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젓는 소리>는 고기를 잡기 위해 어장으로 이동하거나 고기를 잡은 후 돌아올 때 노를 저으며 부르던 소리이다. 고기잡이에는 줄 꼬기, 닻 감기, 노 젓기, 그물 당기기, 고기 퍼 올리기 등 다양한 작업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노 젓기는 가장 힘겨우며 장시간 이루어지는 노동이다. 이에 수반되는 <노 젓는 소리>는 어로요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크며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노 젓는 소리>는 서해와 남해·동해에서 남성들의 노래로 두루 전승되어 왔으며, 특히 제주도를 비롯한 한반도 동남해 및 서남해의 일부 지역에서 해녀들의 <노 젓는 소리>가 불리고 있다. 고기잡이배는 아니지만 서해의 조기와 새우젓, 소금 등의 해산물을 싣고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강원도와 충북 지역의 곡식, 땔감 등과 바꾸어 내려오던 시선배의 <노 젓는 소리>도 유명하다.
내용
<노 젓는 소리>는 한반도의 해안을 따라 두루 발달해 있지만 서해와 남해의 소리가 활발하게 전승되고 있다. 한나절씩 노를 저어가는 가운데 유장한 가락과 다양한 사설이 생산되기도 하지만, 갑작스런 바다의 변화 앞에서는 가락 없는 후렴 위주로 소리가 바뀌기도 한다. 노랫말은 노 젓는 동작을 지시하는 것 외에도 개인의 신세타령이나 삶에 대한 고달픔을 토로하는 내용이 많다.
제주의 해녀들이 물질을 하러 바다로 나가며 부르는 <이어도사나>는 해녀들의 물질이 얼마나 힘들고 위험한 일인지를 말해준다. 해녀들을 기다리고 있는 검푸른 바닷속은 생활의 터전인 동시에 언제 죽어서 이르게 될지 모르는 저승이기도 하다. 전남 신안군 가거도 해녀들은 “오늘도 나간다.”라는 말로 자신들의 한심하고 처량한 심정을 노래한다. 가거도 해녀들의 <노 젓는 소리>는 종종 앞소리와 후렴 사이사이에 <샛소리>가 끼어들면서 한층 씩씩하고 구성지게 변모하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노 젓는 소리 (한국민속문학사전(민요 편))
5월 15일은 스승의 날
전북 장수군 산서초교 오진상 교장선생님 사도비
東村 吳震想님께서 山西普通學校長으로 계셨던 때(1931년~1935년)는 日本의 愚民化
敎育과 收奪政策이 極甚했던 植民統治期였다. 그런데도 先生님은 늘 흰 두루마기를
입고 우리 歷史와 民族性을 일깨워 韓民族의 矜持와 自主 獨立精神을 기르는데 힘쓰시어
學生과 鄕民들이 尊敬하고 따르게 되자 日本 憲兵의 監視가 심했는데도 오직 民族魂을
살리는 敎育에만 盡力하시니 當局은 先生님을 降等시켜 다른 학교로 左遷시켰다.
평소 先生님의 가르침에 感動된 鄕民들이 1936년 記念碑를만들었으나 日本 憲兵의
內査를 받게 되자 땅속에 숨겼다가 祖國 光復을 맞아 다시 세웠던 것이니 우리
後進들은 先生님의 나라 사랑 精神을길이 길이 이어 받도록 하자.
1999. 8. 15
長水敎育廳 敎育長 趙 今 淑
1. 사도비문
전면부 우측
振我鄕俗 ( 진아향속 : 내 고향의 풍속을 구원하고 )
啓我後生 ( 계아후생 : 내 후생들을 계몽하다. )
전면부 중앙
吳先生震相紀念碑 ( 오선생진상기념비 )
전면부 좌측
用表美積 ( 용표미적 : 아름다운 공적을 베풀어 표하여 )
百祀可榮 ( 백사가영 : 백년을 두고 영화로우리라. )
후면부
昭和拾壹年 五月 ( 소화십일년 오월 : 1936년 5월 )
山西學校 後援會 ( 산서학교 후원회 )
굴러 오는 바위를 몸으로 막아 제자를 구하고 숨진 故 한상신교사
故 한상신교사의 살신성인의 제자사랑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방장산 푸른 기슭에서 장렬하게 몸바친 한상신 선생은 1940년 6월 10일 전북 옥구군
옥구면 상평리 458번지에서 한영순씨의 1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셨다. 한선생님은
1958년 3월 20일 군산사범학교를 졸업하셨고, 그 해 5월 20일 고창군 상하면
상하초등학교에서 교직에 첫 발을 내딛고 사랑과 열정으로 봉직하시다가 1964년 9월 1일
성내면 용교초등학교로 부임하셨다.
