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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역사를 살다 간 불멸의 여인들]세계 역사 속에서 이름을 빛냈거나 혹은 악명을 떨쳤던, 그 이름만 들어도 드라마틱한 삶의 순간을 가슴으로 느끼게끔 만드는 정열적인 여인 50인을 선정하다.

문화재방송 2021. 8. 24. 15:31

 

하트셉수트(Hatshepsut:이집트:?~BC1482?)

 

고대 이집트 제18왕조 제5대의 나이어린 조카 투트모 3세와 22년간 이집트를 공동 통치하였다. 시나이 광산의 채굴과 교역을 위하여 푼트 원정을 감행하였고 다이르알바흐리의 장제전과 높이 30m의 오벨리스크를 세웠다.

 

 달기(?己:상:?~?)

 

중국 상나라 마지막 왕인 주왕의 비. 중국 역사상 가장 음란하고 잔인한 독부의 대명사로 '주지육림'이란 말은 연못을 술로 채우고 고기를 숲처럼 매달아 놓고 즐기던 달기의 방탕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에서 나왔다.

구리기둥에 기름을 발라 숯불 위에 걸쳐 놓고 죄인을 그 위로 걷게 하여 미끄러져 타 죽게 하는 포락의 형이나, 죄수들을 독사와 전갈이 가득 찬 구덩이에 집어넣는 돈분의 형을 웃으며 즐겼다고 한다.

 

 사포(Sappho:그리스:BC612?~?)

 

 

세계 최초의 여류 시인. 호메로스와 견줄 정도의 명성이었다고 한다. 소녀들을 모아 음악, 무용과 예의범절을 가르쳤는데 세계 최초의 동성애자로도 알려져 있다. 'Lesbian'이라는 말은 그의 출생지인 'Lesbos'의 이름을 딴 것이다.

 

서시(西施)

 

 

중국 4대 미녀 중 한명. 춘추시대 오에 패한 越국의 범려가 서시를 吳왕 부차에게 바쳤다. 부차가 서시의 미색에 빠져 정치에 태만한 사이 越왕 구천은 20년간 와신상담하여 마침내 吳나라를 멸망시켰다. 이후 서시는 강물에 빠져 죽었다고도 하고 범려와 함께 행복한 노후를 보냈다고도 하는데 확실치 않다

 

마리아(Maria:이스라엘:?~?)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천사의 계시로 예수를 처녀 잉태. 전 세계 크리스천의 어머니이자 존경과 추앙의 대상이다.

 

여태후(呂太后:한:?~BC180)

 

한나라의 고조 유방의 황후. 유방의 패업을 돕고 유방의 사후 아들 혜제를 즉위시키고 실권은 자신이 쥐었다. 여씨 일족을 고위관직에 임명해 여씨정권을 수립하였으며 동생들을 후왕으로 책봉하여 반발을 샀다. 때문에 그녀의 사후 유씨 옹호파에 의해 여씨 일족은 주멸당해 붕괴했다.

 

왕소군(王昭君:한:?~?)

 

 

중국 4대 미녀 중 한명. 전한 원제의 후궁으로 당시 후궁들이 화공에게 뇌물을 바치고 아름다운 초상화를 그리게 하여 황제의 총애를 구하였는데, 왕소군은 뇌물을 바치지 않아 추하게 그려졌고 때문에 흉노로 시집보내졌다. 소군이 말을 타고 떠날 때 원제가 보니 절세미녀인지라 크게 노하여 소군을 추하게 그린 화공을 참형에 처했다고 한다.

 

 

클레오파트라(Cleopatra:이집트:BC69~BC30)

 

 

이집트 여왕. 로마의 독재자 카이사르와의 로맨스로 유명. 파스칼은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어도 세계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시저 사후 로마의 권력을 장악한 옥타비아누스가 이집트를 침공하자 그를 유혹해보려 했지만 이미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몸으로는 무리였고 결국 독사로 가슴을 물게 하여 자살했다.

 

초선(貂蟬:한:?~?)

 

 

중국 4대 미녀 중 한명. 한의 노신 왕윤의 양녀로 '달이 부끄러워 얼굴을 가린다'고 하였다. 환계로서 조정의 권력을 장악한 동탁과 그의 양자 여포의 사이를 이간질 시켜 결국 여포로 하여금 동탁을 죽이게 만든다.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나 정사 삼국지에는 등장하지 않으므로 실존 인물은 아니다.

