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취재. 촬영. 편집:문화재사랑
어업에 종사한다는 말은 고기를 잡으러 멀리 바다로 나가는 과정이라든가,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고, 때로는 비바람을 맞으며 잡은 고기를 배위로 끌어당기는 모습, 또는 잡은 고기를 잔뜩 싣고 깃발을 펄럭이며 돌아오는 모습, 등을 연상하게 된다. 다행이 만선이라도 되는 날은 요란한 북소리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돌아오고, 이들의 어촌 마을은 한바탕 천지를 진동하는 잔치를 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서해안의 인천 근해는 한강과 임진강의 하구와 만나는 곳이므로 어류가 풍부하였는데, 옹진군 덕적도라든가 이에서 멀지않은 강화도의 새우젓이 유명하고, 청골이나 사리골 등지에는 조기나 민어 등 어류자원이 풍부하여서 인천지방은 물론이고, 인근 지역의 많은 어선들이 몰려들어 활발하게 고기잡이가 이루어졌던 곳이다.
또한 바닷물이 빠져나가는 썰물이 되면 바닷가 마을의 아낙네들은 갯가에 모여들어 조개 등 어패류를 채취하면서 고달픈 삶을 영위해 왔다
인천을 중심으로 한 서해안 지역의 어업 관련노래에는 남정네들이 불렀던 <어선 뱃노래>와 <시선 뱃노래>가 있고, 아낙네들이 갯가에서 조개잡이를 할 때 불렀던 <갯가노래> 등이 대표적이다.
어선 뱃노래에는 <닻감는 소리>를 비롯하여 <노젓는 소리>, <바디소리>, <배치기>, <쟁기소리>와 <간닦는 소리> 등이 포함된다.
현재 인천시가 무형문화재 3호로 지정하여 보존ㆍ전승하고 있는 갯가노래와 뱃노래의 주요 구성 곡들은 1. 노젓는 소리 2. 그물소리 3. 바디소리 4. 군음 5. 나나니타령 6. 시선뱃노래 7. 닻감는 소리 8. 배치기의 순으로 짜여 있다.
블로그 대문/고려 마지막 왕을 충성으로 모신 왕곡마을
궁예가 자신의 꿈대로 새로운 세상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왕건은 그의 나라를 이어받아 고려를 건국하고 후삼국을 통일해 다시 하나된 국가를 세웠다. 그러나 고려도 500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라지고 말았는데, 그 마지막 흔적이 공교롭게도 고려의 시작이었던 태봉국 도성터에서 멀지 않은 고성 왕곡마을에 남아 있다.
고성 왕곡마을에는 고려 말 공양왕의 최측근이었던 함부열이 끝까지 공양왕을 모시며 충성을 다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공양왕이 왕좌를 내어주고 이곳 고성까지 쫓겨 오자 함부열은 왕을 따라 고성에 정착하게 되었다. 예부터 왕곡마을은 물에 떠 있는 배의 형태인 행주형 지형인데, 이는 풍수지리상 사람과 재물이 모이는 명당이라 여기는 곳이다. 해안에서 내륙 쪽으로 1.5킬로미터 정도 들어온 곳에 위치해 눈에 잘 띄지 않는데다가, 야산에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골’형태의 분지를 이루고 있으니 사라진 나라의 충신들이 몸을 숨기기에 제격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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