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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답사기

[문화유산 답사기]우리나라 밀림에는 호랑이가 우글거렸는데 왜 국보마다 사자상만 보일까? 그 이유는?

문화재방송 2022. 9. 22. 07:06

청자사자연적, 개인 소장

타고난 용맹성과 위엄으로 인해 백수()의 왕()으로 불리는 사자는 신성함과 절대적인 힘을 가진 상상의 동물로 여겼다. 또한 사자는 산예(), 백택() 등의 이름으로도 부르는데, 위엄이 있고 용맹스러워서 신물()로 여겨왔다.

문헌에 나타난 사자에 관한 내용은 연암 박지원 (, 1737 ~ 1805])이 [열하일기()] 철경록()에 왕과 여러 대신들을 모아 잔치를 벌인 대취회()에서 사자의 위용()을 “사자는 몸이 짧고 작아서 흡사 가정에서 기르는 금빛 털을 지닌 삽살개처럼 생겼는데, 여러 짐승이 이를 보면 무서워 엎드리고, 감히 쳐다보지도 못한다. 기가 질리기 때문이다.” 라고 묘사하였다.

조선 후기 저명한 학자인 사옹() 홍성모(,1781-1857)는 [동국세시기()]에서 ‘정초 세화로 계견사호()를 그려 붙였다고 하였다’고 하였다.

창령 광룡사 북받침, 조선시대

불교에서 사자는 불법()과 진리를 수호하는 신비스런 동물로 인식되었으며, 기원전 3세기경 불교 발생국인 인도의 아쇼카왕 석주에 사자상이 표현되기 시작하였다. 사자의 두려움 없고 모든 동물을 능히 다스리는 용맹함 때문에 부처를 인중사자()라 비유하기도 하고, 최고의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의 수호신으로 표현되며, 대일여래()가 사자 위에 앉은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문화재 속의 사자

법주사 쌍사자 석등, 국보 제5호

불교의 수호신인 사자는 불교와 함께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불상의 대좌를 비롯해 불탑, 석등, 부도() 등 불교와 관련된 다양한 석조물에 적극 활용되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중국 당나라의 능묘제도가 도입되면서 사자가 무덤을 지키는 수호상으로 나타나며 탑의 장식품이나 불교 공예품, 그리고 기와나 생활용품 등에 폭넓게 사용되었다. 대표적인 사자형상으로 통일신라시대 능묘제도()의 완성을 이룬 괘릉()의 커다란 돌사자상이 있다. 이 사자상은 무섭고도 부드러운 모습을 취하고 있으며 춘양교·월정교터 등의 사자상도 왕릉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충북 보은군 속리산 법주사 쌍사자석등은 통일신라시대의 유물로, 널따란 8각의 바닥돌 위에 올려진 돌사자 두 마리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뒷발로 아래돌을 디디고 서서 앞발과 주둥이로는 윗돌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사자의 머리에는 두 개의 귀와 뿔이 있고 목 밑으로 흘러내린 머리의 갈기가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사자 두 마리 중 한 쪽은 입을 벌리고 있고, 다른 한 쪽은 입을 다물고 있는데, 입을 벌린 사자는 창조와 시작을 의미하고, 입을 다문 사자는 끝과 소멸을 나타내 시작과 끝을 잇는 반야의 지혜를 상징한다고 한다. 이외에도 구례 화암사 쌍사자 석등, 의성 만덕동 삼층석탑 기단, 불국사 다보탑 석사자상 등 상당 부분의 사자상이 남아 있다.

고려시대에는 사자의 형상을 본떠 만든 청자가 상당수 제작되었다. 사자 모양의 청자베개를 비롯하여, 뚜껑에 사자 형상을 붙인 청자주전자 등이 남아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국보 제60호로 등록되어 있는 중앙박물관 소장 청자사자유개향로()이다. 고려청자의 전성기인 12세기경에 만들어진 청자향로로, 이 시기에는 비취색의 청자가 절정에 달하였다.

