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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울 9일 한글날]1조원 가치가 있다는 또 하나의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 본은 언제나 볼 수 있을까

문화재방송 2018. 10. 9. 00:02

세계기록유산.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해례본

[훈민정음 "해례본"]이야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해례본은 간송 전형필에 의해 1943년에 세상에 나오게 된다


당시로선 존재 사실만 알려져 있던 훈민정음 해례본이 경북 안동에서 나왔는데

 조선시대 이한걸 가문에 소장되어 있었다.

그의 선조 이천이 여진을 정벌한 공으로 세종이 하사했다고 한다.



표지 2장에 본체 33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로 20센티미터,세로 32.3센티미터 크기이고,

처음 두 장이 망실되었는데 연산군의 기훼제서율을 피하기 위한것이라 한다.

간송은 이한결이 선조가 하사받은 것을 훈민정음 해례본인줄 알면서도 ,

그 가치를 알지 못하여 생활고 때문에 1000원으로 내 놨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1000원은 서울의 기와집 한 채 값으로,

고서 가격치곤 비싸다는 주위에 만류에도 불구하고 소개한 이에게

사례로 1000원, 해례본 값으로 1만원을 쳐 주며,

"훈민정음" 같은 보물은 적어도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통해,

한글이 천지인 삼재(三才)의 원리와 태극, 음양오행의 원리를 담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후 훈민정음 해례본은 간송에겐 지켜야할 목표로서 6‧25 전쟁 당시에도

오직 이 책 한권을 오동상자에 넣고  피란을 떠났으며, 잘 때도 베게삼아 잤다고 한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은 어디에…


 
 
 

입력 2014-06-25 03:00:00 수정 2014-06-25 10:27:18

한글 창제동기-의미-사용법 적은 해설서
6년전 발견됐다가 행방 묘연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 70호 훈민정음 해례본(왼쪽)과 2008년 경북 상주에서 발견된 또 다른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에서 발견된 해례본은 현재 소장자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훼손 우려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동아일보DB·문화재청 제공

5월 29일 대법원에서 흥미로운 판결 하나가 나왔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 상주본을 훔친 혐의로 기소된 고서적 수집상 배모 씨(51)에게 무죄를 확정하는 판결이었습니다. 이 해례본은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 70호 ‘훈민정음 해례본’과 동일한 책입니다.

이 해례본은 현재 배 씨가 갖고 있습니다. 무죄 판결이 나면 훈민정음 해례본을 공개하고 국가에 기증하겠다던 배 씨는 현재 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이 국보급 문화재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요. 과연 무사한 걸까요.


○ 또 하나의 ‘훈민정음 해례본’ 발견

2008년 7월, 문화재청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경북 상주시에 사는 고서적상 배 씨가 올린 글이었습니다. “집에서 고서적 한 권이 나왔는데 국보 문화재로 지정 신청하고 싶다”는 내용이었어요. 문화재청 전문가가 현장조사를 나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진 훈민정음 해례본이었기 때문이지요. 조사 현장에서 만난 배 씨는 “집을 수리하기 위해 짐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발견했다”고 했습니다. 조사를 해 보니 서문 네 장과 뒷부분 한 장이 없어졌지만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해 가치가 매우 높았습니다.


○ 법적 분쟁 속으로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한 달 뒤인 2008년 8월 상주시에 사는 골동상 조모 씨가 펄쩍 뛰었습니다. 조 씨는 “그 해례본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우리 집안 유물이다. 배 씨가 내 가게에서 고서적들을 30만 원에 사가면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슬쩍 끼워 훔쳐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고는 배 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지요. 조 씨는 2011년 6월 대법원에서 승소했습니다. 대법원이 “해례본을 절취한 배 씨는 조 씨에게 돌려주라”고 판결한 겁니다.

그러나 배 씨는 이를 거부한 채 해례본의 행방에 대해 입을 다물었습니다. 검찰과 법원이 세 차례에 걸쳐 강제 집행과 압수수색을 했지만 해례본의 행방을 찾지 못했습니다. 배 씨는 “내가 훔쳤다면 국보 지정 신청도 안 했을 것이다. 해외로 튀어도 벌써 튀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일이 난감해졌습니다. 배 씨가 해례본을 내놓지 않자 문화재청은 배 씨를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형사고발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형사소송이 시작된 것이지요. 배 씨는 2012년 2월 형사소송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2012년 9월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고 이번 최종 상고심에서도 무죄 판결이 난 겁니다.


