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전쟁기념관입니다.
오늘은 우리나라가 광명을 되찾은 날, 광복절입니다.
휘날리는 태극기를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하고 뿌듯한 날이죠.
오늘은 우리 겨레의 역사와 언제나 함께해온
자랑스러운 태극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1875년 (고종 12년), 일본군함 운요호(雲揚號)의 불법침입 때문에
일본군과 조선군 사이에 포격사건이 일어납니다.
일본은 계속해서 “운요호(雲揚號)에 일본국기가 게양돼있는데 왜 포격하였나?”며 트집을 잡았죠.
하지만 국기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었던 조선,
이때부터 조선은 국기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몇 년 후인 1882년 9월, 일본으로 가던 수신사 박영효는
일본에 우리의 국기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배 안에서 태극기를 그립니다.
조정에서 논의됐던 도안내용을 바탕으로 사각 깃발 가운데에 태극 원을 그리고
모서리에 동서남북을 상징하는 4괘를 그려 넣었죠.
일본에 도착한 사절단 일행은 고베 숙소건물 지붕 위에 태극기를 게양하는데
이것이 태극기가 세상에 최초로 게양된 순간입니다.
< 독립기념관이 발굴한 최초의 태극기 원형본(영국국립문서보관서 소장) / ©독립기념관 >
이 태극기는 1883년,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국기로 공식 선포됩니다.
하지만 국기제작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아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었고
1949년 10월 15일, 국기제작법이 확정되면서 일정한 형태를 유지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태극기”라는 이름은 언제부터 사용했을까요?
태극기는 국기로 선포된 후에도 그저 ‘조선국기’로 불렸습니다.
그런 상태로 일제치하를 겪게 됐고, 모두가 다 아는 1919년, 3·1운동을 맞이하게 됩니다.
3·1운동 당시, 우리 국민들은 모두가 깃발을 들고 나오기로 계획을 했는데
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깃발 제작이나 배포 시 일제의 눈을 피해야 했죠.
그래서 이 깃발을 ‘태극기’로 부르기로 합니다.
이때부터 우리 국기의 이름이 '태극기'로 정착된 것입니다.
- 태극기 문양의 의미 - |
태극기는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강인하게 살아남아 대한민국이 독립국가라는 것을 상징하였습니다.
임시정부 요인들은 태극기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며 독립의 의지를 다졌고
독립운동가들은 가슴에 늘 태극기를 품고 다녔습니다.
그 후 광복을 맞이하고 전쟁을 겪는 또 한번의 시련 속에서도
태극기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며 민족의 정신이 되어주었죠.
국군은 태극기에 승전을 다짐하는 글귀를 새기며 조국수호의 의지를 불태웠고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은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자식이 돌아오길 기원했습니다.
오랜 세월, 시련에 빠진 우리 민족의 버팀목이 되어준 태극기.
태극기의 변천사는 곧 우리 역사의 물결이었습니다.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게양 태극기 등록문화재381호
소 재 지; | 서울 영등포구 의사당대로 1, 국회 헌정기념관 (여의도동,국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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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워싱턴의 깃발 제작 회사에서 만든 것으로,
1942년 이승만 박사가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한국독립 만찬회를 열 때
사용했다고 알려진 태극기(太極旗)로,
재미동포 김동준씨가 1981년 9월 호텔을 방문했을 때 발견,
보관하다 대한민국 국회에 기증했다. 미국에서의 태극기(太極旗) 제작 및
항일독립운동사의 연구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
데니(O.N.Denny) 태극기 등록문화재382호
‘데니 태극기’는 조선말 고종이 미국인 외교고문 데니
(O. N. Denny, 1838~1900)에게 하사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태극기(太極旗)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데니가 1890년 미국으로 귀국하면서 가지고 간 것을
그의 후손이 보관하다 우리나라에 기증했다.