청자사자유개향로 (靑磁獅子鈕蓋香爐) 국보 제60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향로의 몸체는 3개의 다리가 떠받치고 있는데, 전면에 구름무늬가 가늘게 새겨져 있다. 뚜껑은 대좌에 앉아있는 사자모양을 하고 있으며, 대좌에는 꽃무늬를 새겨 넣었다. 사자는 입을 벌린 채 한쪽 무릎을 구부린 상태에서 앞을 보고 있는 자세이며, 두 눈은 검은 점을 찍어서 표현했다. 유약의 색은 엷은 녹청색으로 광택이 은은하다. 몸체에서 피워진 향의 연기가 사자의 몸을 통과한 후 벌려진 입으로 내뿜도록 되어있는데, 아름답고 단정한 모습이 이 시기 청자향로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청자사자연적>은 생김새가 해태와 유사하지만 역시 고려시대 사자형 상형() 청자로, 이러한 상형연적의 파편들은 전남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요지 등에서 채집된 바 있다. 사자는 엎드려 웅크린 채 입을 꼭 다물고 머리와 시선은 앞을 주시하고 있으며, 세부묘사는 과감히 생략하였으나 동물의 표정을 익살맞게 잘 표현하고 있다.

청자사자연적, 개인 소장

사자의 또 다른 모습, 백택과 산예

백택()은 사자의 모양을 하고 8개의 눈과 6개의 뿔을 가진 상상의 동물로, 사람의 언어를 조작하고 삼라만상()에 통달해 재난을 피하게 해주는 영력을 가졌다. 『산해경』에 의하면 백택은 기린()이나 봉황()처럼 덕이 높은 임금이 나타나기를 기원하며, 만물의 모든 뜻을 알아낸다는 상서로운 동물로 그 형상은 마치 사자와 같고 8개의 눈과 6개의 뿔을 가진 상상의 동물로 사람의 말을 잘 한다고 한다. 실존하는 동물이 아닌 상상의 동물이기 때문에 여느 상상의 동물처럼 표현하는 이에 따라서 조금씩 다른 모양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형태에 관계없이 덕으로 나라를 다스려 태평성대를 이루고자 하는 염원이 공통적으로 담겨있다.

이러한 백택은 조선시대에 문양으로 나타났는데 민가에서 함부로 쓸 수 있는 문양은 아니었다. 현존하는 유물 가운데 왕의 서자인 제군()의 흉배와 국가적 의례행렬에 쓰인 의장기 등에서 백택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백택기,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삼국사기()]에 실린 최치원()의 <향악잡영()> 5수 가운데 ‘산예()’ 란 시가 있다.

멀리 유사()를 건너 만리를 오느라

털옷은 다 해어지고 먼지를 뒤집어썼네.

머리를 흔들고 꼬리를 휘두름에 어진 덕이 배었으니

굳센 그 기상 어찌 온갖 짐승 재주와 같을쏘냐!

이 시에 의하면 사자놀이가 서역(西)에서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사자놀이는 인도에서 행해지던 동물의장무()로 서역과 동방의 여러 나라에서 널리 성행하였다. 남북국 시대에 당나라를 통해 신라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후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북청사자놀음 사자 탈 국가무형문화재 제15호

우리 민중 속의 놀이 사자, 산예는 옛날부터 전해져 오는 놀이 가운데 ‘사자놀이’라 불리는 사자 춤에서 살펴볼 수 있다. 봉산(), 황주(), 강령(), 통영), 북청() 등에서 사자탈을 쓰고 추는 사자춤은, 대개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행해진다. 백수의 왕인 사자의 힘을 빌어 사귀를 몰아내고 경사로움으로 마을의 평안을 유지하고자 하는 소망이 이 춤에 담겨있다.