○ 훈민정음 해례본이란

그럼, 훈민정음 해례본이란 것은 과연 어떤 책일까요. 훈민정음을 창제한 뒤인 1446년 정인지 등 집현전 학사들이 훈민정음의 창제 동기와 그 의미, 사용법 등을 소개한 해설서랍니다. 여기서 해례는 ‘예를 들어 해설을 한다’는 뜻이지요. 조선시대 당시엔 이 내용을 목판에 새겨 종이에 찍어냈습니다. 붓으로 한 자 한 자 글씨를 써서 만든 책이 아니라 목판으로 도장 찍듯 만들었기 때문에 아마도 여러 권을 만들었을 테지요.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르다 보니 종이가 삭아 사라졌을 수도 있고 불에 타 버렸을 수도 있지요. 그래서 그동안 존재가 알려진 해례본은 간송미술관이 갖고 있는 한 권뿐이었습니다. 간송미술관 소장 훈민정음 해례본은 국보 7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상주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의 경우, 발견된 지역의 이름을 따 편의상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간송미술관 것과 구분하기 위한 의미도 있답니다. 상주본이 간송미술관 것과 동일한 판본이라고 하니 그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요.


○ 상주본은 어디에

그런데 걱정입니다. 국보에 버금가는 이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배 씨는 대법원 판결 이전부터 “무죄 판결을 받아 나의 억울함이 밝혀지면 국가에 기증할 의사가 있다”고 말해왔습니다. 무죄로 판결한 대구고법과 대법원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공개하고 전문가들에게 맡겨 후손들을 위해 잘 보존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하고 “그것이 역사와 민족, 인류에 대한 책무”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무죄 판결이 나자 배 씨는 마음을 바꿔 공개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다 보니 훼손되지나 않았는지 걱정입니다. 문화재청은 배 씨가 해례본을 낱장으로 뜯어 비닐로 포장해 어딘가에 숨겨놓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문화재전문가들이 2008년 배 씨의 집을 찾았을 때 그가 낱장으로 뜯어놓은 것을 보여 줬기 때문이지요. 배 씨가 비닐로 싸서 항아리 등에 넣은 뒤 땅에 묻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랬다면 더더욱 걱정이 아닐 수 없답니다. 해례본은 습기에 민감한 종이 문화재이기 때문에 훼손의 우려가 더욱 심각하니까요.

우리의 한글, 훈민정음에 관해 가장 소중한 책이 바로 훈민정음 해례본입니다. 간송미술관본과 상주본 두 권밖에 없습니다. 그 하나인 상주본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태에 처해 있는지조차 모르는 이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빨리 세상 밖으로 나와 우리 모두와 함께하길 기대해봅니다.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40625/64628630/1



올 해 “572돌 한글날에도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은 볼 수 없다”

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소장자로 알려진 배익기씨가 지난해 4월 공개한 상주본의 일부 사진. 일부가 불에 그을려 있다.|배익기씨 제공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소장자로 알려진 배익기씨가 지난해 4월 공개한 상주본의 일부 사진. 일부가 불에 그을려 있다.

|배익기씨 제공


올해 한글날에도 국보급 문화재로 여겨지는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하 상주본)은 볼 수 없을 전망이다. 실소유자라고 주장하는 50대 남성은 문화재청과 법적 다툼을 이어가며 상주본의 실물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8일 상주본 소장자로 알려진 배익기씨(55·고서적 수집가)는 경향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여전히 (나를 둘러싼 오해가 풀리고 누명을 벗은 뒤에야 상주본을 공개할 수 있다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배씨는 올 4월 법적 소유자인 국가(문화재청)가 강제집행 등의 형태로 상주본을 회수하는 것을 막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2014년 상주본을 훔친 혐의(문화재보호법 위반)에 대해 진행된 형사재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대구지법 상주지원 민사부)는 지난 2월 배씨가 문화재청을 상대로 낸 ‘청구이의의 소’ 선고공판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법원은 관련 증거 등 공소사실이 부족했다는 이유로 형사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났을 뿐, 상주본의 소유권을 인정한 판결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당시 재판부는 “형사 판결에서 무죄는 증거가 없다는 의미일 뿐 공소사실이 없다는 게 증명됐다는 의미가 아니다”며 “원고는 국가 소유를 인정한 민사재판 결과 이전부터 상주본의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소송은 민사 판결 이후에 생긴 이의 사항에 대해서만 가능하다”고 판시했다.


