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문화재방송.한국 www.tntv.kr

문화유산 답사기

[문화유산 답사기]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로 다시 깨어난 백제의 찬란한 문화

문화재방송 2015. 7. 5. 09:33

 

 

 

백제역사유적지구(Baekje Historic Areas) 세계유산 등재

 

 

-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정부간위원회에서 등재 최종 결정 -

 

 

1. 독일 본(Bonn)에서 개최되고 있는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World Heritage Committee, 6.28.∼7.8.)는 현지 시각 7.4.(토) 우리나라가 등재 신청한 ‘백제역사유적지구(Baekje Historic Areas)'를 유네스코 세계유산목록에 등재하기로 결정하였다.

o 세계유산위원회는 유네스코 세계유산(문화, 자연, 복합) 목록 등재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정부간위원회(21개국으로 구성)로서, 우리나라는 2013∼17년 임기 위원국(2013.11월 위원국 당선)으로 참여 중.

정부는 이번 위원회에 나선화 문화재청장, 조태열 외교부 제2차관을 수석대표로 교부, 문화재청, 충남도청, 전북도청, 공주시청, 부여군청, 익산시청, 네스코 한국위원회,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한국위원회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대표단 파견

2. 이번 등재 결정 과정에서 세계유산위원회와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유네스코 계유산센터 산하 자문기구로서 문화유산의 등재 부를 위원회에 권고) 동 유산이 한국·중국·일본 동아시아 삼국 고대 왕국들 사이의 상호 교류 역사를 잘 보여준다는 점, 백제의 내세관·종교·건축기술·예술미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백제 역사와 문화의 특출한 증거라는 점 등을 높이 평가하였다.

 

3. 다만, 세계유산위원회는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전반적인 관광관리 전략과 유산별 방문객 관리계획을 완성하고, 공주 송산리·부여 능산리 등 고분 안에 있는 벽화와 내부환경의 변화에 대한 모니터링 주기를 조정할 것을 권고하였는바, 문화재청과 충청남도·라북도관련 지방자치단체는 유네스코 권고사항을 충실히 행함과 더불어 백제역사지구의 더욱 체계적인 보존관리와 활용을 위한 계획을 수립·시행해 나갈 예정이다.

4. 외교부와 문화재청은 이번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우리나라 고대국가 백제의 역사와 문화가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새롭게 조명될 기회가 될 것이며, 관광 활성화와 더불어 우리 문화유산의 세계화와 문화강국으로서의 국가 이미지 제고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o 번 ‘백제역사유적지구’ 등재는 2014년 남한산성 등재 이후 1년 만에 달성된 결과이며, 이로써 대한민국은 총 12건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우리나라의 12번째 세계유산을 만나다

EBS 문화유산코리아 백제역사유적지구 시리즈



660년,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은 수도 부여가 함락 될 위기에 놓이자 공주로 피신합니다. 왕이 백성을 버린 채 도성을 탈출하자, 남아있던 궁녀들은 치마를 뒤집어 쓴 채 백마강에 몸을 던졌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꽃잎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는 낙화암의 전설은 700년의 백제 역사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으로 남아있습니다. 한때 한강 유역을 차지할 정도로 번성했지만, 허무하게 패망한 왕국으로 치부된 백제.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백제의 역사는 과연 사실일까요?

 

<미륵사지>


세계유산으로  백제역사유적지구


백제는 3개의 수도를 만들었습니다. 오늘날의 서울, 공주, 부여인데요. 그중에서 공주와 부여가 수도였던 웅진과 사비시대의 유산 8곳이 백제역사유적지구라는 이름으로 현재 세계유산 등재 심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오는 7월 4일 독일 본에서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확정될 예정입니다. 이제 최종 결과만을 앞두고 있지만, 이 시간이 오기까진 10년에 달하는 지난한 준비과정이 있었습니다. 유독 힘들었던 이유를 꼽으라면 백제역사유적지구에 웅진과 사비시대의 유산만 포함됐기 때문입니다. 백제 700년의 역사 중 500년을 차지하는 한성시대(서울)의 유산을 제외한다는 것에 우려와 비판의 시각이 있기도 했습니다.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제작진 역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공주와 부여를 찾아갔을 때 제작진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뭔가 대단한 유적이 있을 거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겉보기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허허벌판이었던 것입니다. 백제 역사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막막함에 사로잡혀 있는데, 같이 답사를 온 백제고도문화재단의 이동주 박사가 뒤통수를 때리는 한마디를 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백제의 진짜 모습은 땅 밑에 숨어있습니다”


