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취재. 촬영. 편집:문화재사랑
농악(農樂)은 농부들이 두레를 짜서 서로 도우며 일할 때 연주하는 음악으로 ,넓은 의미로는 꽹과리, 징, 장구, 북과 같은 악기를 치며 행진, 의식, 노동, 판놀음 등을 벌이는 음악을 두루 가리키는 말이다.
굿, 매구, 풍장, 금고(金鼓), 취군 등으로도 불린다. 상고시대 제천의식(祭天儀式)에서 남녀가 노래하고,춤추었다는 기록이 있어 농악의 기원을 흔히 여기에 두고 있으며,
여러 과정을 거쳐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농악을 공연하는 목적·계기·방법에 따라 당산굿, 마당밟기, 걸립굿, 두레굿, 판굿으로 나누며, 그 밖에도 기우제굿, 배굿 등이 있다.
농악에 쓰이는 악기로는 꽹과리, 징, 장구, 북, 소고, 호적, 나발이 있으며, 주된 악기가 꽹과리이므로 농악장단을 흔히 꽹과리가락으로 나타낸다.
선비들이 꿈에도 그리던 그곳 '관동팔경'
관동팔경은 많은 시인과 화가들의 손끝에서 예술로 승화되었다. 아름다운 풍경은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었고, 그 예술은 다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이 되어 전해졌다. 보통 사람들이 태어난 곳에서 멀리 여행하는 것이 어렵던 시절, 그림과 시 속의 풍경은 그곳으로 여행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정조 역시 관동팔경을 무척이나 가보고 싶어했으나, 김홍도를 보내 그림을 그려 오라 시키는 것으로 대신해야 했다. 언제든지 그림 속 그곳에 몇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지금, 그곳을 찾아 길을 떠난다.
- 자연과 하나되는 아름다움, 죽서루
관동팔경 중 유일하게 바닷가가 아닌 강변에 있는 죽서루에서 강원도의 관동팔경 여행을 시작한다. “누가 하늘을 도와 이 아름다운 누각을 세웠는가”라는 감탄으로 시작하는 율곡이이의 시구처럼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죽서루는, 오십천 절벽의 자연 지형과 어울리는 건축 미학이 돋보이는 곳이다. 누각을 자세히 살펴보면 절벽의 바위를 그대로 두고 지어 누각 하층의 기둥은 길이가 제각각 다르고 방향에 따라 개수도 다르다. 북측과 남측 면의 칸 수가 다른 것도 주변의 지형지물과 균형을 맞추어 남측의 암반을 누각으로 오르는 계단으로 사용하고자 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죽서루는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명종 때의 문인 김극기의‘죽서루’라는 시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1190년 이전부터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의 누각은 1403년(조선 태종 3년) 삼척부사 김효손이 옛 터에다 새로 지은 이후 10여 차례의 중수(重修)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누각에 오르니 자연과 내가 하나되는 경지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다가서는 기분이 든다. 정철이 노래하고 정선이 담아낸 그 당시엔 푸른 산이 눈앞에 펼쳐졌겠지만, 지금은 아파트와 최신식 건물들이 들어서 아쉽게도 그 풍경을 볼 수 없다. 죽서루에 올라 바람을 맞으며 주변의 환경을 바꾸어놓은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정철, 정선과 함께 어울리는 상상을 해본다.
- 맑은 호수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경포대
경포해수욕장은 동해안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해수욕장 중 하나지만, 정작 그 이름이 붙여지게 된 경포대에 다녀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바다 안쪽에 자리한 경포호를 돌아 언덕을 오르면 전망이 탁 트인 경포대가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경포대 누각 안에도 죽서루와 마찬가지로 많은 이들의 시와 문구를 적은 현판이 남아 있는데, 그중에는 강릉이 고향인 이이가 열 살에 지었다는 시구와 숙종의 ‘어제시’도 남아 있다.
예로부터 많은 예인(藝人)들이 경포대에서 숱한 이야기들을 남겼는데, 그들의 풍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밤이면 경포호에는 하늘에 하나, 바다에 둘, 호수에 셋, 술잔에 넷, 님의 눈동자에 다섯……, 이렇게 모두 다섯 개의 달이 뜬다는 것이다. 앞으로 강릉에 가면 바다만 보고 떠날 것이 아니라 잔잔한 호수에 들러 다섯 개의 달을 찾아보며 풍류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 불길에서 건진 보물, 낙산사
낙산사를 찾으며 2005년 봄 가슴 졸이던 뉴스를 떠올린다. 큰 산불로 천년 고찰과 보물들이 불타 사라지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그날 이후, 낙산사는 오랜 발굴과 고증을 거쳐 새롭게 재건되었다.
해안 절벽 위에 들어선 낙산사는 그 일대의 풍경이 모두 장관이지만, 특히 그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의상대는 제일의 명소로 손꼽힌다. 유명한 낙락장송(落落長松)은 불길에 사라졌지만 바다를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풍경은 아직 그대로다.
또한 역사가 깊은 사찰인 만큼 보물급 문화재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조선시대 초기, 세조가 이곳에 행차하여 절 입구에 세웠다는 무지개 모양의 돌문인 홍예문(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3호), 1467년(조선 세조 13년) 수정으로 만든 염주와 여의주를 탑 속에 봉안하며 본래 3층이던 것을 7층으로 조성한 낙산사 칠층석탑(보물 제499호), 화려한 보관을 쓰고 온몸에는 구슬 장식이 드리워져 있는 건칠관음보살좌상(보물 제1362호), 부처님의 사리가 발견된 해수관음공중사리탑과 탑비(보물 제1723호) 등을 차례로 돌아보는 것은 낙산사에서 맛볼 수 있는 큰 즐거움이다.
보물찾기를 하며 오른 낙산사의 가장 꼭대기. 바다를 향해 우뚝 선 해수관음상 앞에는 의상대사가 관세음보살의 계시를 받고 지었다는 설화 때문인지, 기도가 꼭 이루어질 것이라는믿음으로 찾아오는 이들이 적지 않다. 많은 사람들의 소원을 간직한 이곳이 더 이상 산불에 스러지지 않도록 잘 지켜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다음 관동팔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 그림이 되는 바다, 청간정
청간정은 관동팔경의 다른 곳에 비하면 소박한 매력을 지닌곳이다. 누각의 규모나 지어진 방식이 화려하기보다 정갈하다.
청간정은 설악산에서 발원한 청간천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들어서 있는데, 굽이치는 하천과 탁 트인 바다, 그 한가운데 죽도까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청간정은 여러 차례의 개보수를 거쳤는데 지금 남아 있는 것은 1981년 새롭게 해체 복원한 것이다. 그리고 현판은 이승만 대통령이 쓴 것인데 안쪽에는 최규하 대통령이 절경을 감상하고 적은 휘호까지 걸려 있어 우리나라 전직 두 대통령의 친필을 볼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청간정을 지나 그 위로 통천의 총석정, 고성의 삼일포가 관동팔경으로 꼽히지만 더 이상은 가볼 수 없다. 휴전선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안타까움을 정선과 김홍도의 그림으로 달래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다.
- 함께 가보면 좋을 곳들
◀선조들의 숨결어린 문화재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