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호 전투(長津湖 戰鬪 Battle of Chosin Reserv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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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호 전투
해병 1사단은 2차대전에서도 활약한 최정예부대였다. 별명은 사냥개 ‘도베르만’이었다. 지휘관 스미스 소장도 유럽과 태평양 전장을 누빈 백전용사였다. 그러나 중과부적이었다. 매복과 기습, 야간·새벽 공격에 혼이 나갈 정도였다. 전멸 위기였다. 도쿄의 사령부도 ‘잃어버린 사단’으로 포기하는 분위기였다.
적은 중공군뿐만이 아니었다. 해발 1000m의 험준한 산악과 영하 35도의 혹한은 더 치명적이었다. 중기관총에 부동액을 채워야 했고 경기관총은 주기적으로 총신을 달궈야 했다. 공중 보급품이 언 땅에 부딪혀 깨지는 바람에 탄약도 25% 정도밖에 사용할 수 없었다. 차가운 전투식량을 먹고 설사에 시달렸다. 기습 때문에 침낭 속에서 잘 때도 지퍼를 닫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동상이었다. 전투 중 땀이 나면 발과 발싸개 사이에 얇은 얼음막이 생겨 금방 탈이 났다. 부상자용 수혈관이나 모르핀도 얼었다. 붕대를 갈기 위해 장갑을 벗으면 손이 바로 얼어 치료조차 할 수 없었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 17일간 혈투를 벌이며 중공군을 막아냈다. 그리고는 극적으로 포위를 뚫고 흥남까지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영화 ‘국제시장’에도 나오지만, 유엔군 10만여명과 피란민 10만여명의 목숨을 구한 흥남 철수는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차대전의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함께 세계 2대 동계(冬季) 전투로 꼽히는 이 비극의 현장 장진(長津)은 영어로 초신(Chosin)이라 불린다. 당시 한국어 지도가 없어 일본어 지도를 사용한 미군이 일본식으로 읽은 결과다. 생존자 모임 초신 퓨(Chosin Few)는 ‘선택 받은 소수(Chosen Few)’를 패러디한 것이다.
당시 참전했던 스티븐 옴스테드 해병대 예비역 중장 등 노병들이 미국에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세우는 모양이다. 묘비 수준의 기존 것과 달리 일반인도 참배할 규모로 만들겠다고 한다. 장진호 전투를 다룬 책은 미국에서만 세 권이나 나왔다. 국내에선 소설 한 권이 전부다. 스토리 부재라는 한국 문화계로서는 무궁무진한 장엄미(美)의 원천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출처:한국경제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5020519751
미해병 1사단의 용전으로 흥남부두로 모여든 피란민 10만명이 탈출 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미해병 제 1 사단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과달카날에서 일제에 맞서
최초로 성공적인 공세 작전을 펼친 부대로 유명하며
결론적으로 일제의 패망을 앞당기는데 혁혁한 기여를 한 긍지의 부대이다.
어쩌면 당시 미해병 제 1사단이 과달카날에서 물러 났었다면
대한민국의 해방은 더 늦어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피난민들이 흥남부두로 몰려 오고 있다
피난민들을 수송하기 위해 수많은 군수물자를 하역 야적하고 있다(군수품은 부두 철수시 폭파시켜 사용불능케 했다)
장진호전투에서 전사한 유엔군들의 영결장면이다(이들은 고국으로 가지 못했을것이다)
운 좋게 배에 승선한 피난민들(그들의 미래는 암담했다)
운 좋게 배에 승선한 피난민들
전선에서 용케 살아남은 유엔군들이 승선하기 위해 부두로 집결하고 있다
피난민 철수를 위해 하역 야적한 군수물자와 부두시설을 폭파하고 있다
자유를 갈망하며 필사적으로 탈출하려는 피난민의 인파
두사람의 피난민이 필사적으로 그물사다리를 오르고 있다(오르다가 떨어져 죽은사람들이 많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1950년 10월 26일, 북한의 함경남도 원산에 상륙한 美 해병 제1사단은
美 육군 제7보병사단의 일부와 함께 평안북도 강계에서 워커 장군이
이끄는 美 제8군과 합류할 예정이었다.
