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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중계]트로트 여왕 송가인의 힘은 무당 가문에서 익힌 판소리였다. 국가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문화재방송 2022. 9. 18. 00:59

기획. 취재. 촬영. 편집. 내레이션:문화재방송(헤리티지)

국가 무형문화재 72호 진도씻김굿

진도씻김굿은 1980년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기예능보유자로는 박병천(朴秉天:무가)·채계만(蔡桂滿:아쟁)·김대례(金大禮:무가) 등이 있다.

진도에서는 무당을 ‘당골’이라고 부르는데, 과거에는 단골판이 있어서 그곳에서만 굿을 하고 다른 당골이 활동하는 곳에는 갈 수 없었다. 지금은 이러한 관계가 미약해졌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유지되던 세습무 당골들도 맥이 끊어지고, 신을 받은 사람들이 씻김굿을 배워서 활동하는 사례가 보이는데, 진도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송순단이 그러한 예이다.

진도에서 씻김굿은 과거와 같이 왕성하게 전승되고 있지는 않지만, 지금도 진도의 토박이 주민들은 상을 당하면 당골을 불러서 씻김굿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송가인 어머니 송순단 씨는 국가 무형문화재 72호 진도씻김굿 전수조교다. 진도 씻김굿이란 전라남도 진도에서 전승되는 천도 굿으로, 이승에서 풀지 못한 죽은 사람의 원한을 풀어주는 굿을 말한다. 원한을 씻어준다고 해서 씻김굿이라고 불린다.

‘아내의 맛’에 출연한 송순단 씨는 “송가인이 이 직업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 오히려 무당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해줬다. 그래서 고맙다”고 털어놨다. 송가인은 “부끄러운 직업도 아닌데 숨길 이유가 없다. 옛날엔 천대 받았을지 몰라도 지금은 나라에서 인정해주고 있다”며 뿌듯함을 드러낸 바 있다.

이날 방송에서 송가인이 쏟아지는 비에 “비가 온다는데 어떡해”라고 하자 송가인의 아버지는 “비 오니까 큰일이다. 어떻게 공연하나”라고 함께 걱정을 했다.

 

그러자 송가인은 “비가 와도 한다고 하는데 어르신들이 걱정되네. 엄마한테 빌어달라고 하려고”라고 말했다. 또 “공연 끝나고 동네 어르신들 식사 대접하려고 예약했다”며 효녀다운 면모를 보여줬다. 이를 들은 송가인 아버지는 “내 딸이 아주 최고다 내 딸이 넘버 원이다”라며 딸을 자랑스러워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문화유산 답사기]절의와 기개, 호남 선비정신을 좇아 

 

 

 

조선의 선비들을 하나로 묶는 단어는 '소신'이다. 소신은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의 서늘한 징표였다. 호남 선비들이 걸었던 절의의 길을 따라 걷는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음모의 세상에서 선비들은 이념과 현실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부패한 현실 앞에 제 모든 것을 내놓고 싸웠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진정한 선비에게는 개인과 사회가 둘이 아니었다. 개인적 삶 속에 사회적 삶이 있었고, 사회적 삶 안에 개인의 삶이 깃들었다. 죽음의 겁박인 사약도 선비들의 입을 막지는 못했다. 실천으로 말의 뼈대를 삼았으므로 그들은 주저하지 않았다. 호남의 선비들을 찾아나서는 길은 무등산 북쪽 능선에서 시작한다.

 

- 충장사
충효로써 죽음을 삼았던 김덕령

 

무등산 자락 충장사(忠壯祠)에 간다. 봄이면 신록이 싱그럽고 여름이면 백일홍의 붉음이 빛나고, 가을이면 단풍 호젓하게 물드는 곳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김덕령(1567~1596)의 삶과 죽음이 거기 있다. 김덕령은 조선 의병의 총수였다. 겹치는 음모의 늪에 빠져 의병장 김덕령은 엿새 동안 여섯 차례의 혹독한 고문을 받고 죽었다. 그는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매는 먼저 살을 파고 들어와 정강이뼈를 부숴 놓았다. 매는 자백을 강요했지만 그는 지은 죄가 없었으므로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1596년 8월21일, 김덕령은 형장에서 옥사했다. 끝내 고문을 이기고, 그가 마지막 남긴 말은 이러했다. "충효로써 죽음을 삼은 죄밖에 없습니다." 억울했지만 그는 자신의 억울함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다만 죽음 앞에서 끝까지 초연했다.

