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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답사기

[10월 21일은 경찰의 날]6.25 전쟁 중 화엄사 등 지리산 일대의 문화재를 지킨 故 차일혁 경무관, 조부는 거액의 독립자금을 상해로 보낸 '보천교' 교주

문화재방송 2021. 10. 20. 00:17

국보와 보물 등 문화재의 보고 구례 화엄사(사적 제505호)

<아래 내용은 스크랩된 것으로 최근 기사가 아닙니다>

 

6·25 당시 화엄사 지킨 故 차일혁 경무관 공덕비 제막

화엄사, 소실 막아낸 숭고한 뜻 기려

 

“절을 태우는 데는 한나절이면 족하지만 절을 세우는 데는 천 년 이상의 세월로도 부족하다.”

지금으로부터 60여년 전 화엄사를 초토화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은 당시 한 경찰관의 항변이었다.

8월21일 오후 구례 화엄사 경내. 고(故) 차일혁 경무관(1920∼1958)의 공덕비가 세워졌다. 지난 1998년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인 월주스님과 호남 교구본사 주지 스님들이 화엄사에 공적비를 세운지 15년만이다.


전북 김제 출신인 그는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독립운동에 투신했으며 광복 후 귀국해 일본 고등계 형사
사이가 쓰보이를 저격하는 등 일제 잔당을 청산했다. 특히 한국전쟁 당시 남한의 유일한 발전소인
전북 정읍 칠보발전소 탈환과 지리산을 장악한 빨치산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 사살 사건은 유명한 일화로
회자되고 있다.

지난 1951년 당시 18전투대대 대대장이었던 차일혁은 전투대원 75명의 수적 열세를 딛고 국가기간시설인
발전소를 점령하기 위해 대치하던 2500여명의 빨치산을 응징하며 칠보발전소를 사수했다.
1953년 총경으로 승진한 그는 전투경찰대 제2연대 연대장으로 임명돼 그해 9월 남부군 총사령관인
이연상을 사살하며 사실상 토벌작전의 종지부를 찍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이현상을 사살한
후 인간적인 연민으로 시신을 거둬 화장한 뒤 골분을 섬진강에 뿌리고 장례를 치러 주기도 했다.
그는 ‘이현상 토벌’이라는 혁혁한 전공(戰功)에도 불구하고 잇따른 명령 불이행으로 총경직에서
승진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공적을 인정한 조계종 초대 종정인 효봉스님은 1958년 5월 감사장을 수여했다.
그로부터 3개월 후 그는 38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이날 공덕비 제막식에는 차일혁 경무관의 아들인 화엄사 명예신도회장 故 차길진 법사와 김장실 국회의원,
전석종 전남지방경찰청장, 서기동 구례군수와 스님과 불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화엄사 주지 영관스님은 인사말을 통해 “고인의 지혜로운 결단으로 화엄사와 천은사 등 고찰들은 지금까지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다”면서 “오늘 세워진 공덕비를 통해 차일혁 경무관의 민족문화유산 수호에 대한
숭고한 뜻을 기리고 후손들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만대에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故 차일혁 경무관의 아들인 故 차길진 법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높이 2.97m, 너비 3m의 이 공덕비는 기단은 화강암으로 상단은 대리석으로 제작됐으며, 고은 시인이
비문을 짓고 글씨는 차 경무관의 아들인 고 차길진 법사가 썼다.
비문에는 “이제 해원의 때가 무르익었으니 천하의 영봉 지리산을 생사의 터로 삼아 동족상잔의 피어린
원한을 풀어 그 본연으로 돌아감이 옳거니 여기 근본 법륜 화엄사 청정도량에 한 사람의 자치를 돌에 새겨
기리도록 함이라”며 공적을 기렸다.


한편 고 차길진 법사는 화엄사에 경봉스님의 친필 ‘화엄’ 진본 1점과 아버지인 차 경무관이 효봉스님에게 받은
감사장과 영인본 등 모두 6점의 자료를 기증했다.
화엄사도 자료 기증에 대한 보답의 의미로 차 법사에게 감사장을 수여했다.



故 차일혁 경무관 자료를 기증하는 故 차길진 법사.


