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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답사기

[문화유산 답사기]국보 제135호 '혜원풍속도(蕙園風俗圖)'중 '월야밀회'.양반과 기녀의 키스신을 훔쳐보다

문화재방송 2020. 5. 28. 06:34

국보 제135호 신윤복의 '혜원풍속도(蕙園風俗圖)'

 

 

조선 후기 화가 신윤복(申潤福)이 그린 풍속 화첩. 종이 바탕에 담채. 세로 28.2㎝, 가로 35.2㎝. 간송미술관(澗松美術館) 소장.


혜원(蕙園)은 화원 신윤복(申潤福)의 아호이다. 그의 자(字)는 입부(笠夫), 고령신씨(高靈申氏)였으며 그의 부(父) 또한 정조왕(正祖王)의 어용화사(御用畵師)이던 신한평(申漢枰)이었으므로 그 가업을 이어 화원이 되었다. 혜원(蕙園)의 생사년(生死年)은 알려진 바가 없으나 대체로 늦은 18세기(世紀)부터 이른 19세기(世紀) 무렵에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와 더불어 활동한 작가였다. 다만 김홍도(金弘道)보다 혜원(蕙園)이 약간 후배였음은 그의 부(父) 신한평(申漢枰)이 김홍도(金弘道)와 더불어 정조왕(正祖王)의 어진(御眞)을 그렸다는 『정조실록(正祖實錄)』의 기사(記事)로써 짐작이 된다.


원래 혜원(蕙園)은 틀잡힌 산수화가로서도 주목받을 만한 필격을 드러낸 사람이었으나 김홍도(金弘道)와 더불어 그 당시(當時) 이른바 속화를 개척해서 오늘날 그는 풍속화가로서 그 업적을 더 평가받게 되었다. 그의 풍속화는 주로 서민사회의 생태 특히 풍류 남아들과 기녀, 주인과 여비(女婢), 양가의 부녀와 승려에 이르는 넓은 분야에 걸친 조선인(朝鮮人)들의 사랑과 색정(色情)의 생태를 그리기에 매우 재분(材分)을 발휘한 작가였다.


이 화첩은 그러한 내용은 30면(面)에 나누어 그린 작품으로서 이제까지 알려진 혜원(蕙園)의 대표적인 연작 풍속화첩이며 따라서 그의 이 부문 작품 중에서는 가장 화의(畵意)와 그 기법이 세련되어 있다. 이 작품은 미술작품으로서뿐만 아니라 당시의 적나라(赤裸裸)한 사회상의 일면과 풍부한 민속을 사실한 희귀한 자료로서도 그 의의가 적지 않다.


당시의 사회적 배경은 천주교(天主敎)를 타고 침투(浸透)한 서양의 과학기술이 서울 학계에 자극(刺戟)을 주어 실사구시를 표방하는 실학파의 학문이 대두(擡頭)될 무렵이었으며 아울러 국문으로 이루어지는 서민문학이 일어나는 등 스스로 서민을 의식하는 시대였다. 따라서 이러한 서민의 생태 즉 속세간사를 주제로 한 풍속화의 개척은 그러한 일련의 문화운동(文化運動)의 일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화첩은 언제 일본으로 유출되었었는지 그 경위는 알 수 없지만 1930년대(代)까지 일본 오사카시(大阪市)에 있는 고미술상 산중상회(山中商會)의 소유이었으나 고(故) 간송 전형필씨(全鎣弼氏)가 이것을 다시 사들여온 것이다. 원래의 표장(表裝)은 어떠했는지 알 수 없으나 전형필씨(全鎣弼氏)의 소장이 된 후 새로이 제첩(製帖)하면서 첩미(帖尾)에 위창 오세창(吳世昌)의 제발(題拔)을 첨가했으며 원첩의 것으로 보이는 행서체로 된 '혜원전신(蕙園傳神)'이라는 제첨(題簽)이 붙어 있다.

