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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장 칼럼}왜 발렌타인데이에 안중근 의사를 기리게 되는가

문화재방송 2015. 2. 11. 09:47

[운영장 칼럼]왜 발렌타인데이에 안중근 의사를 기리게 되는가

 

 

2월 14일은  발렌타인데이다. 왜 이날 우리는 안중근 의사를 기리게 되는가?

간악한 일제로부터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기 때문이다.

              또 있다. 

발렌타인데이를 이렇게 들뜨게 만든 장본인들이 바로 일본

상인들이라는 사실이다.

 

        발렌타인데이는 269년 또는 270년 2월 14일에 순교한 로마의 성 발렌티누스

기념일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발렌타인데이와 초콜릿을 연결시킨 나라는 일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1958년 일본의 제과회사 모리나가가 '2월 14일 하루만이라도 여성이 남자에게 자유로이
사랑을 고백하게하자'는 캠페인을 내놓으면서 '초콜릿을 선물하며 고백하라'는  말을 끼워넣었다. 
당시에는 크게 호응받지 못하다가 1970년대에 들어와서 인기를 끌게 되었고,
1980년대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와 일부 젊은이들을 들뜨게 만드는 축제(?)로 변모했다.

 

 
 

 <안중근 의사>

 

 

 

 

1910년 2월 14일 오전 10시 
여순관동도독부 지방법원 
일제의 무도한 재판은 겨우 6회 개정으로 이등박문을 응징한 안중근 의사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동지 우덕순,조도선,유동하 등에게도 징역형이 언도되었다.  
사형선고를 받은 안중근 의사는 "이보다 더 극심한 형은 없느냐"고  반문하면서  
시종일관 의연한 자세를 보였다.

 

<안중근의사께서  갇히셨던 감방앞에 있는 설명문>

 

<안중근 의사 께서 갇히셨던 감옥의 창문>

                                                                     <죄수들을 사형시켰던 교수대> 

                                                        ( 당시 안중근 의사 께서도 이곳에서 돌아가신듯 ....)

 

2월 14일 사형선고를 받은 날부터 약 2개월 후-
3월 26일 오전 9시께  안중근 의사는 전날 고향으로부터 보내온 조선옷으로 갈아입고
형장으로 나아가기 전에 약 10분간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사형집행 직전 마지막 유언을 묻는 검찰관에게 "나의 거사는 동양 평화를 위해 결행한
것이므로 임형관리들도 한일간에 화합하여 동양평화에 이바지하기 바란다"고 한뒤
'동양평화만세'를 부르려 했으나 제지당했다.
오전 10시, 안중근 의사는 의연한 자세로 순국했다.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에서 문명이 높던 성균진사 안태훈과 백천조씨의 장남으로
 태어난 안중근 의사는 32살에 순국했다.
 
비록 젊은 나이에 호국의 영령이 되었으나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기 위해 생명을 
바친 수많은 선열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민족정기의 발양자였다.

 

안의사가 순국하기 1년전- 1909년 3월 5일경,
11명의 동지와 함께 왼손 무명지를 끊어 그 피로'대한독립'이라는 네 글자를 쓰고
'대한독립만세'를 세 번 외치며 하늘과 땅에 맹세하고 조국의 독립회복과 동양평화를
위해 몸바칠 것을 다짐했다.
 
1910년,  안중근 의사가 일제로부터 사형을 언도 받은 2월 14일,
이 뜻깊은 날, 대한민국이 일본 상인들의 간교한 상술이 원동력이 된 발렌타인데이로
들떠 있어서야 되겠는가?.
 

 

의거 직후 중국 뤼순 감옥의 안중근 의사(맨 왼쪽).

의거 다음날 1909년 10월27일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에서 찍은 안 의사 부인 김아려 여사와 아들 분도, 준생(오른쪽 위).

안 의사의 둘째 아들 준생, 동생 정근, 정근의 아들 원생, 안의사의 딸 현생, 동생 공근의 아들 우생.

