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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중계]음력 7월 15일은 머슴들의 날인 '백중',농기계 등장 이후 머슴은 사라졌으나 '밀양백중놀이'는 전승 / 조선 명기(名技)들의 시(詩)

문화재방송 2022. 8. 10. 21:44

기획. 취재. 촬영. 편집:문화재방송

 

밀양백중놀이는 음력 7월 15일 백중 무렵에 경상남도 밀양 지역에서 행해지는 전통놀이이다. 논의 김매기 작업이 끝나는 백중 무렵에 농군을 위로하기 위한 잔치에서 유래했다. 백중은 ‘호미 씻는 날’, ‘머슴 날’로도 불렸다. 바쁜 농사일 을 끝내고 ‘호미 씻는 날’이 되면 김매기 할 때 사용했던 호미를 깨끗하게 씻어 창고에 들여놓는다.

 

밀양백중놀이의 순서는 크게 앞놀이와 본놀이, 뒤풀이로 나뉜다. 앞놀이는 제의적 성격을 지닌 잡귀막이굿, 모정자놀이, 농신제로 구성된다. 본놀이는 작두말타기와 춤판, 뒤풀이는 오북춤과 화동마당으로 구성된다. 밀양백중놀이에는 풍년을 기원하는 제의적 성격과 농민의 고달픔과 한을 달래는 놀이적 성격이 복합적으로 나타 난다. 잡귀막이로 액(厄)을 막고 농신제로 풍년을 기원하며, 춤판으로 한을 승화한다. 춤판에는 양반춤, 병신춤, 범부춤 같은 다양한 춤이 등장하며 놀이의 마지막 단계인 뒤풀이에는 참여자 모두가 한데 어우러진다. 밀양백중 놀이는 놀이꾼과 악사, 춤꾼, 양반 등이 하나가 되는 화합의 장이다.

 

밀양백중놀이는 전통농경사회를 지탱했던 농군을 위한 행사이자 축제이다. 이 놀이는 공동체를 결집하고 삶을 풍 요롭게 하고자 했던 우리의 신명과 흥을 보여준다.




글, 사진. 국립무형유산원 조사연구기록과

 

 

입하(立夏)로부터 시작되는 여름은 '녀름짓다'라는 옛말처럼 밭매기와 논매기 등 농사일이 한창인 계절이다. 그러나 '어정 7월, 동동 8월' 이라는 옛말이 있듯이 농촌의 7월은 바쁜 농번기를 보낸 뒤이면서, 한편으로는 가을추수를 앞둔 달이어서 잠시 허리를 펼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백중'이라는 속절(俗節)을 두어 농사일을 멈추고, 천신의례 및 잔치와 놀이판을 벌여 노동의 지루함을 달래고 더위로 인해 쇠약해지는 건강을 회복하고자 했다. 백중의 유래에 대해서는 몇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불가에서 유래된 것으로 조선 후기에 간행 된《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불가의 중들이 재를 올리고 불공을 드리는 큰 명절로 여긴다. 상고하면《형초세시기(荊楚歲時 記)》에 이르기를 중원일(中元日)은 승니, 도사, 속인들이 모두 분(盆)을 만들어 이것을 절에 바친다고 했다.

또 상고하면《우란분경(盂蘭盆經)》에 목련비구(木蓮比丘)가 오미백과(五味百果)를 갖추어 분 안에 넣어 갖고 시방대덕(十方大德)에 공양한다고 하였다. 지금 말한 백중일이 백과를 가리키는 것이다. 고려 때는 부처를 숭상하고 이 날이 오면 항상 우란분회(盂蘭盆會)를 베풀었다. 오 늘날 불당에서 재를 올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백중의 풍속