일반적으로 사자로 명칭이 알려져 있는 법주사의 쌍사자석등(국보 제 5호) 사자 머리에는 사슴뿔 형상인 2개의 뿔이 있어 사자라기보다는 백택으로 보아야 한다. 또 청자사자(국보 제 60호)는 구룡자() 가운데 연기와 불을 좋아하는 산예라는 상상의 동물인데, 사자를 닮아 명칭이 사자이지만 본래 명칭은 산예라는 상상의 동물이다. 상상의 동물들은 대체로 산해경이나 삼재도회 등에서 나타나는데, 조선시대 후기 명, 청의 영향으로 명칭이나 역할 등이 변화되면서 해태, 사자 등이 혼동되었다.

자료 제공한국문화재재단 http://www.chf.or.kr 
한국문화재재단은 문화재보호법 제9조에 근거하여 우리 전통문화를 널리 보전, 선양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공공기관입니다.
공식블로그 http://blog.naver.com/fpcp2010
윤열수 | 가회민화박물관장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동대학교 미술사학과를 비롯하여 여러 대학에서 강의활동을 하였다. 현재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에밀레박물관, 서울특별시 박물관협의회 회장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했다. 가회민화박물관 관장, 한국민화학회 회장, 문화재위원 일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민화이야기》(디자인하우스, 1995), 《, 불멸의 신화》(대원사, 2), 《KOREAN ART BOOK 민화 Ⅰ,Ⅱ》(예경, 2000), 《꿈꾸는 우리 민화》(보림, 2005), 《신화 속 상상동물 열전》(한국문화재재단, 2010) 등이 있다. 현재 월간 문화재(한국문화재재단 발행) 고정 필자이다.
관련링크: 가회민화박물관 www.gahoemuseum.org

한국의 국보급 문화재, 호놀룰루에서 타향살이

 

청자상감국화문탁잔, 고려13세기|전체높이 10.5cm, 입지름 7.2cm, 바닥지름 7.8cm

                            ■ 잔과 탁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잔은 열 네 개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화형잔이다.

호놀룰루 아카데미 미술관(Honolulu Academy of Arts)은 아시아, 미국, 유럽의 회화와 장식미술품, 아프리카, 오세아니아의 전통 민속품 등 약 6만점 이상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하와이 최고의 예술 박물관이다. 앤 라이스 쿡(Anna Rice Cooke, 1853-1934)여사에 의해 1927년 아시아유물전시를 위한 박물관으로 개관했다. 현재 회화, 도자기 등 1천여 점의 한국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으며, 2001년 한국실이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다.

한국 문화재 중에는 토기와 도자기가 전체 소장품의 절반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도자기는 청자가 많다. 비색청자 · 상감청자 · 철화청자 등의 다양한 기형과 각종 문양을 시문한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박물관 소장품 중에서는 단연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청자양각연판문완, 고려12세기|높이 8.7cm,입지름 16.1cm,바닥지름 5.7cm

■외면에 연판문을 가득차게 시문한 완으로. 두 단의 연판문중 상단은 이중연판문을 배치하였고, 각 연판은 중앙에 선을 두고 좌우를 비스듬하게 깎아내 입체감을 더했다.

 

나전칠기모란당초문상자, 조선|가로 33.3cm, 세로 21.2cm, 높이 23.5cm 

■ 뚜껑의 모깎은 경사면은 사라졌지만 줄기를 표현한 꼰 동선, 복채한 대모 등 고려시대 나전칠기의 양식이 엿보이나 고려의 나전 문양보다 꽃잎이나 여백이 커져 조선시대 전기 나전 칠기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흑칠채화모란문각게수리, 조선|가로 48.3cm, 세로 28.5cm, 높이 36.8cm 

■ 흑칠바탕에 모란당초문을 채화 장식한 각게수리이다. 각게수리는 귀중품을 보관하기 위해 여닫이 문안에 여러 개의 서랍을 설치한 일종의 금고로 부유한 가정에서 사용되었다. 각게수리란 명칭은 조선 후기에 정궤(頂櫃)로 불리던 것으로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고착되었다.

