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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방재의 날' 특집]12년 전 전 국민을 안타깝게 했던 국보 제1호 숭례문의 화재는 인재였다.

문화재방송 2020. 2. 9. 16:33


<일제하의 숭례문>


<2008년 2월 10일 오후 8시 30분...불타고 있는 숭례문>










숭례문 화재 벌써 12년...방화범은 이미 출소


 



대한민국 국보 1호 숭례문에 불을 지른 범인은 이미 출소했다.
2008년 2월 10일 한 노년 남성이 숭례문에 불을 질렀다. 숭례문은 극히 일부만 남기고 불에 타 소실됐다.
사건 직후 체포된 채종기(80) 씨는 택지개발과 관련해 보상금을 적게 준다는 이유로 정부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그는 사전탐방까지 하는 등 적극적으로 범행을 계획했고 시너 1.5리터와 일회용 라이터를 준비해 숭례문에 불을 냈다. 그는 체포 뒤 현장검증 과정에서 "인명피해도 없고 문화재는 복원하면 되지 않으냐"라는 발언을 하며 전 국민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서울고등법원은 같은 해 10월 채 씨에게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징역 10년 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채 씨가 시신기증 서약서를 작성하는 등 반성과 후회의 뜻을 표시하고 있지만 채 씨의 행위로 인해 소실된 숭례문은 사실상 예전 상태로 복원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할 때 1심보다 낮은 형을 선고하기 어렵다"라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징역형 확정 뒤 채종기 씨는 교도소에 수용됐다. 숭례문 방화 사건이 일어난 지 벌써 12년이 지났다. 채 씨 징역형은 2018년 만기로 2월에 출소했다.


2010년 2월 조선일보는 마산교도소에 수감 중인 채종기 씨를 인터뷰했다. 그는 비교적 건강한 편이었다.

[사건 인사이드] "내가 바보짓… 죄수들도 싸늘한 시선"
"내가 바보였습니다. 정말 내가 바보였습니다."지난 6일 오후 경남 마산시 회성동 마산교도소 면회실에서 만난 숭례문 방화범 채종기(72)씨는 기..


인터뷰에서 채 씨는 "교도소 안에서 내가 숭례문 방화로 이곳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된 다른 죄수들로부터 싸늘한 시선을 받았다. 하지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사건에 관한 소회를 전했다.

방화 당시 문화재청장이었던 유홍준 교수는 숭례문 소실에 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유 교수는 지난해 11월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 출연해 숭례문 방화 사건과 채종기 씨에 관해 이야기했다.
유 교수는 "문화재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많은 교훈을 준 사건이고 앞으로 저런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블로그 대문/ 흥남철수작전의 원동력 '장진호전투' 

 
▲ 1950년 12월 장진호 전투에서 중공군의 포위를 뚫고 흥남으로 철수하던 미 1해병사단 장병들이 눈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AP·미 해병대(USMC)
 

[만물상] 장진호 전투


1950년 11월 함경남도 장진호(湖)까지 진격했던 미 7사단 3개 대대가 중국군의 매복에
걸려 궤멸당했다.
중국군이 개입하리라는 첩보를 무시한 채 무모하게 내린 북진 명령 탓이었다.
알몬드 10군단장은 "중국의 세탁·청소부 몇몇 때문에 멈춰선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해병 1사단은 되도록 천천히 진격했다.
"항상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라"는 소신을 갖고 있던 스미스 사단장은
곳곳에 병력과 보급품을 남겨두고 야전 활주로도 닦아 뒀다.

▶중국군 제9병단장 송시륜은 15만명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넌 뒤 낮에는 산에 숨고
밤에만 이동해 장진호 주변에 매복했다.
중국 황포군관학교를 나온 농민유격대장 출신 송시륜은 주력 부대를
산을 따라 배치해 도로로 진군하는 미 해병 1사단과 7사단, 영국 해병 등
3만여명을 커다란 자루에 넣듯 포위하는 데 성공했다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포위망은 계곡을 따라 23㎞에 이르렀다.

영하 45도까지 내려가는 강추위에 병사 절반이 동상에 걸렸다.

스미스 사단장은 "어떤 희생이 있더라도 반드시 돌파하라"고 독려했다.

