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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중계...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다

문화재방송 2018. 2. 19. 07:21

취재. 촬영. 편집;김종문


<판소리 '심청전'가운데 심청이가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장면을 들으면 눈물이 저절로...>



판소리

 

1964년 12월 24일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으며 2003년 11월 7일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세계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되어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평양성도 / 모홍갑판소리도

평양감사부임도' 중 명창 모흥갑의 판소리 장면.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


판소리란 한 사람의 창자(唱者)가 한 고수(鼓手)의 북장단에 맞추어 긴 서사적인 이야기를

소리(唱, 노래)와 아니리(白, 말)로 엮어 발림(몸짓)을 곁들이며 구연(口演)하는

창악적 구비서사시(口碑敍事詩).



 판소리의 구성

판소리는 소리광대가 서서 소리도 하고 아니리도 하고 발림도 하며 긴 이야기를 엮어 나가고 고수는 앉아서 추임새를 하며 북장단을 치는 판놀음의 한 가지이다.

그래서 판소리란 ‘판놀음으로 벌이는 소리’라는 뜻이다. 소리라는 말에는 음향(音響)이라는 뜻도 있지만 선소리·김매기소리·짓소리에서 볼 수 있듯이 노래라는 뜻도 있다.

판놀음이란 널찍한 마당을 놀이판으로 하여 음악·춤·연극·곡예 따위의 놀음을 순서대로 짜서(판을 짠다고 한다) 벌이는 놀음을 가리키며, 판놀음으로 벌이는 놀음에는 흔히 ‘판’자를 붙이는데, 줄타기는 판줄, 춤은 판춤, 굿(農樂)은 판굿, 염불은 판염불, 소고놀음은 판소고, 소리는 판소리라 한다.

옛 문헌에서는 판소리를 본사가(本事歌)·타령(打令)·잡가(雜歌)·극가(劇歌)·창가(倡歌)로 적기도 하였으나 이두식으로 적은 본사가라는 말을 빼고는 판소리를 가리키는 고유명칭이 아니다. 타령·잡가는 속악(俗樂)이라는 뜻이며 극가는 극적인 노래라는 뜻이고 창가란 광대가 부르는 노래라는 뜻이다.

광대는 한편 창우(倡優)·창부(倡夫) 또는 노릇바치라 이르는데, 판놀음에서 소리·춤·재담·곡예 따위를 섞어 놀음을 벌이는 연희자(演戱者)를 뜻하는바, 그 장기에 따라 소리광대·줄광대·어릿광대·대광대·탈광대로 나눈다.

이 가운데 소리광대가 가장 대우를 받았다. 솜씨가 뛰어난 소리광대를 명창(名唱)이라 하고 또 이를 예우하여 가객(歌客)이라 이른다. 가객은 본디 정가(正歌)를 부르는 이를 뜻하였다. 광대는 청창옷에 초립을 쓰는 것이지만, 명창으로 꼽힌 가객은 창의를 걸치고 통영갓을 쓰고 갓신을 신었다.

판소리에서 노래로 부르는 것을 소리라 하고 말로 하는 것을 아니리라 하지만 선율로 하든, 말로 하든 장단(長短)을 치지 않고 자유리듬으로 하는 것을 아니리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말로 하는 아니리는 말조아니리, 선율로 하는 아니리를 소리조아니리라고 갈라 부르는 이도 있다. 명창 가운데는 소리조를 잘 하는 소리광대가 있고 아니리를 잘 하는 아니리광대가 있었으나 모두 능한 이를 대명창으로 꼽는다.

판소리에서 광대가 소리나 아니리로 이야기를 엮으며 몸짓하는 것을 발림이라 하고 그 밖에 너름새 또는 사체라고도 이른다. 발림이란 춤이나 놀이에서 벌이는 몸짓을 뜻하는 것으로, 판소리에서 발림은 소리에 따른 춤가락스러운 몸짓, 소리가락을 강조하기 위한 몸짓, 사설의 극적 내용을 그리는 몸짓을 포함한다.

발림은 하는 법이 있어 명창 가운데에는 김창환(金昌煥)과 같이 발림을 많이 한 명창이 있고 송만갑(宋萬甲)과 같이 발림을 아껴서 한 명창이 따로 있지만 모두 발림하는 법에 따르는 것은 같다. 고수는 취고수(吹鼓手) 또는 고인이라 하여 삼현(三絃)재비를 뜻하기도 하지만 판소리에서 고수는 북장단치는 재비를 뜻한다.

판소리에서 고수는 광대의 소리에 따라 장단을 치는 한편 광대에게 소리의 한 배를 잡아주고 장단과 박(拍)을 가늠하게 하며 추임새로 극적 상대자 구실을 할 뿐만 아니라 소리의 맺고 푸는 것을 알아서 북의 통과 가죽을 가려 치므로 고수의 구실이 무겁다 하여 일고수(一鼓手) 이명창(二名唱)이라는 말이 전해 온다.