해학반도도병(12첩), 작자미상|조선후기|비단에 채색, 금박|(전체)세로271.0cm, 가로 71.4cm

■ 해와 달, 구름, 물, 산, 학, 영지 등 장수를 상징하는 10여 가지 자연물을 채택해 그린 십장생 소재 가운데 바다를 배경으로 복숭아나무와 학을 부각시켜 그린 해학반도도이다. 임금의 영정 모사 기록인『영정모사도감의궤影幀模寫都監儀軌』(1901년)에 이러한 해학반도의 화제가 도병으로 제작된 기록이 전해지고 있어 조선시대 왕실소용 병풍의 화제였음을 알 수 있다. 최근 보존처리 과정에서 1첩의 바위면에 ‘군선공수임인하제羣僊拱壽壬寅夏題’라는 금 글씨가 발견되어 임인년 여름, 왕실인물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영산회상도, 조선 16세기 중엽|비단에금니|(전체)세로174.7cm, 가로112.4cm,

(화면)세로109.0cm, 가로92.5cm

■ 붉은색이 감도는 짙은 갈색 비단바탕에 금니(金尼)로 그린 영산회상도이다.

영산회상도는 석가불이 인도의 영축산에서 법화경(法華經)을 설했던 장면을 묘사한 석가설법도로, 화면 중앙에 석가불좌상을 중심으로 합장한 8보살과 범천․ 제석천, 가섭․아난 등 십대제자(十大弟子), 사천왕(四天王), 청문자(聽聞者) 등이 둥글게 에워싼 구도이다. 이 영산회상도는 금니가 풍부하게 사용된 왕실발원 불화로, 조선전기 영산회상도가 국내에서도 소량 전해지고 있어 매우 드물게 볼 수 있는 귀중한 작품이다.

        

목조동자상, 조선후기|나무에 채색|

전체높이 62.0cm, 받침높이 2.7cm

■ 17세기 이후 조선후기 사찰의 명부전에 모셔졌던 불교 동자상으로, 갓 태어난 호랑이가 동자에게 앞발을 잡힌 채, 목이 뒤로 제껴지고 몸이 들려서 발버둥치고 있는 모습이 익살스럽다. 쌍계머리의 동자상은 긴 눈, 오똑한 코, 작은 입, 넓은 이마 등이 선명하게 조각된 전형적인 불교동자상으로 수작에 속한다. 왼편 발 아래 받침대의 측면에 ‘삼좌三左’의 음각이 새겨져 있으며, 받침대〔臺〕의 바닥에 ‘좌삼左三’의 묵서가 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미국 호놀룰루 아카데미 미술관소장 한국문화재』조사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책은 국립문화재연구소가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조사사업의 일환으로 2004년, 2005년 두 차례에 걸쳐 실시했던 미국 하와이 소재 호놀룰루 아카데미 미술관의 한국문화재 현지조사 결과를 담은 것이다.

 




이곳은 프랑스가 영국과 같이 세계를 한창 들쑤시고 다닐때 


전세계에서 가져온이라고 쓰고 약탈한이라 읽는 유물들을 전시한 박물관이다 


이름은 기매 박물관 


이곳에 한국의 유물들만 약 1000점이 있다고 한다 


문제는 그냥 백성들이 쓰다버린 밥그릇 이런거면 이 글을 쓰지도 않는다 


대부분이 국보급인 유물들이라는거다 


 홈페이제 올라온 유물들을 봐보자 




조선시대 백자



조선시대때 만들어진걸로 무슨 탈인지 뭔지 모르겠는데 




조선 후기때 초상화로 주인공은 조만영이다






19세기 초중반에 그려진 이한철의 그림이라고 한다 



조선 후기 대표 화가 김홍도의 그림이다 






고려시대때 만들어진 매병으로 

무려 고려초기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설명에 보면 북송 사람들도 극찬했다고 나와있다 


"이 매병은 푸른 청록색의 청자 유약으로 섬세하게 치장된 꽃들로 꾸며져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연꽃의 왕관은 조각의 우아한 형태와 기교와 보여줍니다"





