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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중계]흥겨운 풍년가를 부르다 마지막엔 지게 상여를 만들어 구슬픈 상여가 '화성두레농요'

문화재방송 2019. 7. 17. 07:18

기획: 문화재방송 / 취재. 촬영. 편집:문화재사랑





블로그 대문/유네스코 세계유산 수원화성 신풍루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조선 정조대의 역작품 ​



신풍루는 화성 행궁의 정문으로 1790(정조 14)에 누문 6칸을 세우고 진남루()라고 하였다.

1795년 정조는 신풍루로 고치라고 명하여 조윤형으로 하여금 다시 편액을 쓰게 하였다.

'신풍'이란 이름은 일찍이 한나라 고조가 '풍 땅은 새로운 또 하나의 고향' 이라고 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정조에게 있어 화성은 고향과 같은 고장이라는 의미로 편액을 걸게 한 것이다.

1795년 을묘 행차시에 신풍루 앞에서는 정조가 친히 참석하여 화성부의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고 굶주린 백성에게는 죽을 끓여 먹이는 진휼 행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현재 수원화성은 사적 제3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소장 문화재로

팔달문(보물 제402호), 화서문(보물 제403호),공심돈 등이 있으며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

블로그 대문/사적 제158호 대왕암(신라 문무대왕릉)


수중무덤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앞바다에 있다. 1967년 7월 24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158호로 지정되었다.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은 자신이 죽으면 불교식으로 화장한 뒤 유골을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681년 문무왕이 죽자 유언에 따라 화장한 유골을 동해의 큰 바위에 장사지내고, 그 바위를 대왕암이라고 불렀다. 바위는 둘레가 200m쯤 되는 천연 암초인데 사방으로 바닷물이 드나들 수 있는 물길을 터놓아 언제나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이 물길은 인공을 가한 흔적이 있고, 안쪽 가운데에 길이 3.7m, 높이 1.45m, 너비 2.6m의 큰 돌이 남북으로 길게 놓여 있어 이 돌 밑에 문무왕의 유골을 묻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다 수면은 이 돌을 약간 덮을 정도이다. 한편 바위의 안쪽 가운데에서 사방으로 물길을 낸 것은 부처 사리를 보관하는 탑의 형식을 적용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682년(신문왕 2) 양북면 용당리에 감은사를 지어 불력에 의해 왜구를 막으려 했는데, 〈삼국유사〉에는 감은사의 금당 아래를 깎아 동해로 구멍을 내어 해룡이 된 문무왕이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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