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촬영. 편집.내레이션;김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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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대는 남부지역(낙동강 서쪽지역)의 탈춤을 가리키는 말로,
초계 밤마리 마을 장터에서 놀던 광대패들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낙동강을 중심으로 부산 동래, 수영 지방에서는 들놀음, 통영, 고성, 가산 지방에서는 오광대로 불린다.
‘오광대’란 다섯 광대 또는 다섯 마당으로 이루어진 놀이라는 뜻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도 하고,
오행설(五行說)에서 유래된 오(五)에서 온 것이라고도 하는데, 오행설 의견이 유력하다.
전에는 정월 대보름을 중심으로 행해졌으나 현재는 봄, 가을에 오락적인 놀이로 공연되고 있다. 통영오광대는 통영지역에서 행해지던 놀이로, 1 00여 년 전 마을사람들이 마산의 창원오광대를 보고 와서 시작한 것이라고도 하며 원래 창원 구읍(지금의 마산시)
사람으로 창원오광대를 놀던 이화선(李化善)이 충무시에 이사와서 전파한 것이라고도 전한다. ![]() 문정전은 왕실 가족의 신주를 모신 혼전(魂殿)으로 쓰인 경우도 있었고, 영조의 첫째 왕비인 정성왕후와 철종의 비인 철인왕후의 혼전으로 사용되었다. 이곳은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라고 명하고 서인으로 폐한 곳이기도 하다. 그 후 뒤주는 홍화문 남쪽에 있는 선인문 안뜰로 옮겨졌고, 사도세자는 8일 동안 굶주림과 더위에 신음하다가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 사도세자의 비극: 1762년 윤5월 13일 문정전 앞뜰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집권 세력 이였던 노론은 어릴적부터 노론을 싫어했던 세자가 대리청정을 시작하자 위기감을 느끼고 영조에게 온갖 모략을 고했다. 노론 세력 이였던 세자의 처가와 누이 화완옹주 등이 이에 합세하였고, 생모 영빈이씨가 이날 영조에게 유언비어를 고하여 결국 영조는 세자에게 자결을 명하기에 이른다. 문정전 앞뜰에 놓인 커다란 뒤주에 갇혀 한여름 더위와 허기로 8일 동안 신음하던 세자는 28세의 짧은 생을 비참하게 마감했다. 영조는 세자의 죽음 후 그를 애도한다는 의미로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렸다. ( [문화재방송 캠페인] 문화재에는 우리 민족의 얼과 혼이 숨 쉬고 있습니다.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입니다." 휴일이면 가족과 더불어 각종 문화재와 함께 하여 민족의 숨결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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