<안중근 의사 기념사업회 제공>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등 3의사 묘역과 안중근 의사 가묘(맨 왼쪽) / 효창공원>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유언은 자신의 시신을 고국에 묻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형된 그날 밤 한 일본 간수가 그의 시신을 뤼순 감옥 터 뒤에 황급히 매장했다고 한다. 이후 1945년 11월 중국에서 돌아온 백범 김구는 순국한 독립운동가의 유골을 찾아 국내에 봉환하기로 한다. 이듬해 6월,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등 세 분의 독립운동가의 유골을 일본에서 찾아온 후 효창공원에 안장하지만 안중근 의사를 위해서는 네 번째 '허묘'를 만든다. 이것은 안중근 의사의 시신을 꼭 찾겠다는 김구의 결심을 보여준다. 하지만 1949년 김구 역시 안두희의 암살로 사망하고 2008년 남북 정부는 광복이후 처음으로 안중근 의사 유해 공동 발굴에 나섰지만

유해는 찾지 못하고 위치 또한 찾지 못했다.

[국방부·보훈처 업무보고] 안중근 의사 유해, 地下탐지 나서기로

  • 양승식 기자
  •  

    입력 : 2015.01.20 03:00

    보훈처 "地表투과 레이더로"


    보훈처 관계자는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옛 뤼순 감옥 묘지에 매장됐을 가능성과 관련, 이 지역에 지표투과레이더(GPR) 조사를 할 수 있도록 중국 측에 요청해놨다"며 "뤼순 감옥 일대는 군사 지역이거나 문화재 보호 구역 등으로 묶여 있어 제대로 조사가 이뤄지지 못했었다"고 했다. 이와 함께 광복 70주년 기념사업으로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와 매헌기념관 및 충칭 임시정부 청사 재개관, 한국광복군총사령부 건물 원형 복원도 추진된다.

    보훈처는 또 독립 유공자 발굴·포상 대상도 연 300명에서 500명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6·25 참전 미등록자도 5만명 이상 분석·발굴해 국가유공자로 등록한다는 방침이다.는 광복 7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안중근 의사 유해 매장지로 추정되는 중국 지역에 대한 지하 탐지 작업을 벌일 계획이라고 19일 밝혔다. 또 국가유공자의 명예로운 생활 보장을 위해 매월 지급되는 보훈 보상금을 물가 인상률(1.8 %)의 2배가량인 3.5% 수준으로 높일 예정이다.

     

    국민 80% "발렌타인데이 초콜릿 선물 문화 바꿔야"

    최종수정 2015.02.11 09:42기사입력 2015.02.11 09:42

    케이서베이 발렌타인데이 인식 관련 설문조사 결과..."부담스럽고 상술에 이용당해"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오는 14일 이른바 '발렌타인데이'와 관련해 우리나라 국민들의 80%가 초콜릿을 주고 받는

    현재의 문화가 부담되고 업체의 상술에 놀아나는 등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케이서베이가 최근 남녀 263명을 대상으로 발렌타인데이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기념일의 취지는 좋으나 현재의 문화가 옳지 않으며, 다른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이 전체의 55.5%로 나타났다. 또 '제과업체의 판매수단이기에 없어져야 하는 문화'라는 답도 25.8%로 나왔다. 현재의 발렌타인데이 문화에 대해 전체의 80.3%가 개선 필요 또는 부정적인 의견을 보인 것이다. '기념일로써의 의미가 있다'라는 응답은 전체의 17.4%에 불과했다.

    여성이 초콜릿을 준비해 남성에게 주는 것에 대해서도 남ㆍ녀 모두 부담스러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발렌타인데이가 일부 제과업체들의 마케팅 수단이라는 인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남녀별 인식도 조사에는 여성의 52%가 '마케팅 수단이라 생각이 들지만, 상대방을 생각해서

    준비한다'고 답변했다.

    이어 19%가 '연인간의 기념일이지만 부담이 된다'고 답했다. '연인간의 기념일 이기에

    개의치 않는다'는 의견은 12.1%에 그쳤다.  

     


     

    일본 정부는 '독도(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고 거국적인 '독도(다케시마)의 날'행사를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초콜릿 물결이 부끄럽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