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문화재방송.한국 www.tntv.kr

문화유산 답사기

[문화유산 답사기]문화재로 지정된 과실나무들, 어려울 때 식량 대용이 됐던 과실나무도 무관심 속에 사라져, 천연기념물로 명맥 유지

문화재방송 2021. 7. 27. 01:17

천연기념물 제30호 용문산 은행나무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고 있는 과실나무 중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들이 여러 그루 있다. 가장 빨리, 가장 많이 지정된 은행나무는 용문산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호)를 비롯해서 22건이나 된다.

 

또 이성계가 직접 심었다고 전해지는 진안 은수사 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제386호)가 있고, 꽃이 필 때는 이웃 마을에서까지 꽃을 보러 온다는 정읍 두월리 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제497호), 고려시대의 역관 류청신이 원나라에서 처음 들여다 심었다는 천안 광덕사 호두나무(천연기념물 제398호), 우리나라 감나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의령 백곡리 감나무(천연기념물 제492호), 옛 마방터에 살아남은 평창 운교리 밤나무(천연기념물 제498호), 그리고 조선조 세조가 류운에게 하사한 무동처사라는 어서와 관련이 있는 청원 연제리 모과나무(천연기념물 제522호)와 귤나무의 고장 제주의 재래종 귤나무를 모아서 지정한 제주 도련동 귤나무류(천연기념물 제523호) 등이 그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런 과실나무가 식량자원으로 극진한 대우를 받았던 시절도 있었다. 허기를 참으며 보릿고개를 넘겨야 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러나 근자에는 한낱 기호식품을 얻는 나무 정도로 여겨지게 되면서 자연히 우리와 오랜 세월 삶을 함께 했던 크고 오래된 나무들도 하나 둘 사라져 갔다. 더구나 이런 과실나무 중에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나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천연기념물 제498호 평창운교리 밤나무

엄마 젖을 대신했던 밤죽


밤나무 가운데 최초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강릉 주문진의 교항리 밤나무(천연기념물 제97호)다. 이 나무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달려 찾아갔을 때 이미 대부분의 잔가지들이 고사해 있었지만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은 큰 가지들은 여전히 문화재다운 위용을 간직한 채였다. 그러나 이 나무는 결국 오랜 세월을 이겨내지 못하고 고사되어 해제되었고, 이를 대체할 만한 천연기념물 후보 밤나무를 찾지 못하다가 2008년 12월에야 비로소 큰 나무 하나를 찾아 천연기념물 제498호로 지정한 것이 ‘평창 운교리 밤나무’다.

 


이 나무는 나이가 약 370년 정도로 추정되고, 뿌리 가까운 부분의 줄기둘레가 6.4m에 이른다. 이 밤나무가 있는 곳이 과거 운교역창의 마방馬房이 있던 곳이라고 하니, 아마도 밤이 영그는 계절에 이곳을 지나는 나그네들은 맛있는 밤알을 행낭 그득히 채울 수도 있었으리라.

 

 

지금도 이 나무 앞을 42번 국도가 지나고 있다.
밤은 다섯 가지 필수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 있는 훌륭한 영양식품이다. 특히 밤에 들어 있는 탄수화물은 위장을 튼튼하게 해준다고도 알려져 있다. 그래서 과거, 주린 배를 졸라매고 보릿고개를 넘겨야 했던 시절에는 밤나무만큼 귀중한 과실나무가 없었다. 생밤을 그대로 먹기도 했지만 여유가 있다면 껍질을 벗긴 밤으로 밤밥을 지었고 밤가루와 쌀가루를 섞어 밤죽을 끓여 젖이 부족한 어린아이의 모유를 대신하기도 했다. 그래서 마을마다 꼭 한 두 군데씩 밤나무골이 있었고, 어떤 동네는 마을 안에 온통 밤나무를 심어 율리栗里라고 불리기도 했다.

