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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답사기

[유네스코 세계 유산] 1500년 동안 천연색이 그대로인 고구려 왕릉의 벽화는 살아 있다.

문화재방송 2020. 3. 26. 00:06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고구려 고분

  (The Complex of the Koguryo Tombs; 2004)

 

 

 

 

 

고구려 고분군(高句麗 古墳群)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북한에 있는 고구려시대 후기의

고분군이다.

 

대부분이 평양직할시와 평안남도 남포에 걸쳐 있다. 2004년 7월 1일, 유네스코 세계유산 위원회(WHC)

쑤저우(蘇州) 회의에서, 중국 랴오닝 성과 지린 성에 걸쳐 소재하는 고대 고구려 왕국의 수도와 무덤군과

함께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세계 유산에 등재된 북한의 고구려 유산은 5개 지역 고분 63기(벽화 고분 16기 포함)로 구성되어 있는데

중국에 있는 고구려 유산에 비해 규모는 적은 편이다.

 

강서 대묘(江西大墓)를 포함해 동명왕릉(東明王陵), 쌍영총(雙楹塚), 약수리 무덤, 수산리 무덤 등이

대표적이다.

 

안악 3호분처럼 많은 무덤 안에 아름다운 벽화가 있다. 벽화는 10,000여 개의 고구려 고분 중 90곳에서만

발견된 매우 드문 것으로 고분군의 주인은 왕족이거나 계급이 높은 귀족일 것으로 여겨진다.

 

 

동명왕릉

 

  고구려는 기원전 277년부터 서기 688년까지 1,000여 년 가까이 존속한 왕국이다.

 

중국 랴오닝(遼寧) 성 환런(桓仁) 현에 세워진 고구려는 3세기에 지린 성 지안(集安) 시의 국내성으로

수도를 옮겼다가 427년에 오늘날의 평양시 태성산 지역으로, 그 후에는 오늘날 평양시 중심부의 장안성이 있는

곳으로 수도를 옮겼다.

 

평양 지역은 오랫동안 고대 왕국 고조선의 수도로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라는 전략적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고구려는 수도를 이곳으로 옮겨와 국가 발전에 무척 힘을 썼다.

 

고구려는 중국 북동부에서부터 한반도의 절반에 이르기까지 영토를 확장시키며 동아시아의 강력한

왕국으로 부상했다가 668년에 멸망했다.

 

고구려에서 가장 유명한 문화유산은 돌과 흙으로 된 봉분으로 덮인 수백 개의 석조 고분들이다.

고구려가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흙 봉분이 덮이고 벽화들이 그려진 고분이 일반화되었고,

다른 지역에서도 이러한 고분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고구려 고분은 대개 지난 수천 년 동안 몰래 발굴되어 왔기 때문에,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 발굴된

고분은 그 수가 매우 적다.

 

따라서 발굴된 유물 역시 온전한 것이 매우 적다. 많은 고분이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1905년에

 이르러서야 고구려 고분은 비로소 세계적인 관심을 끌게 되었다.

 

이 시기는 일제강점기였기 때문에 최초의 과학적인 연구 및 기록은 1911년과 1940년대 사이에 일본

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정기적인 연구와 발굴, 기록은 1945년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고분에 들어가는 것을 제한하거나

새로운 입구를 만드는 등의 소소한 보존 조치는 1940년대 초반에 이루어졌다.

 

정기적인 관리와 보호, 보존 활동은 적절한 법적 조치가 마련되고 유산 관리자를 지정한 1946년에

시작되었다.

 

 

 

 

강서대묘

 

 

 

 

안악 3호분

 

 

 

무용총

 

 

 

중국과 한반도에서 발견된 10,000기 이상의 고분들 중에서 거의 절반이 고구려 고분이며, 이러한

고분들은 왕을 비롯한 왕족, 귀족들의 시신을 매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고분의 벽화는 당시의 생활상을 독특한 방식으로 보여 주는데 많은 고분 중에서 90기에서만 이러한

벽화를 찾아볼 수 있다. 북한의 5개 지역에 있는 63개의 고분이 고구려 고분에 포함되는데 이들은 5~6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중 강서 삼묘(江西三墓)와 동명왕릉, 그리고 16개의 다른 고분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고구려의 범위는

오늘날 중국 북동부의 지린(吉林) 성에서부터 북한의 평양시까지 아우르고 있으므로, 양국의 역사 유적들은

오랫동안 고구려의 역사적 기원을 둘러싼 분쟁의 소재가 되었다.