 

측천무후(則天武后:당:624~705)

 

중화 역사상 유일무이한 여성 황제. 고종의 황후가 된 후 고종을 대신해 정무를 맡아 권력을 장악하였으며, 자신의 아들들을 차례차례 즉위 시키며 섭정을 하였다. 고종 사후 반대파들을 숙청한 무후는 국호를 주로 고치고 마침내 스스로 황제에 올랐다. 제위 기간 동안 대내적으로는 공포정치를 실시했으나 백성들의 생활은 안정되어 그녀의 통치기를 '무주의 치'라고 불리우며 이후 당의 전성기인 현종 때 '개원의 치'의 기초를 마련했다.

 

양귀비(楊貴妃:당:719~756)

 

중국 4대 미녀 중 한명으로 본명은 양옥환, 당나라 현종의 비. 절세미인으로 현종의 총애를 받아 황후와 다름없는 대우를 받았으나 안녹산의 난 때 양국충과 함께 살해당했다. 후대에 수많은 문인들의 소재거리가 되었다.

 

쟌느 다르크(Jeanne d'Arc:프랑스:1412~1431)

 

영국과의 백년전쟁 말기 위기에 빠진 프랑스를 구해낸 영웅. 신의 계시를 듣고 출정하여 오를레앙을 해방시키고, 각지에서 영국군을 무찌르고 랭스에서 샤를7세를 즉위 시켰다. 부르고뉴파에게 사로 잡혀 마녀로 재판되어 화형 당했는데, 이후 샤를7세는 유죄 판결을 파기하여 명예를 회복 시켰고 1920년 카톨릭 교회에서는 그녀를 성녀로 시성하였다.

 

 

신사임당(申師任堂:조선:1504~15 51)

  

 

율곡의 어머니로서 현모양처의 대명사. 여성의 사회진출이 거의 불가능했던 조선 사회에서

빛나는 예술적 업적을 이루었다. 시문과 그림에 뛰어나 여려 편의 한시를 남겼고, 안견의 영향을

받은 화풍으로 한국 최고의 여류화가로 평가된다.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잉글랜드:1533~1603)

 

영국 절대주의의 전성기를 이끈 위대한 여왕.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며 세계에 식민지를 건설했으며 종교 통일을 추진하고 상업을 장려하고 빈민을 구제하였으며 문학의 황금시대가 도래하여 셰익스피어, 스펜서, 베이컨 등의 문인이 속출하였다. '짐은 영국과 결혼하였다' 하여 평생 처녀로 살았다.

 

 

메리 스튜어트(Mary Stuart:스코틀랜드:1542~1587)

 

왕관을 쓴 갓난이. 프랑스의 프랑수아 2세와 결혼했으나 1년 만에 남편이 죽고 스코틀랜드로 귀환. 앵글리컨 처치와 카톨릭의 싸움 속에서 잉글랜드의 왕권을 위협하는 카톨릭 교도라는 이유로 처형당했다.

 

오이치(お市:일본:1547~1583)

 

당대의 빼어난 미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여동생. 나가마사와 동맹을 위한 정략결혼을 하지만 후에 노부나가가 이 동맹을 깨면서 전쟁에서 남편과 아들을 잃고 오다 가로 되돌아 온 오이치는 시바타 가쓰이에와 재혼했다. 노부나가 사후 그의 후계 문제로 히데요시와 대립하다 결국 패배, 남편과 함께 자결했으니 그녀 나이 37세였다.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오스트리아:1717~1780)

 

합스부르크 공국의 여제. 오스트리아 계승 전쟁 중 남편 프란츠1세를 황제로 세워 공동 통치했으나 실권은 그녀에게 있었다. 남편의 사망 후에는 아들 요제프2세와 공동 통치했다. 정치적 능력이 뛰어났으며 부역의 경감, 수도원 영지의 몰수, 교육제도의 개혁 등에 성과를 거두었다. 마리 앙뚜아네뜨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마담 드 뽕 빠두르(Madame de Pompadour:프랑스:1721~1764)

 

프랑스 왕 루이 15세의 총희. 빼어난 미모와 재능으로 국왕의 사랑을 받았으며 막대한 국비를 낭비하여 후에 프랑스 혁명의 원인을 제공했다. 하지만 백과사전 편찬사업을 지원하고 로코코 양식을 유행시킨 업적도 있다.