김덕령의 혐의는 역모였다. 1596년 여름, 이몽학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 해 7월14일 김덕령은 도원수 권율의 전령을 받고 이몽학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군사를 움직였다. 김덕령이 함양을 거쳐 운봉을 목전에 둔 것은 7월17일, 그때 이미 반란군이 진압되었다는 도원수 전령이 다시 도착했다. 김덕령은 군사를 물려 진주로 되돌아간다. 진주 군영에 도착했을 때 그를 기다린 것은 음모였다. 도원수 권율은 반란군에 가담한 혐의로 김덕령을 체포해 옥에 가뒀다. 김덕령은 영문도 모른 채 역모의 배후가 됐고, 옥에 갇혔다.
충장사 유물관에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지극한 사랑이 있다. 김덕령의 의복이다. 김덕령은 장례조차 쉽지 않았다. 조정에서 감시의 목적으로 사람을 보냈다. 역모자는 마지막까지 편하게 떠날수 없었다. 조정의 엄격한 통제 아래 장례를 치렀다. 김덕령의 부인 흥양이씨는 직접 만든 수의를 죽은 김덕령에게 입혔다. 그 수의는 장군의 묘를 이장할 때 출토됐고, 중요민속자료 제111호로 지정됐다.

김덕령의 무덤에는 잔디만 푸르다. 1661년 김덕령은 누명을 벗었다. 현종이 그의 신원을 허락했고, 병조판서를 추증했다.
김덕령의 서늘한 한을 완전하게 녹여낸 임금은 정조다. 1788년 정조대왕은 김덕령에게 시호 '충장공'과 '정려비'를 내리고, 그가 태어난 마을에는 '충효리'란 이름을 하사했다. 그리고 1789년에는 종1품 좌찬성을 추증했다. 김덕령은 죽고 나서 200년이 지나서야 하늘 아래 부끄럼 없는 이름을 남겼다.

 


-환벽당
선정으로 백성을 품었던 김윤제

 

사방에 푸른 대숲을 두르고 있다 하여 환벽당(環碧堂,광주 환벽당 일원, 명승 제107호)이라 이름붙였으리라. 환벽당은 광주호 상류 창계천가의 충효동 쪽 언덕 위에 있는 정자다. 자미탄을 사이에 두고 식영정의 남쪽이다.
환벽당의 주인 김윤제(1501∼1572)는 식영정을 지어 장인인 임억령을 모신 서하당 김성원의 삼촌이다. 그는 김덕령의 정신적 스승이었고, 피로 맺어진 관계이기도 했다. 김윤제는 김덕령의 종조부였다.
환벽당으로 오르는 계단을 천천히 오른다. 지극한 정치를 현실 안에서 실현하려 나섰던 호남 선비들의 정신을 새기며 오른다. 환벽당은 16세기 호남사림들의 집결지였다. 주인 김윤제는 덕이 깊었고, 명망이 높았던 선비들이 그를 찾아 환벽당에 자주 모였다. 송순·양산보와는 오랜 친구이자 이웃이었다. 김인후와 기대승 역시 김윤제와 막역한 사이였다. 정철은 그의 손으로 키워졌다. 환벽당 아래에 있는 조대(釣臺)와 용소(龍沼)는 김윤제와 정철에 얽힌 일화가 전해지는 곳이다. 어느 날 김윤제는 점심을 먹고 낮잠에 빠졌다.
꿈이 이상했다. 아래 개울에서 청룡 한 마리가 승천했다. 꿈은 현실처럼 선명했다. 김윤제는 하인을 시켜 개울로 나가보게 했다. 웬 소년이 목욕을 하고 있더라고 하인이 고하자 김윤제를 그소년을 데려오게 했다. 그 소년이 정철이었다. 김윤제는 정철을 제자로 삼아 10년을 가르쳤으며 훗날 손주사위의 연을 맺었다.

정면 3칸에 측면 2칸으로 이루어진 환벽당은 공 들여 지은 정자다. 환벽당에 달이 뜨면 닫혀 있던 세상이 열린다. 바람이 선비의 정원을 거닐고, 댓잎이 조용히 떨어진다. 눈을 감으면 달이 하늘을 걸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백일홍은 조용히 백일을 피었다 지고, 동백은 붉은 모가지를 떨어뜨리며 죽는다. 작은 연못에서는 물이 바람에 쓸린다.
환벽당의 주인 김윤제는 호남 사림의 정점이었다. 13개 고을의 지방관을 지냈던 그는 1545년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아주 벼슬을 버렸다. 그의 마지막 관직은 나주목사였다. 그는 삶의 가치가 뚜렷했던 사람이다. 중앙에서 벼슬을 할 때는 조정에서 뜻을 폈고, 지방관으로 재직할 때는 선정으로 백성을 품었다. 늙어서 벼슬을 버린 뒤에는 젊은 선비들을 가르쳤다. 김윤제의 후덕함은 백성들에게도 뻗었다. 그는 백성들이 가뭄 걱정 없이 농사를 짓도록 ‘강남보’를 막았다. 또 자신의 재산으로 관개수로를 개통해 가뭄에 시름하는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었다.