1500년의 타임캡슐


1971년 송산리고분군에서 배수로 공사를 하던 중 인부의 삽에 뭔가 딱딱한 것이 걸립니다. 터널처럼 가지런히 쌓인 벽돌들. 그것은 1500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백제 무령왕의 무덤이었는데요. 무덤 안에는 왕과 왕비의 신분을 밝힌 묘지(墓誌)가 있었는데, 무덤의 주인 뿐 아니라 무덤의 축조 시기, 장례 절차까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무덤에 대한 기록이 정확하게 남아있는 왕릉은 고대 동아시아의 왕릉 중에서 무령왕릉이 유일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백제의 위상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무령왕릉의 벽돌에는 놀라운 기록이 새겨져 있는데, 중국 양나라의 기술을 적용해 왕릉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중국 양나라의 고분과 무령왕릉을 비교해보면, 무덤 양식 뿐 아니라 건축에 사용된 벽돌까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백제가 중국과 활발하게 교류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 후 백제는 중국과 다른 독특한 무덤양식을 만들었고, 일본에 무덤 축조 기술을 전합니다. 일본의 칸논즈카 고분은 무덤의 형태 뿐 아니라 출토 유물까지 백제와 비슷함을 알 수 있습니다. 무령왕릉은 백제가 동아시아 문명 교류의 중심지였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인 것입니다.


 

<정림사지 5층석탑>


혁신적인 계획도시, 사비도성


백제가 만든 세 개의 수도는 놀라울 만큼 모습이 비슷합니다. 강가에 왕궁을 배치해 강을 천연의 방어막으로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백제의 세 번째 수도인 부여 사비도성은 완벽한 계획도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왕궁과 산성, 외곽성, 그리고 국가 사찰과 능묘까지 도성의 핵심구조를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이곳에선 백제의 가장 아름다운 석탑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정림사지 5층 석탑입니다. 중국 역사서 주서에 따르면 부여는 절과 탑이 매우 많은 곳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정림사지를 비롯해 몇 개의 사찰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과거 부여의 모습은 곳곳에 절과 탑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정림사지에 세운 5층석탑은 백제의 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儉而不陋 華而不侈(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단아한 정제미와 우아한 조형미 그리고 고도의 균형미를 보여주는 정림사지 5층 석탑이야말로 백제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드러내는 유산입니다.


<공산성>


1500년 전,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백제


중국과 일본을 잇는 핵심 고리이자 고대 동아시아의 중심지였던 백제. 우리나라의 12번째 세계유산이 될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세계유산의 기준을 완벽하게 충족하고 있습니다. 세계유산의 등재 심사를 맡은 이코모스 한국위원회 이혜은 위원장은 “백제역사유적지구가 백제 문화의 탁월한 가치를 담고 있으며 동아시아의 도시 발달과 문물 교류의

정성을 갖춘 유산”이라고 평가했습니다

.


 

EBS 문화유산 코리아 제작진은 문화재청과 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 사업단 관계자들과 함께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세계유산 등재 과정을 영상에 담을 예정입니다. 박치대 피디는 “국내의 다양한 문화재를 알리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 앞으로도 문화유산 코리아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라고 전했습니다.

 + 방송일정 : 2015년 7월 10일(금), 7월 17일(금) 낮 12시 10분

 + 다시보기 :  http://home.ebs.co.kr/culturekorea

 + 제작진 : 연출 - 박치대  글/구성 - 박세원 

 

 

 

 

출처:E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