 

예카테리나 2세(Ekaterina II:프로이센:1729~1796)

 

러시아의 여제. 표토르 3세에게 출가한 뒤 스스로 남편을 폐위시키고 제위에 올라 대제라 불렀다. 법치주의의 원칙을 도입함과 동시에 귀족들과 협력 체제를 강화하였으며 영토를 크게 확대하고 농노제를 확장하였다.

 

 마리 앙뚜아네뜨(Marie Antoinette:오스트리아:1755~1793)

  

 

오스트리아의 공주로 루이 16세와 정략결혼. 프랑스의 왕비가 되어 궁정에서 사치에 몰두하다가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하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녀가 처형될 당시 금발의 윤기 나는 머리카락은 공포심 때문에 푸석푸석한 백발로 변해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제인 오스틴(Jane Austen:영국:1775~1817)

 

 

18c 영국 중상류층 여성들의 삶을 다룬 소설로 명성을 떨쳤다. 대표작은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 '엠마' 등이 있다. 20세기 그녀의 작품들이 영화화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마리 소피 제르맹(Marie Sophie Germain:프랑스:1776~1831)

 

역사상 최고의 여성 수학자이자 물리학자. '르블랑'이라는 남자이름으로 가우스와 3년간 편지로 수학에 관한 견해를 주고받았다. 100년간 미제로 남아있던 '페르마의 정리'를 증명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오거스타 에이다 바이런(Augusta Ada Byron:영국:1815~1852)

 

영국의 시인 바이런의 딸로서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 19세기에 현대 컴퓨터 프로그램의 개념을 만들었다. 도박에 심취한 그녀는 경마 우승확률을 계산하는 기계장치를 고안하지만 실패하고 경제적 파탄과 자궁암의 고통 속에 요절했다.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영국:1819~1901)

 

영국 최대의 전성기를 이룬 여왕.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의 최선진국으로, 정치적으로는 양당제의 의회정치를 이룩하였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현대 영국 군주의 본을 확립하였다.

 

클라라 슈만(Clara Schumann:독일:1819~1896)

 

피아니스트로 남편은 낭만파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이다. 슈만의 창작 활동의 대상이 되었으며 수많은 유럽 순회연주를 통해 리스트에 비견되는 명연주자로 명성을 떨쳤다. 슈만 및 브람스의 해석자로도 유명하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영국:1820~1910)

 

등불을 든 여인, 크리미아의 천사. 전문교육을 통해 간호를 여성의 전문 직업으로 확립한 간호사. 크림전쟁 중 이스탄불에서 야전병원장으로 활약하였으며 나이팅게일 간호사 양성소를 창설하였다. 국제적십자에서는 나이팅게일상을 제정하여 표창하고 있고, 나이팅게일 선서는 간호사의 좌우명으로 유명하다.

 

락슈미바이(Lakshmibai:인도:1835~1858)

 

인도의 잔다르크. 세포이 항쟁이 인도군의 패배로 끝나갈 즈음, 잔시라는 작은 토호국의 왕비 락슈미바이는 직접 말에 올라 군사를 이끌고 항거하였으나 결국 군사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전사했다.

 

 

서태후(西太后:청:1835~1908)

 

 

청나라 함풍제의 후궁으로 함풍제 사후 반대파를 숙청하고 아들인 동치제와 광서제의 섭정을 행사한 인물. 철저한 보수 성향으로 무술정변까지 일으켰으나 세계열강의 침공으로 서안으로 피신했다 복귀한 후에는 신정을 실시했다. 반식민지로 몰락해가는 청 왕조를 안타깝게 지켜보다 세상을 떠났다.

 

 

베르뜨 모리조(Berthe Morisot:프랑스:1841~1895)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마네의 영향을 받아 여성의 사회진출이 힘들었음에도 확고한 자신만의 화풍과 영향력을 구축했다. 마네의 남동생과 결혼하였으며 마네 그림의 모델로도 자주 등장했다.