배씨는 지난 3월 곧바로 항소했으며, 2심 판결을 앞두고 지난달 20일까지 두 차례에 걸쳐 변론절차를 밟았다. 

상주본의 소유권 등을 둘러싸고 민·형사 재판부의 판단이 달라지면서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게 됐다.

학계에서 “1조원대의 가치가 있다”고 할 정도로 귀중한 문화재인 상주본은 2008년 7월 배씨가 “집을 수리하기 위해 짐을 정리하던 중 발견했다”며 실물을 공개하면서 처음 존재가 알려졌다.


이후 상주의 한 골동품 업자 조모씨(2012년 사망)는 “배씨가 상주본을 훔쳐갔다”면서 민사 소송을 제기했고, 2011년 6월 대법원은 조씨의 손을 들어줬다. 


검찰은 민사 판결 등을 근거로 그 해 8월 상주본을 훔친 혐의(문화재법 위반)로 배씨를 구속했다. 1심 재판(2012년 2월)에서 배씨의 죄가 인정돼 징역 10년이 선고됐지만, 항소심(2012년 9월) 및 대법원(2014년 5월)은 “배씨의 소유권 주장이 사실이라고 확정하는 건 아니다”면서도 공소사실 입증 부족 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배익기씨는 형사 판결로 절도 혐의를 벗었지만, 대법원 판결 전까지 1년여 간 옥살이를 하는 등 고초를 겪은 점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문화재청이 자신에게 누명을 씌워 부당하게 징역형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배씨는 “진상을 가려서 당시 문화재청 관계자들을 처벌하고 명예가 회복된 후에야 공개 논의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가는 배씨에게 상주본 인도를 요구할 수 있다. 민사재판에서 이긴 조씨가 2012년 5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상주본을 국가에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힌 뒤 그해 12월 숨져, 법적 소유권자는 국가로 넘어간 상태이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상주본의 행방을 알지 못하는 데다 훼손될 우려까지 있어 당장 강제 집행을 하지는 못한다는 입장이다. 


문화재청은 상주본을 되찾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경북도·상주시·검찰 등과 함께 별도의 협의체를 꾸려 대응하고 있다. 배씨와도 수차례 만나 설득 작업을 벌였지만 접점은 찾지 못하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온 뒤에야 강제회수 등의 절차에 대해 논의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다만 법원의 판단과는 별도로 배씨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사태 해결의)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4월 상주본 일부가 불에 탄 상태로 촬영한 사진을 배씨가 공개하면서 훼손 우려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다. 소장자뿐만 아니라 문화재청의 소극적인 대처에 대해 비판이 제기됐다. 배익기씨는 “현재 (상주본을) 보관하고 있는 건 맞지만 보관 상태가 좋지는 않다”고 말했다.

              

오는 18일에는 배씨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청구이의의 소’와 관련해 3차변론기일이 예정돼 있다. 배씨와 문화재청과의 입장 차가 여전해 항소심 판결 이후에도 긴 시간동안 법적 공방은 이어질 전망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0081555001&code=960201#csidx89cc15c20eb53a493666a432247edc0



"상주 해례본 당장 공개할 용의 있다"

훈민정음 소장자 배익기씨 인터뷰
"조건 맞으면 상주박물관 전시할 터"
"지난 정권에 억울하게 당한 일들 진상규명 선행돼야"

김성대 기자  등록일 2018년10월07일 21시34분  
             


상주시 낙동면 소재 배익기 씨의 고서적 가게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570돌을 맞는 2018년 한글날에도 국보 1호 지정도 무리가 아니라는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에 대한 실체는 볼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소장자로 알려진 배익기 씨(55·상주시 낙동면)를 상대로 지난 한 해 동안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상주본을 세상에 내놓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렇다 할 결과를 얻지 못한 것.

이에 본지는 매년 한글날만 되면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배익기 씨를 만났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번 인터뷰를 통해 배 씨가 원하는 현실적인 조건만 해결해 주면 상주본이 세상에 공개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훈민정음 상주본을 배 씨가 정말 확실하게 소장하고 있는가.