 

북한이 역사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고구려가 한반도의 옛 왕국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중국의 역사가들은

고구려의 유물들이 지리적으로 중국 국경 안에 있으며 중국이 소유하고 관리해 왔다는 점에서, 고구려가

중국 역사의 일부라고 주장해 왔다.

 

양국은 각자의 영토에 모두 속한 고구려의 유산을 별도로 세계유산목록에 등재하는 것을 ‘비정치적’인

행위로 여기는 데 동의했고, 현재 유적을 보존하는 동시에 관광지나 연구 자원으로

활용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당시에 한반도의 삼국 중 하나였던 고구려는 700년 동안 26명의 왕이 통치하며 존속했다.

들은 모두 고구려인의 행복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군사력을 증강하려고 노력했다.

 

고구려는 북방의 침략자들에 대항해 싸워야 했기 때문에 고구려 사람들은 조직적으로 단결되어 있고,

전술 또한 잘 습득하고 있었다. 고구려에는 독특한 문화와 더불어 높은 수준의 교육, 사회, 정치,

군사 체계가 발달했다.

 

고구려의 고분 벽화들은 풍부한 색채와 색조를 갖추고 있다. 벽화에 그려진 춤추는 여인, 훈련 중인 전사,

하늘의 새와 용, 강의 물고기, 숲의 짐승, 바람, 구름 등은 매우 현실적이고 생생하여 마치 그림 속에서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덕흥리 고분

 

 

용강대묘

 

 

약수리 고분

 

 

 

 고구려 고분은 왜 페르시아 양식을 닮았을까

권오영의 21세기 고대사

 

▶ 권오영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직접 유적을 발굴하는 고대사 학자로, 역사학과 고고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자연과학과 공학적 연구를 역사 탐구에 활용하는 학제 간 융복합 연구에 관심이 많다.

평안남도 남포시 용강에 있는 고구려 고분 쌍영총의 무덤방의 천장을 아래에서 쳐다본 모습. 들여쌓기 방식으로 쌓은 말각조정식 천장이 우물 내부처럼 보인다. 이런 방식은 페르시아 문화권 건축물에 흔하다. 권오영 교수 제공

 

평안남도 남포시 용강에 있는 고구려 고분 쌍영총의 무덤방의 천장을 아래에서 쳐다본 모습. 들여쌓기 방식으로

쌓은 말각조정식 천장이 우물 내부처럼 보인다. 이런 방식은 페르시아 문화권 건축물에 흔하다. 권오영 교수

말을 타고 몸을 비틀어 활을 쏘는 이른바 ‘파르티안 샷’이 그려진 고구려 고분 무용총의 벽화. 파르티안 샷은 페르시아 계통의 파르티아에서 전래된 활쏘기 방법이다. 권오영 교수 제공

 

말을 타고 몸을 비틀어 활을 쏘는 이른바 ‘파르티안 샷’이 그려진 고구려 고분 무용총의 벽화. 파르티안 샷은 페르시아

계통의 파르티아에서 전래된 활쏘기 방법이다. 권오영 교수 제공

 

블로그 대문 / 청동거울의 비밀. (우주를 담아 놓은 청동거울)

                             

청동기의 유물들은 우리에게 값진 것을 알려 줍니다.

특히 국내 청동거울들은 다양 하며 발전 과정을 자연스럽게 보여 줍니다.

저는 이 청동거울을 보는 순간 주역의 우리의 태극기가 생각 났고 그리고 이 주역을 보는 순간 당시 시대의

우주를 그려 놓은 작품임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말하는 초기 윤도(쇠) 이자  당시 하늘을 그려 놓은 작품입니다.