구한말 외교와 태극기(太極旗) 변천사 연구 등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미 해병대원 버스비어(A.W.Busbea) 기증 태극기 등록문화재383호
소 재 지; | 경기 하남시 역말로 71, 하남역사박물관 (덕풍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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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병대 출신 버스비어(A. W. Busbea)가 한국전쟁 당시 서울수복 시가전 중
우리 시민이 트럭을 몰던 미군에게 전달해 준 태극기(太極旗)로,
미 해병대원 버스비어가 전쟁기간 내내 군용트럭에 꽂고
전투 현장을 누비다 귀국 시 갖고 돌아가 50여년간 보관하던 것을
2005년 하남시에 기증하여 하남역사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동덕여자의숙 태극기 등록문화재384호
소 재 지; | 서울 성북구 화랑로13길 60, 박물관 (하월곡동, 동덕여자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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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동덕여자의숙(同德女子義塾) 개교와 함께 교정에 게양되었던 태극기(太極旗)로, 일제 36년동안
장롱 속에 깊숙이 숨겨져 보관되어 오다 한국전쟁 때에는 조동식 교장이 태극기(太極旗)를 옷 속에 꿰매고
봇짐에 넣어 피난하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소중히 간직되어 온 태극기로, 100년 역사를 지닌 사학 상징물로서 뿐 아니라
국가 상징으로서의 역사적 가치가 크다. 옷감재료나 바느질법 등에서 시대성을 볼 수 있고 100년 동안 학교의 정신적
지주로서의 역할을 한 상징성이 크다.
태극기 목판 등록문화재385호
소 재 지; | 충남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230(독립기념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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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3·1운동 때 태극기(太極旗)를 대량으로 찍어내는 데 사용된 널판으로, 태극기(太極旗)를
찍어내기 위해 목재에 4괘와 태극문양을 새긴 목판으로 희귀할 뿐 아니라 당시 제작기법과 상황을
헤아릴 수 있는 것으로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3·1운동 당시 태극기 제작기법을 짐작할 수 있는
좋은 자료로, 1985년 남궁용이 독립기념관에 기증했다.
남상락 자수 태극기 등록문화재386호
소 재 지; | 충남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230(독립기념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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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남상락(南相洛, 1892~1943)이 1919년 4월 4일 독립만세 운동에 사용하기 위하여
부인 구홍원(具鴻瑗)과 같이 만든 것으로, 전체가 손바느질로 제작된 희귀한 태극기(太極旗)이다.
흰색 명주 천에 색실로 수를 놓았다. 상하로 맞물려 있는 태극 문양의 양방은 홍색실로, 음방은
청색실로 수를 놓았다. 4괘는 검정실로 수를 놓았으며, 테두리는 바느질로 마감했다.
직접 짠 명주에 손바느질로 제작된 희귀한 태극기(太極旗)로,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
‘대한독립만세’ 태극기 등록문화재387호
소 재 지; | 충남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230(독립기념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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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늘고 긴 삼각형 형태의 깃발 속에 제작된 태극기(太極旗)로, 미국에서 광복 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미국에서의 독립운동 관련 태극기 변천사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깃봉 있는 날염 태극기를 박음질하고, 왼쪽 청색 부분에는 한자로 된 '대한독립만세(大韓獨立萬歲)'를 낱.
바탕은 청색과 홍색 펠트 천을 연결한 기다란 삼각형 모양이다. 오른쪽의 홍색 부분에는 붉은색 글자로 박음질했다.
김구 서명문 태극기 등록문화재388호
소 재 지; | 충남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230(독립기념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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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정부 김구(金九, 1876~1949) 주석이 1941년에 중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매우사(梅雨絲, 미우스 오그) 신부에게 준
태극기(太極旗)로, 바탕에 광복군에 대한 우리 동포들의 지원을 당부한 김구(金九) 선생 친필 묵서가 쓰여져 있다.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 등록문화재389호
소 재 지; | 충남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230(독립기념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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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군(光復軍) 제3지대 2구대에서 활동하던 문웅명(文雄明, 일명 문수열)이 간직한 태극기(太極旗)로,
바탕에 결의를 다지는 글귀와 서명이 빼곡하고 나라사랑과 자유에 대한 굳건한 열망이 담겨있다.
유관종 부대원 태극기 등록문화재390호
소 재 지; | 충남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230(독립기념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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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종(劉官鍾) 소위가 1950년 10월 초 호남지구 진격 작전시 사용한 태극기(太極旗)로,
바탕에 무운장구를 염원하는 글귀와 서명, 지명이 기록되어 있어 당시 전투 경로 등을 연구할 수 있다.