백중에는 여러 풍속이 전해 온다. 각 가정에서는 익은 과일을 따서 사당에 천신(薦新)을 올렸으며, 궁중에서는 종묘에 이른 벼를 베어 천신을 올리기도 하였다. 농가에서는 백중날 머슴들과 일 꾼들에게 돈과 휴가를 주어 즐겁게 놀도록 하였다. 따라서 이 날이 되면 머슴들과 일꾼들은 특별히 장만한 아침상과 새옷 및 돈을 받는데 이것을 '백중돈 탄다' 라고 하였다. 백중돈을 탄 이들은 장터에 나가 물건을 사거나 놀이를 즐기기도 한다. 이때 서는 장을 특별히 '백중장' 이라 하여 풍장이 울리고 씨름 등을 비롯한 갖가지 흥미 있는 오락과 구경거리가 있어서, 농사에 시달렸던 머 슴이나 일꾼들은 마냥 즐길 수 있는 날이다. 지역에 따라 이 날 농신제(農神祭)와 더불어 집단놀 이가 행해지는데 이를 '백중놀이'라고 한다.

이날은 그해에 농사가 가장 잘 된 집의 머슴을 뽑아 소에 태워 마을을 돌며 하루를 즐기는데, 이를 '호미씻이'라 한다. 호미씻이는 지방에 따라서 초연(草宴), 풋굿, 머슴날, 장원례(壯元禮)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마을 사람들은 장원한 집의 머슴 얼굴에 검정칠을 하고 도롱이를 입히고 머리에 삿갓을 씌워 우습게 꾸며 지게나 사다리에 태우거나 아니면 황소 등에 태워 집집마다 돌아다닌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면 그 집주인은 이들에게 술과 안주를 대접하니, 이날을 머슴날이라고 하기도 한다

마을어른들은 머슴이 노총각이나 홀아비면 마땅한 처녀나 과부를 골라 장가를 들여 주고 살림도 장만 해 주는데, 옛말에 '백중날 머슴 장가간다' 라는 말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제주지방에는 백중날에 살찐 해산물들이 많이 잡힌다고 하여 쉬지 않고 밤늦도록 해산물을 채 취하기도 하고, 또 한라산에 '백중와살'이라는 산신이 있어 백중을 고비로 익은 오곡과 산과(山果) 를 사람들이 따가면 허전하여 샘을 낸다고 하여 산신제를 지내기도 한다.신라의 풍속에 백중일을 기해서 부녀자들의 삼삼기 풍속이 있었다. 이에 대한 유래는 고려 중기에 간행된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신라 3대 유리왕조의 삼삼기 풍속의 기록에서 찾을 수 있는 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왕이 6부를 정한 후, 이를 두 패로 나누어서 두 왕녀에게 각각 한 패씩 거느리게 하고 7월 기 망(旣望, 16일)부터 8월 15일까지 길쌈을 시켰는데, 그 공의 다소를 보아 진편이 이긴 편에 음식 대접을 하고, 이어서 가무 백희를 하니 이것을 가배(嘉俳)라 하였다."이러한 풍속은 근래까지도 경남지역에서 '두레삼'이라 하여 전승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남 지역에서는 친한 부녀자들끼리 품앗이로 한 집씩 돌려 가며 삼을 삼는 풍속이 전역에 분포하는 데, 이를 두레삼이라 한다. 이때 주인집에서는 음식대접을 하기도 하고, 혹은 편을 나누어 경쟁을 하여 진 편이 이긴 편에 음식대접을 하기도 한다.

 

백중의 시절 음식

여름철에는 밭작물인 밀과 보리, 수수나 감자 등을 수확한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밀을 빻아 밀가루를 만들어 밀전병과 밀개떡을 해 먹으며, 또 수수나 감자로 떡을 만들어 먹으며 부침개를 해 먹기도 한다. 이때 호박이 제철이므로 호박부침을 별미로 만들어 먹는다.