판소리에서 광대의 소리에 흥이 나면 고수나 관중이 ‘좋다’·‘얼씨구’ 따위의 감탄사를 질러 흥을 돋우는 소리를 추임새라 한다.

고수의 추임새는 광대의 소리를 추어 흥을 돋우는 구실, 소리의 공간을 메워주는 구실, 장단의 박을 대신하는 구실, 광대의 상대역으로써 연극성을 돋우는 구실, 광대 소리의 음악 또는 극적 요소를 돋우어주는 구실 따위가 있다.

판소리는 관아나 마을 또는 사가(私家)의 잔치에서 불렸다. 판소리를 벌이는 놀이판을 소리판 또는 소리청이라 하였는데, 소리판은 관아·마을·사가의 마당이나 큰 대청마루에서 벌어졌다.

줄타기·땅재주·무동춤과 함께 판놀음으로 벌이기도 하고 또 판소리 홀로 소리판놀음으로 벌이기도 하며 조선 말기에는 방안놀음으로 벌이는 경우도 많았다.

소리청의 가운데 돗자리를 깔고 광대는 창의를 입고 통영갓을 쓰고 갖신을 신고 부채를 들고 상석(上席)을 향하여 서서 갖가지 소리도 하고 아니리도 하고 사설(辭說)과 소리에 따라 발림도 하며 구경꾼을 웃기고 울리고, 고수는 두루마기 차림에 갓을 쓰고 북을 앞에 놓고 비껴 앉아 광대의 소리에 북을 치고 추임새도 한다.

조선 중기에는 소리광대가 여러 이야기를 판소리로 짜서 불렀던 가운데 열둘을 골라 판소리 열두마당이라 부르니 그것이 송만재(宋晩載)의 ≪관우희 觀優戱≫와 정노식(鄭魯湜)의 ≪조선창극사 朝鮮唱劇史≫에 보인다.

≪관우희≫에는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가루지기타령>(변강쇠타령)·<배비장타령>·<장끼타령>·<옹고집타령>·<강릉매화타령>·<왈자타령>·<가짜신선타령>이 나왔다.

≪조선창극사≫에는 ≪관우희≫와 같되, <왈자타령>을 <무숙(武淑)이타령>이라 하였고 <가짜신선타령> 대신에 <숙영낭자전>을 들고 있다.

판소리 열두마당은 조선 후기에 하나씩 사라져 조선 말기에 활동하던 명창을 마지막으로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 다섯마당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전승이 끊어졌다.



이달의 블로그 대문 보물 제281호 남원 광한루 (南原廣寒樓)

조선시대의 재상 황희가 남원에 유배가서 1418년 현재보다 규모가 작은 누를 지어 광통루(廣通樓)라 했는데, 1434년 남원부사 민여공(閔汝恭)이 증축했고, 1444년(세종 26) 전라관찰사 정인지(鄭麟趾)에 의해서 광한루라 불리게 되었다.

오작교

하늘에 사는 옥황상제의 딸 베짜는 직녀와 미천한 소몰이 견우가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하여

결혼을 하게 되었다던 그 전설속의 다리랄까~

하늘나라 견우와 직녀의 사랑은 신분의 벽을 뚜어 넘은 이도령과 성춘향의 사랑과 흡사한데

이러한 전설을 지상에 펼쳐놓은 것이 광한루원의 호수와 오작교인것 이다

그래서 오작교는 까마귀 오(烏), 까치 작(鵲), 다리 교(橋)자를 쓴다

시인묵객들은 궁궐에는 경회루가 있고, 지방에는 광한루와 더불어 평양의 부벽루,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를 우리나라 4대 누각이라 불려지는데 그 중 으뜸은 광한루라 했다.

경회루는 궁궐의 건물로 황실에서 지은 곳이며 지방의 누각 중 평양의 부벽루는 애석하게도 아직은 가볼 수 없는 곳이고, 진주 촉석루는 625 때 불에 타 지금의 건물은 19605월경 복원한 것으로 복원 역사가 짧으며, 밀양의 영남루 역시 1844년에 지어 복원 역사가 길지 않다.

그러나 광한루는 1419년에 지어 1597년 정유재란 때 불탔으나 1626년에 복원한 건물로 복원 역사 면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광한루가 더욱 유명하게 된 것은 이몽룡과 성춘향의 로맨스가 익어진 곳이기에 서민의 가슴에는 더욱 애틋하고 정감어린 곳으로 뇌리에 각인 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춘향 사당의 춘향 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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