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농요(固城農謠):국가무형문화재 제84-가호
국가무형문화재 제84-가호. 고성지역에서는 예로부터 농군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여러가지 소리를 불렀고, 아낙네들은 길쌈하면서 길쌈소리를 많이 부르기로 유명하였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조선 말기에 통영으로 가던 경상감사가 고성을 지나다가 농군들의 모심기소리에 도취되어 상을 내리고 떠났다고 한다. 1970년대에 고성읍내 농군들이 농사짓기소리와 길쌈하기소리를 엮어서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출연하여 입상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1985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1998년 현재 예능보유자로 유영례(柳永禮, 앞소리)·김석명(金石明)이 지정되어 있다. 고성농요에는 모찌는 소리로 긴등지·짜른등지, 모심는 소리로 긴등지·점심등지·짜른등지·해걸음등지, 김매기소리로 상사디야·방아타령·치기나칭칭 등을 부르고, 이밖에 도리깨질소리가 불린다.
길쌈소리에는 물레질소리·삼삼기소리·베틀가 등이 불린다. 고성농요는 경상도 민요에 흔히 보이는 메나리토리가 많다. 그러나 이 농요는 경상도 서남지역 민요가 그렇듯이, 다른 고장 농요보다 느리고 또 전라도가 가까워 육자배기 시김새가 끼어 있어 꿋꿋하면서도 매우 처량하게 들린다.
경상남도에서 모찌고 모심을 때 부르는 노래를 정자·정지·덩지 등으로 부르는 데 고성지방에서는 등지라 한다. 긴소리는 다른 지역에 견주어 매우 느리고 처량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뭉클하게 한다. 뿌리깊은나무의 『팔도소리전집』에 취입되었다
블로그 대문/ 국보 제224호 경회루(慶會樓)
물가에 비친 경회루ⓒ김세운 기자
경복궁 경회루는 북악산과 인왕산을 배경으로 삼아 그 아름다움은 항상 돋보인다. 경회루는 각종 달력과 문화재 책자에 단골로 등장한다. 경복궁을 찾는 관람객들은 항상 이곳을 찾는다. 경회루에서 보는 북악산 일대와 주변 전경은 최고의 경치로 평가 받고 있기도 하다.
태조 이성계는 스스로 왕이 되어 조선을 개국하고 즉위 4년째인 1395년 경복궁을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궁의 규모는 390여칸이었으며 정전인 근정전, 연생전, 경성전 등이 갖추어져 있었으나 경회루는 없었다.
당시 경회루 위치에는 작은 누각 정도만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1412년 (태종 12)태종은 서루(西樓)가 기울어지고 위태롭자 누각을 수리할 것을 지시했다. 공사를 총지휘한 것은 노비출신의 공조판서 박자청이었다. 노비출신임에도 공조판서의 지위에 오를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건축 기술을 인정받았기 때문이었다. 박자청은 경복웅 서쪽의 땅이 습한 것을 염려하여 루(樓)를 에워서 못을 파고 경회루를 건설하였다.
누각이 완성되자 태종은 누각의 이름을 지을 것을 명하였고 하륜은 그 이름을 경회루라 명하였다.
하륜의 ‘경회루기(慶會樓記)’를 살펴보면 경회루라는 이름을 갖게된 사연이 나와있다. “대개 인군(人君)의 정사는 사람을 얻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니, 사람을 얻은 뒤에라야 ‘경회(慶會)’ 라 이를 수 있을 것이다 (…) ‘경회’라는 것은 군신 간에 서로 덕으로써 만나는 것을 의미 한 것이니, (중략) 옛일을 상고하건대, 요ㆍ순ㆍ우ㆍ탕ㆍ고종ㆍ문왕ㆍ무왕 같은 이가 임금이 되고 고요(皐陶)ㆍ기(夔)ㆍ백익(伯益)ㆍ이윤(伊尹)ㆍ부열(傅說)ㆍ여상(呂尙)ㆍ주공(周公)ㆍ소공(召公) 같은 이가 보좌가 되면 참으로 경회라 이를 것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임금과 신하가 조화롭게 정치를 잘 하기를 바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름을 짓고나서 태종은 세자인 양녕대군에게 ‘경회루’라는 글씨를 쓰게 하여 그것을 편액으로 삼았다. 경회루는 외국사신을 접견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임금과 신하가 덕으로써 만난다는 뜻에 맞게 임금과 신하들이 함께 연회를 베푸는 공간으로도 활용됐다. 때로는 기우제가 치러지기도 하고 무과 시험이 치러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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