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촬영. 편집. 내레이션:문화재사랑
블로그 대문/사적 제13호 송산리 고분군 중 백제 무령왕릉
무령왕릉은 무덤의 주인공이 정확하게 밝혀진 몇 안 되는 고대의 무덤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피장자가 백제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훌륭한 군주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무덤 안에서는 금으로 만든 관장식, 용과 봉황이 장식된 큰 칼, 글씨가 새겨진 팔찌 등 모두
4,600여 점에 이르는 다량의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12종목 17건이 국보로 지정될 만큼 소중할
뿐만 아니라 절대연대가 확인된 유물로서 백제사는 물론 한국 미술사 연구에 있어서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벽돌무덤이라는 중국 남조계통의 무덤 형식과 중국제 도자기, 일본산 금송(金松)을
사용한 관재 등의 존재를 통하여 당시 중국·일본과 활발한 교류를 전개한 백제사회의
국제성을 엿볼 수 있다.
무령왕릉은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산5-1번지에 위치하며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3호로 지정된
송산리고분군에 포함되어 있다. 송산리고분군은 백제의 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이 주종을 이루는데,
이 고분군에는 당시 중국양(梁)나라 지배계층 무덤의 형식을 그대로 모방하여 축조한
벽돌무덤[塼築墳]으로서 무령왕릉과 함께 제6호 벽돌무덤이 있다.
무령왕릉은 발굴조사 결과, 무덤 안에서 무덤의 주인공을 알려주는 묘지석(墓誌石)이 발견됨으로써
백제 제25대 무령왕(재위 501∼523)의 무덤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무덤에 안장된 무령왕의 관은 생전에 무령왕이 머물렀던 일본 오사카 남부 지방의 최고급 목재인
금송으로 짰다. 무덤 입구에는 선왕을 잘 지키라고 돌짐승을 배치하고 묘지(墓誌)를 써 넣었다.
또한 토왕(土王, 땅 주인)으로부터 1만 매의 돈을 주고 무덤 터를 샀다는 증서까지 넣고서
무덤을 봉했다.
4년 뒤 왕비가 죽었을 때 합장하기 위해 한 번 열린 이 무덤은 1971년 발굴될 때까지
1448년 동안 굳게 닫혀 있었다.
참고문헌
・ 공주시 문화관광 http://tour.gongju.go.kr
문화재청
http://www.cha.go.kr
사진 출처:'사진으로 보는 세상' http://blog.daum.net/wongiky/7726154
대왕암의 위치 : 경북 경주시 양북면(陽北面) 봉길리(奉吉里)
문무왕<文武王>의 아들 신문왕<神文王>은 동해변<東海邊>에 감은사<感恩寺>를 창건하고 금당<金堂> 밑에 동해<東海>를 향하여 구멍을 뚫어 동해<東海>의 조수<潮水>가 금당 밑까지 들어오게 하였는데, 이는 동해<東海>의 용<龍>이 된 부왕<父王>이 조수<潮水>를 따라 금당까지 들어온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한 대왕암이 바라다보이는 인근 해변에 이견대지<利見臺址>가 있는데 신문왕<神文王>이 이곳에서 대왕암<大王岩>을 망배<望拜>한 곳이다.
<이견대에서 바라본 대왕암 >
신라 제30대 문무왕<文武王>(재위<在位> 661-681)은 본명이 김법민<金法敏>이고,
무열왕<武烈王>의 맏아들로 백제<百濟>와 고구려<高句麗>를 평정하고,
당<唐>나라 세력을 몰아 내어 삼국통일을 완수한 신라의 영주<英主>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문무대왕은 평상시 지의법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왜병을 진압하려 한다.”
지의법사 : “용은 짐승인데 하필 짐승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문무대왕 : “내가 세상의 영화를 싫어한지 오래다. 만약 조금이라도 나라에 보탬이 된다면
짐승이 되어도 내가 품고 있는 뜻에 부합될 것이다.”
<감은사지>
문무왕<文武王>의 아들 신문왕<神文王>은 동해변<東海邊>에 감은사<感恩寺>를 창건하고 금당<金堂> 밑에 동해<東海>를 향하여 구멍을 뚫어 동해<東海>의 조수<潮水>가 금당 밑까지 들어오게 하였는데, 이는 동해<東海>의 용<龍>이 된 부왕<父王>이 조수<潮水>를 따라 금당까지 들어온다고 생각한 것이다.
수중릉(대왕암)으로 가는 길
경주시내에서 문무대왕 수중릉(일명 대왕암)으로 가는 길은 두 군데가 있다. 첫째, 보문단지를 지나 덕동호를 넘어 추령터널로 가는 길이 있고, 두번째는 경주시내에서 울산 국도로 가다가 불국사로 접어들어 석굴암길로 올라가는 중턱 즈음에서 오른쪽으로 향하면 장항리로 넘어가는 길도 있다.
그러나, 그 옛날 신라시대에는 이 두 길을 사용하지 않았으리라 상상해 본다. 경주시내에 황룡사가 있지만, 덕동댐내 덕동교를 지나면 황룡동이 있고 이 동네의 산골짜기에도 신라시대 때도 있었는지 모를 황룡사란 절이 있다. 이 절을 지나 한티버든이란 재를 넘으면 도통골로 이어진다.
도통골의 바로 밑에는 부처님이 설법을 강연했던 곳인 기림정사의 이름을 딴 기림사란 절이 나온다. 신문왕이 감은사를 낙성하고 산의 신(神)인 김유신 장군과 바다의 신(神)인 문무대왕으로 부터 만파식적을 얻어 왕경으로 돌아가는 길에 점심을 먹었던 곳이 기림사의 서쪽 있었다는 기록으로 추정해보면, 아마도 이 길을 따라 경주시내에서 동해구에 있는 감은사, 문무왕의 수중릉인 대왕암에 이르렀을 것이다.
만파식적(萬波息笛)
만파식적은 나라의 모든 근심과 걱정이 해결된다는 신라 전설상의 피리다.
신라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하여 감은사를 짓고 추모하는데, 죽어서 바다용이 된 문무왕과 하늘의 신이 된 김유신이 합심하여 동해의 한 섬에 대나무를 보냈다.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부니, 적의 군사는 물러가고,
병은 낫고 물결은 평온해졌다고 한다.
이 설화에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흩어져 있던 백제와 고구려 유민의 민심을 통합해 나라의 안정을 꾀하려 했던 호국 사상과 모든 정치적 불안이 진정되고 평화가 오기를 소망하는 신라인들의 염원이 담겨 있다.
◀선조들의 숨결어린 문화재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입니다"
www.문화재방송.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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