 

밤은 옛날부터 조상들이 관혼상제의 예를 치를 때 감, 대추와 함께 빠뜨리지 않았던 3대 과일 중의 하나다. 한방에서는 밤을 약용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밤이 땅에 떨어져 싹을 틔워내는 모습을 보면, 보통의 다른 종자들이 열매껍질을 머리에 이고 땅 위로 올라오는 것과 달리 밤 껍질은 땅속에 남겨둔 채 싹눈만을 밀어 올린다. 이와 같이 열매껍질을 오랫동안 땅속에 남겨두는 모습에서 자신의 근본인 조상을 잊지 않은 인간의 본분을 배운다 하여 이를 조상들의 제사상에 올리는 필수의 제물로 여기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밤나무는 열매뿐만 아니라 목재도 고급가구재, 건축재, 철도갱목, 조선재 등으로 사용되며, 조상을 모시는 사당의 위패도 밤나무 목재로 만들었다고 전한다.

 

천연기념물 제429호 백곡리 감나무

효의 상징 감나무

밤나무와 함께 조상의 제사상에 빠지지 않았던 과일이 감이다. 감을 효의 상징으로 여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반중盤中 조홍早紅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柚子 아니라도 품엄즉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새 글로 설워하노라.’ 라고 읊었던 박인로朴仁老의 유명한 조홍시가早紅歌가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던 것도 감이 가지는 이런 효의 의미 때문이었을 게다.


감은 영양가 면에서도 밤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모든 과일이 그렇지만 수분 다음으로 탄수화물, 특히 당분이 많이 들어 있다. 곶감 100g에 함유된 열량이 무려 237kcal라니까 거의 밥 한 공기의 열량에 육박한다. 감에는 비타민C 함량도 많은 편이어서 사과보다도 높다는 자료가 있다.

 


또한 감나무와 관련해서는‘감나무의 7덕’이라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7덕德은 7절絶로 표현되기도 하고, 자료에 따라 조금씩 다른 내용들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체로 “수명이 길다壽, 그늘이 짙다多陰, 새가 둥지를 틀지 않는다無鳥巢,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無蟲襄, 가을에 단풍이 아름답다桑葉萬琓, 열매가 맛있고 낙엽은 질 좋은 거름이 된다落葉肥大”는 7가지를 꼽고 있다.

 


이렇게 감나무 7덕 가운데 하나가 수명이 길다는 것이지만 뜻밖에도 크고 오래된 감나무가 흔하지 않다. 나이를 먹으면 결실률이 낮아지기 때문에 베어져 나가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목재의 쓰임새가 다양하다보니 사람의 손을 많이 타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의령 백곡리 감나무’의 발견은 매우 뜻밖의 일이었고 이것을 2008년 3월 12일 천연기념물 제429호로 지정하는 데 대하여는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이 백곡리 감나무는 나이가 450년 정도로 추정된다. 가슴높이 줄기둘레는 3.68m다. 이 감나무는 과거에 마을의 당산나무였던 적이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전설도 없다. 더구나 언제부터인가는 감도 거의 열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무가 아직까지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나무가 젊은 시절 마을사람들에게 많은 열매를 제공했던 것에 대한 주민들의 옛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 집 장식장 안의 도자기 한 점이 국가적 보물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처럼 오랜 세월 나와 삶을 함께해 오던 동네 과실나무가 천연기념물이 된다면 이건 큰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과실나무들은 대개가 인가 부근에 자라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천연기념물 지정이 쉽지 않다. 아직도 문화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주변에 귀중한 문화재가 있음을 자랑으로 여기기보다는 혹시라도 사유재산권 행사에 불리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요즈음의 문화재 정책은 사유재산권을 최대한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최근에는 적어도 천연기념물의 경우, 문화재보호법의 일률적 적용보다는 개개의 천연기념물별로 그 상황에 맞는 관리 지침을 따로 만들어 시행함으로써 사유재산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최선의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석류나무 중에서 문화적 가치가 인정되는 천연기념물 후보를 찾고 있다. 석류나무는 본시 기껏해야 5m 정도로 자라는 나무이므로 다른 천연기념물들처럼 크고 우람한 나무를 기대할 수는 없다. 다만, 같은 자리에서 적어도 100년쯤의 오랜 세월을 우리와 더불어 살아오면서 나뭇가지마다 알알이 달리는 석류알처럼 우리 조상들의 삶의 이야기가 맺혀 있는 나무이면 좋겠다. 이 글을 계기로 훌륭한 석류나무 자원이 발굴되기를 기대해 본다. 

 

 

글 | 사진·이은복 한서대학교 대우교수, 문화재위원 사진·문화재청


출처:월간 문화재 사랑

 

[문화재방송(www.tntv.kr) 캠페인]

문화재에는 우리 민족의 얼과 혼이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