신라의 금관이다 


현재 이런 형태의 금관은 전세계에 10개정도 있는데 그 중 8개가 한국거다





고려시대 황금불상 

역시 불교의 나라답게 불상하난 잘만들었다 





이건 무려 백제시대때 황금 미륵상이다 




사찰에 장식 됬었던 조선시대때 유물이라고 한다 




고려시대 경호무인상 


역시 정교하게 잘 만들었다 







마지막이다 

이게 기매박물관 홈페이지에 올라온 한국 유물들 중 끝판왕 되시겠다



고려시대때 만들어진 황금 불상으로 

이런식의 천수(千手) 불상은 국내에 거의 없다고 한다 



국내에 있었으면 충분히 교과서에 고려시대 대표 유물로 실릴정도라고 한다 


(주말여행)가을에 가볼만한 정자 10선


풍광이 아름다운 곳에는 정자가 자리해
 
정자는 어느 곳에 세울까? 당연히 경치가 좋은 곳에 세운다. 그리고 물이 있고, 숲이 있어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정자의 입지조건이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정자는 사람의 마음이다. 정자를 처음 그 자리에 세우는 사람들의 마음을 닮는다. 때로는 허전한 벌판 가에도 정자는 있을 수가 있다. 볏단으로 지붕을 인 모정 같은 것은 논 한가운데 자리를 한다. 그것은 농사를 짓는 농군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5년 동안을 돌았나보다. 지나는 길목마다 서 있는 정자에 들린다. 일부러 정자를 찾는 일은 거의 없지만, 지나는 길에 정자가 보이면 어떻게 해서든지 들려보고는 했다. 이제 그동안 들린 정자가 200곳은 넘었나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있는 수많은 정자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 중 올 가을 여행지로 좋은 곳 10곳을 둘러본다. 물론 올 가을이 아니라도 좋다. 정자는 사시사철 바라보는 그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강릉 해운정
 
강릉시 운정동에 자리하고 있는 보물 제183호이다. 정자가 보물로 지정이 된 예는 극히 드물다. 해운정은 그만큼 소중한 문화재이다. 뒤편으로는 소나무 몇 그루가 서 있고, 앞으로는 연꽃을 심었다. 요즈음에는 주변에 초당두부집들이 늘어서 있어,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그저 주변만 둘러보아도 즐거운 곳이다.
▲ 경주 독락당 계정

 

경주 독락당 계정

 

경주 안강읍에 소재한 독락당은 보물 제413호로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소재하고 있다..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지은 집의 사랑채이다. 이 독락당 한편으로는 계곡이 흐르는 곳에 계정이라는 정자가 서 있다. 이름 그대로 계곡에 서 있는 정자라는 뜻이다. 이 계정의 한편에는 방을 들이고, 부엌은 암벽 위 담에 두었다. 정자에 올라 앞으로 흐르는 물소리를 듣는 기분은 어떠할까?

▲ 강원도 고성 창학정

 

고성 청학정

 

고성 청학정은 고성 팔경의 한 곳이다. 앞으로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있고, 그곳에 부딪치는 파도소리가 즐거운 곳이다. 멀리는 고기잡이를 하는 고깃배들이 까만 점처럼 보인다. 이 청학정은 고성에 있는 정자 중 한곳이지만, 관동팔경이라는 청간정보다 오히려 운치 면에서는 뛰어난 곳이다.

 

 

▲ 남원 광한루

 

남원 광한루

 

광한루에 대한 설명이야 굳이 필요가 없다. 춘향이와 이도령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보물 제281호인 광한루는 호남제일루라는 명성을 얻고 있는 곳이다. 정자는 입구에 층이 진 계단을 놓아 멋을 더했고, 앞으로는 삼신산을 꾸며놓았다. 한편에는 방을 들여 겨울에도 주변 경치를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사시사철 언제 찾아가도 그 멋을 잃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 대전 옥류각

 

대전 옥류각

 

계족산을 오르다가 만나는 옥류각은 송준길(16061672) 선생이 학문을 연구하던 2층 누각 형식의 건물이다. 조선 인조 17년인 1639년에 계곡의 바위 위에 지은 건물로, 골짜기에는 4계절 옥같이 맑은 물이 흐른다고 하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정자는 계곡물이 흐르는 위에 자리를 잡았는데, 가을 은행잎이 물들때 찾아가면 정말 아름다운 옥류각을 만날 수가 있다. 대전시 유형문화재 제7호이다.

