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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답사기

[문화유산 답사기]진안 마이산의 3대미스테리와 이성계 장군이 신선으로터 '금척'을 받은 사연

문화재방송 2019. 12. 19. 05:21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봉우리 2개가 높이 솟아 있기 때문에 용출봉(湧出峰)이라 하여 동쪽을 아버지, 서쪽을 어머니라 하였다고 한다.



마이산은 계절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다른데, 봄에는 안개 속에 우뚝 솟은 두 봉우리가 쌍돛배 같다 하여 돛대봉, 여름에는 수목 사이에서 드러난 봉우리가 용의 뿔처럼 보인다 하여 용각봉(), 가을에는 단풍 든 모습이 말 귀처럼 보인다 해서 마이봉, 겨울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인다 해서 문필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문화재로는 마이산탑(전북기념물 35), 마이산줄사철나무군락지(천연기념물 380)를 비롯하여 은수사()·금당사() 등의 고찰이 있다. 금당사에는 괘불탱(:보물 1266), 목불좌상(전북유형문화재 18), 석탑(전북문화재자료 122)

등의 문화재가 있다.

(태고종 은수사)



신라시대에는 서다산(西多山)이라 불렀으나 조선시대 태종이 남행(南幸)하여 그 모양이 말의 귀와 같다 하여 마이산이라 하였다. 이 마이산은 정면보다 측면에서 보면 정말로 말이 귀를 쫑긋 세운 것처럼 보인다. 지금은 속칭으로 동쪽을 수마이산(667m), 서쪽을 암마이산(673m)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뾰족하고 굳건하게 서 있는 산이 동쪽 산이고, 부드러우면서도 육중한 멋을 드러내는 것이 서쪽 산이다.


마이산의 3대 미스테리



첫째는 이갑룡이란 도인이 1884년부터 1914년까지 30여년간 쌓았다는 80여기의 탑, 제갈공명의 팔진도법을 응용해 쌓았다는 이 탑들은 천지탑 일광탑, 월광탑, 궁탑, 용탑 등 각각 고유한 이름을 갖고 있다. 각기 다른 탑형은 상반된 두가지 기, 즉 음양의 이치와 상생과 오행의 원리에 따라 배치했다고 한다.




 






이영돈PD 놀리로 푼다에 2부작으로 방영된적이있다. 마이산 탑에 관한 내용이다.

세상에 그런게 어디있냐구요?? 분명한건 있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 신비는 이갑룡 처사가 이 탑을 완성한 후 하늘의 계시를 받고 썼다는 30권의 神書 한글도 한자도 아닌 제 3의 글자이다. 이 처사는 "영에 통달한 사람이 나오면 이 글의 뜻을 알 게 될 것이며

제세의 비법을 터득하게 될 것" 이라고 유언 했다는 것이다.

이 신서는 일제에 의해 27권이 사라지고 3권이 전해져오다가 1권은 10여년 전 분실되고 현재 2권이 남아 있다. 영능력자 김영기 법사는 신서를 영시 한 후 "산신과 대화한 결과를 적었다기보다는

개인적인 비망록 같다. 예언적인 내용도 일부 담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마이산의 마지막 신비는 역고드름. 돌탑 아래 떠놓은 정한수가 거꾸로 칫솟아 오르며 얼어붙는 현상을 말한다. 이 역고드름 현상은 겨울에 나타나며 학자들은 대류현상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근거는 없다.

                                                  

<蛇足>


'50여 년 전이다, 

헤리티지가 기자 시절의 일이다. 역고드름 속에 기이한 글자가 보인다는 연락을 받고 

현장으로 달려 갔다. 분명히 글자 형태가 보였으나 도저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역고드름 속의 글자'라고 촬영하여 KBS 9시 뉴스에 방송됐다.




은수사에는 태극전이라고 불리고 있는, 다른 사찰에는 없는 특이한 전각이 있다. 태극전의 이름은 ‘정명암’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즉, 정명암이란 이름은 음양오행의 순환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때 ‘태극’은 그 상징이 되는 것이다.



