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대문/ 사적 제 149 호 칠궁(七宮)
육상궁 (왼쪽 정빈 이씨 오른쪽 숙빈 최씨)>
칠궁(七宮), 이제 청와대를 거치지 않고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
궁궐은 조선시대를 알려주는 대표적인 장소입니다. 경복궁을 비롯해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이
잘 보존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5대 궁궐에는 이 4개의 궁에 경희궁이 더해집니다.
칠궁은 가장 서쪽에 있는 궁궐로 관광객들에게는 많이 잊혀진 궁이었습니다만 오늘날 점차
복원되면서 오히려 주변 시민들에게는 수많은 관광객들과 인파를 피해 조용히 관람할 수 있는
여유로운 궁궐로 꼽힙니다.
칠궁은 조선시대 역대 왕이나 왕으로 추존된 이를 낳은 생모이면서 왕비가 아니었던
후궁 일곱 여인의 신위를 모신 묘당입니다.
원래 조선 21대 영조의 친모이자 숙종의 후궁이었던 숙빈 최씨를 위해 세운 사당이었습니다.
육상궁이라고 불렸으며 영조의 어진이 후에 봉인된 냉천정(冷泉亭)이 함께 있었습니다.
이후 순종 융희 2년(1908)에 저경궁(儲慶宮), 대빈궁(大嬪宮), 연우궁(延祐宮), 선희궁(宣禧宮),
경우궁(景祐宮)이 이곳에 합류하면서 육궁(六宮)이 되었고, 1929년 덕안궁(德安宮)이
다시 이곳으로 옮겨와 칠궁이 되었습니다.
저경궁의 주인은 조선 제14대 임금인 선조의 후궁 인빈 김씨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
다른 곳에 있던 사당이 이곳으로 옮겨왔습니다. 연우궁은 영조의 맏아들이자 진종으로 추존된 효장세자의
생모인 정빈 이씨의 사당입니다.
선희궁은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생모이자 영조의 후궁이었던 영빈 이씨의 신위를 봉안한 사당입니다.
경우궁은 제23대 순조의 친모이자 정조의 후궁이었던 수빈 박씨, 가장 뒤늦게 합류한 덕안궁은
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생모가 되는 엄비의 사당입니다. 가장 뒤늦게 합류했지만 칠궁의
가장 중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사당 대부분이 수수하지만 이곳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당은 대빈궁입니다.
이곳의 주인은 바로 희빈 장씨입니다. 숙종의 후궁이자 경종의 친모이며 오늘날 가장
유명한 조선 임금의 후궁이기도 합니다.
화려하며 하단부 기단도 단이 조금 높습니다.
비록 폐위가 되기는 했지만 한때 중전이 되기도 했던 희빈의 이력을 배려한 조치라고 합니다.
오는 이제는 청와대 관람을 하지 않더라도 미리 예약만 하면 누구나 칠궁을 방문할 수 있습니다.
주중(화-금요일)에는 매일 5회씩, 토요일에는 10회 개방합니다. 회당 100명씩 관람이 가능하니
토요일을 제외하고는 여유도 있다고 합니다.
사전 예약 후 칠궁을 돌아 보다.
원래 칠궁은 종묘나 궁궐처럼 일반 시민이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는 장소였다.
그러나 1968년 1.21 사태가 발생하면서 시민의 관람이 금지됐다. 1.21 사태는 북한이 특수요원
31명을 침투시켜 청와대 기습을 시도한 사건이다.
문화재청이 칠궁의 문을 크게 넓히기로 한 건 정부의 ‘열린 청와대’ 방침과도 관련 있다.
정부는 지난해 부터 청와대 앞길을 24시간 개방하고 청와대 주변 5개 검문소의 차단막을
없애는 등 통제 위주의 경비체제를 개선하고 있다.
1.21 사태 이후 통제됐던 청와대 앞길이 반세기 만에 전면 개방되고, 청와대 경호를 이유로
관람이 제한됐던 칠궁의 문이 활짝 열렸다.
원래 이름인 육상궁을 두고 칠궁이라 부르는 이유는, 조선 역대 왕들의 친어머니로서 왕비에
오르지 못한 7 인의 신위를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시범개방에 따라 청와대 관람과 연계하지
않더라도 칠궁만 단독으로 관람할 수 있게 됐다.