선두에 섰던 장교는 훗날 이 길을 '지옥불 계곡(Hell fire valley)'이라고 했다.

미 해병은 사망 2500명, 부상 5000명에 이르는 사상자 대부분을 수습해

함께 퇴각했다. 역사상 미군이 가장 고전했던 전투로 기록됐다.

▶1983년 이 전투에서 싸웠던 미군들이 '초신 퓨(Chosin Few)'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일본 지도밖에 없었던 당시 장진의 일본식 지명 '초신'에, 살아남은 사람이 적다는 뜻의

'퓨(few)'를 붙였다.

소총수로 참전했던 마틴 러스는 '포위망 탈출(Breakout)',

장교였던 조지프 오언은 '지옥보다 더한 추위(Colder than Hell)'라는 책을 펴냈다.

미 해군 순양함 중엔 '초신함(USS Chosin)'도 있다.

▶미 해병 대위 출신 영화감독 브라이언 이글레시아스가 장진호 전투를 기리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

'초신 퓨' 회원들을 인터뷰해 전멸 위기를 벗어난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는다고 한다.

영화 제목은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지만 미국인들은 여전히 잊지 않고

기록하고 기념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6·25 휴전일인 7월 27일을 참전용사를 기리는 국가기념일로 공포했다.

'잊혀진 전쟁'이라는 이름은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출처:조선일보  


영화:잊혀진 전쟁의 기억 (2012)Memory of Forgotten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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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Memory of Forgotten War(잊혀진 전쟁의 기억)’ 상영회

한국전쟁은 아직도 많은 미국인들에게 ‘잊혀진 전쟁’이라고 불린다. 아마도 미국의 입장에서는 3년간이나 지속된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38선을 휴전선으로 대체한 것에 불과한 전쟁이어서 하루 빨리 ‘잊고 싶은’ 전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우리들에게 한국전쟁은 잊혀지지 않는, 잊을 수 없는 전쟁이기도 하거니와, 분단의 고통이 계속되는 한 영원히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이 영화는 3년의 제작기간 끝에 2013년에 완성되어 미국의 주요도시에서 순회 상영회를 가졌고, 아시안필름, LA 영화제, 뉴욕 국제영화제 등 여러 영화제에서 우수작으로 선정된 뛰어난 다큐멘터리이다. 분단을 상징하기 위해 영화의 길이도 38분으로 만들었다. (자세한 내용은 웹사이트 참조 www.mufilms.org)



  
▲ 영화에서 출연진 중의 한 분 이민용씨가 방북해 상봉한 형님과 활짝 웃고 있다. [사진제공 - Mu Film]
잊혀진 전쟁의 기억 포스터확대하기
잊혀진 전쟁의 기억 (2012)Memory of Forgotten War
평점 0/10
장르|나라
다큐멘터리/가족/범죄
미국
개봉 | 영화시간/타입/나라
38분
감독
(감독) 디앤 보르셰이 림, 램지 림
누적관객
(자료없음)

<잊혀진 전쟁의 기억>은 한국전쟁(1950-53) 생존자인 네 명의 한국계 미국인의 개인적 체험을 통해 군사분쟁이 야기하는 인간적 희생이라는 주제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는 작품이다. 관객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전쟁의 전모 - 광범위한 공습에서 민간인들의 처절한 생존투쟁과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생이별한 이산가족의 비애에 이르는 - 에 대해 알게 된다. 작품의 후반부에서 중심인물들이 휴전 후 수십년 만에 북한의 가족 및 친척들과 재회하는 장면들은 전쟁이 가져다 준 무참한 인간적 상실의 의미를 웅변해 준다. 그들의 이야기는 전쟁은 총성이 그침과 더불어 끝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군사분쟁이 생산하고 있는 수많은 난민들의 미래를 생생하게 예견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중심인물들의 개인사를, 그것을 역사적인 문맥 속에 위치시켜 주는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와 여지연 교수의 사려 깊은 분석 및 해석과 긴밀하게 엮어서 제시해 주고 있다. 그 외에도 뉴스 영화들과 미군이 남긴 영상자료, 기록사진들이 참혹한 전쟁을 가져온 정치, 사회, 역사적 세력 및 전쟁의 여파를 생생하게 전달해 주고 있다.
(2015년 제7회 DMZ국제다큐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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