이 전각에는 조선왕조의 이태조와 마이산에 얽힌 설화물에 관한 자료가 소장되어 눈길을 끈다. 은수사 태극전에는 몽금척도가 걸려 있는데 이는 이태조가 신인으로부터 금척을 받는 장면의 상상도이다. 그 내용인즉 이태조가 아직 왕위에 오르기전 한때의 꿈에 신인이 금척을 주며 이르기를 “이 금척으로 장차 삼현강토를 재라”는 요지의 말을 했다는 것인바 이후 이태조가 운봉의 왜구를 물리치고 개선길에 마이산에 들렀을 때 이 산의 모습이 전에 꿈속에서 신인으로부터 금척을 받던 장소와 같음을 보고 산의 형태가 금을 묶었다는 뜻인 속금산이라고 명명했다는 데에서 마이산을 조선조 창업의 천명지라고 여기고 태극전에다 몽금척도와 금척의 복원품, 궁중무용에서 조선창업의 천명을 노래한

몽금척무 족자와 목각판을 소장한 것이라한다

여기에는 삼라만상을 통치하고 왕실의 무궁함을 송축하는 의미가 있는 일월 오봉도가 있다.

이는 조선 태조가 조선창업의 경사를 받았다하여 은수사 태극전에 걸려 있게 되었다고 한다.


천연기념물 제386호  은수사청실배나무(銀水寺 청실배나무)

은수사의 청실배나무는 조선조(朝鮮朝)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가 명산인 마이산을 찾아와 기도를 마친 뒤, 기도를 원만히 마쳤다는 증표로 씨앗을 심은 것이 싹이 터 자란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이곳 주민들은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마이산의 은수사를 중심으로 태조의 업적을 기리고 명산기도에 얽힌 전설을 기리기 위해 현재에도 해마다 마이산제와 몽금척(夢金尺)을 시연하고 있다. 또한 이곳은 지형과 지세의 영향으로 산 밑에서 산정을 향해 바람이 불 때 거센 회오리 바람이 되며, 이 때 청실배나무의 단단한 잎이 흔들리면서 잎들이 서로 마찰하여 형용키 어려운 소리가 난다고 한다



블로그 대문/대한민국 최초의 교회, 백령도 중화동교회 


 


  (출처- http://blog.daum.net/lilyfield/7837077)


  (출처- http://blog.daum.net/lilyfield/7837077)


한국 기독교의 역사는 19세기의 바깥으로 밀려든 선교의 물결과 더불어 시작된다. 그 물결이 가장 먼저 닿은 곳이 서해의 백령도가 속해있는 대청군도이다. 대청군도와 인근해역은 바깥 세계와 접촉하는 해상의 중요한 교통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1816년 맥스웰(Murrey Maxwell)대령이 이끌던 선단에 클리포드(H.J.Clifford)해군 대위가 자비로 승선하여 각 지역의 언어를 수집하고 선교 가능성을 탐사하기 위해 백령도에 정박하여 성경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그 후 1832년 칼 귀출라프(Karl F.A.Gutzlaff)가 영국 런던 선교회의 파송을 받고 동인도 회사 무역선에 통역 겸 선상 의사로 승선하여 개신교 선교사로는 처음으로 조선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그는 클리포드의 비망록을 기초로 하여 백령도에 정박해 있으면서 선교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후 여러 선교사들이 조선에 입국하기 전 백령도에 임시 정박하여 선교활동을 펼치면서 조선의 사정을 알아보고 기다리는 역할을 했다는 기록들이 남아있다.


그 후 1898년 백령도 진의 첨사 자문역으로 참사 벼슬을 지냈던 허득이 복음의 씨앗을 받고 그 곳에 유배 되어온 김성진, 황학성, 장지영 등과 함께 한학 서당에 증화동교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1884년 9월 20일 알렌 선교사의 조선 입국보다도 50여년이나 앞서 복음의 씨앗이 백령도에 떨어졌고 조선인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최초의 중화동 교회가 세워졌다는데 큰 의의를 둘 수 있을 것이다. 


백령도는 많은 빼어난 자연 경관을 자랑하는 관광지로 백령 기독교 역사관을 비롯하여 허득 참사 기념비 등 여러 선교 유적지가 잘 보존되어져 있고 심청전의 인당수가 가까이 있어 심청이의 유적지 이기도 하다. 특히 백령 기독교 역사관은 군비를 들여 지어진 역사박물관으로 백령도 주민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유적지이다.


백령도주민 90%가 기독교 신자이고, 용왕제나 풍어네, 제사가 사라진지 오래다.


◀선조들의 숨결어린 문화재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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