  

명성황후(明成皇后:조선:1851~1895)

 

여흥 민씨로 조선 고종의 황후.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과 대립하며 세력기반을 다진 여인. 러시아의 힘을 빌려 일본 세력을 몰아내려 하자 미우라 고로 휘하의 일본 낭인들에게 살해 당했다.

 

Camille Claude(France.1864~1943)

 

로댕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여인. 표절의혹과 스캔들로 인해 사회적 명예에 위기를 느낀 로댕은 그녀의 작품들을 전시회에 출품하지 못하게 압력을 가했고, 결국 그들의 관계는 파국. 그녀는 '로댕이 나의 재능을 두려워 해 나를 죽이려 한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혀 평생을 정신병자로서 비참한 생을 마감했다.

 

마리 퀴리(Marie Curie:폴란드:1867~1934)

 

방사능 연구의 선구자로 남편 피에르 퀴리와 함께 라듐의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남편의 사후 라듐 및 폴로늄의 발견과 라듐의 성질 및 그 화합물 연구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세기의 과학자. 여성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이자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석권한 유일한 인물이며 또한 방사능 질병으로 사망한 첫 번째 인물이다.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폴란드:1871~1919)

 

전설적인 여성 혁명가. 식민지에서 태어난 유태인이며 평생 한쪽 다리를 저는 장애인이었다. 카를 리프크네히트와 함께 독일 공산당을 조직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추진하다가 독일 보수파에 의해 암살당했다.

 

추근(秋瑾:청:1875~1907)

 

청대에 여성의 상징이었던 전족으로부터의 해방, 남존여비의 봉건예교에 반대하며 여성의 경제적 독립과 여성교육을 주장한 여성 운동가. 여자도 영웅이 될 수 있고 민족을 위해 싸울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반청혁명에 가담하였다가 동료의 밀고로 체포되어 살해당했다.

 

 

마타 하리(Mata Hari:네덜란드:1876~1917)

 

 

1차 세계대전 당시 활동한 매혹적인 여성 스파이. 본명은 마가레타 젤러로 마타하리는 '새벽의 눈동자'라는 뜻의 말레이어다. 파리에서 무희로 활동하다 프랑스 사교계 고위층의 눈에 띄어 스파이가 된 후 독일-프랑스를 오가며 이중스파이 활동을 하다 프랑스에서 반역죄로 체포되어 총살당했다.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미국:1877~1927)

 

토우 슈즈와 코르셋 대신 그리스 여신의 의상 같은 튜닉을 두른 자유로운 춤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무용수. 수많은 남자와 무절제한 로맨스를 남겼고 말년 극도의 빈곤으로 불우한 삶을 살다 어깨에 두른 숄이 자동차 바퀴에 끼는 바람에 목이 부러져 사망하였다.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미국:1880~1968)

 

헬렌켈러는 생후 19개월째에 병에 걸려 시각과 청각을 잃었다. 한번 시각을 잃었다가 되찾은 앤 설리번은 20세의 나이에 어린 헬렌켈러의 특수 교육 교사가 되었는데 그것이 그들의 49년 끈끈한 인연의 시작이었다. 헬렌은 16세의 나이에 레드클리프 대학에 입학했고, 졸업 후 그녀는 5개의 국어를 구사했으며 미국 사상 최초로 학사 학위를 취득한 시각/청각장애인이 되었다.

 

 

안나 파블로바(Anna Pavlova:러시아:1881~1931)

 

러시아의 발레리나로 발레 역사상 최고로 꼽히며 '빈사의 백조'가 가장 유명하다. 영국을 중심으로 17년 동안 세계 각국을 순회하며 공연했는데, 순연 중 헤이그에서 급사하였다. 파블로바가 죽은 이틀 뒤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던 '빈사의 백조'는 텅 빈 무대에 한 가닥의 스포트라이트만이 가고 없는 발레리나를 뒤쫓는 듯 무대를 이리저리 비출 뿐이었다.

