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유학 중 3·1독립운동 참가
임정 첫 여성 의원, 1944년에 숨져
3·1절 맞아 추모 음악회 열려
3·1절을 맞아 여성 독립운동가 김마리아(1892~1944) 선생을 추모하는 음악회가 열렸다. 제목부터가 ‘당신을 잊지 않았습니다’다. ‘한국의 잔다르크’라고까지 불리며 3·1 운동의 한 불씨 역할을 했던 김마리아를 재조명하는 자리다.
김마리아선생기념사업회와 이화여대 음악연구소가 공동 주최해, 3월 3일 오후 7시30분 이화여대 음악관 김영의홀에서 열렸다. 김마리아를 기리는 노래 ‘님이여 어서 오소서’(이건용 작곡·홍준철 작사)가 초연될 예정이다.
황해도 장연군 소래마을의 만석꾼 집안에서 셋째 딸로 태어난 김마리아는 서울 정신여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여자학원에 유학 중 1919년 2·8독립선언에 참가했다.
2·8 독립선언서 10여 장을 미농지에 복사해 평생 한 번 입은 기모노 띠 속에 감추고 2월 15일 부산항으로 입국해 광주·대구·서울을 거쳐 황해도까지 독립선언문을 운반했다. 이렇게 3·1 독립운동에 참여한 선생은 3월 6일 체포됐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김구 선생과 함께 황해도 의원으로 당선돼 활동하기도 했다. 첫 여성 의원이었다. 이어 다시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공소시효가 끝난 1933년 고국으로 돌아왔으나 독립을 한 해 앞둔 44년 3월 13일 5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그의 유품은 수저 한 벌이 전부로 현재 정신여고 ‘김마리아관’에 보관돼 있다.
이송죽 김마리아선생기념사업회 실행이사는 “고문 후유증으로 일생을 고생하고 ‘나는 대한의 독립과 결혼했다’고 하면서 혼신의 힘을 바친 한국 독립운동의 대모 같은 분”이라며 “여성교육의 선구자이자 김마리아 선생의 집안을 빼고는 한국 독립운동을 얘기할 수 없을 정도인데도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추모 음악회라도 열리는 김마리아는 그나마 ‘괜찮은 처지’라고 해야 할까. 현재까지 알려진 전체 독립유공자 1만4300여 명 중 여성 독립운동가는 272명으로 전체의 3%도 안 된다.
심 소장은 “그나마 지난해 영화 ‘암살’에서 독립운동가 남자현(1872~1933) 역을 맡은 배우 전지현이 전투적인 여전사의 모습을 새롭게 보여주면서 그 이후 여성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어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심 소장은 “한말 최초의 여성 의병장이자 독립운동가 윤희순(1860~1935),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1862~1927), 의열단을 이끈 김원봉의 부인으로 총을 들고 전투에 참여한 박차정(1910~44) 여사 등 새롭게 조명할 여성 독립운동의 역사가 많다”며 “여성 독립운동을 재조명하는 일은 한국 어머니의 역할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때 어머니들이 금 모으기에 적극 나섰던 것은 우연이 아니라 그 같은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여성 독립운동가를 다룬 책으로는 『조국과 여성을 비춘 불멸의 별 김마리아』(김영란 지음), 『당신이 알아야 할 한국사 10:인물편』(서경덕·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지음), 『조선의 딸, 총을 들다』(정운현 지음) 등이 나와 있다.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
출처: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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