출처:불교신문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27994


<차일혁 경무관의 생애>










차일혁 경무관 '여명의 눈동자'에서 장하림으로 다시 태어나다 





1920년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났다.
학창시절 일본인 경찰을 폭행한 사건으로 처벌을 피하기 위해 1930년대 중반 중국으로 망명하여 중앙군관학교 황포분교 정치과를 졸업하였으며, 이후 조선의용대에 입대하여 1938년부터 1945년까지 팔로군과 함께 항일 유격전 활동을 벌였다.


다른 팔로군 출신이 대부분 북한 정권에 협조하지만
남한으로 귀국한 차일혁은 경찰계에 투신하여 한국전쟁 당시 반공 유격대를 결성하여 빨치산 토벌대장으로 반공산당 활동을 펼치다가 전투경찰대 2연대장에 보임되어 빨치산 소탕작전에 주력하였다.
그 결과 휴전 후인 1953년 9월, 당시 남부군 총사령관인 이현상을 사살하는 공을 세웠다.

 



그러나 차일혁은 무력으로 공격하기 보다는 빨치산들을 감성적으로 설득하여 귀순시키는 방향을 택했고 덕분에 많은 빨치산들이 차일혁의 인간적인 태도에 감화되어 순순히 전향하면서 목숨을 건졌다.
그리고 사살당한 이현상의 시신도 차일혁이 수습하여 화장한 뼈를 직접 철모에 넣고 M1 개머리판으로 빻은 유골을 하동의 소나무 숲에 뿌려 수목장 시켜줬다고 한다.


이 일이 화근이 되어 차일혁의 부대에 태극무공훈장이 세 개나 수여 되었으나, 정작 부대장인 차일혁은 제외시켰다.

그리고 한창 교전중인 1951년 5월, 상부에서 지리산 내의 사찰과 암자를 모두 소각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빨치산들이 은거할 만한 장소를 사전에 아예 없애 버리려는 작전이었다.
그러나 당시 화엄사 일대를 작전지역으로 맡고 있던 8사단 대대장 방득윤 중령은 화엄사를 불태워 버린다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고, 이에 같이 화엄사 지역을 방어하던 차일혁이 해결책을 내놓았으니 그것은 화엄사 내 대웅전을 포함한 건물의 문짝만 뜯어 불태운다는 것이었다.
이 의견에 방득윤 대대장도 찬성하여 화엄사는 문짝만 제외하고 전부 불타 없어지는 참사를 피할 수 있었다.
그 외 화엄사 인근의 천은사, 쌍계사, 선운사 등에 대한 사찰이나 문화재도 폭격이나 소각을 피하는 쪽을 택했고, 그 덕분에(?) 차일혁은 명령 불이행으로 감봉처분 등의 불이익을 받아야 했다.



휴전 후 차일혁은 1954년 충주 경찰서장 재직 시 충주직업소년학교를 세워 지역의 불우한 청소년들에게 학업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고 여러가지 지역 밀착적인 정책으로 주민들의 칭송을 받았으나,
높으신 분들에게 찍힐대로 찍혀 있던 차일혁은 일제시대 그가 복무했던 조선의용대가 중국 공산당의 팔로군과 같이 활동한 부대였고, 빨치산 토벌시 온정적인 작전을 펼쳤다는 사실을 빌미로 좌익 용공분자로 몰려 조사를 받은 적도 있었지만 이현상 사살등의 공로를 감안하여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다.


그후로 중앙에서 밀려난뒤 지방 경찰서장 등으로 떠돌게 되었고, 공주 경찰서장으로 재임중이던 1958년 8월 9일 가족과 함께 금강으로 피서를 갔다가 수영 도중 심장마비로 익사했으니 그의 나이는 불과 38세였다

1977년 작가 김성종씨는 차일혁 총경의 삶을 바탕으로 주인공 '장하림' 이 등장하는 대하소설 '여명의 눈동자'를 출간한다



1991년 김종학 연출 송지나 극본으로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가 MBC에서 방영되었다
당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현재 역대 드라마 시청률 9위에 랭크되어 있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친일파 앞잡이 형사였던 스즈끼(한국명 최두일)를 해방 직후 제주도에서 만나
다시 대한민국 경찰이 되어 높은 직위에 있는 걸보고 장하림이 울분을 터트렸던 대사

장하림 : "스즈끼! 왜 네가 여기에 있어! 왜 네가 여기에 있어! 해방이 되었어

스즈끼!"최두일(일본명 스즈끼) : "저런 빨갱이 새끼.."