이를 위해 험준한 낭림산맥(林山脈)을 넘는 강행군이 100여 ㎞나 지속됐지만
장병들의 사기는 매우 높았다.
당시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서울탈환·평양점령 등 성공적인 반격작전을
전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산에 상륙한 이 부대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익숙지 않은 험준한
산악지역과 혹독한 영하 40도의 날씨였다.
설상가상으로 유엔군이 38선을 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던
마오쩌둥(毛澤東)이 대규모 병력을 참전시켰다.
이로 인해 1만2000명의 해병 제1사단은 장진호 지역에서
12만 명에 달하는 중공군 제9병단에 포위당해 자칫 전멸당할지도
모를 위기에 처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유엔군사령부로부터 흥남항을 통한 철수작전 명령이
내려졌고, 해병1사단은 피란민들까지 이끌고 중공군의 포위를 뚫고
흥남까지 가야 했다.
철수를 위해 장진호 남단의 작은 마을 하갈우리(下碣隅里)를 떠나기 전
해병들은 ‘해병대가(The Marines Hymn)’를 소리 높여 불렀다.
“우리는 하늘과 땅과 바다에서 조국을 위해 싸운다. 정의와 자유를
위해, 그리고 우리의 명예를 위해 싸운다.”
그들은 자신들을 막아선 중공군의 치열한 공세에 맞서 “적이 온다.
해병답게 싸우다 죽자!”고 외치며 달려들었고, 새하얀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산과 도로는 온통 붉은 피로 물들었다.
결국 중공군은 美 해병의 거센 반격으로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17일간의 사투(死鬪) 끝에 해병 제1사단은 중공군 제9병단 예하 사단들을
차례로 격파하며 흥남에 도착했고,
이들이 중공군의 진출을 지연시킨 덕분에 흥남철수작전을 통해 유엔군
10만 명과 피란민 10만 명이 안전하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국방부 국방교육정책관실>
영화:잊혀진 전쟁의 기억 (2012)Memory of Forgotten War
▲ 영화에서 출연진 중의 한 분 이민용씨가 방북해 상봉한 형님과 활짝 웃고 있다. [사진제공 - Mu Film]
<잊혀진 전쟁의 기억>은 한국전쟁(1950-53) 생존자인 네 명의 한국계 미국인의 개인적 체험을 통해 군사분쟁이 야기하는 인간적 희생이라는 주제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는 작품이다. 관객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전쟁의 전모 - 광범위한 공습에서 민간인들의 처절한 생존투쟁과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생이별한 이산가족의 비애에 이르는 - 에 대해 알게 된다. 작품의 후반부에서 중심인물들이 휴전 후 수십년 만에 북한의 가족 및 친척들과 재회하는 장면들은 전쟁이 가져다 준 무참한 인간적 상실의 의미를 웅변해 준다. 그들의 이야기는 전쟁은 총성이 그침과 더불어 끝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군사분쟁이 생산하고 있는 수많은 난민들의 미래를 생생하게 예견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중심인물들의 개인사를, 그것을 역사적인 문맥 속에 위치시켜 주는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와 여지연 교수의 사려 깊은 분석 및 해석과 긴밀하게 엮어서 제시해 주고 있다. 그 외에도 뉴스 영화들과 미군이 남긴 영상자료, 기록사진들이 참혹한 전쟁을 가져온 정치, 사회, 역사적 세력 및 전쟁의 여파를 생생하게 전달해 주고 있다.
(2015년 제7회 DMZ국제다큐영화제)
출연 / 스탭
◀선조들의 숨결어린 문화재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입니다"
www.문화재방송.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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