 

펄 벅(Pearl Comfort Buck:미국:1892~1973)

 

'대지의 집' 3부작을 쓴 소설가. 그녀의 큰 딸은 극도의 정신박약 장애인이었는데 '대지'의 주인공 왕룽의 딸로 그려져 있다. 장로교 선교사였던 부모 탓에 오랜동안 중국에서 생활하였으며 국공 내전 때 온 가족이 몰살당할 뻔 하기도 했다. 한국과도 인연이 있어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 '새해' 등의 한국 관련 소설들도 남겼으며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과도 친분이 있었다.

 

에밀리아 에어하트(Amelia Earhart:미국:1897~1937)

 

하늘의 퍼스트레이디. 여성비행사로는 최초로 대서양을 횡단하고 하와이에서 캘리포니아까지 태평양 상공을 쉬지 않고 비행하는 기록을 남겼다. 이후 적도 주변을 도는 긴 항로를 이용한 세계일주비행에 최초로 도전했다가 해상에서 행방불명되었다.

 

아나스타샤 로마노바(Anastasia Romanova:러시아:1901~1918)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4황녀. 러시아 혁명 때 볼셰비키에 의해 총살 당해 짧은 생을 마감했다. 2001년 러시아 정교회에 의해 성녀로 시성되었다.

 

 

유관순(柳寬順:조선:1902~1920)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아우내장터에서 3.1운동을 주도하였다. 일본 헌병대에 체포당하여 19세의 나이로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사. 사후 독립대한민국의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고 이화여자고등학교에서 명예졸업장을 추서했다 .

 

 

그레이스 호퍼(Grace Hopper:미국:1906~1992)

 

컴퓨터 역사상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여성이자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해군 제독. 컴퓨터 언어 COBOL을 탄생 시키고 컴퓨터에서 'Bug'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

 

 

테레사(Teresa of Calcutta:유고슬라비아:1910~1997)

 

19세에 로레토 수녀원에 들어가 인도 콜카타의 빈민가에서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다. 사랑의 선교 수녀회를 설립하여 '마더 테레사'로 불리며 1971년 요한23세 평화상, 1979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로자 팍스(Rosa Parks:미국:1913~2005)

 

자유를 위해 앉다. 20세기 초 흑인 차별이 여전한 가운데 로자팍스는 시내버스에서 백인 승객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법을 거부함으로써 체포되었다. 이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마틴루터킹 목사의 주도로 역사적인 몽고메리 승차거부 운동이 시작되고 흑인 인권운동이 촉발되었다.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그리스:1923~1977)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프리마돈나로 오페라의 전설이 되었다. 그러나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중 그리스의 선박 왕 오나시스를 만난 후 아기를 유산하고 자살 기도까지 할 정도로 황폐해진 그녀는 오나시스가 결혼해버리자 돌연 은퇴하고 말았다.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미국:1926~1962)

 

세기의 섹스 심벌. 수많은 유행과 신드롬을 탄생시킨 헐리우드의 슈퍼스타. 영화 '7년만의 외출'에서 스커트가 위로 치솟자 황급히 손으로 가리는 장면은 매우 유명하다. 첫 번째 남편과 헤어진 후 야구선수 조 다마지오와 결혼하여 화제가 되었으며, 그와 이혼 후 극작가 A.밀러와 세 번째 결혼을 하였으나 결국 실패하였다. 말년엔 약물에 찌든 생활을 하다가 침대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는데 공식적 사인은 자살이나 모살설도 끊이지 않는다.

 

안네 마리 프랑크(Annelies Marie Frank:독일:1929~1945)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에 희생된 소녀. 암스테르담의 은신처에서 2년간 숨어살며 '독일인과 유태인은 한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다'는 마음속의 상처를 일기에 기록했다. 결국 은신처는 나치 게슈타포의 습격을 받아 안네는 강제수용소에서 16세의 나이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는데, 수용소가 연합군에 의해 해방되기 불과 2주전이었다.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미국:1932~1963)

 

 

시인이자 단편소설 작가. 평생 자살 충동과 우울증에 고생했으며 그 경험은 그의 소설 'The Bell Jar'에 잘 드러나 있다. 가스를 틀어둔 오븐에 머리를 박는 엽기적인 방법으로 자살하여 사후 컬트적인 명성을 얻었다. 남편의 내연녀였던 아씨아 웨빌도 6년 후 그녀와 같은 방법으로 자살했다.