- 월봉서원
이황과 사단칠정 논쟁 벌였던 기대승

 

 

면앙정을 내려와 당대의 '젊은 스승' 기대승(1527~1572)을 만나러 간다. 기대승의 삶은 월봉서원에 잠들어 있다. 기대승이 이황과 벌였던 '편지논쟁'이 목판의 형태로 거기 있다.
1558년 이황과 기대승이 만났다. 두 거인들이 처음 만났을 때 이황은 58세, 기대승은 32세였다.
이황은 성균관 대사성이었고, 기대승은 이제 갓 과거에 급제했다. 26살의 나이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두 사람은 무려 13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고, 8년 동안 왕복서신으로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을 벌였다. 이황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는 모두 120여 통이었다. 조선의 성리학에 이 논쟁은 큰 영향을 미쳤고, 이황은 '주리론'을 완성했다.

 

 

기대승은 끊임없이 시대와 불화했지만 학문을 통해 세상과 소통했다. 기대승은 31세 때 <주자문록(朱子文錄)>을 완성했다. 엄청난 사건이었다. 성리학을 완성한 주자는 살아서 700권의 막대한 저서를 남겼다. 거기서 핵심을 다시 추려 <주자대전> 120권에 담았다. 기대승이 그 방대한 양의 <주자대전>을 혼자 독파하고, 해설까지 달아 <주자문록>을 펴낸 것이다.
'젊은 스승'의 출연에 세상은 술렁였다. 사실 기대승은 가난했다. 썼지만 편찬할 재력이 없었다.
자신의 가산을 털어 기대승을 후원하고, <주자문록>의 편찬을 주도한 사람은 환벽당의 주인 김윤제였다.

 

 

1558년 기대승은 32세의 나이로 문과 을과에서 장원한다. 그러나 기대승은 벼슬살이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썩은 정치 현실이 그는 못마땅했다. 중앙정치에 나선 14년의 시간 동안 그는 출사와 은둔을 반복했다.
마침내 1572년 10월, 기대승은 조정을 아주 떠났다. 병이 깊어 도저히 정사를 맡을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기대승이 떠나는 날, 수많은 선비들이 모였다. 한 선비가 물었다. "사대부로서 사회에 몸을 세우고 처신함에 반드시 명심하고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기대승이 짧게 답했다. "기(幾), 세(勢), 사(死) 세 글자면 충분하다."
세 글자가 간직한 뜻은 깊었다. 나아가고 물러남에 있어서는 먼저 기미를 살펴 의리에 어긋나지않게 해야 하고, 나아가 시세를 알아서 구차하게 되는 걱정을 없게 하며, 마침내는 목숨을 걸고 도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다.

고봉을 기리는 월봉서원(月峯書院)에는 <고봉집> 목판(광주광역시유형문화재 제19호)이 보관되어 있으며, 2012년부터 고봉선생의 정신을 잇고자 '고봉문화제'를 가을에 열고 있다. 또 2011년 새로이 문을 연 교육관과 전시관이 있어 각종 체험을 즐길 수 있으며, 백우산 자락 숲길로 이어지는 '철학자의 길'을 거닐 수 있다. 그길을 거닐며 '가난할수록 더욱 즐길 수 있어야한다(貧當益可樂)'고 말했던 고봉의 뜻을 새기는 것도 좋겠다.

 


- 필암서원
'확연'을 지향했던 선비 김인후

 

 

월봉서원을 벗어난 길은 장성 필암서원(사적 제242호)으로 뻗는다. 김인후(1510∼1560)의 깊이가 잠든 영토다.
필암서원의 정문 누각은 '확연루'(廓然樓)다. '넓게 텅 비어있다'는 의미다. '텅 비어있어 비어있는 것조차 없는 그 순간'을 김인후의 삶은 지향했다.
김인후가 살았던 시대, 세상은 불온했다. 그는 중종 5년(1510년) 장성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기 얼마 전 무오사화와 갑자사화가 연거푸 일어났고, 그의 나이 10세 때 개혁자 조광조를 죽인 기묘사화가 일어났다.

