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내용과 관련된 동영상은 6월 18일에 포스팅했습니다.>
김종문
문화재방송 대표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로 대한민국이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하자 당시 중학생이던 18세 미만의 미성년 학생들까지 펜 대신 총을 잡았다. 7월 25일, 대전·광주·순천에서 입대한 학생들로 편성된 국군 제5사단 제15연대는 경남 하동군 화개교를 건너려던 북한군의 남하를 며칠간 지연시켰다. 8월 11일 포항여중에 포진한 학생 71명은 북한군 유격부대와 11시간 동안 네 차례나 혈전을 벌여 그중 48명의 학생이 전사했다. 낙동강 다부동 전투에도 많은 소년병이 참전했다.
특히 500여명의 학생만으로 편성된 제1사단 수색 대대의 활동은 눈부셨다. 인천상륙작전 이틀 전인 9월 13일, 교복 차림의 학생 772명이 경북 영도 장사해안 상륙작전을 전개했다. 이 위장 상륙작전에서 139명 전사, 92명 부상, 수십 명이 실종됐지만 북한군의 발을 묶어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원동력이 됐다.
12월 18일 인천의 애국 청소년 3000여명이 축현초등학교 교정에서 발대식을 갖고 악천후 속에서 육군본부가 있는 대구로 도보 행진을 했다. 이 과정에서 1000여명은 실종되거나 귀가하고, 1300여명은 육군으로, 600여명은 해병대로 입대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되자 정부는 학생 전원을 귀가시켜 학업을 이어가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일선 부대에서는 지시를 무시하고 계속 군인으로 복무하도록 했다. 소년병들이 고참순으로 제대한 것은 휴전협정 체결 후 5년이 지나서였다. 집에 돌아왔지만 배움의 기회를 놓쳐 생계가 막막했다. 반면 재일학도의용군은 법정 단체로 인정받아 국가에서 취업도 시켜주고 매월 생활보조금도 받았다. 더구나 정부는 미성년 참전 학생들을 현역병과 똑같이 '6·25참전유공자회' 소속으로 묶어버렸다.
6·25 참전 미성년 학생들은 억울하다는 탄원서를 정부 요로에 수없이 전달했으나 묵묵부답이었다. 2012년 7월, 10명의 국회의원이 6·25 참전 미성년 학도병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했으나 지금까지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소년병들은 80이 훌쩍 넘어 상당수가 저세상으로 떠났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죽기 전에 '재일학도의용군'처럼 법정 단체로 인정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또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이 조속히 통과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특히 500여명의 학생만으로 편성된 제1사단 수색 대대의 활동은 눈부셨다. 인천상륙작전 이틀 전인 9월 13일, 교복 차림의 학생 772명이 경북 영도 장사해안 상륙작전을 전개했다. 이 위장 상륙작전에서 139명 전사, 92명 부상, 수십 명이 실종됐지만 북한군의 발을 묶어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원동력이 됐다.
12월 18일 인천의 애국 청소년 3000여명이 축현초등학교 교정에서 발대식을 갖고 악천후 속에서 육군본부가 있는 대구로 도보 행진을 했다. 이 과정에서 1000여명은 실종되거나 귀가하고, 1300여명은 육군으로, 600여명은 해병대로 입대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되자 정부는 학생 전원을 귀가시켜 학업을 이어가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일선 부대에서는 지시를 무시하고 계속 군인으로 복무하도록 했다. 소년병들이 고참순으로 제대한 것은 휴전협정 체결 후 5년이 지나서였다. 집에 돌아왔지만 배움의 기회를 놓쳐 생계가 막막했다. 반면 재일학도의용군은 법정 단체로 인정받아 국가에서 취업도 시켜주고 매월 생활보조금도 받았다. 더구나 정부는 미성년 참전 학생들을 현역병과 똑같이 '6·25참전유공자회' 소속으로 묶어버렸다.
6·25 참전 미성년 학생들은 억울하다는 탄원서를 정부 요로에 수없이 전달했으나 묵묵부답이었다. 2012년 7월, 10명의 국회의원이 6·25 참전 미성년 학도병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했으나 지금까지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소년병들은 80이 훌쩍 넘어 상당수가 저세상으로 떠났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죽기 전에 '재일학도의용군'처럼 법정 단체로 인정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또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이 조속히 통과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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