칠궁 관람은 무궁화 동산에서 시작한다. |
경복궁 누리집에서 칠궁 관람을 예약하니 예약시간 10분 전까지 무궁화 동산으로
모이라는 안내 문자가 왔다.
무궁화 동산은 1993년 2월 25일, 고(故) 김영삼 대통령 취임 후 안가(안전 가옥)를
헐어내고 공원으로 조성한 곳이다. 이곳에서 신분확인을 하고 칠궁 출입 명찰을 받았다.
안내자를 따라 길 하나를 건너니 바로 사적 제149호로 지정된 국가문화재 칠궁이 보였다.
담장 넘어 건물 지붕이 옹기종기 보이고 한쪽으론 청와대 영빈관이 우뚝 솟아 있었다.
이곳은 원래 경복궁 후원이었지만, 부근에 청와대가 들어서며 경복궁 권역이 축소돼
경복궁 담장 밖에 위치하게 됐다.
재실 오른쪽으로 창와대 영빈관이 보인다. |
건물 앞에는 정문과 재실이 있고, 건물을 둘러싼 정원에는 정자와 소나무, 연못, 축대 등이
어울려 사당이라기 보다는 잘 가꿔진 정원 모습이었다. 재실을 지나 오른쪽 길로 걸어가니
육상궁이 보였다.
걷다보니 육상궁과 연호궁이 이정표에 나란히 써있다. |
육상궁은, 영조가 친어머니인 숙빈 최씨를 위해 지은 사당이다. 숙빈 최씨는
궁중 나인 신분이었으나 숙종의 비가 되어 영조를 낳은 신데렐라 같은 여인이다.
인현왕후를 비롯 어려서부터 어머니로 모셔야 하는 분들이 많았던 영조는
숙빈 최씨를 마음놓고 어머니로 부르지 못하며 살았다. 효심이 각별했던 영조는
왕위에 오르자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궁궐 가까운
곳에 사당을 짓고 재위 기간 중 200차례 넘게 육상궁을 방문했다고 한다.
관람객들이 연호궁이라 쓰인 사당 앞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
이후 숙종의 후궁이자 경종의 생모인 장희빈의 신위를 모신 대빈궁을 비롯하여,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의 선희궁, 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를 모신 경우궁
등이 추가되면서 현재 총 7개의 궁이 있으며,
이를 통틀어 ‘서울 육상궁’으로 부른다.
가장 눈길을 끈 건 역시 육상궁이었다.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육상궁 앞에 섰는데 연호궁이라 쓰
인 현판이 보였다. 해설사는 안쪽을 들여다 보라고 했다.
몸을 깊숙이 숙이니 안쪽에 육상궁이라 쓰인 현판 하나가 더 있었다. 시어머니격인 숙빈
최씨와 며느리인 영조의 후궁 정빈 이씨가 합사돼 있었던 것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죽어서도 함께 깃들어야 하는 운명이 불편할까,
아니면 적적함을 덜 수 있을까? 합사된 내력이 분명치 않다는 말에 고개가 갸웃해졌다.
사당 하나에 현판 두 개가 걸려있는 육상궁. |
육상궁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엔 장희빈의 신위를 모신 대빈궁이 자리하고 있었다.
숙종의 총애를 받으며 경종을 낳고 중전의 자리까지 올랐던 장희빈은 다시 희빈으로 강등돼
사약을 받고 죽음을 맞았다.
숙종이 내린 사약을 받지 않으려 발악했던 그녀의 신당은 다른 신당들과는 달리 기둥이 둥글다.
기둥 만이 그녀가 한 때 왕비였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숙빈 최씨를 그렇게 싫어했지만 죽어서는
한 울타리 안에 서로 이웃해 있다.
경종의 어머니자 숙종의 후궁인 장희빈의 사당. |
문화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7명의 신위를 모신 5채의 신당을 둘러보았다. 이곳에는 사극에 자주 등장하는
여인들의 기구하고 애닯은 이야기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영조가 휴식을 취하던 냉천정에선 발걸음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청와대 지역 안에
이렇게 아담하고 정갈한 공간이 존재한다는 게 놀라웠다. 일반 시민들에게는 존재 자체가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미처 알지 못했던 곳이다.
온 가족이 함께 칠궁을 관람하고 있다. |
경복궁 www.royalpalace.go.kr/ 문의전화 02-3700-3900
칠궁 특별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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