경남 지역에서는 백중날 백가지 나물을 무쳐 먹고, 백가지 풀을 고아 그 물을 먹으면 약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백중날에 백 가지 나물을 해 먹어야 하는데, 백 가지의 나물을 장만할 수가 없어 가지의 껍질을 벗겨서 희게 만든 백가지[白茄子]를 만들어 먹는다.전남 어촌지역에서는 백중날 소라나 다슬기 등이 제철이므로 이를 시식으로 먹는다. 또 떡을 하는 곳도 있는데, 주로 밀개떡·밀전병을 하며, 시루떡을 해서 성주께 올리기도 하고, 찰떡이나 서숙떡·감자떡 등을 하기도 한다. 제주 지역에서는 빅개회를 먹는다. 빅개란 바닷고기로 7월에서 9월 사이에 어획된다. 가죽을 벗기고 잘게 썰어 양념하여 강회로 만들어 먹는다.

태극기는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강인하게 살아남아 대한민국이 독립국가라는 것을 상징하였습니다.

 

 

임시정부 요인들은 태극기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며 독립의 의지를 다졌고
독립운동가들은 가슴에 늘 태극기를 품고 다녔습니다.

 

 

그 후 광복을 맞이하고 전쟁을 겪는 또 한번의 시련 속에서도
태극기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며 민족의 정신이 되어주었죠.

 

 

국군은 태극기에 승전을 다짐하는 글귀를 새기며 조국수호의 의지를 불태웠고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은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자식이 돌아오길 기원했습니다.

 

 

오랜 세월, 시련에 빠진 우리 민족의 버팀목이 되어준 태극기.
태극기의 변천사는 곧 우리 역사의 물결이었습니다.

 

문화재로 등록된 18점의 태극기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게양 태극기 등록문화재381호

소 재 지;
서울 영등포구 의사당대로 1, 국회 헌정기념관 (여의도동,국회)

 

1930년대 워싱턴의 깃발 제작 회사에서 만든 것으로, ­

1942년 이승만 박사가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한국독립 만찬회를 열 때

사용했다고 알려진 태극기(太極旗)로,

재미동포 김동준씨가 1981년 9월 호텔을 방문했을 때 발견,

보관하다 대한민국 국회에 기증했다. 미국에서의 태극기(太極旗) 제작 및

항일독립운동사의 연구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

 

데니(O.N.Denny) 태극기 등록문화재382호

 

‘데니 태극기’는 조선말 고종이 미국인 외교고문 데니

(O. N. Denny, 1838~1900)에게 하사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태극기(太極旗)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데니가 1890년 미국으로 귀국하면서 가지고 간 것을

그의 후손이 보관하다 우리나라에 기증했다.

구한말 외교와 태극기(太極旗) 변천사 연구 등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미 해병대원 버스비어(A.W.Busbea) 기증 태극기 등록문화재383호

소 재 지;
경기 하남시 역말로 71, 하남역사박물관 (덕풍동)

 

미 해병대 출신 버스비어(A. W. Busbea)가 한국전쟁 당시 서울수복 시가전 중

우리 시민이 트럭을 몰던 미군에게 전달해 준 태극기(太極旗)로,

미 해병대원 버스비어가 전쟁기간 내내 군용트럭에 꽂고

전투 현장을 누비다 귀국 시 갖고 돌아가 50여년간 보관하던 것을

2005년 하남시에 기증하여 하남역사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동덕여자의숙 태극기 등록문화재384호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화랑로13길 60, 박물관 (하월곡동, 동덕여자대학교)

1908년 동덕여자의숙(同德女子義塾) 개교와 함께 교정에 게양되었던 태극기(太極旗)로, 일제 36년동안

장롱 속에 깊숙이 숨겨져 보관되어 오다 한국전쟁 때에는 조동식 교장이 태극기(太極旗)를 옷 속에 꿰매고

봇짐에 넣어 피난하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소중히 간직되어 온 태극기로, 100년 역사를 지닌 사학 상징물로서 뿐 아니라

국가 상징으로서의 역사적 가치가 크다. 옷감재료나 바느질법 등에서 시대성을 볼 수 있고 100년 동안 학교의 정신적

지주로서의 역할을 한 상징성이 크다.