1542년 4월 그는 홍문관 박사가 된다. 그리고 세자의 스승을 겸직했다. 세자 시절 인종은 영민했다. 하서는 아직 세자인 인종에게서 성군의 자질을봤다. 하서는 제 모든 것을 세자에게 내줬다. 어느 날 세자는 손수 그린 '묵죽도' 한 폭을 하사했다.
하서는 그림에 신하의 맹세와도 같은 시를 써 넣었다.
<뿌리 가지 마디 잎 모두가 정밀하고 은밀해/ 돌을 벗 삼은 굳은 정신 화폭 안에 들어 있네/ 비로소 성인의 정신이 조화롭다는 걸 알았으니/ 세상과 한 덩어리 되어 서로 어김없으리라>

(하서가 '인종대왕 묵죽도'에 남긴 시)
1544년 마침내 중종이 죽고, 인종이 보위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1545년 하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을 듣는다. 인종의 죽음이었다. 왕위에 오른 지 불과 9개월만이었으며 역대 조선 임금들 중 가장 짧은 치세 기간이었다.
인종의 죽음에는 아직도 의문부호가 남겨져 있다. 정사는 병을 죽음의 이유로 기록하고 있지만 야사는 문정왕후에 의한 독살에 무게중심을 둔다. 하서는 인종이 죽은 뒤, 다시는 세상으로 나오지 않았다. 김윤제와 기대승, 유희춘과 교류하며 시간을 그저 보냈다.
1560년 정월, 김인후는 눈을 감았다. 그가 남긴 유언은 이랬다. "내가 죽으면 을사년 이후의 관직일랑 쓰지 말라." 을사년은 인종이 죽었던 해이다.

 

 

 

천년고도 전주, 시간의 향기 속으로 

 

 

 

“내가 살았던 전주의 고풍스러운 분위기, 경기전의 큰 나무들과 오래된 기둥들은 나에게 시간을 분초 단위가 아니라 백 년 천 년의 단위로 느끼게 했다. 그 나무들 아래서 나는 늘 저 먼 시간이 그리웠다.” 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1947∼1998)가 생전에 했던 말이다. '저 먼 시간'을 향한 그리움을 안겨주는 나무들. 수수 백년의 숨결을 품은 울울한 나무들이야말로 경기전이 고요히 베푸는 미덕이다.
'조선 왕조를 연 태조의 어진(御眞·왕의 초상화)을 모신 곳'이라고, 책이나 사전이나 표지판이 일러주는 한정된 설명 말고도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넘쳐나니. 가을이라면 깊어가는 아름다움 가득하다. 은행잎 엽서도 '수신'하시라. 지천으로 흩날린다. <늦가을의 노란 은행나무 잎은 그대로 수천 년간 누군가에게 배달된, 그러나 아직 읽지 않은 엽서요, 나뭇가지는 집배원의 손이며, 몸통은 그대로 우체국…>이라고 말한 사람은 지리산 시인 이원규.

 


- 경기전
태조 이성계의 어진 봉안

 

 

 

전주 한옥마을에 시간의 깊이를 더해주는 경기전(사적 제339호)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국보 제317호)을 봉안하기 위한 누전(樓殿)으로, 1410년(태종 10년) 지어졌다.

태조의 어진을 모시는 건축물은 원래 개성·영흥·전주·경주·평양 등 다섯 곳에 있었지만, 경기전을 제외한 나머지는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됐다.
경기전도 정유재란 때 불탔으나 1614년(광해군 6년) 다시 세웠다. 정전의 붉은 박공벽에 앙증맞게 조각된 '자라 한 쌍'도 놓치지 말길.
자라는 한자로 왕팔(王八)이라고도 하니, 왕의 뜻과 살핌이 조선 팔도 온 나라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의도였다. 또 자라는 물에서 사니, 건물이 화(火, 禍)를 면하고 영원하기를 바라는 뜻도 담겼다.
어진박물관에서는 태조 어진의 봉안과 관련된 각종 유물과 내력을 비롯해 영조·철종·고종의 어진 모사본 등도 한데 만날 수 있다.


경기전 안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존했던 전주사고(全州史庫)도 있다. 오랜 벗처럼 은행나무 한그루가 이웃해 있는 자리. 1439년(세종 21년) 사헌부의 건의로 설치되었다.
임진왜란 때 춘추관, 충주, 성주의 사고는 모두 불타버렸지만 전주사고의 실록은 화를 면해 역사의 기록을 전할 수 있었다. 태인의 유생들인 손홍록과 안의 등이 실록을 내장산 용굴암에 옮겨 지켰기 때문. 실록에 담긴 엄정한 기록정신과 그 기록들을 지켜내기 위해 기울여졌던 헌신을 돌아보게 하는 공간이다. 전주사고는 정유재란 때 결국 소실됐으며 지금의 건물은 지난 1991년 복원한 것이다.