출처:https://cafe.daum.net/poetry202/Fn5Y/2178?q=Anne+Sullivan%28USA.1866~1936%29&re=1

 

 

이어도(離於島)

도로명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리

이어도는 수중 암초로서 가장 얕은 곳은 해수면 아래 약 4.6m이며, 수심 40m를 기준으로 할 경우 남북으로 약 600m, 동서로 약 750m에 이른다. 정상부를 기준으로 남쪽과 동쪽은 급경사를, 북쪽과 서쪽은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이어도는 제주도민의 전설에 나오는 환상의 섬, 피안의 섬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섬을 보면 돌아올 수 없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먼 옛날에 이곳에 와서 조업을 하다 파고가 10m 이상이 되면 이 섬이 보였고, 당시 어선으로는 그런 해상 상황에서 무사히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어도가 위치한 해역은 주변 국가들 보다 우리나라에 훨씬 가까워 앞으로 주변국들과 배타적 경제 수역(EEZ) 확정시 중간선 원칙에 따라 대한민국의 배타적 경제 수역 내에 있게 될 것이다.

 

 

이어도 해양과학기지

하늘에서 본 이어도 해양과학기지

 

전설의 섬 해양과학기지 완공'

 

소설 속에 등장하던 ‘전설의 섬’ 이어도(離於島)가 해양환경·수산물 연구와

태풍 예방을 위한 해양 과학기지로 바뀌었다. 해양수산부 허성관

장관은 2003년 6월 10일 “남제주군 마라도에서 149km 남서쪽에

위치한 이어도에 지난 95년부터 212억원을 들여 종합 해양과학기지를

완공했다”고 발표했다.

 

'이어도 전설'

 

『옛날 제주도의 한 마을에 부부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남편이 배를 타고 나갔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다. 남편이 탄 배는 풍랑을 만나 낯선 무인도에

도착했던 것이었다.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는 어느 날 늙은 시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님, 배 한 척만 지어주시겠습니까?”

뭘 하려고 그러니?”

남편을 찾으러 가겠습니다.”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었다.

어느 화창한 날, 아내와 시아버지는 배를 타고 남편이 살고 있는 이어도로 향했다.

아내는 제주 해녀의 민요 이어도 타령을 부르며 힘겹게 노를 저었다. 멀고도 험난한

바닷길을 헤쳐 이어도에 당도해보니, 남편은 거기서 얻은 새 아내와 행복하게

살고 있는 거였다. 하지만 아버지와 조강지처의 설득으로 남편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온가족이 배를 타고 제주도로 향하는데, 갑자기 풍파가 몰아

닥쳤다. 결국 배는 침몰되고, 일가족은 모두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그 후 고향 사람들은 그 가족을 불쌍하게 여겨 제사를 지내주었다.

교토국제고, 日고교야구 고시엔서 한국계 첫 8강 쾌거

연장전 끝 6대 4 승리…'동해' 교가 NHK로 전국에 중계
박경수 교장 "일본 1위 기대할 수 있는 팀으로 성장했다"

    • 입력 : 2021.08.24 12:11:57   수정 : 2021.08.24 16:3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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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시엔서 8강 진출 달성한 한국계 교토국제고▶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재일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京都)국제고등학교가 '여름 고시엔'(甲子園)으로 불리는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8강에 진출하는 깜짝 성과를 올렸다.

    한국계 학교로는 물론 외국계 학교가 선발고교야구대회(일명 '봄 고시엔') 혹은 여름 고시엔에서 8강에 진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4일 오전 일본 효고(兵庫)현 니시노미야(西宮)시 소재 한신고시엔(阪神甲子園)구장에서 제103회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16강 전에서 교토국제고는 니쇼가쿠샤(二松學舍)대학부속고등학교를 6대 4로 눌렀다.


    역주하는 교토국제고 홈런 타자4대 4 동점으로 9회를 마친 후 연장 대결을 펼친 10회에서 추가 2점을 뽑아 8강 진출을 확정했다. 8강 경기는 날씨 변수가 없다면 26일 오전 8시 열릴 전망이다.

    이번 여름 고시엔에는 일본 내 3천603개 고교가 도전했다.