 

태극기 목판 등록문화재385호

소 재 지;
충남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230(독립기념관)

일제강점기 3·1운동 때 태극기(太極旗)를 대량으로 찍어내는 데 사용된 널판으로,­ 태극기(太極旗)를

찍어내기 위해 목재에 4괘와 태극문양을 새긴 목판으로 희귀할 뿐 아니라 당시 제작기법과 상황을

헤아릴 수 있는 것으로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3·1운동 당시 태극기 제작기법을 짐작할 수 있는

좋은 자료로, 1985년 남궁용이 독립기념관에 기증했다.

 

 

남상락 자수 태극기 등록문화재386호

 

소 재 지;
충남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230(독립기념관)

독립운동가 남상락(南相洛, 1892~1943)이 1919년 4월 4일 독립만세 운동에 사용하기 위하여

부인 구홍원(具鴻瑗)과 같이 만든 것으로, 전체가 손바느질로 제작된 희귀한 태극기(太極旗)이다.

흰색 명주 천에 색실로 수를 놓았다. 상하로 맞물려 있는 태극 문양의 양방은 홍색실로, 음방은

청색실로 수를 놓았다. 4괘는 검정실로 수를 놓았으며, 테두리는 바느질로 마감했다.

직접 짠 명주에 손바느질로 제작된 희귀한 태극기(太極旗)로,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

 

대한독립만세’ 태극기 등록문화재387호

 

소 재 지;
충남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230(독립기념관)

가늘고 긴 삼각형 형태의 깃발 속에 제작된 태극기(太極旗)로, 미국에서 광복 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미국에서의 독립운동 관련 태극기 변천사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깃봉 있는 날염 태극기를 박음질하고, 왼쪽 청색 부분에는 한자로 된 '대한독립만세(大韓獨立萬歲)'를 낱.

바탕은 청색과 홍색 펠트 천을 연결한 기다란 삼각형 모양이다. 오른쪽의 홍색 부분에는 붉은색 글자로 박음질했다.

 

 

 

김구 서명문 태극기 등록문화재388호

소 재 지;
충남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230(독립기념관)

대한민국임시정부 김구(金九, 1876~1949) 주석이 1941년에 중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매우사(梅雨絲, 미우스 오그) 신부에게 준

태극기(太極旗)로, 바탕에 광복군에 대한 우리 동포들의 지원을 당부한 김구(金九) 선생 친필 묵서가 쓰여져 있다.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 등록문화재389호

 

소 재 지;
충남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230(독립기념관)

광복군(光復軍) 제3지대 2구대에서 활동하던 문웅명(文雄明, 일명 문수열)이 간직한 태극기(太極旗)로,

바탕에 결의를 다지는 글귀와 서명이 빼곡하고 나라사랑과 자유에 대한 굳건한 열망이 담겨있다.

 

유관종 부대원 태극기 등록문화재390호

 

소 재 지;
충남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230(독립기념관)

유관종(劉官鍾) 소위가 1950년 10월 초 호남지구 진격 작전시 사용한 태극기(太極旗)로,

바탕에 무운장구를 염원하는 글귀와 서명, 지명이 기록되어 있어 당시 전투 경로 등을 연구할 수 있다.

 

 

경주 학도병 서명문 태극기 등록문화재391호

 

소 재 지;
충남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230(독립기념관)

한국전쟁 당시 경주에서 자원한 학병 19용사 등이 출정 전에 태극기에 각자 소감을 적고 서명 한

태극기로 학도병들의 굳은 의지와 각오가 표현되었다. 가운데에 "남북통일"이라는 글자가 한자로

크게 씌어 있다 그 외에도 "우리의 죽음은 역사의 꽃이 되라", "17세 붉은 피 오직 조국에!",

"서라벌의 용사여 잊으랴 화랑정신" 등 6·25전쟁 중 학도병들의 굳은 의지와 각오가 바탕에

가득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건국법정대학 학도병 서명문 태극기 등록문화재392호

 