 

6·25전쟁영웅 故 차일혁 경무관 흉상제막식

정읍/김정엽 기자 입력 2017. 09. 30. 03:03 댓글 0개

보훈처 차장 등 500여 명 참석

6·25전쟁 호국영웅 고(故) 차일혁(1920~ 1958·작은 사진) 경무관의 흉상 제막식이 29일 전북 정읍 내장산 워터파크에서 열렸다. 심덕섭 국가보훈처 차장, 조희현 전북지방경찰청장, 차 경무관의 아들 故 차길진(70) 후암미래연구소 대표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전북서부보훈지청과 정읍시는 6·25전쟁 당시 '지리산 호랑이'로 불리며 빨치산 토벌에 큰 전과(戰果)를 올린 차 경무관을 기리기 위해 3000만원을 들여 흉상을 만들었다. 흉상을 받치는 대리석 구조물 앞면엔 차 경무관이 빨치산과 싸우며 남긴 수기(진중일기)와 무궁화를 새겼다. 뒷면에는 그가 썼던 출사표와 당시 사진을 넣었다.차일혁 경무관은 제18전투경찰대대장으로 근무하던 1951년 1월 빨치산 2000여 명이 정읍 칠보발전소를 포위하자 75명의 병력으로 적을 무찌르고 탈환 작전에 성공했다. 그는 같은 해 5월 상부로부터 빨치산이 은거할 수 있는 전남 구례 화엄사를 불태우라는 명령을 받자, 대웅전 문짝을 뜯어내 태우고 '전각 문짝을 태운 것도 절을 태운 것이니 명령에 따른 것'이라며 돌아갔다. 잿더미가 될 뻔했던 화엄사 각황전은 지금 국보 67호로 남아 있다.

차 경무관은 공주경찰서장 시절 심장마비로 숨졌다. 6·25전쟁에서 세운 공을 인정받아 2011년 총경에서 경무관으로 1계급 특진 추서됐다.

2013년 6·25전쟁 영웅으로 선정됐다

원문보기

https://news.v.daum.net/v/20170930030350970


일제 치하 보천교의 대한독립운동 비사秘史


보천교(증산도 제1 부흥기 당시), '독립운동 자금조달과 항일비밀결사 투쟁' 에 혁혁한 공헌

 올해는 우리 나라가 일제식민지가 되었던 경술국치(1910년)로부터 111년이 되는 해입니다. 일제 당시 천도교, 대종교 등의 민족종교와 불교, 기독교 등의 종교계가 독립운동을 직간접적으로 전개하였음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일제 당시 보천교가‘독립운동 자금조달과 항일비밀결사 투쟁’에 혁혁한 공헌을 했던 사실은 잘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보천교는 선도, 태을교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단독] 7년전 日서 발견된 고려 나전칠기가 리움 전시장에 나타난 사연은?

[아무튼, 주말] 나전국화당초문 팔각합은 어떻게 삼성으로 갔나

허윤희 기자

입력 2021.10.16 03:00

지난 2014년 일본 아이치현 도자미술관 특별전 '고려·조선의 공예'에서 최초 공개된 '고려 나전 팔각합'. 높이 8.0cm, 폭 16.4cm. /아이치현 도자미술관 도록

지난 2014년 지금껏 공개된 적 없는 최상급 고려 나전칠기 작품이 일본에서 발견됐다. 흑칠(黑漆) 바탕에 자개로 국화당초무늬가 촘촘히 박힌 팔각합(盒·뚜껑이 있는 그릇). 아이치현 도자미술관은 특별전 ‘고려·조선의 공예’에서 이 나전을 최초로 공개하면서 “고려 14세기 후반 작품이며,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수작”이라고 소개했다<본지 2014년 10월 21일 자 A1~2면>.

이 국보급 나전칠기합이 700년 만에 고국에 돌아왔다. 삼성미술관 리움이 2015년 말 일본인 소장가로부터 작품을 구입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지난 8일 재개관한 리움의 고미술 상설전을 통해서다. 4개 층을 전면 개편해 소장품 154점을 새로 펼친 상설전에서 ‘나전 팔각합’은 주목도가 가장 높은 1층 ‘국보장(欌)’에 놓였다. 높이 8.0㎝, 폭 16.4㎝. 잘게 썬 자개 조각을 치밀하게 엮은 국화 꽃잎이 조명을 받아 반짝거린다. 이승혜 리움 책임연구원은 “국보급만 전시하는 제일 좋은 자리”라며 “국보 ‘가야 금관’이 놓여있던 메인 진열장에 귀한 나전을 새로 모셨다”고 했다.