우리 청동거울의 뒷면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이것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 한번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림 1. 다뉴세문경                                                          그림2 :  금관가야 청동거울

         사진 출처 : 문화재청                                                        사진 출처 : 가야 문화연구소

http://www.cha.go.kr/                                               사이트 http://todori.inje.ac.kr/~kaya/  

기원전 4세기

 

 

미스터리 다뉴세문경

 

다뉴세문경에는 많은 무늬들이 있습니다 이 무늬들이 무엇을 상징할까요?

많은 분이 알다 시피 . 무늬가 1만 3천개 입니다.이 동경은 태양 (해)를 상징합니다.

( 1만 3천은 태양과 관련된 숫자라는 것을 추측할 뿐 입니다.)

또한 주술적인 의미로서도 해석 되지요. 당시 왕이나 이 청동거울의 소유자는 주술사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 당시의 동경 자체는 얼굴을 보기 보다는 점을 치는데 이용했다고 하는 것이 옳은 것이겠지요.

물론 사후세계에 다시 태어나는 윤회를 상징할수도 있습니다.

1만 3천년은 지구가 새로운 종교와 함께 점점 바뀌는 인류를 보는 년도입니다..

일단 여기까지는 많은 분이 아시는 것을 적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부터 미스터리가 시작 됩니다.

 

청동거울의 비밀.

 

다뉴세문경의 상하좌우의 8개의 동심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 동심원이 무엇을 뜻하는지 밝혀 내는데 그리 큰 시간이 걸리진 않았습니다.

역사 스페셜 만 봐도 알 수 있는 것 입니다.

 

 

 

그림3                                      (kbs 역사 스페셜 중)

 

 

자 저 별무리를 보시면 동심원이 보이시죠?

즉 저 청동거울의 동심원은 나선형 은하를 그려 놓은 것 입니다.

 

 


                    돌에 새겨진 은하                                       청동기에 새겨진 은하

 

 

저는 한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조선 시대에 8개를 그렸다는 것은 결국 8개의 나선형 은하를 관찰했다는

것을 의미 하는 것인가? 그러면 당시 시력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 좋았다는 것을 의미 하는 것 아닐까요?

갑자기 호루스(해의신)에 매의 눈이 생각 나는군요. ! 일단 주장하기에 앞서 다른 청동거울도

살펴 보아야 겠지요? 

 

 

 

 

                        가야 문화 연구소의 사진을 크게 봅시다.

 

A 부분에 동심원 2개와 반구 1개를 그려 총 세개로 만들어 놓은 물체가 바로 고조선에서 의미하는 동심원

( 나선형은하 )입니다.

그리고 저 D의 사각형은 간단히 말하자면 피라미드입니다.

상하 좌우로 방위를 의미하는 바닥 돌이나 선돌을  T 모양으로 그려 넣었습니다.

 

A.      일부를 확대 시켜 놓은 그림

 

 

오호라 전기(고)조선의 것과 모양이 발전했지 확실하게 똑 같은 의미로 만들어진 것은 확실한 듯 싶습니다.

반구는 나선형은하에 핵을 의미 하나 보군요.

 

 

그런데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습니다 바로 B지역 부분인 은하들이죠. 12개군요.

12개~! 동선은 이전 은하에 비해 하나 뿐이 없습니다.

 

 

 

 

 

 

 

가야의 장식 뚜껑 무엇을 의미 하나?

 

저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 하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유추를 해봤습니다.

자 이제 가야 시대의 황도 십이궁을 볼까요?

 

      그림 : 왼쪽  가야문화 연구소 무늬 장식뚜껑 [소가야]               오른쪽 청동거울 [소가야]

http://todori.inje.ac.kr/~kaya/  가야 문화 연구소 홈페이지.

 

             전갈 자리                     처녀자리와사자자리               물병 물고기 자리                 

 

 

 

 

출처

http://cafe.daum.net/gycenter/Encb/241?q=%EB%8B%A4%EB%89%B4%EC%84%B8%EB%AC%B8%EA%B2%BD%20%EB%AF%B8%EC%8A%A4%ED%84%B0%EB%A6%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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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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