소 재 지;
충남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230(독립기념관)

1950년 9월 1일 부산에 주둔해 있던 육군부대에서 제3차 학도병 자원 시 부산의 건국법정대학 법률과 학생이

주축이 되어 서명한 태극기로, 학도병들이 조국을 위해 몸바칠 것을 맹세하고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에서도

고이 간직해 온 태극기로 가치가 크다. 태극 문양의 홍색 양방과 연한 청색의 음방이 아래위로 물려 있고 4괘는

검은색이다. 여백에는 학도병들이 조국의 통일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다는 결의를 다지며 무운장구를 비는

글귀와 서명들로 가득하다.

 

이철희 ‘사변폭발’ 태극기 등록문화재393호

 

소 재 지;
충남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230(독립기념관)

한국전쟁 당시 특무상사 이철희(李鐵熙)의 태극기로, 국군의 애국정신과 투철한 군인정신이 생생하게 표출되어

있고 치열했던 남·북의 진군경로 등이 기록되어 있어 한국전쟁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흰색 광목천에 날염된 것으로, 태극문양과 4괘의 모양이 오늘날의 태극기와 규격이 같다. 네 귀퉁이에 '

사변폭발(事變爆發)'이라는 글자가 낱글자로 또박또박 써 있고, 가운데 부분의 상단에는 '단기 4283.6.25日'

이라는 글귀가 가로로 써 있다. 태극문양 주변에는 지명이 빼곡히 둘러 적혀 있다.

태극문양의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의정부에서부터 시작하여 서울, 안양, 수원, 천안,

그리고 태극문양의 제일 아랫부분의 대구까지 약 30여 개의 지명이 빙 둘러가며 씌어 있다.

또 거기에서부터는 부산, 영천, 경주, 충주, 이천, 10.5 서울입성, 승호리, 10.21 평양 등이 그 반대쪽으로

빙 둘러 씌어 있다. 이로 볼 때 태극문양의 오른쪽으로 둘러적힌 지명들은 북한군의 남침경로로 보이고

왼쪽으로 둘러적힌 지명들은 국군의 북진경로라고 한다.

 

불원복 태극기 등록문화재394

 

소 재 지;
충남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230(독립기념관)

조선 말 전남 구례 일대에서 활약한 의병장 고광순(高光洵, 1848~1907)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태극기로,

머지않아 국권을 회복한다는 "불원복(不遠復)" 글자가 수놓아져 있어 항일 독립운동과 관련하여 사료적 가치가 크다.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 등록문화재395-1호

 

소 재 지;
충남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230(독립기념관)

1923년 상해 대한민국임시의정원(大韓民國臨時議政院)에 걸렸던 것으로 전해지는 태극기(太極旗)로,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김붕준(金朋濬)이 부인과 함께 제작한 태극기이다. 두 폭의 천을 아래위로

이어 박아서 만든 바탕에 태극문양과 4괘는 색깔 있는 천을 오려서 박음질하였다. 태극문양의 양방과

음방은 동서 방향으로 맞물려 있다. 깃봉 쪽 아래위 모서리에 1m 길이의 묶음줄이 달려 있다.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 등록문화재395-2호

 재 지;
경기 광명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장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등을 역임한 김붕준(金朋濬, 1888∼1950) 일가가

소장하고 있는 태극기 3점은 부인인 노영재((盧英哉)가 1940년대를 전후하여 제작한 것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정부공보 제75호(대한민단 24년 8월 20일)에 게시된 태극기와 유사한 형태다. 특히 재봉틀

박음질 제작기법이나 제작구도를 볼 때 중경 임시정부 시절 제작된 김구(金九) 서명문 태극기(등록문화재 제388호)와

비슷하여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사의 국가 표상적인 맥을 함께 할뿐 아니라 국기 변천사를 알 수 있어 역사적 가치가 크다.

