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화엄사가는 길 = 완주∼순천 간 고속도로 개통으로 전남 구례까지 가는 길이 짧아졌습니다.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익산갈림목에서 익산∼포항 간 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완주갈림목에서 다시 완주∼순천 간 고속도로로 갈아탑니다. 구례 읍내 쪽으로 가려면 구례화엄사 나들목으로 나가면 되고, 서울톨게이트를 기준으로 구례까지는 3시간 30분 남짓이면 당도할 수 있습니다.
사적 제505호 구례 화엄사 전경(사진출처:화엄사 홈페이지)
임진왜란(1592~1598)때는 호남의 관문 구례 석주관에서 승병 300여 명을 조직하여 왜군에 맞서 싸웠으나
이 앙갚음으로 왜장 가등청정은 화엄사를 전소시키기에 이릅니다.
화엄사는 국보와 보물 등 우리 민족의 얼이 깃든 문화재가 많기로 유명하지만 호국의 현장으로도
이름이 높습니다.
“화엄사 창건설화”(자료출처:문화재청)
백제의 한 마을에 살던 노인은 어느 날 산에서 심상치 않은 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노인이 마을사람들과 함께 안개가 피어오르는 곳에 가보니 그곳에는 조그만 움막이 있었고, 장엄한 독경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고 해요. 이윽고 그 움막에서 천축국(인도)의 승려가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저는 천축국(인도)에서 불법을 펴고자 인연국토에 왔습니다. 제가 이곳에 올 때에는 ‘연’이라는 짐승을 타고 왔는데, 연은 바다를 헤엄치고 하늘을 나는 짐승으로 제가 교화하여 제자로 삼았으며, 방금 독경한 것은 ‘대방광불화엄경’입니다”라고
말하였다는군요.
마을사람들은 그때부터 그가 연을 타고 다니므로 ‘연기대사’라고 부르며 그에게 법문을 청해듣고 깊은
신심(信心)을 얻게 되었습니다.
연기대사는 자신의 움막이 있던 자리에 절을 짓고 ‘화엄사’라 이름하였다고 전설처럼 전해 오고 있습니다.
화엄사는 백제 성왕 22년(544)에 인도스님인 연기조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절입니다.
신라 문무왕 17년(677)에는 의상대사가
장육전을 짓고 그 벽에 화엄경을 돌에 새긴 석경을 둘렀으며,
황금장육불상을 모신 장육전법당과 석등을 조성하였습니다.
그 후 신라와 고려, 조선시대를 통해 여러 차례 증축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답니다.
대부분의 절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가람을 배치하지만, 화엄사는 각황전이 중심을 이루어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공양하고 있지요.
사찰 안에는 국보 제67호인 ‘화엄사각황전’을 비롯하여 국보 4점, 보물 8점 천연기념물등의
중요문화재가 있어
역사적으로 가치가 큰 전통사찰입니다.
벽암국일도대선사비
벽암스님(1575-1660)은 임진왜란때 소실된 화엄사를 중창하신 분입니다. 10세때 출가하여 86세
때 입적하셨다고 합니다.
전남 유형문화재 제50호 해탈문
기둥을 일렬로 세워 지은 출입문이라 하여 일주문 또는 해탈문이라 합니다. 절의 경계에 담을 쌓고
마치 대문과 같은 모양으로 서 있습니다다.
템플스테이수련원 간판이 보이시죠?
올 해는 2013년 12월 7일부터 8일까지 열린다고 해요.
화엄사는 특히 건물의 배치에 있어서는 일주문을 지나 약 30˚꺽어서 북동쪽으로 들어가면 금강
역사, 문수, 보현의 상을 안치한 천왕문에 다다르는데 이 문은 금강문과는 서쪽 방향으로 빗겨
놓은 것이 독특한 특징입니다
금강문을 지나 왼편의 천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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