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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중계] 88세의 김금화 큰 만신, '서해안풍어제(국가무형문화재)'의 맥을 잇다

문화재방송 2018. 11. 26. 00:21

기획. 취재. 촬영. 편집:문화재사랑 / 내레이션:한송이




국가무형문화재 제82-2호 서해안풍어제


예부터 바다를 생활의 근거로 둔 어촌마을에서 배를 가진 선주와 선원들이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제의가 행해졌는데 이를 풍어제라 한다.  인천은 황해도 해주, 옹진 일대와 섬 지방을 중심으로 한 난민들이 거주하게 되면서 황해도 굿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으며 서해안 풍어제가 잘 전승되어 오고 있는 지역이다.

'굿'이라 하면 오랜 역사 속에서 민간신앙으로 내려오고 있지만 때로는 미신이라 무시하고 탄압을 받았다. 이러한 '굿'이 점차로 전통문화의 뿌리를 찾는 연구가 폭 넓게 진행되면서 무속이라는 명칭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또한 우리 전통적 가무에 뿌리가 되는 모체로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서민생활의 애환과 삶이 함께한 강한 의지로 승화시키며 친목을 도모하는 축제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어려워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요즘 이 풍어제를 통해 풍요로움을 만끽하고 사람의 정을 느낄 수 있으니 어찌 아니 좋으랴. 종교적인 형태를 떠나 삶을 승화시키는 모습, 익살스럽고 재미있는 연희적인 요소, 신명나는 춤과 음악, 눈길을 끄는 화려한 무복들, 신의 위력으로 과시하는 여러 종류의 무구들과 현란한 칼놀림 뛰어난 무당들의 재주와 기능 이 모두가 종합적인 요소로 우리와 쉽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된다.


종합적 예술성을 갖고 있는 서해안 풍어제가 이제는 대중화되어 지역축제로 정착화되어가고 있으니 기쁜 일이다. 급속한 서구화로 전통문화 보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우리의 전통문화에 흥미와 관심을 갖고 서해안 풍어제를 통해 그 가치와 의미를 함께 나눴으면 한다.

원문보기

 http://www.incheo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327759#08hF


블로그 대문/조선 세종대 한·중 외교서 '봉사조선창화시권' 국보 승격


보물 제1404호봉사조선창화시권’(奉使朝鮮倡和詩卷)은 1450년 즉위한 명나라 경제(景帝)가 내린 문서를 전달하러 조선에 온 한림원시강(翰林院侍講) 예겸과 집현전 학사들이 문학 수준을 겨루며 쓴 시 37편이 수록돼 한중 외교사에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게다가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은 친필이 거의 전하지 않아 이들이 다양한 서체로 쓴 글씨가 남은 봉사조선창화시권은 서예사 연구에서도 귀중한 자료다. 본래는 책 형태였으나, 청나라 때 16m 길이 두루마리로 다시 만들었다.


명나라 사신과의 문학적 교유(交遊)는 단순히 조선 사대부 한 개인의 친분 관계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명 사신과의 교유를 통해 조선의 높은 문화 수준을 중국에 널리 알릴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명나라 측의 조선에 대한 인식을 드높이는 계기를 마련했던 것이다. 실제로 예겸의 시에 대한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의 품격 높은 화답은 예겸을 놀라게 하였고, 조선과 명의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명나라 사신들을 접대하기 위해 조선은 물질적인 공납의 제공뿐 아니라 시문 수창에 응할 인재를 뽑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러한 노력들이 있었기에 조선은 명이 멸망할 때까지 오랫동안 명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1958년 경 국내로 들어와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 등 당시 쟁쟁했던 문화재 애호가와 학자들의 감정을 받았다. 그때 작성된 감정기록이 지금도 전해오고 있어 작품의 가치와 역사적 의의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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