그 해 4학년을 담임하신 선생님은 호남선 열차가 달리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학생들의
갈망에 따라 10월 17일 학생 40명을 인솔하여 기차를 굽어볼 수 있는 방장산으로
가을소풍을 갔다.
가을소풍을 가는 도중에 선생님의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았으나, 제자 사랑의
일념으로 방장산을 산행을 계속 했다. 어느 순간 앞서간 제자의 발에 큰 바위가 굴러
뒤따르는 제자들을 덮치는 상황이 되자, 온몸으로 바위를 막아 어린 제자들의 생명을 구
하고 피투성이가 된 채 산을 내려 오셨다.
선생님은 제자들이 이상 없음을 확인한 뒤, 스물넷의 꽃다운 나이로 눈을 감으시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영결식은 사랑하는 제자와 동료교사 그리고 학부모의 애도 속에
1964년 10월 20일 용교초등학교장으로 엄숙히 거행되었다.“
선생님의 묘소는 고창군 성내면 양계리(성내초등학교 뒷산)에, 선생님의 영혼이 깃든
추모탑은 새마을공원(고창읍 교촌리)에 있다.
추모제에 참석한 동기생들
세월호에서 구조됐지만 목숨끊은 단원고 강 교감
세월호 침몰 이틀후인 2014년 4월18일 자살한 故 강민규 단원고 교감(52) 씨의 지갑 안에서
편지지 두 장 분량의 유서에는 "부모님, 학교, 학생, 교육청, 학부모 모두 미안하다"며 "모든
책임을 지고 먼저 간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유서말미에는 "죽으면 화장해 사고 현장에 뿌려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앞서 강 씨는 이날 오후 4시쯤 진도 실내체육관 인근 야산에서 소나무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강 씨는 이번 사고로 단원고 학생들과 교사들이 실종되자, 사고 수습을 위해 그동안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학부모들과 함께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강 교감은 수학여행단 인솔을 위해 세월호에 탑승했다가 구조됐지만, 학생 수백명이
실종되고 교사와 학생들이 잇따라 숨진 채 발견되자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인적자원부에서 2007년에 「영원한 만남, 우리의 스승」 책을 발간하였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사도비의 소재와 현황을 담은 책으로 일제 강점기에 민족정신을
일깨우다 교사로 강등되고 투옥까지 됐지만 장학금을 만들어 후학을 양성한
전북산서초교 오진상교장등 스승 200여명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에듀프레스의 눈] 교사가 죄인되는 스승의 날, 이젠 없애주세요.
김민정 기자
승인 2019.05.14 07:11
글 한희정 서울실천교사대표
한희정 교사
“선생님, 어젯밤 꿈에 선생님이 나왔어요”
“으응?”
“내가 학교 생각을 하지도 않았는데 선생님이 꿈에 나와서 좋았어요.”
“그래, 선생님도 00이가 선생님 꿈에 나오도록 해야겠다.”
이렇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함께 웃었던 초등학교 1학년 우리반 아이가 오늘 아침 주먹을 쑥 내민다.
“선생님, 선물이에요.”
“응?”
“선생님, 스승의 날 선물이에요. 이거 비눈데, 내가 어제 성당에서 만든 거예요.”
“아...... 그래.”
어떨 결에 받았지만 고맙다는 말을 할 수도 없었고, 마음만 받겠다고 돌려주기도 난처했다. 아이 엄마를 통해 몰래 되돌려줘야 하나, 그러면 선생님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할 텐데 어쩌나 하다가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그런 걸 보면 나는 교직 경력 20년이 넘었어도 아직 교직 정신이나 준법정신이 투철하지 못한 불량 교사인 모양이다. 매우 단호하게 그러나 다정하게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00이 마음은 잘 알겠어요. 선생님이 이 비누를 아주 잘 썼다고 생각할게요. 집으로 가져가서 가족들과 쓰세요.”
“00아, 선생님은 선물을 받는 사람이 아니에요. 선생님은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학생들에게 선물을 받으면 선생님은 선생님을 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앞으로도 이런 선물을 주면 안돼요.”