 

전주사고(全州史庫)

 

- 전동성당
붉은 벽돌 아름다움 돋보이는 서양식 근대건축물

 

 

태조로를 사이에 두고 양축을 이루는 것은 전동성당(사적 제288호)이다. 수평으로 펼쳐진 경기전 마당에서 문득 고개를 들면 마주치는 수직의 풍경. 수직과 수평이 교차하며 이곳에 깃든 시간의 숨결을 역동적으로 엮어낸다.
붉은 벽돌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전동성당은 호남 지역의 서양식 근대건축물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것의 하나로 원래 전라감영(全羅監營)이 있던 자리이자,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지이기도 한 터에 세워졌다.
비잔틴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절충돼 있는 건축물로, 당시 순교자들을 스테인드글라스에 한복을 입은 조선 사람의 모습으로 담아낸 점도 의미있다. 영화 <약속>의 촬영지로 알려진 뒤 찾는 발길들이 더욱 늘었다.

- 전동성당
붉은 벽돌 아름다움 돋보이는 서양식 근대건축물

 

 

태조로를 사이에 두고 양축을 이루는 것은 전동성당(사적 제288호)이다. 수평으로 펼쳐진 경기전 마당에서 문득 고개를 들면 마주치는 수직의 풍경. 수직과 수평이 교차하며 이곳에 깃든 시간의 숨결을 역동적으로 엮어낸다.
붉은 벽돌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전동성당은 호남 지역의 서양식 근대건축물 중 가장 규모가크고 오래된 것의 하나로 원래 전라감영(全羅監營)이 있던 자리이자,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지이기도 한 터에 세워졌다.
비잔틴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절충돼 있는 건축물로, 당시 순교자들을 스테인드글라스에 한복을 입은 조선 사람의 모습으로 담아낸 점도 의미있다. 영화 <약속>의 촬영지로 알려진 뒤 찾는 발길들이 더욱 늘었다.

 


- 풍남문과 남부시장
전주부성 4대문 가운데 유일하게 현존

 

 

경기전과 전동성당을 둘러보기 앞서 천년 시간여행의 진입로를 풍남문(보물 제308호)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풍남문은 조선시대 전라감영의 소재지였던 전주를 둘러싼 성곽의 남쪽 출입문으로, 전주부성 4대문 가운데 유일하게 현존한다. 풍남이란 풍패(중국 한나라 고조가 태어난 곳)의 남쪽을 뜻하는 말로, 조선왕조의 발원지인 전주를 풍패에 비유한 것이다.

 

 

‘풍패’라는 말은 전주객사(보물 제583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전주객사는 임금께 예를 표하는 망궐례가 행해지던 곳으로, 옛 전라감영의 권위와 명성을 상징하는 건물. 현판에 새긴 '풍패지관( 沛之館)'에는 전주가 바로 조선왕조의 발상지라는 높임의 뜻이 담겨져 있다.
풍남문은 곁에 남부시장을 거느리고 있어 생활의 현장과 역사의 유적이 서로 이무롭게 어우러지는 풍경을 이룬다. 조선시대 3대 시장 중 하나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남부시장은 전주백반, 순대국밥, 콩나물국밥 등 먹을거리도 풍부하다. 최근 문 연 2층 청년몰에서는 색다른 즐거움을 누릴 수도 있다. 핸드메이드 공방, 디자인잡화점, 테이크아웃한방차, 보드게임 술집, 봉지칵테일, 식충식물 화원 등 재기발랄함이 돋보이는 청년점포들이 들어서 시장의 진화를 유쾌하게 펼쳐내고 있다.

 


- 오목대, 이목대, 전주향교
한옥마을의 전경을 굽어보는 자리

 

 

오목대(지방기념물 제16호)에 오르면 한옥마을의 전경을 굽어볼 수 있다. 오목대는 고려말 1380년(우왕 6년)에 이성계가 운봉 황산에서 왜군을 무찌르고 개경으로 돌아가던 중 조상인 목조가 살았던 이곳에 들러 승전을 자축하는 연회를 베푼 곳. 오목대에서 육교 건너편으로 70m쯤 위쪽으로 가면 승암산 발치에 이목대가 자리잡고 있다. 이목대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4대조인 목조 이안사의 유허(遺墟)로 시조 이한 때부터 누대에 걸쳐 살던 곳이다.

 


한옥마을에 쌓인 시간의 정취는 전주향교(사적 제379호)에서도 만날 수있다. 전주향교는 현존하는 향교 가운데 가장 크고 제대로 보존된 향교로, 대성전과 명륜당 앞의 장엄한 은행나무들이 이곳에 쌓인 시간을 증거한다.

