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문화재방송 / 취재. 촬영. 편집:문화재사랑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5호...서경욱 예능보유자의 맨발로 작두타기>
블로그 대문/유네스코 세계유산 수원화성 신풍루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조선 정조대의 역작품
신풍루는 화성 행궁의 정문으로 1790(정조 14)에 누문 6칸을 세우고 진남루(鎭南樓)라고 하였다.
1795년 정조는 신풍루로 고치라고 명하여 조윤형으로 하여금 다시 편액을 쓰게 하였다.
'신풍'이란 이름은 일찍이 한나라 고조가 '풍 땅은 새로운 또 하나의 고향' 이라고 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정조에게 있어 화성은 고향과 같은 고장이라는 의미로 편액을 걸게 한 것이다.
1795년 을묘 행차시에 신풍루 앞에서는 정조가 친히 참석하여 화성부의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고 굶주린 백성에게는 죽을 끓여 먹이는 진휼 행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현재 수원화성은 사적 제3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소장 문화재로
팔달문(보물 제402호), 화서문(보물 제403호),공심돈 등이 있으며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블로그 대문/고려 말 충신 최영 장군 사당 기봉사
<최영 장군 영정>
"최영 장군 사당"인 기봉사는 장군이 태어난 충남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에 있는데요,
약 100여 년 후엔 이 마을에서 사육신으로 유명한 성삼문이 태어 났습니다.
또 이어서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통쾌하게 궤멸시킨 김좌진 장군도 태어 납니다.
또 하나 세 분의 공통점은 모두 천수를 다 하지 못 하고 저 세상으로 떠났다는 점입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최영 장군은 이성계에게, 성삼문은 세조에게, 김좌진 장군 역시
좌익 분자에게 암살당합니다.
하늘의 뜻인가? 홍성은 가톨릭 순교 성지로도 유명합니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이말은 최영(崔瑩) 장군이 한 말이 아니라 최영의 부친 최원직이 한 말이라고 해요.
<최영 장군의 간추린 일대기>
고려 공민왕 때 원나라와 맞서 영토를 회복하고 왜구와 홍건적의 침입을 막은 고려의 명장.
양광도도순문사의 휘하에서 여러 차례 왜구를 토벌해 그 공으로 우달치가 되었으며, 공민왕 때
반원개혁을 단행해 영토수복을 위하여 인당, 신순 등과 함께 압록강 서쪽의 8참을 공략해 원을
내몰고 고려의 옛 영토를 회복했다. 1359년 홍건적 4만 명이 서경을 함락시키자 이방실 등과
함께 이를 물리치고 이듬해 서북면순문사가 됐다. 이후 신돈이 집권해 새로운 개혁장치가
시도되면서 좌천됐으며 훈작을 삭탈당하고 유배됐다. 이성계군이 개경에 난입했을 때 소수의
군사로 맞서 싸우다 체포돼 고봉에 유배되었다가 참수되어 목은 효수되고 시체는 길가에 버려졌다!
당시 장군의 나이 72세였다.
홍성 홍주 순교 성지
![]() |
▲ 생매장터 근처에 조성된 야외성전에 홍주순교성지를 알리는 비석과 비문이 있다. |
홍주 순교성지는 주변 솔뫼와 해미 순교성지에 비해 덜 알려졌다.
하지만 증거터 세 곳과 순교터 세 곳에서 느껴지는 순교자들의 신앙심은
여느 성지 못지 않게 짙다.
◀선조들의 숨결어린 문화재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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