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어젯밤 꿈에 선생님이 나왔어요”
“으응?”
“내가 학교 생각을 하지도 않았는데 선생님이 꿈에 나와서 좋았어요.”
“그래, 선생님도 00이가 선생님 꿈에 나오도록 해야겠다.”
이렇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함께 웃었던 초등학교 1학년 우리반 아이가 오늘 아침 주먹을 쑥 내민다.
“선생님, 선물이에요.”
“응?”
“선생님, 스승의 날 선물이에요. 이거 비눈데, 내가 어제 성당에서 만든 거예요.”
“아...... 그래.”
어떨 결에 받았지만 고맙다는 말을 할 수도 없었고, 마음만 받겠다고 돌려주기도 난처했다. 아이 엄마를 통해 몰래 되돌려줘야 하나, 그러면 선생님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할 텐데 어쩌나 하다가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그런 걸 보면 나는 교직 경력 20년이 넘었어도 아직 교직 정신이나 준법정신이 투철하지 못한 불량 교사인 모양이다. 매우 단호하게 그러나 다정하게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00이 마음은 잘 알겠어요. 선생님이 이 비누를 아주 잘 썼다고 생각할게요. 집으로 가져가서 가족들과 쓰세요.”
“00아, 선생님은 선물을 받는 사람이 아니에요. 선생님은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학생들에게 선물을 받으면 선생님은 선생님을 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앞으로도 이런 선물을 주면 안돼요.”
1학년 담임을 하다보면 이런 난처한 경우가 한 둘이 아니다. 사탕 하나, 껌 하나, 과자 한 조각 내미는 손을 어떻게 거절하나, “내리 사랑이라는 말이 있단다, 선생님은 너희들에게 선물도 주고 과자도 주고 젤리도 주고 할 수 있지만, 선생님은 어른이니까 어린이인 너희들에게 주는 것이지. 어린이인 너희들은 그렇게 많이 받아서 쑥쑥 자란 다음에 어른이 되면 그때 어린이들에게 주는 거란다. 그러니까 선생님한테 이런 거 주는 거 아니야.”라고 퉁치며 넘어가기에 비누는 참, 애매했다.
“얘들아, 우리는 왜 학교에 올까?”
“공부하러요.”
“맞아, 우리는 모두 여러 가지 공부를 하려고 학교에 오지. 그런데 공부는 누가 가르쳐주는 걸까?”
“선생님이요.”
“맞아, 선생님이 가르쳐주지. 그런데 우리반에 선생님은 모두 몇 명이라고 했지?”
“어, 스물세명이요.”
“와!!!! 똑똑이들. 잘 기억하고 있네. 맞아, 우리는 학교에 와서 서로서로 보고 배우는 관계니까 서로에게 모두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고 했지. 선생님도 너희들을 보면서 배우는 게 많다고 했고. 지금까지 서로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네”
“그런데 오늘 00이가 스승의 날이라고 좋은 선생님이 되어주어서 고맙다고 자기가 만든 비누를 가져왔어요. 우리반에 선생님이 23명이니까 교실에 두고 우리 모두 같이 써요. 어때요?”
“좋아요!!”
다들 환히 웃는데 비누를 건네준 그 아이의 표정만 알 듯 말듯하다. 이렇게 마무리하지 않으면 어째야 하는가, 아직도 정답을 도통 모르겠는 나는 불량교사임에 틀림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나의 해석이 김영란법 위반이라면 기꺼이 ‘피고’의 자리에 설 용의가 있다는 것을 함께 밝힌다. 모두를 황량하게 하는 유권해석이라니, 스승의 날 즈음이면 언제나 죄인이 되는 기분을 그들은 모를 것이다.
5월 15일 스승의 날은 교사의 날이 아니다. 교사가 스승이 될 수는 있지만, 모든 교사가 스승이 될 수 없으며, 가르치는 직을 업으로 하는 이들은 교사만 있는 것도 아니다. 대학 교수를 비롯하여 온갖 학원의 강사, 평생교육센터나 문화센터의 강사들도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한다.
“당신의 저의 스승이십니다.”라는 고백은 가르치는 직을 업으로 하는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그들을 따랐던 이들의 언술이어야 한다는 뜻에서 “스승”이라는 명사는 타자의 명사다. “너희들은 모두 나의 제자들이지”라고 하지만 어느 교사도 “나는 너희들의 스승이다”라고 감히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제발, 스승의 날 교사‘만’까기는 그만 하면 좋겠다. 아이들과 보람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도 스승의 날만 다가오면 우울증에 빠지는 교사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오죽하면 교사들이 스승의 날의 폐지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2018년)을 올리고, 스승의 날을 폐지하지 못하면 “교육의 날”로 바꿔달라는 청원(2019년)을 올리겠는가! 스스로를 스승이 아니라고 칭하는 교사들을 왜 스승의 날 호명하며 잠재적 범죄자인 양 모욕을 주는가!
나는 스승이 아니다. 나는 전문직업인으로 나의 직에 충실하고자 언제나 노력하지만 부족함이 끝이 없는 월급쟁이 교사일 뿐이다. 거기에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선물로 들고 온 비누 하나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끙끙거리는 그야 말로 불량교사일 뿐이다.
‘보건의 날’이지 의사의 날이 아니 듯, ‘과학의 날’이지 과학자의 날이 아니 듯, ‘법의 날’이지 판사의 날이 아니 듯, ‘철도의 날’이지 기관사의 날이 아니 듯, ‘체육의 날’이지 운동선수의 날이 아니 듯, ‘스승의 날’은 ‘교육의 날’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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