그 시간의 힘을 빌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과 영화 도 이곳에서 촬영됐다. <성균관 스캔들>에서 시대의 틀로부터자유롭고자 했던 인물인 '걸오'가 자주 올라 세상을 다른 눈높이로 쳐다보던 곳도 이 곳의 오래된 은행나무 위였다. 향교에 왜 각별히 은행나무가 많은가. 은행나무는 벌레가 슬지 않는 나무라 한다. 그러니 이곳에 선 은행나무들이 관직에 진출할 유생들에게 들려주었을 서늘한 묵언을 짐작할 수 있다. '부정에 물들지 말라!'는 가르침이 그것. 한벽당(지방유형문화재 제15호)은 '한벽청연(寒碧晴煙)'이라 하여 전주 8경 중 하나로 꼽았다. 아스라한 계단을 올라 닿는 곳.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심사를 돋운다. 울울한 나무 사이로 전주천 물빛을 굽어볼 수 있다.

 


- 골목, 그리고 유무형의 문화콘텐츠
숨바꼭질하듯 만나는 소소한 정취

 

역사의 숨결과 더불어 오랜 세월 축적된 자연스런 서민성, 일상의 숨결이야말로 전주 한옥마을의 매력. 덩치크고 많은 돈이 투입된 한옥건물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이전의 한옥 살림집들과 골목이 뿜어내던 생활의 숨결은 다소 옅어졌으나 작은 골목길이나 오래된 가게들에서는 여전히 조붓하고 정다운 훈김이 전해져 온다. 한옥을 잇댄 담과 골목, 문(門)과 창(窓), 나무와 마당, 장독과 기와 등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전주한옥생활체험관, 동락원, 양사재 등 마당과 마루가있는 한옥에서 자는 재미를 누릴 수도 있다. 창호문에 어른거리는 나무그림자도 그렇고, 문고리에 놋숟가락 하나 끼워넣어 '문단속' 하는 순간 한옥에서의 하룻밤이 실감날 것이다.
골목길을 사브작사브작 걷다가 숨바꼭질하듯 '한옥마을이야기'판을 곳곳에서 만날 수도 있다. 이 골목에 스민 삶의 이야기들을 놓치지 않으려 한 시도다. 흙돌담에 기와로 곱게 꽃 모양 새겨넣은 집은 1936년 지어졌다는 최부자집. 이 집의 이쁜 담 때문에 이 길이 '토담길'이란 이름을 얻었다. 1938년 이래 원형 그대로 집을 지켜오고 있는 ‘삼원당’ 한약방이나 연조가 오래된 가게들도 한옥마을에서 맞닥뜨리는 정취다. 천년고도 전주가 지닌 유무형의 문화콘텐츠를 집약적으로 즐길 수 있는 기회도 널려 있다. 전통 술박물관은 술꾼이 아니더라도 끌릴 만한 곳이고 전주공예품전시관 등은 예향 전주의 전통과 현재를 가늠해볼 수 있는 곳들로 볼거리, 체험거리들이 두루 모여 있다.

 

 

 

 

전주한옥마을에서 둘러볼 곳들

 

전주전통문화관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문화예술공간으로 다채로운 전통예술공연과 전주의 음식, 차, 전통혼례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 운영. 063-280-7000, 홈페이지 open.jt.or.kr

 

전주전통술박물관 가양주문화를 재현하고 보급하는 술전문박물관으로 가양주와 관련된 다양한 강좌 및 전통의 음주예법인 향음주례 등을 진행한다. 063-287-6305, 홈페이지 urisul.net

 

전주공예품전시관 한지공예품 및 전통공예가들의 작품과 생활공예품을 전시하는 곳. 063-285-0002, 홈페이지 open.omokdae.com

 

전주목판서화체험관 이산 안준영 선생에 의해 복원된 한국목판 인쇄문화의 맥을 이어가는 공간으로 고인쇄, 목판화, 옛책만들기 등의 체험 가능. 063-231-5694, 홈페이지 esan.co.kr

 

교동아트센터 내의 의류 전문업체였던 백양사 공장터를 리모델링한 문화예술 전시공간. 063-287-1244∼5, 홈페이지 open.gdart.co.kr

 

최명희문학관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문학세계와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 최명희 서체 따라쓰기, 엽서쓰기 등의 체험도 할 수 있다. 063-284-0570, 홈페이지 open.jjhee.com

 

소리문화관 판소리 역사를 알 수 있는 전시관과 국창 오정숙 기념관이 꾸려지고 있으며 다양한 판소리 체험 및 교육 프로그램공연 관람이 가능하다. 063-231-0771∼2, 홈페이지 www.jjcf.or.kr/main.sori

 

완판본문화관 완판본과 기록문화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건립된 곳으로 출간된 완판본을 직접 볼 수 있으며 목판인쇄 체험과 제본체험도 할 수 있다. 063-231-2212∼3, 홈페이지 wan.jjcf.or.kr

 

부채문화관 부채 관련 전시와 부채 역사를 볼 수 있는 곳. 063-231-1774-5, 홈페이지 fan.jjcf.or.kr

 