15일 오전 삼성미술관 리움 고미술 상설전 1층 전시장에서 한 관람객이 메인 진열장에 놓인 '나전 국화당초문 팔각합'을 스마트폰으로 찍고 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어떻게 리움 품에 안겼나

7년 전 발견 당시 국내 학계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정교한 자개 무늬가 돋보이는 수작”이라며 환호했다. 고려 나전칠기는 청자, 불화와 더불어 고려 미술을 대표하는 최상급 공예품이지만 실물이 워낙 귀해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16점만 확인됐다. 이 작품은 상태가 매우 좋은 데다, 유일한 팔각합 형태라 주목을 받았다. 본지 기사로 소식을 접한 상당수 전문가들이 일본 전시장을 찾아 실물을 관람했다고 한다.

문화재청 국외소재문화재재단도 작품을 구입하기 위해 현지 조사에 나섰던 것으로 확인됐다. 재단 관계자는 “일본인 소장가를 접촉하고, 국내 나전 관련 전문가들의 검토까지 거쳤으나 가격대가 워낙 높았고, 시대가 고려가 아닌 조선일 가능성도 제기돼 재단이 더 나서기엔 여러모로 부담이 있었다”고 했다.

삼성미술관 리움이 지난 2015년 말 일본인 소장가로부터 구입한 '나전 국화당초문 팔각합'의 뚜껑 윗부분. /삼성미술관 리움

삼성미술관 리움이 지난 2015년 말 일본인 소장가로부터 구입한 '나전 국화당초문 팔각합'. /삼성미술관 리움

그런데 어떻게 이 작품이 리움에 왔을까. 리움 측은 “지난 2015년 열린 ‘세밀가귀(細密可貴)’ 특별전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했다. 당시 리움은 전 세계 흩어진 고려 나전 중 8점을 영국·미국·네덜란드·일본에서 빌려와 전시했고, 관람객들은 치밀하게 새겨 넣은 무늬와 환상적 빛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리움 관계자는 “명품을 한 점 한 점 빌려와 한자리에 모으면서 고려 나전이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지 깨닫게 됐고, 소장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했다. 최응천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은 “리움 측이 전시 준비 과정에서 이 작품의 존재를 알게 됐고, 마침 일본인 소장가도 팔려는 의사가 있어서 구매가 성사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지난 2017년 일본인 소장가 도도로키 다카시(等等力孝志) 부부가 한국에 기증한 ‘분청사기 이선제(李先齊) 묘지’. 이번에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공개된 '나전 팔각합'도 도도로키씨가 소장하고 있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선제 묘지’ 기증한 그 일본인

흥미로운 건 이 일본인 소장가와 한국과의 인연이다. 지난 2017년 ‘분청사기 이선제(李先齊) 묘지’를 한국에 기증한 도도로키 다카시(1938~2016)가 그 주인공이다. ‘이선제 묘지’는 세종·문종 때 문신 이선제의 무덤에 묻혔던 부장품으로, 분청사기에 상감 기법으로 글씨를 새긴 묘지(墓誌·죽은 사람의 행적을 적어 무덤에 묻는 돌이나 도판). 도굴된 뒤 1998년 일본으로 불법 반출됐고, 도도로키씨는 이 사실을 모르고 구입했다.

그런데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조선일보 1998년 9월 2일 자 기사를 통해 ‘이선제 묘지’가 불법 반출됐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재단 관계자가 내민 기사를 본 부부가 뒤늦게 이 사실을 깨닫고 한국에 기증한 것이다. 남편이 별세한 후 열린 기증식에서 아내 도도로키 구니에씨는 “이번 기증이 한·일 우호의 끈으로 남기를 기원한다”고 말해 감동을 줬다. 남편도 생전에 ‘이선제 묘지는 내가 가장 아끼는 미술품 중 하나지만, 조상을 섬기는 마음은 한국과 일본이 같기 때문에 예술적 가치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최응천 이사장은 “별세한 도도로키씨는 다수의 한·일 미술품을 소장했던 유명 컬렉터”라며 “투병 중이던 그가 평생 아끼던 소장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리움과 연이 닿은 것 같다. ‘이선제 묘지’에 이어 귀한 나전 작품이 국내에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환영할 일”이라고 했다.