1학년 담임을 하다보면 이런 난처한 경우가 한 둘이 아니다. 사탕 하나, 껌 하나, 과자 한 조각 내미는 손을 어떻게 거절하나, “내리 사랑이라는 말이 있단다, 선생님은 너희들에게 선물도 주고 과자도 주고 젤리도 주고 할 수 있지만, 선생님은 어른이니까 어린이인 너희들에게 주는 것이지. 어린이인 너희들은 그렇게 많이 받아서 쑥쑥 자란 다음에 어른이 되면 그때 어린이들에게 주는 거란다. 그러니까 선생님한테 이런 거 주는 거 아니야.”라고 퉁치며 넘어가기에 비누는 참, 애매했다.
“얘들아, 우리는 왜 학교에 올까?”
“공부하러요.”
“맞아, 우리는 모두 여러 가지 공부를 하려고 학교에 오지. 그런데 공부는 누가 가르쳐주는 걸까?”
“선생님이요.”
“맞아, 선생님이 가르쳐주지. 그런데 우리반에 선생님은 모두 몇 명이라고 했지?”
“어, 스물세명이요.”
“와!!!! 똑똑이들. 잘 기억하고 있네. 맞아, 우리는 학교에 와서 서로서로 보고 배우는 관계니까 서로에게 모두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고 했지. 선생님도 너희들을 보면서 배우는 게 많다고 했고. 지금까지 서로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네”
“그런데 오늘 00이가 스승의 날이라고 좋은 선생님이 되어주어서 고맙다고 자기가 만든 비누를 가져왔어요. 우리반에 선생님이 23명이니까 교실에 두고 우리 모두 같이 써요. 어때요?”
“좋아요!!”
다들 환히 웃는데 비누를 건네준 그 아이의 표정만 알 듯 말듯하다. 이렇게 마무리하지 않으면 어째야 하는가, 아직도 정답을 도통 모르겠는 나는 불량교사임에 틀림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나의 해석이 김영란법 위반이라면 기꺼이 ‘피고’의 자리에 설 용의가 있다는 것을 함께 밝힌다. 모두를 황량하게 하는 유권해석이라니, 스승의 날 즈음이면 언제나 죄인이 되는 기분을 그들은 모를 것이다.
5월 15일 스승의 날은 교사의 날이 아니다. 교사가 스승이 될 수는 있지만, 모든 교사가 스승이 될 수 없으며, 가르치는 직을 업으로 하는 이들은 교사만 있는 것도 아니다. 대학 교수를 비롯하여 온갖 학원의 강사, 평생교육센터나 문화센터의 강사들도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한다.
“당신의 저의 스승이십니다.”라는 고백은 가르치는 직을 업으로 하는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그들을 따랐던 이들의 언술이어야 한다는 뜻에서 “스승”이라는 명사는 타자의 명사다. “너희들은 모두 나의 제자들이지”라고 하지만 어느 교사도 “나는 너희들의 스승이다”라고 감히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제발, 스승의 날 교사‘만’까기는 그만 하면 좋겠다. 아이들과 보람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도 스승의 날만 다가오면 우울증에 빠지는 교사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오죽하면 교사들이 스승의 날의 폐지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2018년)을 올리고, 스승의 날을 폐지하지 못하면 “교육의 날”로 바꿔달라는 청원(2019년)을 올리겠는가! 스스로를 스승이 아니라고 칭하는 교사들을 왜 스승의 날 호명하며 잠재적 범죄자인 양 모욕을 주는가!
나는 스승이 아니다. 나는 전문직업인으로 나의 직에 충실하고자 언제나 노력하지만 부족함이 끝이 없는 월급쟁이 교사일 뿐이다. 거기에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선물로 들고 온 비누 하나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끙끙거리는 그야 말로 불량교사일 뿐이다.
‘보건의 날’이지 의사의 날이 아니 듯, ‘과학의 날’이지 과학자의 날이 아니 듯, ‘법의 날’이지 판사의 날이 아니 듯, ‘철도의 날’이지 기관사의 날이 아니 듯, ‘체육의 날’이지 운동선수의 날이 아니 듯, ‘스승의 날’은 ‘교육의 날’이 되면 좋겠다.
원문보기 http://www.edupress.kr/news/articleView.html?idxno=3740
[문화재방송(www.tntv.kr) 캠페인]
문화재에는 우리 민족의 얼과 혼이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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