경주 학도병 서명문 태극기 등록문화재391호
소 재 지; | 충남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230(독립기념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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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경주에서 자원한 학병 19용사 등이 출정 전에 태극기에 각자 소감을 적고 서명 한
태극기로 학도병들의 굳은 의지와 각오가 표현되었다. 가운데에 "남북통일"이라는 글자가 한자로
크게 씌어 있다 그 외에도 "우리의 죽음은 역사의 꽃이 되라", "17세 붉은 피 오직 조국에!",
"서라벌의 용사여 잊으랴 화랑정신" 등 6·25전쟁 중 학도병들의 굳은 의지와 각오가 바탕에
가득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건국법정대학 학도병 서명문 태극기 등록문화재392호
소 재 지; | 충남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230(독립기념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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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 1일 부산에 주둔해 있던 육군부대에서 제3차 학도병 자원 시 부산의 건국법정대학 법률과 학생이
주축이 되어 서명한 태극기로, 학도병들이 조국을 위해 몸바칠 것을 맹세하고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에서도
고이 간직해 온 태극기로 가치가 크다. 태극 문양의 홍색 양방과 연한 청색의 음방이 아래위로 물려 있고 4괘는
검은색이다. 여백에는 학도병들이 조국의 통일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다는 결의를 다지며 무운장구를 비는
글귀와 서명들로 가득하다.
이철희 ‘사변폭발’ 태극기 등록문화재393호
소 재 지; | 충남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230(독립기념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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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특무상사 이철희(李鐵熙)의 태극기로, 국군의 애국정신과 투철한 군인정신이 생생하게 표출되어
있고 치열했던 남·북의 진군경로 등이 기록되어 있어 한국전쟁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흰색 광목천에 날염된 것으로, 태극문양과 4괘의 모양이 오늘날의 태극기와 규격이 같다. 네 귀퉁이에 '
사변폭발(事變爆發)'이라는 글자가 낱글자로 또박또박 써 있고, 가운데 부분의 상단에는 '단기 4283.6.25日'
이라는 글귀가 가로로 써 있다. 태극문양 주변에는 지명이 빼곡히 둘러 적혀 있다.
태극문양의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의정부에서부터 시작하여 서울, 안양, 수원, 천안,
그리고 태극문양의 제일 아랫부분의 대구까지 약 30여 개의 지명이 빙 둘러가며 씌어 있다.
또 거기에서부터는 부산, 영천, 경주, 충주, 이천, 10.5 서울입성, 승호리, 10.21 평양 등이 그 반대쪽으로
빙 둘러 씌어 있다. 이로 볼 때 태극문양의 오른쪽으로 둘러적힌 지명들은 북한군의 남침경로로 보이고
왼쪽으로 둘러적힌 지명들은 국군의 북진경로라고 한다.
불원복 태극기 등록문화재394
소 재 지; | 충남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230(독립기념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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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 전남 구례 일대에서 활약한 의병장 고광순(高光洵, 1848~1907)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태극기로,
머지않아 국권을 회복한다는 "불원복(不遠復)" 글자가 수놓아져 있어 항일 독립운동과 관련하여 사료적 가치가 크다.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 등록문화재395-1호
소 재 지; | 충남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230(독립기념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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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상해 대한민국임시의정원(大韓民國臨時議政院)에 걸렸던 것으로 전해지는 태극기(太極旗)로,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김붕준(金朋濬)이 부인과 함께 제작한 태극기이다. 두 폭의 천을 아래위로
이어 박아서 만든 바탕에 태극문양과 4괘는 색깔 있는 천을 오려서 박음질하였다. 태극문양의 양방과
음방은 동서 방향으로 맞물려 있다. 깃봉 쪽 아래위 모서리에 1m 길이의 묶음줄이 달려 있다.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 등록문화재395-2호
소 재 지; | 경기 광명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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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장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등을 역임한 김붕준(金朋濬, 1888∼1950) 일가가
소장하고 있는 태극기 3점은 부인인 노영재((盧英哉)가 1940년대를 전후하여 제작한 것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정부공보 제75호(대한민단 24년 8월 20일)에 게시된 태극기와 유사한 형태다. 특히 재봉틀
박음질 제작기법이나 제작구도를 볼 때 중경 임시정부 시절 제작된 김구(金九) 서명문 태극기(등록문화재 제388호)와
비슷하여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사의 국가 표상적인 맥을 함께 할뿐 아니라 국기 변천사를 알 수 있어 역사적 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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