분노로 인해 달려들어 단도로 철수를 쓰러뜨린 순간 애란이 쏜 총탄으로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만다. 애란은 철수를 부축하고 산을 내려왔지만 곧 섬진강을 건널 무렵 자유천지를 눈앞에 두고 철수는 절명하고 만다. 애인을 잃은 인간 애란은 이제 자유세계의 관대한 품안에서 씻지 못할 죄악을 안은 채, 애처롭게 홀로 일어선다. 지리산 기슭에는 아침 햇살이 반짝이고 있었다.

 

 

한국영화박물관 전시품 기증 릴레이 7] <피아골> 전단지

<씨네21>은 한국영상자료원과 함께 내년 5월 영상자료원 내에 문을 열 한국영화박물관을 위한 영화인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며 전시품 기증 캠페인을 벌입니다. 일곱 번째 기증품은 소장가 정태희씨가 기증한 이강천 감독의 1955년작 <피아골> 전단지입니다.

“哀怨의 골작(골짜기) ‘피아골’에서 피와 사랑의 悲劇.” 시절의 기운이었을까, 이강천 감독의 1955년작 <피아골>의 오래된 전단지는 비장한 느낌마저 감도는 홍보 문구로 장식되어 있다. 한국전쟁 뒤 지리산에서 게릴라 활동을 하는 빨치산들의 고립된 삶과 몰락을 다룬 이 작품은 빨치산을 추적하는 토벌대의 영웅적 면모 대신 빨치산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켰다 하여 당시 격렬한 이데올로기 논쟁을 낳았던 1950년대 최고의 문제작이었다. 실제로 “반공영화로 보기 곤란하므로 치안상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1955년 8월24일 국도극장에서 예정된 상영이 취소되기까지 했다. 이에 홀로 살아남은 여주인공 애란이 하얀 백사장을 걸어가는 마지막 장면 뒤로 태극기를 삽입하고 나서야 극장에 걸릴 수 있었다. 당시 촬영지였던 지리산 일대에는 여전히 빨치산 일부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배우와 스탭들은 교대로 실탄이 든 총을 들고 보초를 섰고, 유사시를 대비해 신발을 신고 잠을 자기도 했다고 한다. 첫장에 실린 “영봉 지리산에서 결사적 촬영 이행”으로 시작하는 제작자의 변이 당시의 상황을 맛보게 해주는 <피아골> 전단지는 소장가 정태희씨가 2대에 걸쳐 소중히 간직해왔던 것으로, “자료가 더 훼손되기 전에 많은 이들과 나눠보기 위해서” 자료원에 기증한 것이다.
피아골계곡
피아골은 노고단과 반야봉 사이에 자리잡은 계곡이다. 가을날의 피빛 단풍으로 지리산...
위치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내서리
 
 
 

 

피아골 (1955) * * * 1/2

 

감독
이강천

주연
김진규....철수
노경희....애란
이예춘....아가리
허장강....만수

아가리 대장과 애란
[피아골]을 본 적 없는 사람들도 당시 이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겪었던 수난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너무나도 노골적인 반공물인 이 영화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의심스러운 눈을 던졌고 얼마나 격한 토론이 이어졌는지 말이에요. 결국 이 모든 소동은 몇몇 장면들을 삭제하고 어울리지도 않는 태극기 장면을 마지막에 집어넣는 것으로 마무리지어졌지만요.

지금 와서 당시의 소동을 비웃고 놀려대는 건 쉽습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이 영화가 만들어진 건 1955년, 전쟁이 끝난지 겨우 2년 뒤였습니다. 아직도 전쟁의 상처는 사라지지 않았고 지리산에서는 빨치산들이 남아 있었지요. 당시 사람들이 이런 소재와 주제에 대해 민감했던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이 영화에 대해 쏟아졌던 비판들은 정확했습니다. 아무리 부정적으로 그리려고 애를 썼어도 이 영화의 빨치산들은 선전 영화에 어울리는 캐리커처 악당들이 아니었습니다. 선전용 영화로서 힘이 딸리는 건 당연했지요. 결국 그 비판들은 조금만 각도를 돌려놓고 보면 예술적 성취에 대한 칭찬이었던 겁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다들 아실 거라고 믿습니다. 지리산 피아골을 근거지로 삼았던 한 무리의 빨치산들에 대한 이야기지요. 휴전이 된 뒤에도 여전히 피투성이 활약을 펼치던 이들은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서서히 파멸해갑니다. 결국 여자 주인공 애란 한 명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서로에 대한 불신과 토벌대의 습격에 의해 몰살당하고 말아요.