 

 

▲ 전남 보성 열화정

 

보성 열화정

 

전남 보성군 득량면 오봉리 강골마을에 있는 중요민속자료 제162호이다. 헌종 11년인 1845년에 이재 이진만이 후진양성을 위해 건립하였다. 영화당은 앞으로 연못을 두고 정자의 한편을 돌촐시켜 연정이라 이름을 붙였다. 영화촬영을 수차례 하기도 한 정자로 가장 아름다운 정자 중 한 곳이다. 열화정은 스스로가 자연이 되어, 자연 속에 파묻혀 있는 정자이다. 그만큼 스스로 드러내지를 않는다. 열화정을 제일로 손꼽는 이유이기도 하다.

 

 

 

▲ 경북 영주 취한대

 

영주 취한대

 

영주 소수서원 입구를 들어서 송림 사이를 지나는 길, 솔향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이런 좋은 송림에서 사람들은 노송의 자태를 닮아 푸른 마음을 가졌을까? 소수서원 건너편에, 내 건너 노송 몇 그루와 함께 어우러진 정자가 보인다. 취한대, 조선조 명종 5년인 1550년 당시 풍기군수이던 이황선생이 처음으로 지은 정자다. 이 아름다운 곳에 정자를 짓고, 소수서원의 원생들이 시를 지으면서 청운의 꿈을 키우도록 한 것이다. 취한이란 큰 뜻을 품으라는 것이었을까? 그 자태가 그대로 아름다움이다.

 

▲ 예천 병암정

 

예천 병암정

 

예천군 용문면에 자리한 병암정. 황진이의 애틋한 사랑을 그려낸 곳으로 더 유명하다. 정자는 커다란 수직의 암벽 위에 자리하고 있으며, 주변에는 노송이 서 있다. 정자 앞 암벽 밑으로는 연못이 있고, 그 앞으로는 너른 들판이 펼쳐진다. 그래서 이곳이 황진이의 촬영지로 선정된 것일까? 보는 눈은 누구나 동일하다. 이 아름다움에 어찌 손을 꼽지 않을 수가 있을까?

 

▲ 에천 초간정

 

예천 초간정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대동운부군옥을 지은 초간 권문해(15341591) 가 세운 정자이다.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에 자리한 초간정은 권문해가 심신을 수양하던 정자이다. 초간정은 개인적으로는 나이가 먹어 쉴만한 곳을 꼽으라고 한다면 첫째로 꼽을만한 곳이다. 정자를 감싸고 있는 계곡이 아름답기도 하려니와 정자 끝에 모인 소 또한 맑은 물이 고여 있다. 어찌 이런 곳에서 낚시를 하지 않을손가? 정자의 난간에서 낚시를 내리고 싶은 곳이다.

 

▲ 함양 거연정

 

함양 거연정

 

맑은 물이 정자를 감싸고돈다. 정자 뒤편 낮은 암벽에서 떨어지는 물은 깊은 소를 만든다. 그리고 그 바위 위에 그림같이 서 있는 거연정. 화림동 계곡에 서 있는 정자 중 가장 위편에 있는 거연정은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다. 숲길을 걸어 구름다리를 건너야 들어갈 수 있는 정자. 가을에 그 숲길은 또 어떤 자연의 멋을 보여주려나? 아름다움은 끝이 없다. 그래서 정자는 늘 그곳 바람결에 머물고, 난 발길을 그리로 향한다.