△10여 년째 듣는 반복된 질문인데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은 확실하게 제 손에 있다. 이제 와서 안 가지고 있다고 하면 정말 우스운 얘기죠.

-그렇다면 보관상태는 어떤지가 국민의 최대 관심사인데 지금 어떤 상태인가.

△한 마디로 우려스럽죠. 게다가 불이 나 일부가 소실됐는데 온전하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최고 시설을 갖춘 박물관에서도 시간이 흐르면 훼손될 수 있는데 10여 년이 다 된 지금까지 발견 당시와 같은 상태라고는 할 수 없다.

-최근에 보관상태를 확인해 보고 우려스럽다고 한 말인가.

△그 질문에 대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웃음).

-앞으로 상주본을 어떻게 할 생각인가.

△상주본이 세상에 공개되는 날은 그동안 누차 얘기했지만 지난 정권 동안 자신이 억울하게 당한 일들에 대한 진상규명이 있어야 한다.

과거 1천억 원을 주면 내놓겠다는 얘기도 했지만, 그 당시는 너무 억울해한 소리고 지금은 자신에게 제안되는 현실에 따라 양보할 수도 있다.

-훈민정음과 관련된 많은 관계자가 지난 1년 동안 배 씨에게 여러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중 만족할 조건이 없었는지.

△국회의원과 문화재청, 기업, 상주시장, 상주시의회, 한글학회 관계자, 스님 등 많은 분이 찾아와 조건을 제시하며 상주본을 세상에 선보일 것을 제안했지만 사실 제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조건은 없었다.

-국민의 관심사에 대해 할 말은.

△제 억울함에 대한 진상 규명이 이뤄지고 제가 생각하는 어느 정도의 보상이 현실화된다면 내놓을 수도 있다는 뜻을 전하고 싶다. 단 훈민정음 간송본은 이미 서울에 있으니까 상주본은 상주박물관에 전시됐으면 좋겠다. 이는 상주시가 중앙정부를 설득해 분위기를 조성해 놓으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본인이 생각하는 보상금이 현실화되면 상주본을 세상에 공개하겠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죠(웃음). 시간이 지날수록 보관 상태가 크게 우려스러운데 계속 방치해 놓는 것은 국민의 도리는 아니죠.

-인터뷰 내용이 정말 모호하다. 본지를 통해 국민이 바라는 바를 시원하게 얘기해 줄 수는 없는지.

△저도 그런 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답변할 수밖에 없다.

한편 감정가가 1조 원에 달한다는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은 지난 법정에서 소유권이 배 씨가 아니라 문화재청이라고 최종 판결했지만 이에 대한 실체를 확인할 수 없어 해당 기관 및 관계자들은 최초 실체를 공개했던 1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소장자인 배 씨의 결정만 기다리고 있는 답답한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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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대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불국사(佛國寺)


불국사는 경상 북도 경주시 동쪽 토함산에 있는 절이다. 고려 시대에 만든 역사책

《삼국유사》에 따르면 이 절은 신라 경덕왕 때인 751년에 김대성이 세웠다.

그러나 불국사의 내력을 적은 《불국사 역대 고금 창기》에 따르면 이 절은 528년에

세웠다고 전한다. 또, 574년에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 부인이 절의 규모를 크게

늘렸고, 문무왕 때인 670년에 무설전을 새로 지었으며, 751년에 낡고 규모가 작았던

이 절을 당시의 재상 김대성이 크게 다시 지었다고 전한다. 이러한 자료를 참고로

할 때, 불국사는 처음에 작은 규모로 세워졌던 것을 김대성이 크게 늘려 지은 것으로

짐작된다.


불국사 경내 면적은 38만 8,570㎢이며, 사적 및 명승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내에 국보급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그 중 잘 알려진 문화재로는

국보 제20호인 '불국사 다보탑'을 비롯해 국보 제21호인 '불국사 삼층 석탑',

국보 제22호인 '불국사 연화교 칠보교’, 국보 제23호인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

국보 제26호인 '불국사 금동 비로자나불 좌상', 국보 제27호인 '불국사 금동

아미타여래 좌상', 보물 제61호인 '불국사 사리탑' 등이 있다.

<대문용 사진은 '산나라 산악회'에서 모셔왔습니다>


                                      [문화재방송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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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입니다."
휴일이면 가족과 더불어 각종 문화재와 함께 하여 민족의 숨결을 느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