 

조선 명기(名技)들의 시(詩)

부안기생 매창

 

그대에게

봄 오고 그댄 오지 않으니
바라보아도 바라보아도 덧없는 마음
들여다 보는 거울엔 먼지가 끼어
거문고 가락만 달아래 흐르네

취하신 님께

취하신님 사정없이 날 끌어단
끝내는 비단적삼 찢어놓았지
적삼 하날 아껴서 그러는게 아니어
맷힌정 끊어질까 두러워서그렇지

 

성천 기생 채소염

말위에서 시를 읋는다

성천 길 위에 말 멈추니
꽃지는 봄날 두견새 시름일세
물길은 평양으로 통하고
땅은 강선루에 잇닿았네

 

송도기생 황진이

상사몽

꿈길밖에 길이없어 꿈길로가니
그님은 나를 찾아 길 떠나셨네
이뒤엘랑 밤마다 어긋나는 꿈
같이 떠나 노중에서 만나기를 지고

相思相見只憑夢 (상사상견지빙몽)
그리워라, 만날 길은 꿈길밖에 없는데
儂訪歡時歡訪儂 (농방환시환방농)
내가 님 찾아 떠났을 때 님은 나를 찾아왔네
願使遙遙他夜夢 (원사요요타야몽)
바라거니, 언제일까 다음날 밤 꿈에는
一時同作路中逢 (일시동작로중봉)
같이 떠나 오가는 길에서 만나기를

산은 옛산이 로되

물은 옛물이 아니로다

주야(晝夜)에 흐르그든 옛물이 있을소냐

인걸(人傑)도 물과같도다

가고 아니 오노 매라

어져 내일이야 그릴줄 모르던가
이시라 하더면 가랴마는 제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기생 송이

내 사랑 남 주지 말고 남의 사랑 탐치마소
우리 두사랑에 잡사랑 행여 섞일세라
아마도 우리사랑은 류가 없는가 하노라
일생에 이사랑 가지고 괴어 살려 하노라

진주기생 계향

먼곳에 있는 님에게 부치다
헤어진뒤 (雪山)설산 막혀 아득한 저길
꿈속에서나 님곁에서 웃어봅니다
깨고나면 베겟머리 그림자도 볼수없어
옆으로 몸돌리면 등잔불도 쓸쓸해요

평양기생 매화

죽어서 잊어야 하랴 살아서 잊어야 하랴
죽어 잊기도 어렵고 살아그리기도 어려워라
저 님아 한 말만 하소서 사생 결단 하리라

매화 옛 동절에 봄철이 돌아온다
옛 피든 가지 마다 핌적도 하다마는
춘설(春雪)이 난 분분하니
필동 말동 하여라

평양기생 장연화

놀이터의 노래에 목이 쉬어
돌아와서 화가 나 함부로 뜯는
가야금이여 줄이 끊어지도록 뜯어며
뜯어며 이밤을 새일거나

송도기생 황진이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해설

청산리靑山裏:푸른 산속.
벽계수碧溪水:푸른 시냇물,
이것은 종친宗親 벽계수碧溪守를 빗댄 말이다.
수이:쉬,쉽게,빨리.
일도창해一到蒼海:한번 넓은 바다에 이름.
명월明月:밝은 달인데,
황진이의 예명이기도 하다.
`벽계수`와 아울러 이른바
중의법重義法으로 표현한 것이다.
만공산滿空山:쓸쓸한 산에 가득 차 있다.
靑山裡碧溪水 莫誇易移去 一到滄海不復還
明月滿空山 暫休且去若何
청산리 벽계수야
청산리(靑山裡) 벽계수(碧溪水)ㅣ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도라오기 어려오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수여간들 엇더리.

~현대어 풀이~
청산에 흐르는 푸른 시냇물아,
빨리 흘러가는 것을 자랑하지 말아라.
한 번 넓은 바다에 이르면 다시 돌아오기 어려우니,
밝은 달이 텅 빈 산에 가득 비추고 있으니
잠시 쉬어간들 어떠하겠는가?

<이상 인터넷 검색창에서 전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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