    일본 고교 야구 연맹에 1999년에 가입해 상대적 후발 주자인 교토국제고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상위 8위에 든 것은 괄목할만한 성과로 볼 수 있다.

    박경수 교토국제고 교장은 "우리 학교가 고시엔에 진출한 것을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오늘 승리로써 명실상부한 교토 일인자며 일본 1위까지 기대할 수 있는 팀으로 성장한 것을 보여줬다"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말했다.

    교토국제고가 이날 승리함에 따라 경기장에서는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大和·야마토)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이 학교의 한국어 교가가 연주됐다.


    8강 진출 달성한 교토국제고▶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이 장면은 공영방송 NHK를 통해 일본 각지에 중계됐다.

    교토국제고는 19일 열린 마에바시이쿠에이고(前橋育英高)를 1대 0으로 이겼다.

    교토국제고가 올해 3월 봄 고시엔에 처음 출전했을 때도 이 학교의 한국어 교가가 연주됐다.

    이는 일본 내 외국계 학교가 봄 고시엔에 출전한 첫 사례로 주목받았다.

    교코국제고는 당시 첫 경기에서는 승리했으나 16강 전에서 도카이다이스가오(東海大菅生)고에 4대 5로 역전패당해 8강 진출을 이루지 못했다.

    1947년 재일 교포 교육 시설인 교토조선중학교가 개교한 것이 교토국제고를 운영하는 교토국제학원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1958년에 교토한국학원이 교토부(京都府) 지사의 인가를 받았고 1963년 고등부를 설치하면서 중고교 병설 체제가 됐다.

    교토국제학원의 중·고교 코스는 1960년대에 한국 정부의 인가를 받았다.


    일본에서는 애초에는 '각종학교'로 분류됐으나 2003년 12월에 일본 당국으로부터 학교교육법 제1조에 규정된 중학교와 고교로 각각 인정받았다.

    [연합뉴스]

원문보기

https://www.mk.co.kr/news/world/view/2021/08/81739

동해 바다…’ 또 울려 퍼졌다, 교토국제고 고시엔 4강

대회 3승, 한국어 교가 3번 불러
“선수들이 마음으로 이겼다”
내일 4강전 대망의 결승행 다툼

입력 : 2021-08-27 04:05

  • 교토국제고 야구 선수들이 26일 일본 한신고시엔 경기장에서 열린 103회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4강에 진출한 뒤 도열해 있다. 경기장에는 한국어로 된 교가가 울려 퍼지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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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일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가 ‘여름 고시엔’ 대회 첫 출전에 4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일본 고교야구의 성지 한신고시엔구장에서는 한국어로 된 교가가 연일 울려 퍼지고 있다.

  • 교토국제고는 26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에 있는 한신고시엔 경기장에서 열린 103회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8강전에서 쓰루가케히고를 3대 2로 꺾고 4강에 진출했다. 교토국제고는 지난 19일부터 일주일 동안 열린 세 경기에서 모두 승리했다.

  • 아사히신문이 매년 여름 주최하는 이 대회는 ‘여름 고시엔’으로 불린다. 마이니치신문이 여는 ‘봄 고시엔’ 선발고등학교야구대회와 함께 고시엔의 양대 축으로 꼽힌다. 6~9경기를 치르는 지역예선 토너먼트에서 우승해야 고시엔 티켓을 받을 수 있다. 예선부터 본선까지 모두 토너먼트로 이뤄져 한 번의 패배 없이 전승을 거둬야 우승할 수 있는 셈이다.