한지산업지원센터 한지의 문화와 산업을 종합적 체계적으로 연구·개발하고 교육하는 한지관련 전문기관으로 한지공예, 한지 뜨기 체험을 할 수 있다. 063-281-1500, 홈페이지open.hisc.re.kr

 

공예공방촌 지담 한지전문 디자인공간으로 전통의 숨결을 담은 상품과 한지공예체험을 할 수 있다. 063-231-1253

[동물 이야기] 울음소리만 1000여 가지… 베토벤·헨델도 홀렸죠



입력 : 2022.0912


나이팅게일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를 돕고자 지구촌 곳곳에서 움직이고 있어요. 최근에는 '나이팅게일: 우크라이나를 위한 글 모음'이라는 제목의 전자책이 나왔는데, 책 제목에 쓰인 '나이팅게일'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아주 사랑하는 새입니다.

나이팅게일<사진>은 우크라이나를 상징하는 새예요. 몸길이 16㎝ 정도에 붉은색 꼬리, 아담한 갈색 몸집을 가지고 있어요. 아프리카에서 추운 겨울을 난 뒤 따뜻한 봄이 되면 유럽으로 가서 짝을 짓고 새끼를 낳아요.

나이팅게일은 아름다운 울음소리로 유명해요. 휘파람 불 듯 "휘이" 소리를 내기도 하고 "쪼로롱" 지저귀거나 "짹짹" 울기도 하죠. 이렇게 무려 1000여 가지 다른 소리를 낸대요. 아름답게 지저귀는 것으로 유명한 종달새(340여 가지)나 찌르레기(100여 가지)보다 훨씬 많죠. 과학자들은 나이팅게일의 뇌에 다양한 울음소리를 만드는 특별한 기능이 있다고 봐요.

이 새는 낮뿐 아니라 다른 동물들이 잠자리에 든 밤에도 쉬지 않고 울어대는 것으로 유명해요.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밤꾀꼬리'라고도 부르죠. 밤에 울어대는 나이팅게일은 주로 짝을 찾지 못한 외로운 수컷이래요. 암컷을 향해 "어서 빨리 나랑 짝을 짓자"고 애타게 노래하는 거죠. 특히 밤에 지저귈 때에는 낮보다 시끄럽대요. 밤에 우는 풀벌레 소리에 자기 울음소리가 묻히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해요.

나이팅게일은 자기 영역을 지키려는 습성이 강해요. 그래서 열심히 지저귀는 건 다른 새들에게 "이곳은 내 구역이니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 의미이기도 하대요. 보통 울음소리가 활발한 새들의 암컷은 잘 울지 않는 편인데, 나이팅게일 암컷은 상대적으로 활발하게 지저귀죠.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맑고 영롱한 나이팅게일의 울음소리를 이야기나 음악 소재로 종종 사용했어요. 베토벤 교향곡 6번(전원)에는 나이팅게일의 지저귐을 표현한 플루트 연주가 나와요. 헨델은 '뻐꾸기와 나이팅게일'이라는 오르간 협주곡을 작곡했죠.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가냘픈 몸집으로 힘차게 지저귀는 나이팅게일을 예부터 봄의 전령, 희망의 상징으로 여겨왔대요.

나이팅게일은 한 배에서 알을 다섯 개 정도 낳아요. 둥지를 틀고 알을 품는 일은 암컷이 도맡아요. 풀이 무성한 숲이나 덤불 속에서 살며 땅 위에서 개미·딱정벌레 같은 곤충을 잡아먹죠.

우리나라에서는 나이팅게일을 볼 수 없지만, 나이팅게일과 가까운 친척뻘 새들이 있어요. 울새·꼬까울새·쇠유리새 등이죠. 이 새들은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우리나라에 들렀다 가는 철새인데, 이런 새들을 '나그네새'라고 한답니다.



http://newsteacher.chosun.com/site/data/html_dir/2022/03/29/2022032902795.html

 

궁능유적본부, 2022년 제3회 조선왕릉문화제 개최

9개 왕릉(9.24.~10.16.) 및 전주 경기전(10.22.~23.) / 개막식 9.23. 20:00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본부장 정성조)와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최영창)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조선왕릉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제3회 조선왕릉문화제를 9월 24일부터 10월 16일까지 9개 왕릉(동구릉, 홍유릉, 선정릉, 서오릉, 융건릉, 세종대왕릉, 태강릉, 헌인릉, 의릉)과, 10월 22일부터 23일까지 전주 경기전에서 개최한다.