아까도 말했지만 [피아골]은 모범적인 반공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빨치산들은 결코 본받고 싶은 모범시민들은 아니에요. 그들은 험악한 이데올로기에 푹 젖어있는 양민학살범입니다. 진정한 악당들이 그렇듯, 그들은 결코 자기 편에 대해서도 관대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 토벌대에 의해 희생되는 사람은 단 한 명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지나치게 열성적인 아가리 대장과 빨치산 내부의 동료들에게 처형당하거나 살해당하죠. 이 영화의 논리에 따르면 남한 정부는 지리산에 토벌대를 풀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냥 두었으면 알아서 자멸했을테니 말이죠.

재미있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들을 사악한 타인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건 불가능해요. 그들은 여전히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고 빨치산 이외의 다른 사람들은 등장도 하지 않으니까요. 그들이 아무리 무시무시한 짓을 저질러도 관객들은 결국 그들에게 몰입하게 됩니다. 게다가 영화는 정말로 그들을 사악한 캐리커처로 그리고 있지도 않아요. 그래서도 안되지요. 이 영화의 죽음들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살해당하는 피해자들이 가해자들보다 상대적으로 덜 악하고 더 인간적인 존재여야 하거든요.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피아골]이 성공적인 영화가 된 건 반공영화라는 태생적 한계속에서도 휴머니즘을 추구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라면 반대죠. [피아골]의 드라마가 이처럼 강렬할 수 있었던 건 이 영화가 드라마와 선전물의 논리를 철저하게 따른 모범적인 반공영화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모순되는 것 같지만 당연한 논리입니다. 원래 영화 속의 악당들은 주인공들보다 재미있는 법입니다. 사회의 규칙 속에 자신을 가두고 있는 주인공들과는 달리 악당들은 그들을 제한할 어떤 규칙도 없습니다. 이들은 별다른 장애없이 그들의 드라마를 극한까지 추구할 수 있습니다. [피아골]이 이후에 나온 정치적으로 훨씬 유연한 빨치산 영화들이나 드라마들보다 훨씬 강렬한 작품인 것도 그 때문입니다. 예의차리고 정치적 균형을 잡느라 이것도 저것도 못하는 후배들과는 달리 [피아골]의 빨치산들은 치정과 모함, 강간살인과 시간에 이르기까지 못하는 게 없습니다. 당연히 드라마도 막히는 구석이 없죠.

그 순간부터 이 뻔뻔스러운 반공영화는 정치색을 잃어버립니다. 더이상 빨치산들은 '빨갱이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지리산의 지옥에 갇혀 어쩔 수 없는 인간 조건 속에서 파괴되어 가는 딱한 인간들입니다. 이렇게 되자 애란과 철수가 산을 떠나 자수하기로 결심하는 부분도 선전 영화의 힘이 없습니다. 하산의 동기가 '아, 내가 이 무시무시한 빨갱이들 사이에서 몹쓸 짓을 저질렀구나'가 아니라 '이 지옥에선 정말 일초라도 더 못 있겠다. 자수하면 죽이지는 않겠지'이니 말이죠. 우리의 악당 아가리 대장이 허울 뿐인 공훈장을 꺼내보며 죽어가는 마지막 장면 역시 비난의 감정보다는 동정을 불러일으키지 않습니까?

이유가 무엇이건, 동기가 무엇이건, [피아골]은 여전히 강렬한 예술적 성취로 남아있습니다. 시대를 탓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여러 모로 때를 잘 만난 영화일 수도 있어요. 이 영화의 강렬한 드라마는 그 때까지만 해도 생생하게 남아있던 전쟁의 공포와 분노가, 아직 진부하고 도식적인 공식으로 굳어지지 않았던 반공물의 그릇 속에 적절하게 투영된 결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