 

하주성(osinews1@naver.com)

아름다운 암자와 사찰

 

한국의 아름다운 사찰

 

 

1,서산 간월암

서산 간월도리에 위치한 작은 섬으로 조선초 무학대사가 창건했습니다

간조시 물과 연결되고 서해 낙조의 명소이다로 알려져있지요

만조시 섬이되는 신비의섬, 간월암

 

2,삼천포 대방사

도안스님의 개인사찰로 삼천포 창선대교가 한눈에 보이며

특히 야간 조망이 아름답다

 

 

3,전북 김제 망해사

신라 문무왕 11년에 부설스님이 창건

 

 

김제 진봉산 기슭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고군산열도가 아스라히 펼쳐보인다

 

 

4,경남 고성 문수암

신라화랑의 수도처로 선덕여왕때 의상조사가 걸인모습을 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에 이끌려 무이산을 오르다

해동 절경지에 감탄해 암자를 지었다고한다

 

 

마음이 선한사람이 오르면

문수보살이 보인다는 소문이 널리퍼져 있다

 

 

5,전남 해남 미항사

호남 정맥의 끝이자 한반도의 끝산으로 끝없이 펼쳐진 기암괴석의 달마산모습

 

 

성난 짐승의 이빨처럼 봉우리가 솟아올라

남도의 금강산이라 불려지기도 한다

 

 

6,남해 보리암

남해군 상주군에 위치해 있으며 신문왕 3년(683년)에

원효대사가 초당을 지었다고 한다

 

 

이성계가 조선창건을 위한 100일기도를 한 곳으로

작은 금강산이라 불릴만큼 남해의 수려한 청정해역이

한눈에 펼쳐보이는 절경을 자랑한다

 

 

7,강화 석모도 보문사

한국의 3대 해상관음기도장 가운데 하나입니다

 

635년 선덕여왕 4년에 마을에 살던 어부의

그물에 불상과 나한상 22구를 건져 지어졌다고 한다

 

 

8,전남구레 사성암

백제 성왕 22년에 화엄사를 창건하고 이듬해 구례오산 530m위치에 암자를 건립하였다고 한다

 

 

 

 

하늘이 감춘 지리산 벼랑 끝 암자이며

원효,의상,도선, 진각 네 고승이 수도한 암자라 하여 사성암이라고 한다

멀리 섬진강이 유유히 흐르며 절경을 자랑한다

 

 

 

9, 남양주 수종사

동방 사찰 제일의 사찰입니다 창건연대가 불확실하고

세조 때 창건설화만 전해오고 있습니다

 

 

남양주시 은길산 중턱에 위치하며 절에서 내려다보면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모습이 장관입니다

 

 

10,경기도 여주 신륵사

신라 진평왕때 원효대사가 창건했습니다

 

 

 

 

남한강변 봉미산기슭에 자리잡은 천년고찰로

강변의 뗏목이 한폭의 그림입니다.

 

 

11,포항 오어사

신라 진평왕때 자장율사가 세운 절로 원효대사와 혜공선사가 수도 정진한 곳입니다

 

호수로 감싸안은 절의 오붓함이 돋보이는 사찰입니다

 

 

12,충북 제천 정방사

신라문무왕2년에 의상대사가 건립했습니다

 

 

제천 금수산 해발1000m고지에 위치하며 청풍호의 풍경이

삼라만상을 모두 잊게 할 정도로 전망이 뛰어납니다

 

 

13,지리산 천운사

신라 흥덕왕때 창건하여 임진왜란때 소실 되었고 조선영조때 제건했다고 합니다

 

남방 제일사찰로 충렬왕이 칭호를 하사하였다하며,산사의 고요한 아름다움이 특징입니다

14,전남 곡성 태안사통일신라 경덕왕때 동리신파를 일으킨 혜철스님이 지었다고 전해옵니다남도의 호젓한 절집으로 산사가 아름답기로 입 소문이 났습니다

15, 여수 향일암지은시기는 알수없으나 임진왜란때 소실하여 숙종41년에 인묵대사가 재건하였다고합니다

출처: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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