  • 7회까지 별다른 소득이 없던 양측은 8회에 승부수를 던졌다. 쓰루가케히고가 8회초 2점을 내자 교토국제고가 8회말 2점을 따라붙었다. 9회초 공격을 무실점으로 막아낸 교토국제고는 중전안타로 출루한 선두주자를 희생번트로 2루까지 보낸 뒤 8번타자 마쓰시타가 우익수 앞 끝내기 적시타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고마키 노리쓰구 감독은 “선수들이 마음으로 (경기를) 이겼다”면서 “이런 동료들과 함께 야구할 수 있다는 데 감사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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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가 끝난 뒤 고시엔의 전통에 따라 승리팀인 교토국제고의 교가가 연주됐다. 이번 대회 들어 한신고시엔 구장에는 3번이나 “동해 바다 건너 야마도(야마토·일본)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라는 한국어 가사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박경수 교장은 “위기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침착했던 선수들에게 이미 일본 1위나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서 “이번 대회 성과로 야구팀이 더 좋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1999년 일본고교야구연맹에 가입한 교토국제고는 올해 외국계 고등학교로는 처음으로 봄 여름 고시엔에 모두 참가했다. 지난 3월 열린 봄 고시엔에서는 16강 진출을 달성하는 등 현지에서는 첫 출전에 걸맞지 않게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 교토국제고는 28일 4강전에서 승리하면 29일 결승전에 진출한다. 교토국제고가 우승을 차지하면 2013년 이후 8년 만에 고시엔 첫 출전에 우승을 차지하는 학교가 된다.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206661&code=11141700&cp=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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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엔 돌풍’ 교토국제고, 결승 문턱에서 아쉬운 패배


  • 교토국제고는 28일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한신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103회 여름 고시엔 대회 준결승전에서 나라현 대표 지벤가쿠엔고에 1대 3으로 패배해 결승 진출 문턱에서 고배를 마셨다.하지만 올해 교토국제고는 여름 고시엔 100년 넘는 역사에 한국계 학교로 처음 진출하며 주목을 모았다. 여기에 첫 출전에서 4강까지 진출하는 기적을 썼다. 전체 학생수 136명의 미니학교가 전국 일본 고교 야구팀 3603개 중 베스트4에 든 성적을 올린 것이다.

  • 한편, 1947년 재일교포들이 세운 이 학교는 운영난을 겪다가 2004년 일본 교육법 제1조 적용을 받는 학교로 전환했다. 지금은 한국 교육부, 일본 문부성의 재정지원을 받는다. 일본 학생이 60% 이상이어서 사실상 ‘한일연합’ 성격을 갖고 있다. 교토국제고 측은 “교토국제고의 활약이 한일 관계 개선의 작은 불씨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 결승 진출을 놓친 이날은 교토국제고 선수들이 상대 학교의 교가를 듣고 돌아서야 했다. 하지만 고시엔 중계진들은 교토국제고를 두고 “첫 여름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활약”이었다며 “최고의 인상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전 고교야구 감독인 해설 다카니시 히토시는 “승패를 떠나 선수와 팀 모두를 강하게 만드는 게 고시엔”이라며 “앞으로의 교토국제고가 기대된다”고 응원을 보냈다.
  • 지난 26일까지 교토국제고가 3연승을 거둔 덕에 일본 야구의 성지(聖地)로 통하는 고시엔 구장엔 이 학교의 한국어 교가가 총 네 번 울려 퍼졌고, 이는 NHK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다. 첫 경기에서 각 출전 학교의 교가를 소개하며 한 차례, 그리고 교토국제고의 승리를 기념하며 세 차례다.
  • 박경수 교토국제고 교장은 “재학생 수를 늘려보려고 만든 야구팀이었는데 창단 22년만에 어엿한 야구 명문고로 거듭난 것 같아 기쁜 마음 뿐”이라며 “응원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어 “3학년 학생들이 마지막 고시엔에서 인생에 도움이 되는 값진 성과를 얻은 것 같아 기쁘고, 후배 선수들이 선배들을 위해 땀 흘리는 모습이 아름다웠다”고 했다.
  • 이날 교토국제고는 3회까지 0대 0 팽팽한 승부를 이어갔지만, 4회초 연이은 안타와 홈런을 허용하며 3점을 먼저 내줬다. 5회말 교토국제고가 1점을 만회하며 따라가려 했지만 추가 득점이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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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고교 야구 선수들의 ‘꿈의 무대’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에서 돌풍을 일으킨 한국계 학교 교토국제고가 아쉽게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 28일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한신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103회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4강전에서 아쉽게 패배한 교토국제고 선수들이 일렬로 서서 상대팀의 교가 방송을 기다리고 있다./교토국제고 제공
  • 한국계 학교 최초 여름 고시엔 진출 후 4강까지
  • 입력 2021.08.28 15:51
  • 도쿄=최은경 특파원
 

도쿄=최은경 특파원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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