2017년 9월 19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분청사기 이선제 묘지'를 기증한 도도로키 구니에씨. 그는 "이번 기증이 한일 우호의 끈으로 남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DB

◇형태뿐 아니라 디테일 독특

고려 나전칠기는 당대에 이미 명성을 떨쳤다. 12세기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도경’에 “고려의 나전 기술은 세밀하여 귀하다” “극정교(極精巧)”라고 극찬했을 정도다. 전문가들은 ①아주 잘게 썬 자개 조각을 조합해 엮은 치밀한 무늬 ②금속선 두 줄을 꼬아 외곽선을 장식한 고난도 기법 ③대모(바다거북 등딱지)의 뒷면을 채색한 뒤 기물 표면에 붙여 붉은빛·주황빛·노란빛이 환상적으로 빛나는 기술은 중국·일본에는 없는 고려만의 것이라고 이유를 꼽는다.

이번 작품은 국화와 당초무늬가 뚜껑과 몸체를 빼곡히 채웠고, 넝쿨무늬 이파리가 곡선을 이루며 출렁거린다. 뚜껑과 몸체의 각진 부분에는 가느다란 금속선 두 줄을 입혔다. 그런데 팔각합이라는 독특한 형태뿐 아니라 세부 묘사에서도 특이한 점이 있다. 이용희 전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장은 “나전을 오리는 가공 방법과 문양은 전형적인 고려 양식”이라면서도 “보통 고려 나전은 외곽선에 금속선 두 줄을 꼬아서 넣는데 이 작품에선 그게 안 보인다”고 했다. 이광배 리움 책임연구원도 “두 줄을 꼬아서 넣은 금속선 대신 일(一)자 금속선으로 마감했다. 꽃과 꽃을 연결하는 가지 역시 금속선이 아니라 얇은 나전으로 잘라 붙인 것도 색다르다”고 했다.

리움이 이 작품을 ‘고려 나전’으로 못 박지 않고, ‘고려 말~조선 초(14~15세기)’라고 범위를 확대한 이유다. 리움 측은 “14세기 고려 말 작품이라고 보지만, 조선에 걸쳐있을 가능성이 있어서 범위를 열어놨다”고 했다. 7년 전 아이치현 도자미술관은 ‘고려 14세기 후반’이라고 소개하면서 도록 설명에 “고려 말기에서 조선시대로 가는 과도기 모습을 보여준다”고 붙인 바 있다.

지난 2014년 일본 아이치현 도자미술관 특별전 도록에 실린 '나전 팔각합'. 뚜껑과 몸체를 분리해 속살이 드러난 모습이다. /아이치현 도자미술관 도록

이로써 한국은 온전한 형태의 고려 나전칠기 작품을 4점 보유하게 됐다. 지난해에는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또 다른 일본 개인 컬렉터에게서 구입한 고려 나전국화넝쿨무늬합을 공개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이용희 전 부장은 “삼성 측이 지난 4월 이건희 컬렉션을 국가에 기증해 온 국민이 향유할 수 있게 된 데 이어, 리움미술관이 일본에서 발견된 귀한 나전까지 고국에 들여왔다고 하니 마음이 놓인다”며 “해외로 반출된 국보급 유물이 돌아왔다는 점에서 박수를 쳐주고 싶다”고 했다.

원문보기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1/10/16/YSP4YC2YGZDOFI4HFNW2H4ZAVY/

 

- 조선왕릉동부지구관리소ㆍ구리시 보건소 협업 / 10.20.~11.10. 방문 인증하면 모바일 선물 증정 -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조선왕릉동부지구관리소(소장 송시경)는 구리시 보건소와  맺은 첫 협업으로 오는 20일부터 11월 10일까지 ‘이 가을, 왕의 숨결을 따라 걷다! 세계문화유산 동구릉 걷기 행사’를 개최한다.
   * 운영시간(월요일 휴관): (10월) 오전 9시〜오후 6시 / (11월) 오전 9시〜오후 5시30분


  ‘세계문화유산 동구릉 걷기 행사’는 산림욕을 즐기며 걷기 좋은 가을날, 동구릉의 울창한 숲길을 즐길 수 있도록,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길따라 걷기 챌린지(WalkOn, 워크온)’를 통해 행사에 참여하고, 지정된 구역을 모두 도착한 것이 확인되면 소정의 상품(모바일 상품권)을 제공한다.