  이번 행사는 이동형 프로젝션 매핑, 드론 공연(퍼포먼스) 등 새로운 기술을 결합한 융복합 콘텐츠와 야간 공연, 야행 프로그램을 확대해 왕릉의 색다른 매력을 내세울 계획이다. 특히 9월 23일 서울 태강릉에서 개최되는 개막식에서는 올해 주요 프로그램인 ‘신들의 정원’과 ‘노바스코피1437’의 핵심 요약(하이라이트) 공연을 만날 수 있다.
개막식 사전 예매는 9월 13일(화) 오후 2시부터 인터파크 티켓(https://tickets.interpark.com)을 통해 진행되며, 선착순 600명(1인당 최대 4매)을 모집한다.
* 프로젝션 매핑(Projection mapping) : 대상물의 표면에 빛으로 이뤄진 영상을 투사하여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실제처럼 보이게 하는 기술

  본 행사에서는 ▲ 조선시대 왕의 국장 과정과 의미를 예술적으로 재해석해 3차원 판타지로 그려낸 융복합 콘텐츠 ‘신들의 정원’을 선정릉과 홍유릉에서 새롭게 선보인다. 왕릉의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이어지는 공간을 배경으로 이동형 프로젝션, 조명 등 첨단 공연기술을 활용하여 몰입감을 극대화한 콘텐츠이다.
* 국장(國葬) : 왕과 왕비의 장례를 일컫는 말로 세상을 떠난 후부터 왕릉에 장례를 모시고, 3년상을 치르는 과정
* 홍살문(紅箭門) : 신성한 영역을 알리기 위해 붉은색으로 칠한 문, 홍전문이라고도 함
* 정자각(丁字閣) : 제향(제사)를 지내는 ‘丁’자형의 건물

  ▲ 세종대왕릉에서 펼쳐지는 융복합 공연(퍼포먼스) ‘노바스코피1437’은 1437년 세종의 객성 관측 기록에서 영감을 얻은 공연으로, 신분을 뛰어넘어 마음을 나누었던 세종과 장영실의 이야기를 담았다. 드론 400대와 애니메이션 기술을 활용하여 세종대왕릉의 하늘에 조선의 별자리 천상열차분야지도를 그려낸다. 여기에 국가무형문화재 가곡 이수자 하윤주의 정가가 더해지며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낼 예정이다.
* 객성(客星): 일정한 곳에 늘 있지 않고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별, 『세종실록』 1437년(세종 19년) 음력 2월 5일 “미수(전갈자리 별자리)에서 객성이 14일간이나 나타났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2017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의 한 논문이 전갈자리를 연구하며 해당 기록을 검토하고 1437년 폭발한 신성의 흔적을 발견하여 사실로 밝혀짐
* 정가(正歌) : 전통성악의 한 갈래를 이르는 말

  ▲ 참여자들에게 높은 인기를 얻었던 ‘스탬프투어’는 탈출 형식을 적용한 임무(미션) 수행 프로그램인 ‘왕릉 어드벤처’로 재탄생했다. 동구릉, 선정릉, 태강릉, 의릉, 서오릉, 세종대왕릉에서 진행되는 이번 프로그램은 60분간 왕릉 곳곳에 숨겨진 단서를 찾아내 수행하면 옥쇄 도장이 찍힌 인증서와 기념품을 증정한다.
*방탈출 : 추리 과정을 통해 감금된 밀실을 탈출하는 게임의 한 형식

  이외에도 국악과 대중음악이 만나는 ‘왕릉음악회’, 주제별로 구성한 체험 프로그램 ‘왕릉 포레스트(ForRest)’, 숲 해설사와 함께 산책하는 ‘왕의 숲길 나무 이야기’, 은은한 별빛 아래 왕릉을 걷는 ‘왕릉 야별행’ 등 체험형 대면 프로그램을 대폭 확대했다.

  또한, 수도권에 위치한 왕릉을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관람객들을 위해 조선왕릉문화제의 인기 콘텐츠를 현지로 찾아가 선보이는 ‘왕릉, 바퀴를 달다’가 10월 22일부터 23일까지 전주 경기전 일대에서 펼쳐진다. 올해 대표 프로그램인 융복합 공연 ‘신들의 정원’과 ‘왕릉 포레스트(ForRest)’의 ‘천상열차분야지도 컬러링 체험’, ‘릉다방’, ‘공감각;향’, ‘포레스트 존’이 운영될 예정이다.
제3회 조선왕릉문화제의 모든 프로그램은 무료로 진행되며, 일부 프로그램은 조선왕릉문화제 공식 누리집(jrtf.or.kr)을 통해 사전예약제로 운영한다. 각 프로그램별 참여 방법 및 예약일정 등 상세한 내용은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이번 행사를 통해 보다 많은 국민들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조선왕릉에 관심과 애정을 갖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일상에 지친 국민들에게 치유의 공간으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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