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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답사기

[문화유산 답사기]'한반도의 중앙' 충주의 문화재 찾아 떠나는 자전거 여행

문화재방송 2014. 9. 11. 00:01

<아래 글 중 일부 내용(전화번호 등)이 변경됐을 수도 있습니다>

 

 

 

8. 한반도의 중앙 - 충주

 

 

충주는 마한의 일부로 백제, 고구려를 거쳐 신라에 속하게 되는 만큼 치열한 영토 쟁탈전이 벌어진 곳이다. 신라 진흥왕 때 전략상 요지로 삼아 국원소경으로 개칭하여 아시촌소경(함안), 하슬라소경(강릉)과 함께 신라 3경의 하나가 되었다. 이후 행정조직을 재편성하여 중원경이라 하고 신라의 중앙이자 지방행정의 중심도시로 발전하였다. 이 때문에 삼국과 통일신라의 문화유산이 모두 남아있다. 가야금을 가지고 신라에 투항한 우륵이 살던 곳이며, 고려시대 몽고군과 대항하기도 하였고,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당시 외적에 맞서 싸운 충절의 도시이다.

 

 

 

 

 

 

8-1 노선 살펴보기

 

 

충주역을 출발하여 조정지댐과 목행대교, 남한강을 따라 이어지는 자전거도로 등을 이용하여 충주역으로 돌아온다.
남한강을 순환하는 노선으로 농로, 자전거도로, 시도 등 대부분 교통량이 적은 한가한 도로를 이용하지만 탐금대에서 조정지댐까지의 지방도(국가지원지방도 82호선, 지방도 599호선)구간은 차로폭이 협소하고 갓길도 없는 편도 1차로이다.
게다가 차량통행까지 많아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충주시내를 기준으로 남한강의 건너편에 해당하는 조정지댐에서 목행대교까지의 24번 국도의 서남고개는 경사가 급하므로 미리 염두해두고, 고개를 지나면 대부분 구간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8-2 사진으로 보는 문화유적지

 

 

 

 

 

◎ 중원고구려비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구려비로 고구려 전성기인 5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1979년 입석마을 입구에서 발견되었는데 비면이 심하게 마모된 상태였다. 돌기둥 모양의 자연석으로 4면에 모두 글을 새겼으나 판독이 완전하지 못해 계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역사적으로 충주를 중심으로 하는 중원지역은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지리적 요충지로 삼국의 각축장이었다. 중원고구려비는 고구려의 영토가 이 지역까지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이 비는 고구려와 신라, 백제의 관계를 밝혀주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국보 제205호

 

 

 

 

 

 


 

◎ 중원탑평리 칠층석탑

 

2단의 기단위에 7층의 탑신을 올렸다. 배치나 짜임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인 8세기 후반에 세워졌을 것으로 짐작한다. 당시 세워진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크다. 하지만 전체적인 높이에 비해 너비가 좁아 지나치게 높아 보여 안정감이 덜하다. 또 세부 수법이 약화되는 등 당시 경향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1917년 탑을 보수하면서 사리장치와 유물이 발견되었다. 그 중 고려시대 거울이 발견되어 탑을 만든 후 고려시대에 2차 봉안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의 중앙부에 위치한다고 하여 중앙탑이라 부르기도 한다. 국보 제6호

 


◎ 충주 탄금대

 

탄금대는 대문산이라고 부르던 작은 산이다. 신라 진흥왕(537) 때 우리나라 3대 악성 중 하나인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하던 곳이라고 하여 탄금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시도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명승 제42호로 변경되었다.
절벽을 따라 남한강이 흐르고 있고, 울창한 송림이 우거져 경관이 뛰어나다.
또 임진왜란 당시 신립 장군이 배수진을 치고 일본과 격전을 한 전적지이기도 하다. 신립 장군은 패전하자 강에 투신하여 순국하였다. 현재 이곳에는 신립의 충정을 기리는 탄금대비와 악성우륵선생추모비, 공원 등이 조성되어 있다.

 

우륵이 가야 멸망을 예견, 가야금을 가지고 신라에 귀화하였다. 진흥왕이 기뻐하며 우륵을 충주에 살게 하고 신라 청년들을 뽑아 춤과 음악을 배우게 하였다. 우륵이 커다란 바위에 앉아 가야금을 타자 사람들이 모여들어 마을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칠금동(칠곡리), 금능리(금뇌리), 청금정(청금리) 등의 명칭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 하강서원과 모현정

 

 

정조10년(1786) 요직을 두루 거친 관료 홍이상 선생의 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서원은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철거되기도 했다. 1907년부터 하강단소를 만들어 제사를 지내다 1974년 복원하였다.
후손들이 순조17년(1817) 서원 서쪽 강가에 그의 덕을 추모해 모현정을 세웠는데 정자에서 바라보는 남한강의 경치가 빼어나다. 주변에 연꽃이 지천으로 피었다는 하담이 있었는데 하담의 가을 풍경은 충주팔경의 하나로 꼽혔다고 한다.

 

 

 

8-3 지도로 보는 충주시

 

 

 출처:문화재청