  구체적인 참여 방법은 ‘길따라 걷기 챌린지(WalkOn)’에서 ‘함께 걸어요! 구리’에 가입한 후, 휴대폰의 위치 정보(GPS)접근 권한을 허용하고 동구릉을 걷는 것이며, 동구릉의 총 9기 능 중 7기 이상의 능을 걸어야만 상품을 받을 수 있다.


  이번 행사는 코로나19 확산 예방과 안전을 위하여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등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진행 할 계획이다. 더 자세한 사항은 조선왕릉누리집(http://royaltombs.cha.go.kr)과 구리시 누리집(https://www.guri.go.kr)을 방문하면 된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조선왕릉동부지구관리소는 이번 행사가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친 국민을 위로하고 잠시나마 가을의 정취 속에서 마음의 여유를 갖는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

2021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시리즈 ‘위대한 유산,

오늘과 만나다’ 온라인 상영회 개최

10.27(수)~11.9.(화), 2주간 ‘위대한 유산, 오늘과 만나다’ 온라인 상영회 개최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유튜브, 네이버TV 채널 통해 매일 오전 10시 순차 공개
극으로 만든 ‘종묘제례악’부터 명인들의 종목 공연, 종목 활용 창작공연까지 다채로운 프로그램

출처: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2021-10-20 08:00

서울--(뉴스와이어) 2021년 10월 20일 --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사장 정성숙)과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민병찬)은 2021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공연시리즈 ‘위대한 유산, 오늘과 만나다’ 온라인 상영회를 10월 27일(수)~11월 9일(화)까지 2주간에 걸쳐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공식 유튜브와 네이버TV를 통해 개최한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공연시리즈 ‘위대한 유산, 오늘과 만나다’를 통해 유네스코 등재 인류무형문화유산 원형과 이를 소재로 한 창작공연을 선보이며, 전통문화 콘텐츠의 우수성과 인류무형문화유산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올해로 4회를 맞이한 ‘위대한 유산, 오늘과 만나다’는 9월 14일(화)~26일(일)까지 2주 동안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8회 공연이 진행돼, 2000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을 소재로 한 창작공연은 추석 연휴 기간에 걸쳐 진행돼 가족·친구·연인과 함께 명절 나들이를 즐기러 온 관람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극장 용에서 진행된 공연뿐 아니라, 같은 기간 유형문화유산의 보고인 국립중앙박물관 거울못을 배경으로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다양한 전통예술 공연을 촬영해 이번 온라인 상영회를 통해 공개한다. 온라인을 통해 더 많은 관객들이 전통문화유산의 깊은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문화 향유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위대한 유산, 오늘과 만나다’ 온라인 상영회에서는 영산재, 가곡, 판소리, 남사당놀이, 농악, 아리랑 등 유네스코 등재 종목과 등재 추진 중인 탈춤까지 전통예술 명인의 공연으로 인류무형문화유산의 원형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원형 공연뿐 아니라 The광대, 그림, 왓와이 아트, 음악그룹 나무 등 활발한 활동으로 주목받고 있는 전통공연예술단체들의 창작공연까지 만나볼 수 있다. 극으로 만들어 호평을 받은 기획 공연 종묘제례악 ‘반가운 만남 있어 노래하고 춤추다’를 포함한 오프라인 공연 프로그램들도 온라인 상영회를 통해 다시 한번 선보여, 인류무형문화유산 공연을 랜선을 통해 어디에서나 쉽게 관람할 수 있다.

공연을 주최·주관하는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정성숙 이사장은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2년간 공연 현장에서 관객을 많이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이 컸다”며 “이번 온라인 상영회로 시공간 제약 없이 우리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위대한 유산, 오늘과 만나다’ 온라인 상영회는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공식 유튜브 채널과 네이버TV를 통해 공개된다. 공연 관련 상세정보는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개요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은 전통예술의 진흥과 문화향수 기회 확대를 통한 국민의 문화 품격 향상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2007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재단 설립 허가를 받아 국악문화재단으로 출발했으며, 2009년 재단 명칭을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으로 바꿨다. 전통예술의 보급 및 저변 확대, 고품격 전통문화 콘텐츠 개발 및 전통예술의 대중화, 신진 인력 양성, 해외 교류 활동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웹사이트: http://www.kot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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