강희언(姜熙彦)과 김홍도 풍속화의 성향을 부분적으로 반영하고 있고, 명 말기와 청대 연정소설의 삽화나 일본 에도[江戶]시대 우키요에[浮世繪]와 유사한 경향을 보이기도 하지만, 제재와 필묵법, 설채법, 인물 표현 등에서 신윤복의 독창적인 세계를 보여준다. 이러한 화풍은 조선 말기의 유운홍(劉運弘)과 유숙(劉淑) 등을 거쳐 1930년대 이용우(李用雨)의 인물화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 화첩의 대표작이다.
보름달이 훤하게 뜬 밤, 인적이 없는 담벼락 아래서 젊은 연인이 만났다. 어찌나 애절했던지 얼굴을 맞대고 꼬옥 달라붙어 있는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남의 눈에 띌까, 안절부절 하는 듯도 하다. 그 모습을 조금은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는 여인의 표정도 묘하다. 이들을 안타까워 하는 건지, 부러워하는 건지, 질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은은하고도 야릇한 분위기에 눈길이 절로 가는 작품이다. ‘남녀상열지사’였던 조선 시대라 할지라도, 남녀 사이에 불꽃 튀는 사랑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좀 더 자유로워진 시대 분위기를 반영한 그림이기도 하지 않을까 싶다.
*혜원 전신첩 中 ‘단오풍정’


누구나 한번쯤 봤을 법한, 역시 유명한 혜원의 작품이다. 큰 명절의 하나였던 단옷날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그네 타기, 머리 감기 같은 단옷날 풍습이 그대로 나타나 있는데, 그냥 풍습만 그려져 있었다면 그저 그런

‘기록화’였을 텐데, 혜원은 유머와 위트까지 그림에 담았다.
치마를 훌렁 걷고 그네에 오르는 여인, 웃옷을 다 벗어놓고 개울에 몸을 씻는 여인들, 아마도 남자들의

눈에 띠지 않는, 여인들만 아는 ‘금남’의 장소였을 것이다.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 여인들의

태도가 그걸 말해준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시선이 있다. 바로 바위 틈 사이다. 호기심 가득한 까까머리

동자승들이 숨어 키득대며 훔쳐보고 있는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단오를 즐기는 새초롬한 여인들의 표정과,

눈의 호사를 누리고 있는 동자승들의 장난기 가득한 표정이 참 재밌다.

 

‘월하정인(月下情人)

국내외 어느 작가의 그림 속에도 월하정인에 등장하는 것과 같은 모양의 달이 그려져 있지 않다. 때문에 월하정인에 그려진 달은 초승달이 잘못 그려진 것으로 여겨져 왔다. 신윤복은 왜 저런 모양의 달을 그렸을까? 만약 신윤복이 그림 속의 달을 실제로 보고 그렸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과연 저런 모양의 달이 보일 수 있을까?

 

그림 속에 쓰인 글에는 그림을 그린 시간대가 야 3경으로 나온다. 이것은 자시(子時)로 밤 12시를 전후한 시간이다. 월식이 일어나는 날은 보름달이 뜨는 날로, 자시 무렵에는 달이 가장 높이 뜬다. 처마 근처에 달이 보이는 것은 보름달의 남중고도가 낮다는 것이다. 즉 여름을 말한다. 보름달은 태양의 반대쪽에 있기 때문에 겨울에는 남중고도가 높고 여름에는 낮다.

 

춘색만원 (봄기운이 곳곳에 만연하다)

 

 

 

주유청강 (맑은 강 위에서 뱃놀이를 하다)

 

기방무사 (기방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부탐춘 (과부가 색을 탐하다)

 

휴기답풍 (기녀를 태우고, 단풍을 밟고 지나간다)

 

유곽쟁웅 (유곽에서 싸움이 벌어지다)

 

청루소일 (청루에서 시간을 보내다)

 

 

연소답청 (젊은이의 봄 나들이)

 

 

쌍검대무 (양손에 칼을 들고 대작해 춤을 추다)

 

미인도 : 세로 114.2㎝, 가로 45.7㎝로 비단 위에 채색

 

계변하화 (시냇가 수다)

상춘야흥 (무르익은 봄날, 들판에서 여흥을 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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